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4년

''정글만리'... 씁쓰레한 뒷맛

수행화 2014. 12. 18. 23:01

 

우리는 지금 중국이나 중국인에 관한 뉴스를 쉴 새 없이 듣고 있고, 다방면의 정보들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중국이 G2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했다느니, 요우커들이 몰려 와 싹쓸이로 통큰 쇼핑을 한다느니, 제주도의 땅이 점차 중국인 소유가 되어 간다는니, 중국이 저가 스카트폰을 생산해서 우리 뒤를 맹추격해 온다느니....

 

이렇게 중국은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어 가고, 일찌기 중국에 진출했던 많은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들이 간간이 들리는 가운데, 마치 취재에 충실한 르포를 읽거나, 사실화를 보고 있는 것도 같은 소설을 읽었다.

'조 정래' 작가의 '정글 만리'

 

숲이 정글이 되면 이미 위험이 따르는 법인데 정글과 같은 인간과 사회라니.

경계심을 일으키기 충분하리만치 답답한 내용에 편치 않은 마음으로 읽었으나, 작가의 구수한 입담이 몹시 친근해서 은근 재미가 있었다
중국의 과거, 현재를 보면서 미래를 빠르게 예측해 보게 하는 한 권의 책이 아닌가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중국인의 성정에 대하여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경험 안에서,
일단 목소리가 시끄럽고, 도무지 공중 질서라는 게 없어 보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이 파렴치해 보이는 태도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 선입견의 시작은 오래 전 뉴질랜드 여행 중 반딧불이 동굴 관광을 중국인들 일행과 함께 할 때부터이다.

반딧불이는 소음과 공해에 취약하여 생존에 위협을 받으니 일절 소음을 내지 말고 조용히 동굴을 통과해 달라는 사전의 당부가 있었건만 그 중국인 팀은 전혀 아랑곳 않고 깜깜한 동글을 계속 떠들어대며 통과했던 일은 두고두고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중국 여행 중 사찰을 순례하다 보면 한 다발씩 피워대는 향 때문에 매케하게 숨막히고, 눈 아픈것은 물론, 그 그을음때문에 불상이 숯검뎅이가 되어 있어 아연실색했던 일들이며,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노라면 시끄러운 중국 여인들이 뛰어 들어 줄을 무시하고 냅다 들어 가던 일

등등등.

한 둘이 아니던 마음 상한 경험들이 새삼 떠오르며 소설의 어떤 장면들이 웃기면서 많은  공감을 했다.

 

소설은 시대를 반영하는지라 중국의 개방 정책 이후 기형적으로 진화한 기업의 생태계와 문명국답지 못한 어두운 부분을 살짝 부각시켜가면서 전개된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비단장수 왕서방'이란 호칭이 말해주듯 상술에 있어서 일단 뛰어난 DNA를 가지고 있기는 한 것같다.

그래서 글 중에  중국인들의 3대 상술에 대한 언급에 씁쓸하게 웃음짓게 된다.

 

"외상은 주지 말고 외상이 있으면 떼 먹어라."

"마누라는 빌려주어도 돈은 빌려주지 마라"

"100원을 벌기로 했는데 90원 밖에 못 벌었으면 한끼를 굶어라"'

라는 비정한 가르침이 있었다지 않은가!

웃자고 하는 말 같지만 그들의 경제 관념에 정신적인 배경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이제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사장이 되었고, 우리는 저 하늘이 안 보이는 밀림에 들어서 앞을 헤쳐 나가야 하는 우리 자손들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중국인들이 몹시 중시하는 것은  꽌시(관계) 라고 하고  멘쯔(체면)이라고 한다.


부정축재로 천문학적인 재산을 축적한 중국 고위직 인사들의 소식들이 가끔 세계 토픽이 되곤 하더니 이러한 사건은 모든 것에 관계를 중시하는 토양에서 자란 산물인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들의 명품 쇼핑, 성형 열풍이니 하는 지출 성향은 다분히 체면을 중시하는 심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던가 생각도 해 보게 한다. 

한편 비싼 잠옷이 신분 과시용이 되어 외출복으로 입고 공원 산책을 한다는 건 무슨 격에 맞지 않는 일인지!

문명 개조 정책을 하기는 하는 모양이어서 그 일환으로 '잠옷 입고 외출하지 말자'는 지적도 있다고 하니 이런 저런 것도 다 통제하고 지적해 줘야 하나 싶어 실소하게 된다.

