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앨범/2015앨범

가을 보내기

수행화 2015. 11. 16. 00:56

미처 마중도 하기 전에 이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었다.

 가을은 천지를 노을빛으로 물들이며 깊어져만 가고, 우리의 아쉬움은 습관처럼 가슴을 파고 든다.

나뭇잎들은 어떻게 아디지도 아름다운 소멸의 방식을 알아 냈을까?

 

가을색은 무성했던 여름의 추억만큼이나 다채롭고 오묘하다.

지는 잎새가 너무 아까워 집어 들어 코에다 대어 보곤 한다. 가을 내음이 담담히 스며 있다.

나뭇잎이 머금었던 시간은 함부로 나뒹굴며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시간들이 함께 구르는 것을 보는 일은 슬프다. 감정 지수가 마이너스를 향해 급강하 한다. 

어쩌나? 더 깊은 가을에 풍덩 빠지다 보면 플러스로 반전되지 않을까?

 

가을 마중, 또 배웅이 필요해진다.

미룬다는 것은 늦어지기 마련인 법, 더 미룰 것 없이 우리는 가을을 배웅하고자

의기투합한 친구들끼리 1박2일의 행장(行裝)을 꾸렸다. 설악으로!

 

 

 

 

 

<백담사>

 

 

 

 

 

 

 

 

백담사 계곡도 가뭄이 찾아 들었다.

돌맹이는 더 똘망해지고 계곡물은 잦아 들어 돌이 물을 삼켜 버린 것같다.

자갈돌이 강물인양 멀리 구비져 흐드러져 있는, 참 잔잔한 그림이다.

  

 

 

 

 

돌돌돌... 물소리의 기억을 더듬으며 몇해 전 사진을 찾아 본다. (2009년 6월 8일)

옥빛으로 유순하게 흐르던 개울물의 표정이 지금은 조금 쓸쓸하고 소심해졌다.

하지만 본래의 고운 성정은 잃지 않고 있을 것이다.

 

 

  

 

 

자갈돌이 품은 세월은 빵을 만들고, 포도주가 익어 가는 시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 때 저 거대한 산의 일부였을지, 집채만한 바위의 일부였을지 모를........말이 없음에 알 수는 없지만.

돌을 만지며 앉았던 사람들은 떠나고 공들인 돌탑만이 흔적을 지킨다.  

돌에게는 소망를 담는 임무가 주어져 신분이 달라져 있다.

 

 

 

 

 

금강문, 절집 대문을 지난다.

금강 역사가 수호하고 있는 한 도량에 삿된 기운은 접근할 수가 없다. 

방문객이 골고루 나누어 가지는 공간이라 내 뚯대로의 사진을 갖기는 어렵다.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내가 그런 욕심을 부리는 건 염치 없는 일인 거지요.

 

 

 

 

 

 

 

사찰의 단아하고 이지적이던 모습을 잘 간직해 준 사진이 있어 회상은 쉬워진다.

여름을 향한 푸른 에너지가 절집의 엄격한 자태와 한껏 조화롭던 시간들이 있었다.

(2009년 사진에서)

 

 

  

 

사찰 건물들이 일제히 단청을 입었다.

고졸한 멋은 줄어 들었어도 단청을 입은 절간은 한결 젊어 보인다.

젊음은 인간이 잃고 싶어 하지 않는 가치의 하나이다,

늙고 쇠락한 것이 싫은 것은 절집도 매 한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아랫 마을 주차장에서 느꼈던 추위가 한결 눅어진 것은 웬 일일까?

내 경험 상으로 사찰 경내는 늘 따듯했었다.

겨울 산사를 찾을 때마다 가졌던 생각인데 이 곳도 어김이 없어 그다지 춥지가 않았다.  

 

 

 

 

단장을 하지 않은 찻집이 추레하기는 커녕 주인 노릇을 하는 것같다.

저 홀로 깊어져 가는 저 빛깔이 더 좋은데..... 

하지만 불만을 뱉을 수는 없다.

