노트북/2014년

'me before you'

수행화 2014. 9. 13. 02:03

Jojo Moyes 라는 영국 작가가 쓴 소설 'Me Before You'

베스트 셀러가 다 좋은 책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베스트셀러에 몇 주째 올라 있다면 관심이 생긴다. 나는 다만 궁금하다는 이유로 작가도 생소하고 내용도 전혀 모른 채 구해서 읽은 책이 나를 며칠째 가슴 아프게 했었다.

 

우리는 절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병세로 고통 받느니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이 인간적인 모습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은 절대적 고통이요, 산 자의 고문이 될 것이라고, 나는 책을 읽으며 내 일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사람의 능력은 키워진다는 것. 누군가가 사랑의 힘으로 북을 돋우어 준다면. 아름다워 눈물 나고, 슬프고 가슴 아파 또 눈물을 흘리며 꼼짝 않고 앉아 읽게 하는 마법의 책이 아닌가 싶다.

 

"철새가 도래한다거나 조수가 달라진다거나 해서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는 곳들도 많다.

우리 마을에서는 관광객의 귀환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중세의 성, 스토트폴트가 있는 작은 마을의 소개는 평화롭다. 

 

그리고 모든 게 성을 중심으로 돌아 가는 이 작은 마을 카페에서 일하는 '클라라 루이자'는 모든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아가씨이다. 가끔 관광객 몇 사람과 눈을 맞추고 사진도 찍어 주고 하면서 외지의 바람을 느껴 보고, 그 마을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곳의 삶을 일별하게 되는 것을 좋아라 할뿐, 남들이 하나같이 싫어하는 월요일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등 단조로운 일상에 불만 없는 아가씨이다.

그러나 카페가  문을 닫게 되어 갑자기 실직하게 된 그녀는  자기의 수입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부모님 걱정에 6개월 계약으로 전신마비 환자 간병의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성주인 아버지, 치안판사인 어머니를 둔 아들, 윌 트레이너.

스포츠를 즐기는 여행가이며, 천재적인 M&A 전문가로서,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할 이 멋진 청년은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고 까칠하게 그녀와 만나게 된다.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으며, 이렇게 휠체어에 묶여 지내는 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는 이러한 삶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안락사, 죽음을 준비한다.  자기가 제시하는 이 방식은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논리로 어머니를 설득하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6개월의 말미를 약속 받는다.

 

"사방 모든 게 움직이고 휘어지고 자라나고 번식하는데 내 아들, 목숨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아름다운 청년은 이런.....
아들이 그가  계획했던 삶이 아니라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삶이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면......"

아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뭐든 해야했던 어머니는 루이자를 고용하고, 이로 인하여 루이자는 완전히 다른 삶 속으로 , 남의 인생 속에 던져 진 것이다.

 

윌 트레이너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주어진 시간 117일.

달력을 사서 하얀 네모 칸들을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느낄 행복과 만족과 기쁨과 쾌락을 주는 일들로 가득 채워려 고군분투하게 된다.

자막이 있는 외국 영화도 함께 보고, 처음으로 산책을 나서 보기도 했으며, 다음 경마장 구경도 가 보고, 콘서트 초대에도 함께 가곤 하면서, 사지마비 환자와 할 수 있는 것,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을 늘려 간다.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은 자기가 몰랐던 또 다른 인생의 방식을 알아 가고, 각자 다른 모습의 연민으로 서로를 안타까이 바라 본다.

 

루이자는 자기가 꿈 꿀 수 없을만큼 똑똑하고 재미 있는 사람, 아직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보다 훨씬 더 나은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울었고, 그의 분노와 슬픔을 생각하며 울었고,

제일 큰 걱정이 고작 매일 첼시번 빵 주문량이 충분할 것인가에 그쳤던 카페에서의 그 시절로 돌아 가고 싶어 울었고,

 

그리고 윌은 성이 있는 이 작은 마을을 전 세계로 알고 살아 가는 루이자를 연민한다.

재능과 잠재력을 외면하고 이 작은 마을에서 왜소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루이자의 인생을 걱정하며 수시로 지적인 자극을 주어 새로운 세상을 알게하고 싶어 한다.

"사람이 도전하고 좀 그래 봐요"

"인생은 한번 밖에 못 사는 거요, 한 번의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보내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요."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이 안개처럼 서로에게 스며들어 가는 것, 그 순정의 시간을 바라 보는 것은 안타깝다.

젖은 솜처럼 마음도 무겁고 눈까풀도 무거워지는 걸 견디며 책을 놓치지 않는다.

 

콘서트에서 음악이 주는 지적인 충격을 받는 루이자, 음악은 무한한 상상력을 가져다 주며, 인간의 인지 능력을 쭉쭉 키워 주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그녀와 달리 휠 체어의 남자는,

"그냥 들어 가고 싶지 않아요. 그저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데리고 콘서트에 다녀 온 남자로 있고 싶어요, 그냥 몇 분만"

달빛 젖은 언덕 위 성채의 그림자가 반쯤 가려진 채, '기억 속 음악에 빠져 든 두 사람이 되어 그냥 잠시 있고 싶다'는 윌의 말은 지난 행복의 순간을  반추하는 것같아 나 또한 애틋한 연민으로 눈물이 지어진다.

 

차츰 외츨 기회를 늘려 가고, 시내 극장에도 가고, 저택 영지에서 벌어진 야외 콘스트에 가기도 하는 한편, 음성 인식기를 찾아 컴퓨터도 쓰게 해 주고......

