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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반도 둘러 보기.

수행화 2014. 11. 25. 00:52

  

 파다하던 단풍 소식이 살짝 기울어지려던 즈음(11월7~8). 변산반도를 다녀 왔다.
죽마고우와 함께 하다 보니 웃음 반, 구경 반 덩더꿍 휘돌았고........즐거웠다.
내 자리에 와 앉아 그 시간들 반추하며 일구는 내 작업. 귀찮아야 할 이 일이 초이스할 사진이 적어 의외로 싱거우려 한다. 하지만 괜찮다. 가을 변산에 갈 이유를 또 가졌으니까.

 

 


< 선운사>

 

 

전북 고창군에 소재한 
백제 위덕왕 24년 (577) 검단 선사와 신라의 국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금산사와 더부러 전라북도 내 조계종의 2대 본사이다.

유 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책에 크게 문화적 충격을 받아 그의 답사 코스를 뒤밟아 다니던 해가 있었다. 돌이켜 보니 1994년의 일, 20년 전이었다.

이후 두번은 더 들락거린 절, 내 마음에 아름답게 담긴 절 가운데 한 곳. 선운사. 가을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별 무 기대.......,나는 크게 코를 다쳤다. 뭘 보았고 뭘 안다고 깝죽대었나 스스로를 부끄러워 해야먄 했다. 만세루의 푸른 나무 벽을 돌아 뒷산 가득한 동백만 눈 아프게 보고 다녔지 않나 싶으니 어이가 없어진다.


 

 

 


'이 한 장의 엽서'

 

선운사는 가을을 이 명경알같은 물에 아름답게 담고 있다.  "이 한장의 엽서'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마음으로 띄운다. 또 하나의 가을이 가고 있다고. 물 위에 찬란하게 반영된 자신의 모습을 꿈꾸듯 바라보다 그 수면에 도도하게 떨어져 내리는, 한 잎 나르시스이어도 좋다. 

  고운 자태를 숨기지 않아 카메라 세례를 무한히 받는다. 커다란 카메라를 받쳐 두고 오래 지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참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정경이다.

 

 

 

 

가을 선운사가 이다지도 아름다운 줄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절로 가는 길에 늘 있게 되는 그저 개울로만 여긴 이 곳 도솔천은 지금 빛의 향연이다. 도솔천(天)이란 불교의 세계관에서 분류되는 천(天)의 하나이다. 선계(仙界)에 천(川)이라  도솔천이라고 불러 줘야만 한다.

어쩌란 말인가?  동백을 보러 봄에 와야 하나, 아니면 상사화를 보러 늦여름에 와야하나?
아!  그러나 가을 선운사의 차림을 놓아 버릴 수는 없다.
 

   

 

 

 

잎이 떨어지며 만드는 파문, 수면 위의 그 여린 일렁임을 바라 보며 자신의 시간을 생각한다. 햇살과 달빛과 빗줄기와 눈송이와 그리고 부단히 스치며 속삭이던 바람결과, 왁짜한 소음을 허공에 날리며 흘러 가던 인파와....... 이제 곧 이 모든 인연을 접으려 하며 후둑 후둑 떨구는 잎을 발 아래에서 바라 본다.

한 점, 또 한 점 파문을 일으키는 잎새의 마침표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그려 내고 있었고......




 

 

 


그들의 삶이 찬란하게 마감되는 것을 바라 보는 마음은 서럽다.
그러나 떠날 채비를 하며 우리를 기다려준 이 애달픈 가을에 고맙다는 말은 건넸다.

 

 

 

 

 

온전한 천왕문 사진을 갖겠다는 건 현재로는 망상이다. 끊임없는 인파가 허용하지를 않는다.  남은 나의 시야를 가리고 나는 또 남의 사야를 가리며 서로를 방해하며 밀려 들고 밀려 난다. 천왕문이라는 글씨는 영조 당시  원교 이 광사의 글이라고 한다.

 


 

오늘도 불법을 수호하며 본분을 다하는 사천왕상 앞을 지난다.

 단청이 아직 고운 탓인지 입체감 없는 회화같기도 하고,
과장된 표정이 조금 유머러스하게 보이기도 한다. 

