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5년

"앵무새 죽이기" , 양심을 두드리는 글

수행화 2015. 11. 8. 00:07

  

 

 

  

 

영화  앵무새 죽이기를 오래 전에 보기는 했다. (1962년 영화)

 그레고리 팩’ 주연이었다는 기억만 선명하고 나머지 일련의 장면들은 그저 잘라 둔 사진처럼 따문다문 떠오를 뿐, 아리송하기만 한데 2015 김 욱동씨 번역으로  다시 출간된 책을 읽게된 것은 행운이라 해야겠다.

비정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따뜻하게 호소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저자  넬 하퍼 리(Nelle Harper Lee)1926년 앨라베마 주 먼로빌에서 1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1915년부터 먼로빌에서 변호사, 잡지 편집자, 주 의회 의원을  역임하신 분이고 허파 리 자신도 한때 법률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1960년에 출판된 책으로 그녀의 첫 소설이고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소설이 출판되자마자 100주에 걸쳐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고 하니 얼마나 주목을 받았던가 짐작이 간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30년도 앨리배마 주의 메이콤이고, 변호사 애티커스의 아홉살 된 딸,스카우트가 화자(話者)가 되어 자기 관점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본대로 느낀대로 써 나가는 형식으로, 아이의 1인칭 화법이라서인지 순수하고 어여쁜 글이고, 아이들의 시선에서도 세상의 모든것, 작은 우주의 모습을 모두 담은 것처럼 성숙하고도 사려가 깊다. 

 

두 살때 엄마를 잃은 스카우트와 오빠 젬은 자애로운 아버지와 가정부 캘퍼니아의 보살핌을 받으며자랐고,

미시시피에서 온 친구 딜과 더부러 용맹하고도 호기심 가득한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웃의 듀보스 할머니나 모디 아줌마,  깐깐한 가정부 캘퍼니아를 위시한 어른들의 걱정을 들어 가면서도 소소한 장난들로 즐거움을 만들며 자유롭고 총명하게 자라고 있었다. 특히 이웃으로부터 완벽하게 소외되어 은둔자로 살아 가는 '부 래들리' 아저씨를 밖으로 끌어내기위해 시도해 보는 장난들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그로하여 훗날 아저씨의 도움을 크게 받게 되고 우정을 쌓아 가기도 하니 더부러 사는 삶이 나에게 또 너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더냐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상이 따라 변했다 할지라도 자녀들이 가지는 존경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은 크게 변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스카우트가 회상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것을 보게 된다.  

 

아빠는 학교 친구 아빠들이 보통 하는 것들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냥도 하지 않고, 포커 게임도 하지 않고, 낚시도 하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거실에 앉아 책만 읽으실 뿐이지..."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아줌마가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 아빠 말이 옳아. 앵무새는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거야.”

 

아버지가 아들 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총을 사 주시면서 당부하는 말은 의미가 심장하다. 

앵무새는 죄 없는 자의 상징이다. 죄 없는 자 그 누구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신념, 생명 존중의 사상이 돋보이는 대목이고 이 소설의 중심 사상인 것이다.

 

마을에서 흑인이 백인 처녀를 성적으로 괴롭혔다는 한 사건이 떠 오른다.

흑인 '톰 로빈'슨은 백인 처녀 '메이엘라 유얼'에게 접근하여 나쁜 짓을 하였다고 하여 재판에 회부 되었고, 사형에 처해질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애티커스' 변호사는 세 아이를 둔 성실한 흑인 가장인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아 그를 구제하려 하고, 이로 인하여 지역 사회의 백인들로 부터 많은 비난을 받지만 소신껏 변론을 한다.

 

물론 이 사건의 진실은 그 백인 처녀가  '톰 로빈'슨을 집으로 불러 들였고, 유혹하였으며 이 사실에 격분한 처녀의 아버지가 처녀를 구타한 것인데 적반하장으로 흑인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운 사건이다. 

인도주의적인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 변호사는 사실이 왜곡된 것을 확신하였고, 흑인 피의자의 무죄를 위해 적극적으로 변호에 임한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를 제시 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만으로 구성된 배심원 단은 죄 없는 흑인을 유죄로 몰아 가고, 결국 사형 선고를 받게 만들어 버린다. 

 

쓰레기장 옆에서 살면서, 아이들은 학교 교육도 시키지 않으며 쓰레기같은 삶을 사는 유얼 가족은 피부가 희다는 것 이외 아무 것도 내 세울 것이 없으면서도, 성실하고 선량한 한 흑인의 인생과 가정을 철저히 짓밟아 버리는 사건을 아이는 찬찬히 기록하고 있다,

아이들은 방청석에서 재판의 전 과정을 지켜 보았고, 완벽한 증거를 제시하며 흑인 청년의 무죄를 주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고, 거짓말을 쏟아 내는 백인 부녀를 보았으니 많은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변호사가 배심원을 향해 조용히 연설하는 장면, 그 연설문은 가히 명문이라 해도 좋을 것같다.

흑백처럼 분명한 사건, 어렵지 않은 사건, 상대측에서 어떤 의학적인 증거도 내 놓지 못하는 사건에 대한 반박에 덧붙여, 인간은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각기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일을 하는 등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하나의 인간적인 제도가 있으니, 바로 사법제도이고,

법원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 되었다는 요지의 수준 높은 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인 청년은 끝내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수긍하지 못한 나머지, 후송 도중 탈출을 시도하다 죽으면서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고 만다. 

