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6년

소설 '헬프' - 용기있는 여자들의 이야기

수행화 2016. 2. 29. 00:15

 

 

 

 

 

'쿠바 장벽까지 뚫은 K드라마', '지카 바이러스 한국 상륙은 시간문제'........

지금 우리는 벽을 맞대고 사는 이웃 집 사정보다 먼 나라, 이웃 나라 소식 접하는 일이 더 빠른지라 눈도 귀도 늘 바쁘다  세상도 마찬가지여서 세계적인 이슈가 된 책은 널리 번역이 되어 우리도 읽고, 영화로도 제작 되어 우리가 보고 함께 울고 웃곤 한다.

 

소설 '헬프'도 발매 즉시 아마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아마존에서 116주간, 뉴욕에서 109주간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실화에 기반한 영화라 화제가 되었고, 나도 관람을 했는데 그게 2011년의 일이었다.

 

용기 있는 자, 세상을 바꾼다. '핼프'는 연약한 여자들이 의기투합하여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고발하는 아슬아슬하고 통쾌한 줄거리이다. 터뷰 형식의 글이라 현장감 있고 호소력이 있다. 

 

저자 캐스린 스토킷( Kathryn Stocket )은 1969년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고, 이후 뉴욕에서 일하면서 미시시피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무슨 연유인지 출판사로부터 5년여에 걸쳐 60여번의 거절을 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후, 2009년에 출간이 되었다고 한다.  

 

 19628월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미시시피 주를 배경으로 작가 지망생인 미스 스키터 팰런이 백인 가정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사연을 수집한 것을 책으로 엮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과정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미스 스키터 팰런과 헬리 그리고 에리자베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주 친한 친구 사이이다. 헬리와 에리자베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여 지역 사회의 주류로 살아가고, 미스 스카티는 대학원을 마치고 목화 농장을 하는 고향집으로 돌아 왔어도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언제가는 사람들이 읽는 책을 쓰고 싶어하는 미스 스키터는 이력서를 냈던  하퍼& 로 출판사루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는다. 물론 취업 거절의 편지이다. 하지만 삶의 확실한 방향을 잡게 된다. 작은 것에서 낮은 곳에서 출발하기로.

 

 주위를 둘러 보고, 조사하고, 쓰세요, 뻔한 이야기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당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 특히 다른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찾아 쓰세요."

 

나는 계단을 헐레벌떡 올라 가서 지금 까지 사는 동안 나를 괴롭힌 몹쓸 일들을 낱낱이, 특히 다른 사람들이 시시하게 여겼을 문제들을 하나하나 써내려 간다. 알레인 스타인의 단어들은 은이 녹듯 내 혈관을 따고 흐르고 나는 부랴 부랴 타자기로 글자를 찍기 시작했다.”

 

사회 경험이 전무한 한 젊은 여성이 일류 출판사에 편집자가 되겠다고 지원한 점이 대견하고 갸륵한 마음에서 수석 편집자가 보낸 이 한통의 편지에 미스 스키터는 대단히 고무되어 곧 바로 지역 신문사, <잭슨 저널>에 취업을 하게되고, 살림에 관한 조언을 쓰는 칼럼을 맡는다누군가의 작은 관심과 격려가 타인의 정신에 홀연히 들어 와 의식을 반짝 깨우는 소중한 불씨가 된 것이 나의 관심망에 걸려 든다. 꼭 배울 점이다.

 

그녀는 살림에 관한 기사 작성에 도움을 받으려고 친구 엘리자베스 집의 노련한 가정부 아이빌린을 만나면서 흑인 가정부의 일상에 초점을 모으게 된다. 한편 지역 사회 봉사 활동을 열렬히 선도하는 또 다른 친구 헬리로부터 '가정부 위생 발의안'을 신문에 게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흑인 가정부들은 백인들이 사용하는 실내 화장실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으로 각 가정의 차고나 헛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화장실을 만들어 가정부들이 따로 사용하게 하자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백인들에게는 유색인의 검은 염색소에 포함된 면역력이 없기 때문에 화장실을 같이 사용하면 백인들은 질병에 걸리기 쉽다는 근거 없는 근거까지 얹어서 설득하려 한다. 

