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4년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수행화 2014. 10. 29. 01:10

가난은 때때로 시인의 노래가 되기도 한다.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다만 불편할 뿐이다'라는 말들도 듣는다.

그러나 나는 '가난이 창문을 기웃거리면 행복은 대문을 빠져 나간다'는 속담이 더 수긍이 간다.

 

소비가 크나 큰 미덕이고, 사치와 소비의 총량이 성공과 행복의 척도쯤으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가난은 재앙이며 고통일 수밖에 없다. 가난이 가져다 주는 더 큰 불편은 상대적인 박탈감이다. 부자들이 자신감과 우월감을 한껏 키워 나가는 동안, 가난한 자의 자존감은 소리 없이 낮아진다. 그렇게 상처 입은 자존감이 때로 삶의 커다란 동력이 된다 할지라도 슬픈 건 사실이다.

  

고 박 정희 대통령께서 "가난은 나의 스승이요 은인이다"고 하신 말씀 속에서 희망의 블씨를 살렸던 시절이 뭐 그렇게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난하나 우아함이 떠나지 않을 삶의 지혜를 책을 통해 알고저 하는 시절을 산다. 가난의 절박함이 덜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얼핏  "우아하게 가난해 지는 법" 이라는 말은 모순이나 궤변으로 들린다. 그런데 몇 백년에 걸쳐 서서이 가난해진 귀족의 자손으로서, 가난과 부가 병존하는 일상을 온몸으로 살았던 사람이 가난하나 부유하게 느끼며 살 수 있는 어떤 조언이라니 귀 귀울여 들어 본다.

 

독일 '프랑크프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틍'의 베를린 판 편집자였던

'폰 쇤부르크'가 쓴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 그것이다.

 

자신이 졸지에 구조 조정 대상으로 실직한 가장이 되면서, ―그것도 18세기부터 누대로 내려 온 귀족 가문의 자손으로서 ― 인생은 급격히 추락했으나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받아들였으며, 차분하게 대처하였기에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경제적인 쇠퇴를 불행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생활 방식을 고아하고 세련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 보겠다는 인식을 가져 보라고 말한다. 가난해지면 삶에서 중요한 것의 우선 순위를 배우게 된다는 것.

즉, 삶에 무리한 부담을 주는 모든 잡동사니로부터 벗어나게 되어 진실로 애착하는 일만 남게 될 것이며, 특별한 분야에 모아진 관심이 전문적인 식견이 되며 오히려 인생에 깊이를 더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보면 부자들이 누리는 쾌락과 행복에는 '한계 효용의 법칙'이 지독하게 작용하여, 쾌락이 충족된다 한들 만족의 순간은 잠시, 또 다른 욕망을 구하게 되니 보통 사람의 생각처럼 쾌락의 충족이 곧 행복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으며, 자연 속을 걷는 것이 오히려 우아한 스포츠이며, 휴가를 떠나지 않는 사람이 미래의 선구자라고 작가는 감히 선언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조금 극단적인 견해같아 보이나 어쩌면 이러한 심플 라이프가 보다 각광 받을 날이 곧 도래할지지도 모를 일이다.

 

왜 우리는 생산 능력이 충분하면서 고의적으로 고객을 기다리게 하는 명품의 마켓팅에 현혹되어야 하는 걸까? 취향에 자신감만 있다면 소비의 강요에서 자신을 얼마든지 방어하며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데도 말이다.

"신은 인간을  벌하려는 경우에 그들의 기도를 들어 준다고 한다."

이기심에 흐르고, 구하고 또 구하려는 욕망의 끝은 인간에게 마침내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의 표현일 것이나 어쨌던 부자가 천국에 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이 왜 전해 오나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또렷해진다면,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선택하여 매진한다면, 분별하고 인내하고 정진한다면..... 비로소 타인의 고통에 눈이 가게 된다면,

가난이 주는 가르침이 크다고 할 것이다.

가난이 너무 늦게와서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조건절을 붙인다면, 가난은 반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삶을 보람있게 해 주는 것은 황금산에 파묻히는 것이 아니라,

박식함, 예의 범절, 친절함, 다정함, 그리고 내적인 자주성이라고 작가는 단호히 말하고 있다.

 

먼 데서 애둘러 나에게 전해져 온 작가의 말은 어쩌면 우리가 익히 들어 왔던  "소욕지족(少慾之足)의 다른 버전이라고 해야 할 것같다. 

욕심은 삶에서 의욕을 불 태우는 연료이기도 하여 완전한 무욕, 무소유란 있을 수 없는 법,

없앨 수는 없으니 다만 마춤하게 줄이는 것이 행복의 진정한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태양의 혜택을 찬미하고 화려한 삶에 도취해 있던 나뭇잎도 이제 간편한 차림을 하면서 무성한 그림자를 거두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도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번다한 삶. 화려함이 지고 소박함을 떠 올리기에  참 좋은 시절이라고.

 

비록 지금 눈물겨운 가난 속에 있지 않은 자라고 해도 자신을 한번 점검해 봐야할 것같다.

가난에 있는 집중력과 겸손함이 자기에게 얼마나 있는지!

 

 '맑은 가난'에 가르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