 

 

 

 

 

 

대웅전 앞은 조금 과장한다면 뭐 입추의 여지가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절 집이란 불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그저 모든 중생의 마음이 쉬어가는 곳이어야 할 터이라 번다한 것을 이해하고 바라 본다. 바람과 함께 스쳐 간 시간들을 단청 빛에서 본다.

 

 

 

 

 

선운사 대웅전은 대한민국 보물 290호이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에 불난 것을 1613년 광해군 5년이 재건했다고 하니 고찰이나 여전히 정갈하다.
요즘은 전 국토가 축제의 장인 것같다.국화와 서 정주 시인을 분리할 수 없으니 또 국화 축제가 있었나 싶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국화 축제보다는, 간결한 선을 드러 내고 앉은 점잖은 대웅전 바라 보는 것을 더 사랑한다.

 

 

 

 

 

 6층 석탑은 고려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내 눈에는 살짝 살짝 말아 올려진 모서리들만  멋쟁이로 보인다.

 

 

 

 


만세루.

천왕문을 들어 서면 만세루를 만나게 된다. 만세루는 9칸 규모의 강당 건물로 뒷편의 대웅전과 딱 마주 보고 있다.

 


 

 

 

아름드리 기둥은 결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 소박한 모습이 역역하다. 거칠고 질박한 느낌이 더 장엄한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찻상을 마주한 사람들이 제법 분위기에 맞아 휑하던 감은 사라졌다.


 

 

 

 

도솔산.  일주문을 나선다.
일주문 안과 밖의 삶은 구분이 엄연하다. 그래서 일주문을 들어 설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은 늘 다르다. 일주문 안은 불도량이라 마음을 내리게 되고, 일주문을 나서면 일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이유이다.  
『도솔산 선운사』, 「戊子孟冬 一中 金 忠顯 이라고 쓰인 현판을 바라본다. 1948년 음력 10월에 남긴 글씨이다. 작고하신 것이 그다지 오래지 않아 김 충현 씨의 모습이 기억난다.
사람은 가도 글씨는 남아서 길이 길이~~~


 

 

 

 

천연 기념물 송악

 

형상은 소나무이나 바위를 터전으로 살아 간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인가 싶기도 하다.

개울 건너 편 암벽에 뜻밖의 장면이다. 두릅과의 상록 덩굴 식물이라고 하는데 싱그러운 것이 바위에 매달린 리스처럼 소담하고 근사하다. 특이한 생명이라 그런지 1991년 천연 기념물 367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고창에 오면 풍천 장어를 먹어 줘야할 것이다. 하루 두번 바닷물이 들어 오는데 자연산 장어가 바닷물과 바람을 함께 몰고 들어 온다고 해서 바람 풍(風) 내 천(川)으로,  그래서 풍천 장어라고 부른단다.

절집을 나서 장어집이 즐비한 것이 조금 거슬리나, 그렇지만 바닷 바람을 먹은 장어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내소사>

 

 

전혀 생소하던 사찰이었던  '내소사'라는 사찰이 내 맘에 고즈넉히 자리잡게 된 것 또한,
유 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읽은 직후이다. 풍상의 세월에 곱게 나이 든 어질고 유순하던 내소사를 늘 그리워 했다.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서 북쪽으로 1.2 km 정도의 거리이니 발걸음 하기가 좋은 곳이나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백제 무왕 34(63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명상길이던 그차분하던 전나무 숲길은 이제 단풍 행락객 인파에 더 이상 호젓한 길이 아니어서 다시 '내 마음 속 호젓한 길'로 간직하기로 하고, 단아한 일주문을 향해 들어 선다.  현판은 일중 김 충현씨가 쓴 글인데 참 멋스럽다. 일주문이란, 부처님의 진리는 하나라는 뜻으로  한개의 기둥을 쓰는 건축 방식이다, 이 곳에서부터 경 내라고 할 수 있다.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부릅 뜬 눈, 칼자루 등 무기를 들고 악귀를 쫓으려니 늘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다.

지국천왕상은 동방을 수호하는 신.
일반적으로 칼을 쥐고 있는 형상이다.

다문천왕은 북방을 수호하며 대체로 비파를 들고 있다.

 

천정에 매달린 등 모양이 사천왕상 분위기를 모던하게 해 보인다.