 

자기 아이들은 흑인 가정부에게 맡기고 브릿지 게임을 하며 소일하거나, 자선 행사를 기획하며 무리지어 다니는 헬리를 위시한 친구들과, 백인의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지만 이십년 뒤에는 그 아이의 고용인이 되어지는 흑인 가정부의 삶이 대비되는 부조리한 사회를 보게 된다. 더구나 유색인 가정부들이 실내의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법안을 만들자고 당당하게 떠드는 친구들을 바라 보면서 가정부의 현실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다. 

 

흑인 여자로 산다는 것, 백인 여자의 집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가 하는 생생한 말을 들어서, 남부의 유색인 여자들의 관점에서 글을 쓰리라 결심하고, 가정부들을 설득하는 어려운 일에 착수한다. 아이빌린의 도움을 시작으로 극비리에 사연을 수집하는 사이 인원도 조금씩 늘어 갔으며, 인터뷰 사연도 다양해져 갔다. 육성의 모음집이라 설명을 한다.

 

친구는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보내야 한다며 자선 행사 준비에 바쁘고, 정치인들은 물론 인종 분리를 적극 지지하며 자신의 표 모으기에 바쁘다. 유색인을 핍박하는 사회 분위기는 고착되었고,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어, 미스 스키터는 이 모든 위선적인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서는 안되겠다는 정의감으로 임하고, 가정부들은 그녀의 진심을 이해하면서 협조해 가는, 이심전심의 협업 과정이 진행된다. 

 

결국 미스 스키터는 힐리의 '가정부 위생 발의안'을 지역 신문, <잭슨 저널>실었다. 백인과 흑인이 공공연히 떠드는 화장실 얘기를 그대로 실었고, 백인과 흑인이 변기를 공유할 수 없는 이유를 줄줄이 실었다. 그 말미에못쓰는기를 머틀 가 228번지에 갖다 놓으세요." 저렴한 화장실 설치를 위한 방법 제시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는 엉뚱하게 희화화 되게 된다. 서른개가 넘는 각양각색의 변기가 미스 힐리가 사는 머틀 가의 잔디밭에 널부러지는 풍경을 만들었고, 뉴스꺼리가 되었으며 구경꾼이 몰려 드는 상황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유머러스하고 극적인 장면이라고 봐도 될 것같다.

 

때 맞춰 인터뷰 내용은 가상의 지명과 익명으로 편집을 마쳤으며 '가정부'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게 된다. 

"당시에는

누구나 흑인 남자가 입원한 병동이나 병실에서 백인 여자에게 간호를 요구할 수 없다

백인이 백인 이외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위법이다. 이 조항을 위반한 결혼은 무효다

유색인 이발사는 백인 여자나 소녀의 머리를 손질 할 수 없다.

백인 학교와 흑인 학교 간에는 책을 돌려 볼 수 없다,"

 

 대략 이런 요지의 '남부 짐 크로스 법'이라는 유색인 처별법이 엄연히 존재 하고 있었고, 따라서 흑인과 백인은 영화관도, 공중 화장실도, 야구장도, 전화박스도 공유하지 않았다고 하는 엄중한 시절에 세상을 향해 문제를 던지는 위험한 일을 벌인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미운 사람을 마음이 만들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미워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부족한 점을 남에게서 보충하고, 서로 빈 곳을 메꾸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왜들 알지 못할까 싶다.

 

실로 저자는 자기를 키워 주던 유색인 가정부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열 여섯살에 자기 집에서 떠난 그녀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 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맹랑하고 치기어린 주인들에게 자기 가족의 생계를 걸고 있는 가정부들의 굳은 인내는 눈물겹다. 이러한 질긴 생존의 힘은 엄마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것같다. 그리고 미스 스키터 엄마의 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은 또 다른 모습의 모성애로 십분 이해가는지라 실소를 하게 한다.