가끔 스치듯 다녀 가면서 물색 없이 군소리만 해대는 나그네는 되지 말아야 하니까.

 

  

 

 

 

지난 주 비를 뿌리며 찾아 온 깜짝 추위때문인지 방문객은 예상보다 적어 보인다. 

이 곳은 겨울이 바삐 오고 눈에 덮힐 것이며, 아름다운 긴 적막으로 또  다시 봄을 맞을 것이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의 일부가 되기는 불가능한 일인지라 지금 이 모습을 오래 눈에 담아야 한다. 

 

 

 

지난 시절의 사찰 건물이 더 성숙해 보이는 것같은 나의 느낌은 순전히 사진을 본 탓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나 간 것을 미화해 보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참 고아한 모습이었다. (2009.6.8)

 

 

 

 

 

 

왼쪽으로 전 두환 전 대통령이 기거하시던 방이 아직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다.

그 초라한 모습을 지금까지 봐야 한다는 점이 싫어 슬쩍 지나친다.

 

 

 

 

 

만해 기념관.

백담사는 실로 한 용운 스님께서 계시던 곳이라 더 유명해져야 하는 것이 맞다. 

  조국을 향한 애끓는 사랑이 승화한 시를 읽으며 우리는 성장했다.

  잠시나마 스님에게 공경의 마음을 바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이 공간이 고마운 것이다.

스님은 우리 후손들의 영원한 사표(師表)가 되실 것이다.

 

 

 

 

 

백담사에 가면 시비 안에 담긴 이 시는 꼭 읽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가는 것은 나룻배만의 애닯은 세월이 아닐 것이다.

 우리 생애 자체가 아득한 기다림이 아니었던가!!

기다리면서 낡아 진다는 말에 목이 메인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돌아 선다.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으 안고 물을 건너 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며

깊으나 옅으나 급한 개울이나 건너 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며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나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그리고 우리의 무심 뒤에 남겨져 우리의 뒷모습만 기억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으려나? 생각해 보게도 한다. 

 

 

 

 

 

 

 

 

오도송(悟道頌)

男兒到處是故鄕(남아도처시고향)      남아가 가는 곳 그 어디나 고향이건만

幾人長在客愁中(기인장재객수중)      나그네 시름에 겨운 사람 그 몇 이던가

一聲喝破三千界(일성갈파삼천계)      한 소리 질러 온 우주를 깨우쳐 밝히니

雪裡桃花片片紅(설리도화편편홍)      펄펄 날리는 눈 속에 복사꽃이 보인다

 

 

 

높은 경지의 스님들은 깨달음을 얻게 되면 게송을 남긴다.

념관에 전시된 만해 스님의 오도송은 선문답같지가 않아 친근하다.  

 

 

 

 

 

기념관을 들러 본다는 건 그저 휘휘 배회하는 수준이기가 쉽다.

글귀는 풀어 알지는 못하지만 너무 멋있으니 잘 그린 그림을 보듯 오래 바라 보다 나온다. 

 

 

 

 

 

 

당신을 보았습니다 
 
                     한용운 
 

당신이 가신 후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 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
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두리번 거리면서도 낭송하는 시에는 귀 기울이게 된다.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는 말이 가슴에 와서 탁 맺힌다.

그리고 민적이 없고, 인격이 없다는 서러운 마음이 거기 덧붙여지니 마음이 젖은 낙엽처럼 무거워진다.   

 

 

 


 

김 시습의 시비가 새롭게 눈에 띈다.

5세에 이미 중용과 대학을 통달했다고 하여 천재로, 금오신화를 창작한 작가로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에 염증을 느껴 스님이 되었고, 방랑 생활을 했다고 했는데,

이 곳과 깊은 시절 인연이 있었나보다.

시집을 들춰 보지 않아도 한 줄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시비가 고맙기만 하다.

 

올해는 이 절에서 다음 발걸음은 물과 구름 사이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보고 섰다가 깜빡......나는 일행의 꼬래비가 되어버려 버스 정류장으로 바삐 걸었다. 