증장천 왕은 남쪽을 수호하는 신이며 용이나 여의주를 쥐고 있다.

광목전왕은 서쪽을 수호하며, 창이나 금강저를 들고 있다.

불교에서 방위를 이를 때는 주로 오른쪽 방향으로, 즉 동남서북으로 칭한다
 

 


 

 


 봉래루.

한 때 나는 대웅전을 가로 막는 '누'를 답답하다며 못마땅하게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대웅전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으로 보여 정겹다.

 고르지 않은 지형에 건물을 맞춰 준 것이 인간적으로 보이고, 이것이 봉래루의 특징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둥 높이가 각기 다르다니.

 

 

 

  

수령이 1000 여년이 되었다는 느티 나무. 윤회하지 않은 천년의 생명이란 성불의 반열이다. 가히 신령스럽다 해야할 것이다. 이름표를 달고 가을 하늘을 향해 꺾인 팔을 장엄하게 내뻗고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불당으로 보물 291호이다. 나무 빛갈을 그대로 살린 것이 소지(素地)단청이란다. 내가 이 대웅전을 사랑하는 이유는 저 묵은 순수의 빛깔 때문이다.
고졸한 멋을 온전히 담은 그림을 갖지 못해 내내 아쉽다. 달리고 또 달리고 마음이 바삐 달렸기 때문이다.  『大雄寶展』 정방형 편액이 너무 멋있어 찾아 보니 조선 후기 셔예가  원교 이 광사의 글씨라고 한다.

 

  

 

 

아담한 대웅전.

부처님을 모신 곳만이 대웅전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수하항마상을 지니신 부처님이 문수보살과 보현 보살을 협시불로 둔 전형적인 대웅전 모습이다.
조선 숙종 26년에 제작된 '영산회 괘불 탱'은 가로 9.95 세로 9.35 크기라고 하는데, 대웅전 외관과 현판과 정사각에 가까운 후불 탱화의 비율이 절묘하리만치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장수와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영산재에 주로 사용되는 괘불이라고 한다.  

  

 



바둑판 모양에 꽃 문양을 담은 저 천정화가 내 맘을 사정 없이 끌었지만 차마 찍을 수 없어, 문 밖에 조심스레 한 컷을 담았다.





시간이 겹겹이 쌓인 이 풍화의 단청은 진정 겸허한 아름다움이다.


 



대웅전 꽃살문.

내소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 문살. 꽃이 되고 잎이 되어도 결은 살아 있는 참된 성정의 아름다운 문양이다. 이 문살을 너무 좋아 하는 내 눈에  '한국의 문살'을 찍어 만든 엽서가 띄어 가끔 꺼내 보곤한다.  

인간은 죽어 사대(地.水.火.風)로 사라지는데 어인 일로 이 문살은 오랜 풍상에도 더 이상 늙을 줄을 모른단 말인가! 마법의 문살이다 지금은 이름도 널리 알려져 은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모양이다.




 

  

이 모습.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삼층 석탑

높이 3.46m라고 하는데 실제로도 아담하다. 화장를 싫어하는 내소사의 결을 닮은 듯 자그맣고 간결하다.  그러나 세월이 거무룩하게 내려 앉은 모습이 도량에 위엄은 더하고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 124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범종각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의 불전, 사물(四物)이 잘 모셔져 있다. 

 

 

 

 

 

고려 시대에 조성된 동종을 모신 각이다.
본래 고종 9년에 조성되어 내변산 청림사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원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설선당과 요사체

 

조선 시대 건축물이라는데 법당이 아닌 요사체가 지방 문화재로 등록된 드문 경우라고 한다.
1986년에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 125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능가산의 모습이 온화하고 품에 안긴 설선당이 정갈하다. 필요에 의해서겠지만 증, 개축을 한 절집의 요사체가 품위를 떨어뜨리는 경우를 하 많이 보았기에  돌 축대, 돌 담이 나직하게 애두른 이 건물이 그래서 멋져 보인다. 

 

  

 

 

  

내소사를 일별하며 돌아 나오다 무심히 뒤돌아 보니 아름다운 능선에 가을 하늘이 너무 곱다.
나는 훗날을 기약하며 '안녕' 인사를 담아 합장한다.

