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5년

'에디톨로지' -

수행화 2015. 4. 17. 00:46

 

 

 

 

 

 

 

문화 심리학자, 여러가지 문제 연구소장.

톡 튀는 이 직함은 김 정운 씨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힌트가 되어 줄 것같다. 이따금 보게되는 그의 글이나 강연 들에서 그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 퍽 유쾌한 사람, 상식의 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일보 김 정운의 감언이설'을 아주 재미 있게 읽으면서 그 사람의 유머와 웃음 그뒤에 펼쳐지는 드넓은 지식의 숲을 보았으며, 그만의 독특한 재능과 내공에 찬탄하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낸 책은

'Editology' - 창조는 곧 편집이다.

 

'Editology' 는 편집학이라 이른다. 세상 모든 것들은 끊임 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 된다.
이 모든 과정을 나는 한마디로 편집이라 정의한다.”

"에디톨로지는 그저 섞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패러다임 구성 과정에 관한 설명이다."

 

세상에 아주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래서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편집하는 능력이라 보는 이론인 것같다. 인간이 각자의 방식으로 섞어서 다시 짜 맞추는 편집의 방법론을 통틀어 'Editology'라 명명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의식이 그렇고 학문이 그렇고 예술이 그렇고.......이 모든 것에서.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마음과 심리의 에디톨로지로 분류해서 짚어 나간다.

 

 첫째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에서 도구의 발명이 인간 의식에 가져온 변화를 살펴본다. 마우스의 발명과 하이퍼텍스트를 핵심 주제로 삼았으며, 특히 마우스의 발명은 구텐베르그의 인쇄 혁명을 넘어선다고까지 말하고, 마우스는 인간을 날게 하는 도구라고 표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컴퓨터 화면을 보다가 관심 분야를 클릭하면 금방 다른 곳으로 날아 가게 되니, 마우스를 통한 정보와 사고는 날아 다닌다 할 정도로 빠르고 넓어져 가고, 반면에 책이나 용지에 사고를 국한 시키면 그 사고는 직선적이라 볼 수 있으며, 이러한   A4 적 사고는 인간 사유의 창조적 본질을 억압하는 것이라 판단하는 설이다. 따라서 우리가 새롭게 느끼고 지각하고 구성하는 능력이란 편집의 무한한 가능성에서 온다는 뜻인 것같다. 그럴둣한 이론이다.

이 엄청난 가능성을 잘 알아 본 사람이 스티브잡스였다고 말한다그야말로 편집을 통한 창조의 능력이 어떤 결과물을 가져 오는가를 보여 주었다고 말할 좋은 본보기인 것이다. 아이폰이야 말로 편집이 낳은 걸작이고 스티브잡스는 편집의 초능력자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둘째로는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로서, 공간을 편집하는 것과 인간 의식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생각해 본 장이다. 원근법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동양의 원근법. 서구의 원근법. 착시 현상을 위한 원근법 등에 대한 인식 차이를 발견하고, 원근법을 중심으로 관점의 변화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하는 점에 많은 부연 설명이 있다. 아마도 미술에 조예가 있고, 현재도 그림 공부를 하기때문에 화가의 시선으로 이 부분에 무척 많은 공력을 들인 것이 아니겠는가 이해하며 읽었다.

 

공간의 편집에 따라 인간의 심리는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이를테면 주택의 공간 편집과 따뜻한 가정이라는 개념이 깊은 상관 관계가 있고, 인간이 최소한의 품격을 지킬 수 없는 좁은 공간에 살게되면 온갖 병리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상기 시키면서, 또 나아가 국가도 다른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먹고, 자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끊임 없이 진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공간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상호작용이 달라진다는 점을 짚어 보는 것이다. 

 

이와같은 분류와 편집이 진화한 하나의 좋은 예가 백화점이며 편집숍이다. 일일이 필요한 물건을 찾아 다니던 시대에 필요한 물건을 하나의 공간에 체계적으로 분류한 백화점이라는 편집은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은 필요한 물건을 더욱 세심하게 엄선하여 한 공간에 집중시켜 고객의 시간 절약을 꾀해 주는 편집숍. 셀렉트 숍이 어떤 트렌드가 되어 간다. 이러한 공간 개념이 이제는 사이버 상에도 적용되어 '사이버 공간'의 인식도 보편화 되었으며, 그 공간 간에도 편집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어 가는 세상이다.

 

 세번째로는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로, 심리학의 본질에 대하여 설명하고 인간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편집되었는가 살펴 보는 장이다. 미국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이 구성된 거대한 편집의 국가이며, 인간 심리의 광대한 편집 실험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천재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의해 편집될 뿐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생득적인 특성을 가져도  제대로 구현하지 않으면 안가지고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며, 신동 모차르트가 아버지의 혹독한 도제식 훈련을 받았다는 것은 그렇게 아버지의 의도적인 편집에 의한 것이라 보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엄마는 가장 위대한 편집자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라는 존재까지도 내 기억이 편집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는 견해인 것이다.

