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5년

스마트 폰과 연세 드신 분

수행화 2015. 9. 15. 10:46

지난 유월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들었던 스마트 폰을 최신의 것으로 바꾸게 되었다. 내 첫 번째 스마트 폰, 아이폰 4가 벌써 5년이 되었고, 이전에도 거의 5년 간격으로 애니콜 휴대폰을 두 번씩이나 바꾸었으니 나의 폰 역사는 그렇게 일천하지는 않은 것같다. 사실 탱크만한 핸드폰을 남편이 쓰던 시절로 소급해 본다면 여느 할머니보다 조금 일찍 핸드폰을 접하고 살았다 해야 할 것이다.

 

아이폰 4는 세련된 외양에 손 안에 쏙 들어 퍽 사랑스러웠는데 아이폰 6 플러스는 크고 시원한 느낌은 좋으나 그 넙데데한 얼굴에 금방 정이 들지는 않고 있다. 싫증을 잘 내지 않는 내게 온 새 폰도 나와 곧 정이 드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몇 년을 또 함께 지낼 것이다.

 

나의 첫 스마트폰이 지난 주에 아주 내게서 떠나고 말았다. 분신처럼 나를 따라 다녔으며 내게 많은 봉사를 해 줬고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었는데, 막상 떠나 보냈다는 말을 들으니 퍽 섭섭하기 이를데 없으니, 무정한 물건에게도 정이 많이 드는 것이로구나 생각을 해 본다.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고 하더니.....

 

사실 내가 쓰던 아이폰이 너무 깨끗하고 귀여워서 어엿한 중학생인 손녀가 썼으면 하고 아들에게 제안을 했다가 첫마디에  "그건 안 돼요!" 했고, 부창부수라 며느리도 "어머니. 대학교 들어 가면 좋은 걸로 사 주기로 약속이 다 돼 있어요" 하는 지라. 한편 너무 단호하지 않나 하다가, 슬며시 웃음이 나온 터였다. 아이 키우는데 엄중하고 주관이 확고해서 좋고, 그 지침에 잘도 따르는 손녀도 너무 착해서였다. 물색 모르는 할머니, 나보다 다들 낫다는 생각에 가는 자리마다 은근히 자랑인듯 자랑 아닌 자랑같은 얘기를하고 있다. 아들이 중고품으로 내 놓았더니 누군가가 적잖은 값을 지불하고 구매를 했다고 하는데 부디 새 주인에게 귀염 받으며 잘 봉사하기를 바라고 싶다. 아니 세련되고 아주 깔끔하여 퍽 사랑을 받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이제 스마트 폰이 바꿔 놓은 세상 풍경은 더 이상 화제도 아닌 것같다. 우리 소싯적에는 공상으로도 해보지 않은 기상천외한 일들이 버젓한 현실이 되었고, 그 변화에 가속도가 붙어 세상이 경이롭게 변하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모두들 고개 숙여 자기 폰만 들여다 보는지라 벽면을 가득 채웠던 광고판은 모양 뿐,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썰렁한 처지가 되니, 오죽하면 광고주들이 다들 걷어 가고 지금은 형광등 불빛만이 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어, 그 깔끔함이 오히려 머쓱해 보이기도 한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뉴스와 속보들, 삽시간에 번져 나가는 정보와 소문들. 넘쳐 나는 세상의 동영상들. 이제 전 국민이 아마추어 사진사로 뛰는 것 등등 변화된 일상을 당연시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전문적 식견이 없어 모르긴 하지만 불과 5년 전 내가 스마트폰을 가졌을 당시만 해도 이렇게 급변한 세상을 에측했을까 싶어진다. 애플 AS 센터 직원이 내게 던진 멘트가 그 사실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 주지 않나 하여 가끔 생각이 나기도 하고, 시대 변화에 둔감할 것 같은 그 청년의 근황이 실없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처음 스마트 폰을 사용하던 당시 아이들한테 묻고, 또 혼자 궁리해 가면서 재미 있게 익히며 잘 쓰고 있던 어느 날, 충전 중에 전원이 안테나 그림을 남기며 혼자 꺼지는 고장이 생겼다. AS센터를 갔더니 이 전화기는 분해를 못하니 새 것으로 교체해 주겠다고 했다. 실로 나는 새것이 몹시 마땅치가 않았다. 갑자기 전원이 나갔으니 내 나름으로 공들여 깔아 놓은 앱이랑 입력해 놓은 전화 번호랑 메모랑 데이터가 몽땅 다 날아 가버렸으니 상당히 황당하고 화가 날 일이었다.그때  상담 직원이 전화기 교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내게 보인 태도가 영 잊혀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스마트 폰이라는 게 젊은 기계잖아요. 연세가 드신 분하고는 잘 맞지가 않죠.
"그래요? 나는 잘 쓰는데!
연세 드신 분은 그저 통화 잘 되고 문자나 잘 받아 보면 되는데 사실 스마트폰은 맞는 기계가 아닌거죠,

 