 

 

 

 

 

 

<속초항>

 

 

 

 

 

숱하게 속초를 거쳐 다니면서 이 길을 걸어 보느니 처음이다.

바위 끝머리에 아담한 정자가 앉아 있다.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거문고 소리 같다고 하여 영금정(靈琴亭)이라는 이름을 달았다고 한다.

 

 

 

 

 

바다를 가로 질러 나 있는 길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걷기로 한다.

물비늘을 반짝이며 저물어 가는 바다는 내 가슴에 싸한 바람 한 줄기를 건넨다. 

아름다운 정경은 먼저 가슴에 반응하다.

낮은 조도의 빛이 내 발걸음과 동무하며 따라 와 나는 미소를 날려 줬다.   

모세라도 된듯이 양양하게 걸으니 바람이 차다는 것도 잊는다.

 

 

 

 

맥을 이루며 길게 누워 있는 능선이 멀리 아련하다

화려하고도 장엄한 산 아랫마을, 속초는 축복 받은 땅이다.

이 아름다운 해안을 횟집으로 어지럽게 해야만 했을가 묻고 싶다.

 

 

 

 

 <의상대>

 

  

 

 

 

 

의상대에는 서기(瑞氣)를 가진 정자이다.

그래서 새해 달력의 첫 장에 초상권(?)을 무척 빌려 주고 있다.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불쑥 솟아 오르는 해와 정자가 이루는 조화는 숨이 막히게 아름답다.

순간 말을 잊고 마음 속 염원에 집중하게 만드는 마법의 정자이다.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 대사를 기리기 위해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정자라고 했는데,

몇년 전 낙산사 화재로 소실되지 않나 몹시 마음 졸였는데 피해가 없었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 내린 기억에 반가움이 더했다.

 

바다를 보아 가슴이 뻥 뚫리나 했더니 이내 시려 온다.

시린 가슴을 다독이려 정자에 내 안부를 주섬 주섬 전해 본다. 

나는 변함 없이 이 바다와 절벽 끝 정자와 과거로 편입해 들어 가는 이 시간들을 사랑하노라고....

 

 

 

 

 

'해수 관음 보살상'

낙산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16m 높이의 입상이라 멀리서도 상반신이 바라 보인다.

1977년 완성 당시보다 지금은 더 자비로운 모습으로 시선을 먼 바다에 두고 서 계신다.

남해에 보리암, 서해의 강화 보문사와 동해의 낙산사가 대표적인 관세음 보살의 사찰로 구분 짓고 있다.

 

 

 

 

 

 낙산사는 보타 낙가산(補陀洛迦山) 의 준말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설을 들은 것같다.

달라이라마의 궁인 포탈라 궁도 어원이 비슷해 보인다.

어쨋거나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내린 도량이라는 뜻이 다. 

 

원통 보전을 비롯하여 이곳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사찰인 것을 보게 된다.

관세음 보살은 어머니의 자비를 상징하는 부처님이시다.

그래서 보살상은 화관을 쓰고 목걸이를 두르고 부드러운 옷자락을 표현하게 된다.

모든 생명체의 어떤 과오도 품어 안아 주는 대자비를 베푸시는 부처님이신 것이다.

 

 

 

 

 

사찰 건물이 단청이 고우면 대부분 중건을 했거나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경우가 많다.

목재 건물이라 따스하고 부드럽지만 관리가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다.

 

천수관음상이 모셔진 법당을 들어 가지 못하고, 탑신에 삼배만 하고 돌아 서야 했다.

나 홀로 나선 길이 아니라는 걸 아시리라 여겨 보며, 관세음 보살님의 자비에 기대어 본다.

 

실은 도량을 좀 더 걷겠다는 마음에 할 수 있는 기력을 다 동원해서 걸었더랬다.

 그런데 보타전 오르는 은근한 경사길을 나는 힘들어 하는 것이다. 딱하게도.

 

 

 

 

 

물론 지장전에도 눈 인사만.....