 

판결이 끝난 후에는 주민들도 유얼 가족더러 '이제 다시 그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버리라'는 식으로 싸늘하게 대했으며, 사건 이후 그 아버지 밥 유얼에게 일자리가 주어졌으나 불과 며칠만에 게으르다는 이유로 공공사업 촉진국으로부터 해임을 당했으며, 복지기금 수표를 받기 위해 모습을 드러 낼 뿐 여전히 쓰레기 더미에서 살아 가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 다시 학교와 놀이와 공부의 일상으로 돌아 온 스카웃 남매에게 엄쳥난 시련이 닥친다.

피해자라고 우겼던 백인 여성의 아버지 유얼은 톰의 사형 선고를 받아 냈어도 흑인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변호인의 아이들을 해치려 한다. 

핼로윈 축제를 마치고 스카우트와 젬이 집으로 돌아 오던 길목을 지키다가, 어둠 속에서 아이들을 살해하려 공격 했으나 위기의 순간 아이들을 구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이웃집의 '부 래들리'였다.

젊은 날의 잘못으로 나쁘고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찍혀 모든 이웃으로부터 소외되어 살던 옆집 아저씨,

아이들이 그를 밖으로 끌어 내 보려고 많은 시도를 하곤 했던 그 부 아저씨인 것이다.

할로윈 데이 연극을 위한 철사옷 분장 때문에 다행이 스카웃은 부상이 적었으나 오빠 셈은 한쪽 팔이 부러지는 부상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이후 짧이졌으며 불편한 장애를 가지게 된다.

그 와중에 로버트 유얼은 자기 칼에 찔려 죽게 된 것이다.

  

많은 일들을 보았으며, 많은 것을 느끼면서 부쩍 성장한 스스로를 도리켜 본다.

 

"나는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갈색 문 왼쪽 편에 기다란 겉창이 달린 창문이 있었습니다. 그 곳으로 걸어가 그 앞에 서 있다가 돌아섰습니다. 아마 대낮이라면 우체국 모퉁이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밝은 대낮이라면 말입니다.....내 마음 속에서 어두운 방이 점차 사라졌습니다. 밝은 대낮이었고 이웃 사람들은 분주해졌습니다. 스테퍼니 크로푸트 아줌마가 길을 건너 와 레이철 아줌마에세 최근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모다 아줌마가 철쭉꽃 위로 허리를 굽히고 계셨습니다. 어느덧 여름이 됐습니다.........

여전히 여름철이었고, 아이들은 좀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어느덧 가을이 됐고..........

겨울이 왔고, 아이들은 활활 불타는 집을 배경으로 실루엣이 되어............

여름이 됐고...............또 다시 가을이 됐고, 아이들은 부 래들리를 찾았습니다."

 

"아빠의 말이 정말 옳았습니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창 내리는 가랑비에 가로등이 뿌옇게 보였습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나이가 부쩍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코 끄트머리에 작은 안개 방울이 맺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팔뜨기처럼 눈을 흘겨 보다가 현기증이 나서 그만뒀습니다.........

집으로 걸어 가는 동안 나는 오빠와 내가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카웃, 결국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멋지단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박해 받으면서 법으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부조리하고 수치스러웠던 역사를 미국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1930년도 남부 지방 작은 마을이 배경이고 그곳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지만 미국이 살아 온 역사의 한 단면을 그렸기에 여러 반향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아이들을 따라 가보던 자잘한 일상의 이야기는 중반을 지나면서 긴박하게 돌아 가고, 재판 과정이 세밀하고 사실적이어서, 나도 지켜 보는 아이들과 한 마음이 되어 땀을 내면서 읽어 나가게 되었다.

 

아이의 정서로 표현한 탓인지 글은 깨끗하고 아기자기하다. 

아이들은 보이는 세상에 거짓을 섞지 않는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것을 곧 알게 된다.

어른 노릇이 어려운 이유이다.

여기서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는 신념을 가지고, 편견 없이 인간을 대하는 완벽한 신사이면서 또한 자애롭고 민주적인, 참으로 바람직한 아버지의 전형을 보여 준다.

그런 아버지의 추억을 가진 아이는 진정 행복한 아이일 것이다.

 

명사수이면서 절대로 총기를 소지하지 않으므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가르치고, 누구라도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일깨우면서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적인 태도를 가르친다. 또 언제나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의견을 몹시 존중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등을 보며 자란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웃집에 은둔해 사는 부 아저씨를 끌어 내기 위해 애 쓰는 일도 편견 없이 인간을 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조금 무거운 주제일지 모르지만 책을 좋아 하고, 토론을 잘 하는 우리 손녀에게 나는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인간을 보는 시선에 대한 생각을 줄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근래에 읽은 소설 중 가장 감동적이라 읽기를 좋아하는 누구에게나 권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변호사 애티커스를 배우 '그레고리 팩'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 배우의 인상과 변호사 애티커스의 캐릭터는 너무 잘 맞아 떨어져 혼자 의문을 던지며 보며 웃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