나는 조금 썰렁해져서, “그런가? 아닌데...! 나는 잘 쓰는데요
낙담해 있는 나에게 위로의 말이라고 한 것인지 비아냥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왼 손에 폰을 치켜 들고 또박또박 일러주던 청년의 태도에 기분은 아주 언짢았고 그래서인지 그 말이 오래 잊히지 않고 있다. 황당한 순간 조리 있게 쏘아 붙이기를 잘 못하는 나는 초기화 되어버린 전화기 마냥 머릿 속이 하얗고 멍해진 채 새 전화기를 받아 들고 그냥 나오고 말았다. 공연히 비싼 폰만 쓰겠다고 덤비는 얼간이 할머니 취급을 받은 것같아 적잖이 기분이 나빴는데, 
그래도 말씀을 그렇게 하시면 안돼죠”. 하고 한마디 충고를 했었어야 했다는 생각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나는 주말에 아들에게 AS 센터 가서 들었던 얘기를 했더니 아주 흥분을 하는 것이다. “그 직원 이름이 뭐였어요?" “이름 알아서 뭐해? 모르겠어. 맨 오른 쪽에 앉았던 아인데 잘 모르겠네.아들보다 어려 보이는 직원이 그저 자기는 내 심란한 마음을 위로한답시고 한 말인지도 모를 일이고, 또 태도를 고치라고 충고하다가 회사에서 불이익이라도 받는다면 뭐.......

 

지금 스마트폰이 널리 쓰이고, 연세 드신 분들 생활에 이렇게 밀착하게 되리라 예상하지 못한 그 청년이 이제는 그 구닥다리 사고를 좀 벗었나 모르겠다. 사돈 따라 장에 가야 하고, 빨리 빨리 가야 하는 우리네 성정인데 스마트폰이 보급이 봇물 터진듯이 가속도 분은 것이 뭐 이상할 것도 없지 않은가! 

 

스마트폰의 폭발적 보급에는 카톡이 촉매가 된 점도 있을 것이다.카톡으로 받아 보는 좋은 말, 좋은 음악, 좋은 그림으로 누군가에게 참 소중한 대접을 받는 것 같던 기분도 잠시, 이내 숱하게 번져 버린 그 인사성 정보에 식상하고 은근 귀찮을 때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그런가 하면 동창회나 친목 모임의 카톡방은  연신 카톡””카톡소리를 지르며 단체 알림을 돌리기에 바쁘니 모두들 그 세계에 동참하고픈 욕구를 불러 일으키지 않겠는가! 참여 의식과 소속감의 욕망에 제대로 불을 지핀 것이라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우리 학창 시절, 전화 연락이 되는 친구를 정점으로 표를 그려 가며 비상 연락망을 조직하던 시절과 대비해 보면 그 격세지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세계의 사건 사고들이 실시간 속보로 쏟아져 바깥 세상 일이 깜깜할 일이 전혀 없다지만 그래도 스마트 폰으로  '김 정일 사망 속보'를 듣던 때는 정말 충격이었다. 김 정일의 사망이라는 사건도 충격이지만 내 스마트폰이 알려준 소식이라 그렇게 놀라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날, 2011년 12 17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시간 나는 심한 이명 때문에 이비인후과 정밀 검사를 받고 있던 중이었는데 입구에 둔 핸드백 안에서 전화기가 띵띵거려 누군가의 멧세지려니 하고 밖에 내다 놓았다가 검사를 마친 후 확인하니 이게 웬일인가! 조선일보에서 김 정일 사망 속보를 보낸 것이었다 그 속보를 보고 검사실 안에 대기하던 몇몇 사람들은 우르르 로비의 TV 앞으로 달려가니 이제 막 속보를 전하고 있었더란 말이다. 스마트폰이 순기능을 십분 발휘했다고 해야 할 일이었다. 참 신통하고 기분 좋은 날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이다.  

 

스마트 폰 사용이 어렵다 말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사실 무엇이 문제인가? 컴맹인 사람도 걱정이 없다. 글자 쓰기 귀찮으면 음성으로 물어 보고, 말하기 싫으면 문자를 날리고, 보고 싶으면 컴퓨터 앞에 앉지 않아도 수시로 영상으로 만나고.....요즈음은 가끔 뜬금 없이 전화를 걸었다가 급히 끊는 친구에게 나는 멧세지를 띄운다. 스마트 폰으로 바꿨구나. 시행 착오를 더러 하니까 미안해 하지 말고 자꾸 써 봐

 

‘74내 어릴 적 우리 집 전화 번호이다.다이얼도 없고 손잡이를 돌려 교환을 불러 통화를 부탁하던 시절, 추억의 전화 번호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교환원이 통화 내역을 다 아는 상황이니 개인의 프라이버시니 뭐니 그런 건 한참 먼 이야기였고, 또 전화통이 하나였던지라 가족 몰래 전화를 걸고 받는 게  얼마나 어려웠던 시절이었던지.....그래도 그 둔탁한 검정 전화기가 달고 있는 선을 타고 먼 누구와, 그것도 시간을 아껴가며 대화를 나누었던 시절이 우리에게는 참 소중했었다. 통화도 넘치게 하고 데이터도 넘치게 사용하는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소박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참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겼던 시절을 그리며 나는 온갖 게 다 들어 있는 스마트 폰에 배경 사진을 새로 바꿔 보면서 새로운 기분을 가지려 한다. 내 요구를 들어 주느라 힘이 들었던 저번 폰과 달리 새로운 폰은 품이 넉넉하다고 하는데 나는 벅차고 새로운 과제를 여태 주지 않고 있다. 나를 위해 묵묵히 할 일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 궁금증이 이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인지, 연잎이 분수 밖의 물방울을 탐하지 않고 무거워진 물방울은 곧 떨궈 버리듯 나도 더 이상의 욕심을 키우지 않으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 모든 것일 터이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벗이요 가정 교사인 나의 폰과 이 가을에 할 일을 작으나마 마련해 봐야겠다.  먼저 호흡부터 골라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