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5년

소설 '파이브 데이즈'

수행화 2015. 10. 9. 16:43

 '더글라스 케네디' (1955~) 는 빅 픽쳐', '템테이션' 등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미국 작가라고 한다.

그의 소설 '모멘트'에 이어 이번에는 '파이브 데이즈'를 읽었다.

 

우리는 흔히 상상이 어려운 일이나 황당한 일을 두고 소설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지금 멀지 않은 우리 이웃에서 있을 법한 느낌이 드는 것이, 낯설지가 않다.

 

결혼한 지 23년 된 주인공 '로라'는 메인 주'에서 태어나서, 그 곳에서 성장하여 메인 주립대학을 마쳤으며, 종합 병원 영상 의학과에서 베테랑 기사로 일하고 있다.

집과 직장을 오가며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 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인 딸을 둔 엄마로서 언제나 소소한 걱정들을 갖고 있고, 취향과 이해가 아주 다른 건조한 남편과 무미한 결혼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으나,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며 살아 간다.  

 폭발적인 계기가 없는 한 어제의 인생과 오늘의 삶이 다르지 않을 그 범위 내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결혼 생활이라는 제도는 왜인지 유독 여자들의 자기 희생을 당연시하는 편으로서, 

책임이나 의무를 들먹이기 이전에 그저 습관에 의해 유지 되는 것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가정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감정까지도 늘 타인의 의지에 맞추며 살아 가는 '로라'의 모습을 보니,

미국이라는 나라의 여인도 어쩔 수 없는 아내, 엄마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지붕과 지하실 사이 두 층 공간으로 곰팡이가 점점 번져 갔다.지출이 더 늘어나겠지만 대출밖엔 방법이 없었다. 모기지론 1,200 달러, 벤 학비 1만 5천 달러, 남편의 출퇴근용 자동차리스 비용 250달러,(내 자동차는 21만 4천 킬로미터를 달렸고 트랜스미션을 교체해야 하는 생태였다), 벤과 샐리까지 혜택이 돌아가는 내 직장 의료보험료가 300달러였다.

그 정도의 고정 지출에 10년 동안 매달 450달러를 짊어져야 한다는 게 그리 달가울 리가 없었다.

고정 지출을 더할 경우 매달 지출해야하는 돈이 3,500달러 가까웠다. 남편의 연봉은 4만 3천 달러였고, 내 연봉은 5만 1천 달러였다. 세금을 제하고 우리 부부의 수입을 합치면 6만 1천 달러였고 그걸 다시 12로 나누면 한 달에 5,400달러였다. 다시 말해 남는 돈 1,900달러로 음식, 옷, 생필품, 벤과 샐리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사야하고 1년에 일주일 보내는 바캉도 비용도 짜내야만 했다.

 

주택 모기지, 생활비, 관리비, 의료 보험료, 학자금 조달......

미국 주부의 살림 살이도 우리와 퍽 다르지가 않아 보여서 무척 공감이 가고 은근 재미도 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의 남편은 지금 20개월 째 실직 중이라니..... 

 

그런 그녀가 보스톤으로 출장을 가게 된다.

바다를 바라 보면서 자신을 생각해 보았고, 자기 인생이 등 뒤로 스쳐 가는 걸 알았으며,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한 없이 겸손해지는 퍽 생소한 경험을 해 보기도 한다.  

자연이나 사물의 아름다움은 우리를 눈물나게 행복하게도 하고, 때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덤으로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힘이 아닐까!

 

'메인주', '뉴 햄프셔 주', '매사츠세츠 주', '페마퀴드 포인트 모래 사장', '브런즈윅', '디마리스코타',

'포틀랜드 케네벙크포트 9. 부시가의 휴양지', '켐브리지', '팬 웨이파크', '버킨 스트리트'.....

1번 도로, 95번 도로....

나는 '로라'가 모짜르트 36번 교향곡을 들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구글맵에으로 그녀를 쫓았다.

 

그녀의 동선을 따라 고속도로를 달리고, 거리를 걷고, 멋진 동네를 찾아 보곤하면서 작가가 스케치하듯 그려 나가는 길들을 짚어 가며 어려움 없이 상상 여행을 해 보았다.

작가가 여행기를 많이 썼다는 걸 뒷받침해 주듯 무척 실감이 나게 그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가없이 펼쳐진 장엄한 미국의 하늘에 도도하게 떠 흘러 가는 구름을 바라 본다면 누구나 한 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러한 하늘과 바다와 길을 머리로 그려 보면서 대화체가 많은 이 소설을 읽으니 한 나절에 거반 다 읽어 버리게 되었다.