루이자는 사지마비 환자와 함께 할 수 있는 것, 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이벤트에 골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감정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이지적이고 이성적인 윌은 자신의 결정을 끝내 바꾸지 않으려 하며, 죽음의 준비를 게을리 않는다.

" 나는 내 삶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내 일과 여행과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모든 것을 사랑했어요.

그런데 의도와 목적에 반해 나를 규정하는 게 이 물건이 됐다는 걸.

나는 순응하는 그런 남자가 아닙니다. 난 이걸(휠체어) 끝까지 받아 들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보다 절대 더 나아지지 못해요. 내 삶이 축소되었는데 더 작아질 수는 없어요. 내가 바라는 끝을 줘요"

 

그 예정된 6개월의 시간이 잦아 들어 가고, 매 순간 모든 것을 쏟아 헌신하는 루이자의 몸부림을 지켜 보면서, 윌을 위해, 윌이 살고저 하는 욕망을 부르기 위해 해외 여행까지 감행하는 열정을 바라보며, 마침내 그 두꺼운 책이 몇 페이지를 남기지 않을 때까지, 

루이자와 함께 나도 결코 그 청년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녀의 염원에 힘을 실어 주며, 그저 그렇게 자잘한 즐거움을 찾으며 가족과 연인과 함께 남아 주는 삶을 선택할 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심장이 터질듯한 간절함으로 뒬이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소망하게 된다.

그 아깝고도 안타까운 인생을 향하여.

 

그러나 그 자의식이 강한 남자는 자기와의 약속을 돌에라도 새긴듯 지키려 한다. 자신이 그렸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자기 책임 하의 인생이 아닌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바꿀 수 없으므로. 

예정대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도와 주는 스위스 취리히의 '디그니타스 병원'에서 생을 마친다.

사랑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죽음으로 답을 보낸다.

슬픔에 심장을 찢기고, 생명이라도 던져 살게 해 주고 싶은 터질 것같은 루이자의 사랑에

야먕과 용기와 새로운 공기, 드넓은 세상을 선물하고.....

 

그로부터 6주 후.

"반드시 프랑 부르주아 거리의 카페 마르키에서 크루아상과 커다란 카페크렘을 앞에 놓은 채 읽을 것."

이라는 그의 지시에 따라 진녹색 카페 차양 아래서 길게 펼쳐진 프랑 부르조아 거리를 하염 없이 바라보면서 그녀는 가지고 다니던 편지를 읽는다. 

 .

"클라크.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 쯤이며 이미 몇 주쯤 흘렀겠죠

.................

용건은 이렇습니다.

.................

내가 이 돈을 주는 건 이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별로 남지 않았는 데 당신만은 날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당신 안에는 굶주림이 있어요. 두려움 모르는 갈망이, 대담무쌍하게 살아가라는 말이예요. 스스로를 밀어 붙여요 .

안주하지 말아요.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고 사는 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 가능성들을 당신에게 준 사람이 나라는 것만으로도 , 어쩐지 일말의 고통을 던 느낌이예요.

이게 끝입니다.당신은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어요. 클라크. 처음 걸어 온 그날 부터 그랬어요. 그 웃기는 옷들과 거지 같은 농담들과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숨길 줄 모르는그 한심한 무능력까지. 이돈이 당신 인생을 아무리 바꾸었더라도, 내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이 바뀌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너무 슬퍼 말아요. 그냥 잘 살아요

윌.

 

아름답고 평화로운 성채의 정경. 재치가 넘나드는 대화들. 몹시 우아하고 여유로운 삶과 옹색하게 조글조글 살아 가는 삶의 대비들.

나는 작가의 섬세하고 유머러스하고 아름다운 글에 깊이 빠져 들었다.

루아자의 튀는 패션 감각은 화보를 펼쳐 보고 있듯이 현란했으며, 마을에 기품을 주는 성채의 풍경을 그려 보는 것도 어렵지 않아 거기서 실려 오는 소슬한 바람이라도 쐬는 양, 소름을 돋우며 읽었다.

 

"인생은 소 발자욱에 고인 빗물처럼 나날이 줄어 드는 것"이라는 어느 경전에서의 말씀이 떠 오른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은 소멸하는 것이고, 난다는 것은 죽음을 이미 내포하고 있어, 이것들은 이미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하여 불이법문(不二法文)이라고 이른다. 그리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우리는 걸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청년의 죽음은 너무 아깝고 애달프다.

내가 작중의 누구도 아닌데 그저 뭐가 뭔지도 모를 슬픔이 얼키고 설킨 형국이 되어, 일상의 평온을 찾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린 것같다. 바로 이글을 쓰지 못한 걸 보면.  

 

누군가에게 가능성의 세계, 빛나는 미래를 선물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사랑은 기적을 선물하는 힘을 가졌다. 그 기적은 루이자에게 자유에의 의지를 가져다 줄 것이다. 맹렬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던 삶의 방식을 루이자에게 던져 주었기에, 어쩌면 윌의 존재는 영원히 그녀 가슴에 둥지를 틀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 아름다운 청년은 진정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한 심장을 가졌으며, 높은 사랑의 방법을 아는 사람이며,

또한 자기를 사랑하는, 너무나 사랑한 한 인간이라 생각한다.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내 권유에 못 이겨 읽더니 역시 책을 놓치 못하였고,

그도 역시 끝까지 청년이 살아나기를 기대했다고 하니... 우리는 함께 아까운 죽음을 애도한 셈이 되었다.

요즘 드물게 보는 영화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