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5년

'게으름에 대한 찬양'

수행화 2015. 10. 4. 10:53

부지런함이 미덕이라는 말은 거의 진리처럼 우리에게 각인된 개념이라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만 게으름을 찬양한다는 건 어쩐지 어폐가 느껴지는 것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버트란트 럿셀 (B. russel : 1872~ 1970)의 수필집 '게으름에 대한 찬양'
고정 관념을 살짝 비틀어 주는 제목이 좋고, 게으르고 싶은 마음에 조금 위안을 주려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아무래도 근면을 강조하기 위한 반어적 표현이지 않을까 하며 책을 구해 보았다.

 

버트란트 럿셀은 철학가이면서 1950년에 노벨상을 받은 문필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논지는 아주 논리적이고 카리스마를 가졌으며, 시대에 멧세지를 던져주고, 문제점을 꺼내면서, 마치 토론을 유도하는 듯한 글이어서 시공을 초월하는 강력하고 좋은 수필이지 않을까 싶어진다.

 

이 글을 통하여 작가는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을 위해서 여가가 필요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라는 사회적인 통념은 노동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산업 사회가 낳은 관념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는데, 내 딱딱한 머리로는 선뜻 동의할 수 없고 납득이 잘 안 되기도 한다.

 

문명이 시작한 이래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대체적으로 인간은 열심히 일해도 가족의 생계 밖에 해겷할 수 없었다는 것, 즉 .가난한 자는 최소한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들이 기울인 노동의 대가로 귀족과 철학가 등 유한 계층은 맘 편하게 게으를 수 있었으니,
이러한 사회적 구조에서 노동은 존엄하다는 사상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 부지런함이 미덕이라는 관념은 주입된 사상일 수 있다는 논지이다

따라서 이 글은 근로는 바람직한 것으로 당연시 되어야 한다는 것에 관한 많은 내용들이 이 체제에서 파생하여 나온 것이고, 이러한 불공정한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하여 이론적인 관점을 정리한 것같다.

  

어떤 의무도 주어지지 않은 채 여유롭게 사는 유한 계층이 세습이 되고,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근면하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지적인 종류의 어떤 일까지도 전혀 하지 않는 저 시골 신사들이 수만명이나 있었다고 꼬집어 지적하기도 한다. 모순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고 보면 그런 유한 계급이 에술을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견하고, 철학을 만들며 문명에 공헌한 것은 얼마이며 우리 후손이 향유하는 혜택이 어떠했는가 생각해 보면 불쾌할 일만도 아닌 것같다.

예술에 대한, 학문에 대한 그들의 집착과 노력과 공적이 없었다면 인류는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많은 기회는 없었지만 나는 해외 여행지에서 선인들의 유적이나 자취를 바라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들의 사치와 욕망의 산물을 우리는 감탄을 해가며 바라 보누나 하는 점에 생각이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욕망을 위해 이름 없이 희생한 많은 인간들에 늘 경의를 보내며 돌아 선다.

고된 노동이 수반되지 않고는 어떤 결과물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예외지만 유럽에는 이러한 일을 하는 계층보다 존경 받는 제 3의층이 있다. 바로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남들에게 일할 수 있는 은전을 베푼 대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지주들은 게으르다, 그들의 게으름은 불행하게도 타인들의 근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근로가 미덕이라는 생각이 현대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 가는 것이다."

 

"여가란 문명에 필수적인 것이다. 예전에는 다수의 노동이 있어야만 소수의 여가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노동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일이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여가가 좋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에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주하게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대의 생산 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실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서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없다."

 

사회 주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나에게는 이 글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사회주의적 이상향을 구가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면이 없잖아 있다. 그래서 페이지 행간을 꼼꼼히 보게 된다.

