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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 보림사

수행화 2015. 4. 29. 00:53

 

 

 

 

목련의 생애는 짧다.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일은 처절하고 고통스럽다는 걸 보여 주려 한다.
그러나 그 짧은 생은 고고하고 찬란하다. 생애 최고의 순간에 있는 목련을 보림사 경내에서 보았다 

 

실낱같은 비가 이리 저리 흩어지던 오후, '보림사' 도량에서 만난 자목련....  


 

"백목련이 지고 난 뒤 자목련 피는 뜰에서 다시 자목련 지는 날을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시인은 읊었는데, 지는 날을 왜 미리 앞당겨 걱정하는지 모를 일이다. 
지는 목련잎을 보는 것은 애잔하다.
그러나 목련이 지는 모습까지 어여쁘기를 바라는 건 내 가당찮은 욕심이리! 
지금 한 폭 그림이 되어 내 사진에 와 있음이 행복이므로.

 

 

 

 

 

 

 

< 보림사 대적광전>

 

올 봄 우리의 사찰 순례지는 전남 장흥 '보림사' 였다.
  다섯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탔고, 차창 밖으로 광주시를 지나면서 멀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편편한 지형때문인지 사찰 문턱 가까이 차량도 들어가니 발길이 쉽다고 봐야할 것이다.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법당은 전각명에 적(寂)이나 광(光) 자가 들어 가 있다.

 

법당 앞의 석탑과 석등은 국보 제 44호로 지정된 보물이라고 한다.
탑은 본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자들은 탑에 예를 표해야 한다.
법당과 석등과 쌍을 이루어 삼각형의 구도를 완성한 삼층 석탑의 조화가 편안하고 아름답다. 
탑은 석가탑과 형태가 같아 보인다.


  

 

 

 

 

 

등불은 어둠을 쫓는 빛이며, 어리석음 , 무명을 깨우치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의미이다.
부처님 말씀을 등불 삼으라는 의미로 석등은 늘 도량을 지킨다.
이 석등은 문화재를 보는 안목이 없는 우리 눈으로 봐도 각자의 비례가 절묘하고 조화로워 보인다.
그리고 원형이 거의 손상 없이 보존되어 그 가치를 높이 보는 것이다.

 

통일 신라 신라 시대의 석등이라고 하는데 늘씬하고 날렵한 품이 아주 멋스럽다. 
사찰에 오면 종종 신라인을 생각하게 된다. 
그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던 예술적인 감각과 더부러
양성 평등의 사회를 구현했던 문명 사회의 지식인을 떠 올려 본다는 말이다.

 

 1962년에 .국보 44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석등과 탑은 같은 시기, 870년 경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주지 스님께서 이 가물음에 큰 스님게서 단비를 몰고 오셨나보다고 덕담까지 하시며 우리를 환대해 주셨고,
사찰에 대한 간략한 안내를 해 주셨다. 보물 여덟 점을 가지고 있는 고찰이며  선불교 최초의 가람이라는 등등

반갑게 맞이해 주고, 우리 큰 스님께 예를 다하는 모습에 스님의 인품이 더 돋보였다.
친절은 남에게 처음 내미는 종이 없는 명함이로고나 생각해 본다.

 

 

 

 

 

 

대적광전에 모셔진 비로자나 부처님은 드물게 보는 철조 부처님이시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수인은 지권인이라는 정도는 우리는 이제 다 알고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의 불상으로  좌상의 높이가 2.51m이며 국보 제 117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성열 스님께서 선종 사찰인 이 곳의 내력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 주셨다.
이 사찰은 '구산문중의 가지산종'의 사찰로서 선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인연지를 따라 뿌리를 내렸으며
그 첫번째가 이곳 가지산이었으니 그래서  '가지산종'이라 분류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신라 선문 9산 중의 하나로서 유서 깊은 사찰이라는 걸 여기 와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이 단청빛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청색은 분명 남색에서 나온 빛깔이건만 사찰마다 그 푸르름이 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다.
이 법당의 정갈한 청색은 닷집의 붉은 빛에 조금도 기 죽지 않으며 자기 몫의 빛을 내고 있다. 너무 아름답다.  

 

 

 

 

 

 

대웅보전은 지붕이 이층으로 대적광전보다 더 장엄하다.
여기는 또 괘불석이 균형을 맞춰 주고 있다.
뒷산 봄꽃이 그려 낸 수채화가 봄비 내린 오후를 더 아련하게 한다. 뒷산을 바라보는 건 고요를 보는 것이다. 
지축을 흔들며 봄을 마련하는 치열한 노력은 수채화의 정경에 가리워져 있으리..... 
번번한 지형이라서인지 넓은 도량에 두 법당이 나란히 있다.  

 

 

 

 

 

 

범종각.

우리네 종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예불 시간에 울리는 사물의 소리를 듣는 것은 또 얼마나 장엄한지!
나는 늘 말한다. 스페인 톨레도의 성당 종소리? 우리 에밀레 종 소리와 비교를 말아 달라고.