"유지니아, 매주 타운에 나갔다가 키가 180이 넘는 사람만 보면 네가 한번 만나보기라도 했으면....싶더구나"

".......네가 지금 스물 셋인데, 그 나이에 나는 이미 칼턴 주니어를 낳았어....."

 

 딸이 멋지게 꾸미고 조신하게 굴어 좋은 남자를 사귀고 결혼을 했으면 하는 엄마의 고전적인 소망은 자신의 병이 위중하여 생을 다하는 날까지 버리지 않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보았고, 많이 해 본 말이 소설에서 튀어 나오는 걸 보며 딸을 향한 세상 엄마들의 멘트는 정해진 틀이라도 있는 양 동서고금이 한결같다는 걸 보게 된다. 슬프고 애잔한 삶이 거기 있다고 할지라도 미시시피의 뜨거운 기후를 경험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뙤약볕 아래 그저 그림같이 나른한 평화가 보인다. 

 

"포티 난간에 걸터 앉아 앞뜰에서 자라는 이끼 낀 오크나무 세 그루를 바라 본다. 타운에서 오분 거리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를 시골로 여긴다. 뜰 주변으로 아버지의 목화 농장 만 에이커가 펼쳐져 있고, 목화는 허리 높이까지 싱싱하게 자랐다. 유색인 일꾼 몇몇이 저멀리 헛간 처마 및에 주저 앉아 후끈한 열기 속을 응시한다. 모두 한마음으로 다래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p. 97" 

 

아마도 미국인, 남부인들은 고향의 그 뜨거운 날씨, 노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길들, 목화가 피어 나고 수확의 일손이 바쁜 들녘, 이 모든 것이 향수이며 영원한 영감의 근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한 작가의 영감, 고향집을 향한 그리움이 글을 타고 우리에게로 와서 나란히 향수를 일으킨다.

  

끝으로 작가는 자기 글에 일말의 두려움을 말한다. 미국의 역사와 문학에 가득한 사랑의 관계를 묘사하느데 실패하지 않을까 두려워 한다고 말한다. 흑인 여자들이 더 혹독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니 더러 묘사가 부족하다고 볼 것이며,

반면에 실로 백인 가정과 유색인 가정부들 사이에 더 많은 사랑이 존재했는데 묘사가 부적절하게 나쁘게 비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일 것이라 혼자 해석해 본다. 흑백 논리로 싸잡아 매겨지는 일, 극단으로 치달아 서로의 신뢰와 사랑에 균열이 생기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걱정같은 것이리라. 자기를 키워 준 가정부 디메트리가 살아 있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열 여섯 되는해에 생을 달리 한 그녀를 생각해보고 자문하면서 글을 썼고, 마침표를 찍었던 것같다.

 

대표적인 인도의 계급 제도, 조선 시대 반상의 차별, 서얼의 차별 등.......계급 사회의 타파를 위해, 평등한 인간의 존엄을 위해 애 쓰고 희생한 많은 선지자들의 깨어 있는 의식으로 세상은 바뀌었고 또 더 바뀌어 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실정과는 매우 다르겠으나 소설을 읽으며 우리 집을 거쳐 간 많은 가정부들을 면면이 떠올려 보았다. 가족처럼 오랜 세월 우리와 살며 늙어 갔던 붙박이 가정부 아줌마, 정자 엄마,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우리 집을 떠나갔던 숱한 가정부 언니들, 옥자, 문자, 희봉이, 정순이, 종순이, 순이,...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더 많은 언니들. 그리고 내가 결혼하면서 나를 따라 왔던 남이, 숙이......기억에는 없지만 나는 그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기도 했다. 살아 있다면 좀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하고 기원해 본다.

그리고 가정부나 부리는 사람을 진정으로 많이 배려했던 우리 엄마의 인간적이고 대범한 그런 점이 새삼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