 

생계를 위한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타인과 나눌 수 있다면, 각 개인의 인생이 서로 행복해 질 것이라고 방편적인 견해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필요한 만큼의 일만 하는 노동자는 기력을 소모할 일도 없고, 여가를 줄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며,

일에 지쳐 버린 사람들이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오락에 빠져 들지도 않을 것이며,

여가 시간에 생계와 관련이 없는 일을 해 보면서 의외의 독창성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등, 즉 여가는 순기능을 다 할 것이며, 유익한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가정이다. 

여가를 즐기므로서 사람들은 좀 더 친절해질 것이며 서로 서로 괴롭히는 일도 줄어 들 것이고 이런 저런 눈치 보는 일도 없어져 자연히 인간 관계도 개선될 것이라 예상을 해 보기도 한다.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이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그 시간을 백배 유용하게 쓰는 사람이 있고, 시간의 흐름에 무위하게 떠내려 보내는 인생도 있어 획일적인 시간 배분이란 어쩐지 걸맞지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거대담론은 나에게 어울리지가 않고 나는 내 분수에 맞게 단순하게 해석하고 정리를 하려 한다. 

 

솔직히 나는 경미한 정도의 '부지런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잠을 많이 잘 때도, 느긋하게 놀아야 할 경우에도 마음 한 구석 편치가 않은 것이 그 한 증세가 아닌가 한다.

강박은 초조하고 불편하며 때로 소화 장애를 일으키고, 가끔 몸이 아파 게으를 수밖에 없는 시간이면 한 없이 괴롭고 슬프다.

그래서 앉은뱅이 용쓰듯 누워서 평소 하지 못하던 일 생각만 한다. 누군가 나를 지배하거나 뒤따라 다니며 첵크하지도 않으며, 또 내가 티 나게 이루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참 알 수 없는 강박증이다. 

잠을 잔다는 것은 일에서 벗어 나는 상태이지만 다시 일을 하기 위한 재충전의 의미도 되니 실로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이 유익할 일은 아닌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게으른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을 위한 투자의 개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일상이란 무조건 반사와 같아 사실 아무런 감흥이 없다. 무의식인 호흡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

그것이 안정감은 줄지라도 창의적인 동기를 안겨 주지는 않는다는 것은 인정을 해야 한다.

쉬고 있다고 해도 쉬는 것이 아닌 것이 우리의 생각일 것이다. 완벽하게 게으름에 든 상태에서 생각은 더 열심히 일을 할 것이다. 수면 아래에 가라 앉아 있던 크고 작은 것들을 끌어 올려 이리 저리 굴려 보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변화와 역동적인 에너지가 가치 있다는 말이라 해석해 본다. 

그렇다면 안일과 다른 아주 강력한 게으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지구를 지고 사는 것도 아닌데 왜 그 쉬운 게으름과 휴식에 몰입해 보지 못하는지 한번 쯤 짚어 보는 시간을 준다. 생각의 지평을 조금 넓혀 보라는 권유로 받아 들여야겠다.    

 

세계적인 석학이 분석한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계층별 분석을 보면서 아전인수식으로 내 좁은 인식에 국한하여 내 방식의 생각들을 해 본다. 

 

어쨌거나 내가 읽은 범위 안에서 '버트란트 러셀'의 저서는 늘 어렵다.

고매한 사상과 깊은 학문에서 나오는 글이고, 범 사회적인 비판과 게몽의 성격이 보여서인지 알 수는 없다.

사이 사이 공감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분명한 역설은 있다.

게으름에 대하여 찬양하는 '버트런트 럿셀' 자신은 어마어마하게 부지런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98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지칠 줄 모르고 지적인 활동을 하였고 철학가이면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특한 이력이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는가!

진실로 자신에게 충실하고 근면한 사람만이 게으름을 찬양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게으른 자가 게으름을 찬양한다면 누구나 코웃음을 칠 것이다.

힘든 노동 후의 잠깐의 휴식, 달콤하게 게으름에 빠져 들 때의 행복감은 삶의 진정한 각성제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게으름이 먼저인지 노동이 먼저인지 나 혼자 궁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