 

"인생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젊은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스스로 인생의 한계를 정하는 데 일조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젊음의 특권은 사라진다."

 

'로라'는 일찌기 자유라는 젊음의 특권을 접었으며 인생의 한계를 자기가 나고 자라 생활을 영위하는 현재에 고정 시켜 버린 것이다.

메인 주라는 곳은 조용하고 개발이 덜 진행된 지역으로서 해안 풍경이 진짜 아름다워 시각적인 즐거움은 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삶 속에 깊이 매몰되어 무기력하게 살아 가는 모양이다.

 

 '로라'는 책을 이 단조로운 삶의 탈출구로 삼고, 매주 목요일마다 한 살 위인 친구 '루시' 와 둘이서만 독서 토론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녀들 나름으로 룰을 정해서 만나면 일단 책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고, 서로 토론할 책을 선택하면 상대는 의의 없이 함께 읽어 나가도록 하자는 규칙까지 정해 가며 제법 체계적으로 독서를 해 왔다.  

책도 읽고 우정도 쌓아 가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비딕,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도전하며 작품이 방대해 무려 한 달을 소모했다고도 해가면서 만남은 지속된다.

다양한 분양의 주된 관심사에 대한 독서 목록이 이채롭다.

 

 가족 문제에 관한 《돔비와 아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돈 문제에 대하여 《지금 우리가 사는 법, (앤터니 트롤로프의 1875년 소설)》,

미국의 문제를 생각하며 《미국의 비극》, 《바비트 (싱클레아 루이스의 1922년 소설)》

결혼 문제에 관하여 《테이트 부부의 전쟁,(앨리슨 루릐의 1975년 소설)》,

 《커플,(존 업다이크의 1968년 소설)》 《마담 보바리》  

리처드 에이츠의 《부활절 퍼레이드》 등등,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로라'는 영상의학 세미나의 출장지에서 우연히 독서와 글에 관한 공통의 취미를 가진 한 남자를 만난다.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점심을 먹고 산책도 한다.

문학도의 꿈을 이루지 못한 남자가 안타깝게 현실과 타협해야만 했던 인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민심을 느낀다. 자신과 닮은 남자를 보며 잊혀졌던 감성이 되살아나고, 그녀 스스로의 오늘도 새롭게 바라 본다.  

 

낯 선 남자와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이어진 대화 중에서

"비컨스트리트와 보스톤 광장 모퉁이 근처로 이사하려고요:

"언제요?" 

"다음 생에"

마음 속에 간직한 아름다운 동네인 것 같은데, 현세에서 이룰 수 없다는 절망감이 읽는 우리의 가슴을 쿵 소리 나게 때린다. 애잔한 맘이 전해진다.

 

그러나 절실한 결단의 시간은 닷새이면 충분한 모양이다. 출장을 마친 '로라'는 새로운 인생을 준비한다.

사랑 없는 부부 생활과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일은 의외로 담담하고 단호하다.

자기 가정으로 돌아 간 그 남자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로라의 의식은 형형하게 깨어나 불만의 뇌관은 폭발하였고, 급기야 자아에 충실한 삶을 살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남편과 헤어지고, 새로운 도시에서 직장을 구하고, 작은 집을 구해 아들의 도움을 받아 수리를 하고 가구를 들여 놓으면서 삶의 구심이 타인에게서 자기로, 자유인인 자기에게로 옮겨 진다. 

자신이 인테리어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채는 의외의 발견도 고무적이고 아름답게 보인다.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주부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새로운 인생을 꿈 꾼어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는환타지일 뿐이다. 그래서 대리 만족을 안겨 주고 있다.

어쨌거나 성실한 생활인인 그녀의 독립에 아낌 없는 환호를 보내 본다. 

무의식 깊은 낭떠러지에 떨어져 있던 욕망을 끌어 올린 힘에 갈채를 보낸다는 것이다.

.

사랑은 맹목성을 가지고 있고, 더구나 가족 간의 사랑은 관성에 의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 사랑은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과 함께 무심히 흘러 간다.

그러나 희생과 양보로만 꾸려지는 행복은 언제까지 지속되지가 않는다.

안락함은 당연한 것이 되고, 무관심과 함께 얼버무려져 진다면 사랑의 기억은 퇴색해 버리고,

가슴에 어둠이 스며 들면서, 응어리진 불만은 폭발을 위한 화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행복이 가면을 쓰고 있지나 않은지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남의 인생을 나에게 투영해 보아 잠시 생각에 잠겨 보는 것도 소설이 주는 재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