 

  

 

 

  

공격하듯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도량에 들어서면서 미처 살피지 못한 노란 빛. 블랙홀이 되어 바로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나뭇잎이 사는 이치를 배워야할 것이다. 푸른 세월이 지나 지상에서의 삶이 잦아드는 이 순간에도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는 것. 이다지도 아름다운 시절로 마감하는 행복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변산 반도 - 부안>

 

 

 

 

 

해가 혼곤히 바다로 빠져 드는 일몰은 처연해서 또 아름답다. 누구나 조금씩 경건해지는 시간이다.

  

 

 

 

 내일의 태양이 또 준비되어 있건만 나는 마지막 남은 한줌의 붉은 빛까지 부여 잡으려 실눈을 뜬다. 바다는 순수하게 순간 순간 빛의 여운을 전한다.  모든 걸 알고, 마냥 받아들이는 바다같은 품. 드넓은 바다의 마음을 보고 있다.

 

 

  



 채석강 

물때를 알고 들어 서려 했는데 발길이 그냥 닿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루떡처럼 켜를 이루던 채석강은 명치끝까지 물배를 채워, 우리는 물만 바라보고 나온다.

아쉬워 저 산책로까지 가까이 다가 가 본들...
슬쩍슬쩍 모습을 드러 내 보이는 바위판이 여기가 거기라는 귀뜸만 해준다.


 

 

  

다시 청아한 모습이 된 바다를 해수욕장에 서서 바라 본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해변을 끼고 끝 없이 걷고 싶게 한다. 길이 있는 한 걷고 싶으나 오르막 입구에서 그만 그쳐 아쉬웠지만 에너지를 안배해야 하는, 이제 우리는 그런 나이이다.

 

 

  

<새만금 홍보관>

 

'새만금'이란 전국 최대의 곡창지대인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합친 만큼의 새로운 땅이 생긴다는 뜻의 말로, 만경평야의 '만'(萬)자와 김제평야의 '금'(金)자를 따서 새만금이라 하였다.

1991년 기공~2007년 준공되어 개발 중인가 싶다.  





 새만금 사업은 우리 나라 지도를 바꾼, 거대한 간척 사업니다.
네넬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보다 1.4km 더 길어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하여 항공 사진을 찾아 내 상상력을 도우고 있다.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 앞바다 33.9km 연결하며 쌓은 방조제라니.....거의 100리 길의 바닷를 메꾸어 인간의 능력으로 천지개벽을 이룬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도를 보고서야 머리에 들어 온다. 



 

 

상전벽해의 반대 개념.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된다니! 기상천외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바다가 육지가 된 현장을 바라 보고 있다.  불가능이라는 글자에 가능이라는 말이 엄연히 포함되어 있다.


  

 

2012년 7월 개관했다는 멋쟁이 새만금 홍보관 내부. 홍보 영상도 보고, 멀리 뼏은 새만금 방파제도 바라 본다.  

새로 태어날 국토,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한다니, 지도를 바꾼 사업을 살감하게 된다.

설계도면에서부터 여러 자료들이 가지런히 전시된 걸 보면서 땀 흘렸을 그 누군가의 노고에 치하를 보낸다. 

 

 

 

 

 

환경 문제 수질 문제며 기타 법정에서 몹시 시끄러웠던 사업이었다는 걸 알지만  이제 길게 뻗은 길만 바라 보는 우리는 감개 비슷한 느낌만 있다. 드라이브 욕구를 일으키는 이 길.........방파제를 달려 군산 비응항까지 가려면 1시간 반은 걸린다고 하니 포기, 다음을 기약한다. 

 

인간은 죽어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의 사대(四大)로 흝어진다. 
순간이라 해도 좋을 짧은 시간에 그저 그렇게 사라진다.

지대는 땅으로, 수대는 물로,
화대는 불기운으로, 그리고 풍대는 바람으로 홀연히 사라진

그렇다면 오랜 세월을 이기고 살아 남아, 혹은 윤회를 거듭하며 세세생생 생을 이어가는 나무와 잎과 풀과......
그리고 말 없이 그곳을 지키며 흘러 가는 구름, 시간, 사람을 바라 보는 절집들을 경이롭게 바라 본 시간이었다.

도처에 배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할 일이다.



 

 <2014년. 11. 7 ~ 11.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