 

 

 

 

 

돌담을 거느린 출입문이 얼마나 공손한지요!

 

이 사찰은 잘 쌓은 나직하고 긴 돌담이 매력 포인트라 보고 싶다. 
이 문을 지나니 나무결이 곱고 잘 지어진 공양간이 있어 우리는 편히 점심 공양을 들었다.
고찰이 뿜어 내는 묵은 쓸쓸함은 보이지 않고 옛것의 정다움과 따스함만 느껴지는 풍경이다.

 

 

 

 

 

 

그 곳에 들면 수행이 절로 될 것만 같으나, 수행자에게는 기실 지난한 길이며 문일 것이다.  
그래서 수행처에 드는 문 또한 좁은가 보다.

 

 

 

 

 

 

 

 

보조선사 창성탑 (普照禪師彰聖塔)

 가지산문의 제 3조 보조선사 체칭의 부도로 보물 157호로 지정 되어 있다고 한다.
신라 헌강왕 6년(880)에 입적한 뒤 4년 후에 조성된 것이라고 하니 천년 세월을 눈비와 함께 여기서 살아 온 것이다.
아랫 부분은 팔각이라고 하나 많이 췌손되었고 상단부의 팔각 기둥은 온전하게 유지 되어 있다.  


보조선사는 신라 헌강왕이 내린 시호이며, 창성은 탑호이다. 

 

 

 

 

 

보조 선사 창성탑비(普照禪師彰聖塔碑)

통일 신라 시대 보림사를 처음 세운 보조선사(804~880) 체칭의 행적을 적어 놓은 탑비
창성탑과 창성탑비가 함께 있어 보조선사와 사리탑의 행적에 대해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한다.
1963년 보물 158호로 지정되었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가 죽은지 4년째 되는 884년애 보조선사 창성탑과 함께 세워졌다고 한다.

 

 

 

 

 

사연을 알 수 없는 석불이 모셔져 있다.

 

 

 

 

<종무소>
낮은 담장을 넘겨다 보니 오밀 조밀한 것이 종무소로 보인다.
이렇게 아름답게 생긴 종무소라니.

아무래도 주지스님께서 상당한 안목을 가지신 분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산사 믐악회의 안내도 붙어 있고....

 

 

 

 

 

 

 

한국의 명수 '보림 약수라는 비석을 달고 있는 약수터.
나는 약수보다 저  다락같은 좁고 작은 지붕이 너무 귀엽다. 

 

 

 

 

<성보 박물관>

 

 

 

 

 

선종(禪宗)이 가장 먼저 정착된 사찰이고 구산문(九山門 ) 중 하나로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근본도량이라는 역사에 걸맞게 성보 박물관 건물도 잔잔하다.
개관한지가 얼마되지 않은듯이 보이는데 일단 부속 건물을 지나치며 들어 가는 분위기가 좋았다.

 
전시물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철불을 제작하는 과정을 미니어쳐로 재현해 놓은 것이 섬세하고 보기가 좋았다.

 

 

 

 

 

일단 흙으로 실제 모습의 원형을 만든 다음,  이 원형에다 다시 점토를 발라 석고본 뜨듯이 원형을 복제한 후, 겉 부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떼어낸 후 다시 서로 결합 시켜 바깥틀을 완성한다. 그런 다음 안틀을 철불의 두께만큼 깎고 다듬은 다음 여기에 바깥틀을 씌워 잘 고정 시킨 후,

 

 

 

 

 

 

 

안틀과 바깥틀 사이의 공간에 쇳물을 부은 후 굳어지면 바깥틀을 떼어 내면 처음 흙으로 만든 원형으로 완성이 되어진다. 그리고 점안식을 거쳐 예를 갖춘 후 비로소 철불이 탄생한다는 과정을 보여 준다.

 

 

 

 

 

 

 

동종 전시가 유독 눈에 띈다. 

 

 

 

사천문을 바라 보니 포스터와 현수막이 조금 거슬린다.
그래도 산사 음악회가 열린다니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 절에 들어 갈 때면 사천왕상이 그렇게 무서웠다. 
그런데 지금은 찬찬히 바라 보며 모습도 살펴 가며 드나 든다.
보림사 사천왕상은 유독 더 화려하지 않나 싶다.
표정도 덜 부리부리하고 관도 아주 화려하고 곱슬머리도 눈에 들어 온다.

 

 

 

 

 

 

 

 

 

 

 

 

 

 

 

 

보림사라는 절 이름은 보조선사가 입적한 후 헌강왕이 내려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3 보림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보림사가 3보림으로 세곳이나 있다고 하며,
중국 육조 혜능 스님의 조계산 보림사, 인도의 가지산 보림사, 이곳 가지산의 보림사가 그것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 선종의 본산이라는 것이 이름에서 더욱 확실하게 느껴진다.

 

 

 

 

 

 

 

 

이제 모란의 한 생은 지고, 어린 잎이 봄날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내년에 또 이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품은 시계가 어찌 경이롭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