 

그런 논리로 저자는 책도 꼭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로 읽을 필요도 없는 것이라 말한다. 편집의 묘를 살려 필요한 부분을 펼쳐서 읽고 싶을 때 읽으면 된다는 식이다. 독서를 통하여 앎이 편집되고, 그 편집된 지식은 노트북이란 공간에서 자신이 원하는만큼 원하는 시간에 맞춰 재편집되어 나가고.......

그의 주장대로라면 창조라는 것, 창의적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개념으로 해체하고 다시 재편집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심리학을 전공한 심오한 학자이며, 공부에 많은 열정의 세월을 투자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자기만의 축적된 지식과 개념의 학설을,
쉬운 표현의 자기 학설을 펴 보인 것이라 이해하면 될 것같다.

 

그리고 무거운 주제를 웃자고 하는 얘기처럼 재치있게 해 넘기는 능력이 있어 그의 말에 집중을 하게한다. 
그 말들을 따라 가다 보면 왠지 이 어령 교수와 약간씩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김 정운 씨는 자신의 책 '남자의 물건'에서 6대의 컴퓨터가 계속 돌아 가는 이 어령 씨의 커다란 책상이 있는 서재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어쨌거나 이 어령 교수의 분위기가 슬쩍 쓸쩍 느껴지고 있었다. 

 

이어령 교수가 오래 전에,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으로 디지로그라는 언어를 탄생 시켰던 점도 연상이 되면서 말이다. 디지털의 발전이 아날로그의 변화를 가져 오고 아날로그는 여전히 디지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상을 말이다.

 

이분들의 지식 창고는 실로 어마 어마하게 넓고도 깊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에서 퍼다 나르는 지식은 언제나 경이롭다. 정말 공부란 도착과 기항을 모르는 끝 없는 항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김 정운 씨는 늘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 보이면서, 사회적인 체면이나 지위에 갇혀 감정 표현에 서투른 이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해 보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같기도 하다. 이 지나친 솔직함이 우리를 웃게 하는 그만의 강력한 힘이며, 그 솔직함의 배경은 엄청난 자존심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주 조심스러운 조언으로 책을 끝내려 한다. 정말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다. 자신의 생각을 풍요롭게 편집하려면 무엇보다도 언어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오십이 넘어 새롭게 일본어를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작 영어 자료 하나 소화하는 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 가려면 영어 이외에 곡 한가지 언어를 더 배워야 한다. 두개 이상의 외국어와 데이터베이스 관리 습관을 갖추면, 뭘 하든 그리 두려울 게 없다 .

,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타인 속에서 특화된 자신을 가꾸는 것, 명함을 내밀지 않고도 자신을 자신있게 흥미롭게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성공을 향한 길일 것이라 말한다. 독자는 모두 자기 능력에 걸맞는 편집력을 구상하여,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으로 무장해야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가르침이로구나 생각해 본다. 자신이 50이 된 나이에 그랍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 가 홀로 지내면서, 공부가 깊어지고 새로워진 자신을 발견하는 보람이 어떠하랴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이 결과물은 자신을 지독한 외로움에 빠뜨려서 얻어진 보상이라 말하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 하나도 외롭지 않으면서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은, 처음 만난 여자가 예쁘다고 그녀의 주스 잔에 수면제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몹시 나쁜 생각이라는 거다."

 

그리고 이 책의 판형과 편집이 내 마음에 든다. 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조금 넓어서 펼쳐 보기가 좋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만져지는 반지르르하고 매끈한 종이 느낌이 좋고, 파트를 구분하는 예쁜 컬러도 좋고, 귀한 그림이 담뿍 들어 눈이 호사를 해서 더욱 좋다. 책을 사서 보고 내게 가져 온 아들의 선택도 너무 좋다. 

 

조선닷컴에서 읽은 글을 다시 챙겨 읽어 본다. 함빡 웃으면서도 유머의 배경을 알아 차리게 하는 진정 자기만의 능력이 보여서 이런 그의 글이 좋다.

 

"아무튼, 나는 늙어서 영어·독어·일어·한국어로 된 책을 들고 비행기를 타는 게 소원이다. 비행기에 타면 예쁘고 젊은 여자 옆에 앉아 영어책, 독어책, 일어책, 한국어책을 순서대로 읽을 거다. 독어책을 읽을 때는 가끔씩 크, , 트 하는 소리를 낼 거다. 영어책과 독어책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옆의 여자가 나를 곁눈질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면 바로 그녀를 향해 아주 우아한 미소를 날릴 거다. 이때 여자가 웃는다고 말 걸면 진짜 촌스러운 거다. 난 아주 무관심한 듯, 바로 눈길을 돌려 일어책으로 바꿔 읽을 거다. 혹시라도 옆의 여자가 젊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으면 진짜 큰일이다. 나는 바로 내려서 다른 비행기표를 끊을 거다. , 그럴 일은 정말 없어야 한다.

좌우간 난 늙으면 그렇게 영어책, 독어책, 일어책, 한국어책을 싸들고 비행기를 탈 거다. 땅콩 따위는 먹지도 않고 그렇게 책만 읽을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