 

 

 

 

 

 2005년산불로 소실되었던 원통보전까지 참배를 못하고 내려 오는 길로 들어 서고 말았다.

곧 다시 와 보겠노라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빈 각오가 아니어야 할텐데.....

그까짓 걸음에 다리가 후들거려 찻집도 무시하고 곧장 내려 오고 말았다니.

 

 

 

 

 

찻집도 절간처럼 단아하고 멋이 있다.

담장이 어여쁜 것은 원통보전 뒷담을 닮았다.

 

찻집에 들러 다리도 쉬고 싶었지만 평지에 당도한 이상 걸음을 재촉한다.

매사에 경중이 있는법인데, 내게 사찰에 머무는 시간은 결코 경한 일이 아닌데 어쩔 수가 없다는,

비애가 느껴진다.

 

 

 

 

 

홍련암. 영험스런 암자를 바라 보며 걷는다.

파도 소리가 자잘한 것이 평화로운 기분을 더해 준다.

크고 화려해야 거룩한 것이 아니다. 소담하고 겸허한 매무새가 마음을 절로 낮추게 한다.

 

 

 

 

 

홍련암은 의상대와 더부러 명승으로 지정 되었다고 한다. (명승 제 27호)

홍련암 가는 길은 말이 참 무력해 지는 길이다.

 

 

 

 

 

입시철이면 좁다란 법당 안에 어깨를 부비며 기도하는 이 나라의 엄마들을 보게 된다.

아이 공부가 뜻대로만 될 수 있다면, 온 몸이 타들어 재가 된다 해도 마다하지 않을 그런 염원으로 기도들을 한다.

도리켜 보면 전 생애를 통하여 가장 높은 집중력을 동원했던 시절이었었지....지난 시절 생각에 빠져 들면서,

 

증발해 버렸던 기억들이 눈가에서 촉촉하게 되살아 난다.

 

 

 

 

 

파도가 잠 들어 있는 홍련암 아래 바다는 말 없이 바라만 보게 한다. 고요를 깰 수 없는 어떤 엄숙함이 있다.

아름다운 푸른 빛으로 태어난 이 바다, 보석보다 영원하고 빛나는 이 바다.

 이 동해를 어찌 그리워 하지 않겠는가! 

 

 

 

 

 

의상대에서 홍련암을 오가면 액자에 담고 싶은 풍경을 스치듯 옆에 끼고 걷게 된다.

때 타지 않은 정경에 온 마음을 빼앗긴 채 걷다 보면,

 어지러이 흝어졌던 생각들은 가뭇 없이 사라지고, 그 빈 자리를 단조로운 파도 소리가 채우는 것을 알게 된다.

오래 바라 보면 그들의 침묵을 배울 것같다.

 

 

 

 

 

멀리 의상대가 절벽 위에 한 떨기 풀잎처럼 앉아 있다.

이 곳에 정자를 지어 우리 발길을 멈추게 하는 우리 조상의 혜안에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일이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에게 누가 양분을 공급하는지 모를 일이다. 

해풍만 먹어도 끄덕 없다는 듯, 팔을 뻗어 의상대 그림을 완성시켜 준다.

절묘한 배려에 감탄을 한다.

 

 

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계절이 11월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11월 출발을 빨리 했다는 것에서 시간을 재촉하고 아낀 것같은 뿌듯함이 있다.

1일 신새벽부터 설쳐 대며 집을 나섰기 때문이다.

 

단촐하게 다니면 그것도 좋고,

웅성거리며 서로 찾고 이름을 불러 가며 다니는 조금 수선스러운 여행도 돌발적인 재미가 있다.

가을이 안고 오는 노을빛 세상에 나이를 잊고 수학 여행처럼 바삐 움직인다는 것.

일정을 살짝 비틀어 구룡령의 가을을 파고드는 일이며, 이 모든 미션들은

혼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짧으나 알차게 함께 다닌 친구들과 이 가을에 꾸민 즐거운 이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