 

사회주의 혁명을 했던 나라에 웬 미신은 그렇게 많으며, 이기심을 자극하는 풍속은 그렇게 많은지.

악귀를 쫓고, 돈을 부르고, 복을 부른다면 못할 것이 없고, 어떻게든 남보다 앞질러야 하는 강박증이라도 있는지, 춘절 전야의 폭죽 놀이는 정말 대단한 모양이다.

불꽃을 많이 터트리면 악귀를 더 멀리 쫓고, 재물을 더 많이 불러 올 수 있다고 믿기에 불꽃 놀이, 폭죽 놀이는 어마어마하여, 온 도시를 화약 가스로 깜깜하게 뒤덮는다고 하는 것도 놀라운데, 민심을 자극한다고 제대로 단속도 못한다니 더욱 납득이 안되는 일이 아닌가! 

참 갈 길이 먼 것같기는 하다.

 

하늘 아래 여성이 절반이라 양성 평등의 기치를 내걸어 이제 여권은 엄청나게 신장이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면 여자 아이라서 버려지는 아이가 한 해에 줄잡아 1억에서 4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무어라 설명해야 하며, 양성이 평등하다면서 왜 축첩은 공공연한 사회상이 되었는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이율배반의 세상이다.

 

그러나 다만 등소평의 개혁 개방  3대 구호민큼은 금과옥조로 삼았던 모양이다. 내용인즉은,

첫째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描白描論)

둘째는 먼저 부자가 되어라고 가르치는, 선부론(先富論)

셋째 부자가 되는 일은 영광스러운 일이다라고 역설하는, 성부광영론(成富光榮論)이 그것이다.

 

"자기보다 10배 부자이면 헐뜯고, 100배 부자이면 두려워 하고, 자기보다 1,000배 부자이면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10,000배 부자이면 노예가 된다."

자본 주의의 폐해를 완전히 능가하는 이러한 배금 사상은 일찌기 사마천의 사기에도 언급이 있었다고 하니 그들의 물질적 탐욕은 가히 역사적인 유산인듯 하다.

부귀를 쫓아 몸부림 치고, 자본 주의를 향해 질주하는 거대한 화력을 가진 말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 불이 초가삼간을 태운다 해도 일단 불씨는 살려 가야겠다는 강한 바람인가 한다.

 

한편으로 소설 속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 가다 보면 시안의 '진시황 병마총'이나 '섬서 역사 박물관' 등을 일별해 보는 등 중국 3000년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다녀 보는 재미가 또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훼손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 보기도 하고,

 

거대한 도시, 상하이에서 170년의 역사를 실감하는 황포강 풍경도 보고,

100년 전 독일의  조차지였던 칭다오의 이국적인 풍경에 맥주 맛이 일품이라는 소문을 들어 보기도 하는데

유독 태산에 오르는 장면이 마음에 잔상으로 오래 남는다.

태산에 힘들게 오르다 보면 한쪽에서 500위안에 향을 사서 다발로 피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짐을 지고 태산을 오르 내리며 하루를 바치는 짐꾼의 이야기도 있다.

태산을 오르는 7412 개의 계단을 등짐을 지고 올라가서 받는 대가는 20위안(3600원)이라고 하니

 양극화의 현실이 목전에 와 있는 것을 보게된다.


소설인지라 과장이 된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허구라고만 치부해 버릴 수도 없을 뿐더러, 극도의 이기심, 재물을 쫓는 빨간 눈들, 부정이 바이러스처럼 퍼져 가는 사회.....별반 다르지 않은 것같다.

 

그렇지만 정글에도 진심을 다하면 길이 있다는 다소 교훈적인 암시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 得人心者 得天下)는 말이 일러 주듯,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기업, 진정성 있게 이웃을 대하고, 서로 공경하며 인간적 유대관계를 끈끈히 유지한 사람에게 기회와 성공은 따르게 마련이라는 부분이 그나마 위안을 주고 있다. 

 

중국인들의 행복에 대한 개념은 포괄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이어서는 아니될 것같다.

보다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면이 더 소중한 가치라 여기는 것같다. 

그래서 일신의 탐욕과 쾌락에 깊이 몰두하려는 것이라면 중국은 미래가 어두울 것이다. 

그러나 속물적이고 당장 손에 거머쥘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것에서만 행복을 찾게 되는 소설 속 인물이 중국인 대중은 아닐 것이라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