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발칸 3.

'트로기르' 지나, 보스니아의 '모스타르' '메주고리예' 까지

수행화 2016. 5. 13. 15:50

< 발칸 여행 3>

  

 

트로기르 (Trogir) in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는 유네스코에 여섯 개의 세계 문화 유산과 한 개의 자연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트로기르는 1997년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중세 시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B.C 3 세기에 그리스인들이 정착하면서 조성되고 발전해 왔으며,

이후 크로아티아의 타 도시와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의 지배를 거친 이후,

1918년 1차대전이 끝나고 크로아티아 본국에 소속되었으며,

현재 행정 구역상으로 달마티아 주에 속하는 작은 섬이라는 걸 들어 본다.

 

 

 

 

'트로기르'라는 도시의 아침.

 몸을 뉘어 쉬는 듯한 자태의 바다를 본다. 

바람이 간지럽히고, 햇살이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니 다만 겹 물결로 화답한다.

이 정경. 나는 마음에 담을 길이 없어 짧으나마 동영상을 찍어 둔다.

 

트로기르라는 도시의 역사적인 의미나 흥미보다 

명주 치마폭보다 더 부드럽게 나붓거리던 이 잔잔한 바다를 잊지 못할 것같다.

 

 

 

 

성벽은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쌓았으리라.

그러나 지금, 성벽은 바다 풍경에만 집중하게 하는 의도된 장치같다.

종려 나무도 바다와 성벽에 가지런히 획을 그으며 생명력을 뽐낸다.  

 

잠시 그 풍경 속에 있었다는 감동은 사진 속에서 다시 새어 나오고 있다.   

 

 

 

 

크고 작은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이 활기 있는 도시인 모양이나, 억센 삶의 현장 같지는 않다.

  

 

 

 

고대 도시의 잘 보존된 성벽은 카페의 멋진 배경이 되어 준다.

 

 

성벽은 분명 돌로 지어진 무생물이다. 그렇지만 따문 따문 아릿따운 꽃을 키운다. 만들어 붙인 꽃다발처럼 사랑스럽다. 

 

 

 

 

종려 나무도 긴 그림자로 아름다운  아침을 선사한다.

가슴이 공연히 먹먹해지고 말은 적어지고 실 없는 감탄만 남발한다.     

 

 

트로기르의  아침,

쏟아지는 햇살을 등지고 곧은 길을 따라 성벽 끝까지 걸어 가 본다.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걷는다는 느낌도 없어진다. 옥 죄인 것들이 풀려 나가는 기분만 미미하게 느낄 뿐.

 

 

 

 

 

가까이 가보니 성벽이 아니라 견고한 요새다.

'카메르렌고 요새'라고 한다.

13~15세기 경 오스만트루크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데

모진 세월 동안 제 모습을 잘 지킨 것 같아 장해 보인다.

 

 

 

 

낯  선 땅의 이름 모를 골목, 당연히 처음 와 본 곳이다. 

그런데 마치 오래 전에 스쳐 지나 본 것 같은 착각을 가져다 주는 장면, 데자뷰 현상은?

어린 시절 책 속에서, 그림 액자에서, 상상 속에서 생생해진 풍경인가 한다.

 

 

 

 

고대 도시의 골목을 일부러 꺾어 들어 가 보니, 

좁고 지그재그로 꺾인 골목 안은 전시용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의 보금자리이다.

앙증스런 발코니에 화분을 둘 줄 아는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이다.

 

 

조금 넓은 골목은 좌우로 상가가 밀집하여, 과거와 현재가 거부감 없이 조화를 이루며 산다는 인상을 받는다. 티셔츠 가게, 햄버거 집......

 

고만 고만하게 아담한 것이, 유난히 과한 상점이 없는 것이 보기가 좋은가 싶다. 

 

 

 

 

돌아 다니지 않으니 길 잃을 염려도 없다.

아이스크림도 맛 보고, 화장실도 가며 앉아 있던 노천 카페 옆집이 눈에 들어 온다. 

고대 도시의 모습이 선연한데 모던해 보이고 창가의 꽃이 퍽 사랑스럽다.

 

 

 

 

문을 지나 구시가지에 들어 서면 대리석 안내 표지를 우선 보게 된다.

당시의 부호들이 지어 살던 집은 수세기를 거쳐도 박물관이며 뭐며 잘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로렌스 대 성당.

1200년 경에 건설되어 16세기 말에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나이 들어 보이지 않으며 아름답다.

성곽 주변에는 유명한 가문들의 궁전이 있는데, 건축 형태가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반으로 고딕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까지 모두 담고 있어 독특하다고 한다.

 

 

 

 

 

헬레니즘 양식과 로마 양식의 건물들로 잘 배치된 도시, 완벽한 중세 도시의 사례....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많은 건물이 지어졌고,

설 로렌스 성당은 1200년 경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완성되었다고.....

결국, 그리스, 로마, 베니스 등 주권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서, 건축 기간이 지연되었고,

그 나름의 특징, 로마네스크와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곳곳에 반영되게 된 것이라 보면 될 것같다.

 

 

 

 

성당의 출입문 조각이 예사롭지 않게 정교하다. 

입구 양쪽에는 사자 등 위에 서 있는 아담과 이브를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사자는  베네치아의 수호 동물이라고 하니, 이런 부분은 베네치아의 영향이 나타난 것이라 보는 것이겠다 싶다.

 

정문 양쪽의 아담과 이브상은 달마티아 최초의 누드 조각상이라고 한다.

 

 

 

 

윗 부분의 조각은 예수 탄생과 예수를 경배하는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하는데,

우리네 사찰의 팔상도 개념이 아닌가 싶다.

 

 

 

 

15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현재 시청사로도 쓰이기도 한다니 내부가 조금 궁금해진다.

하지만 견고한 건물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자그마한 광장 앞 시계탑을 중심으로 박물관, 옛날 재판소 등이 붙어 있다.

'아바나 파브로 광장'이라는 작은 광장은 당시로서는 넓은 광장이었겠지만 지금은 소박하기만 하다.

 

15세기에 선원들의 수호성인인 '세바스천'을 기리며 건립한 교회였고,

교회의 탑이 시계탑으로 개조된 것이라고 한다.

 

 

 

 

시계탑 아래 윗 부분의 윗쪽 조각상은 성경을 들고 서 있는 그리스도상이고

아래에 더 정교한 조각은 성 세바스천의 모습이라고 한다. 

 

 

 

 

 

 

 

시계탑 옆의 이 회랑은 예전에 재판장이었다고 하는데

창이 없고 코린트 양식이라는 기둥만 단아한 것이 멋이 있다.

남성 네명이 '아카펠라'를 들려 주며 자신들이 녹음한 cd를 판매하고 있다.

 

 

 

 

날개를 타고 있는 사람의 왼손에는 정의를 상징하는 저울이 들려 있어 법정 분위기를 낸다고 봐야겠다.

그 아래 중창단은 CD를 15 유로에 판다는 설명을 걸어 두고 노래를 준비한다.

 

 

 

 

시청사, 시계탑, 그 앞 광장은 카페가 잘 자리잡고 있다.

노천 카페는 언제나 마음을 열게 하는 멋진 아이템이다.

 

 

 

 

 

 

모두들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모양으로 이런 가게들이 군데 군데 즐비하다.

 

 

 

 

 

우리가 버스를 내린 장소 앞은 제법 큰 재래 시장이 있고, 터미널로 보이는 곳도 있고,

바다가 개울처럼 들어온 곳에 요트들도 있어 사람 사는 풍경이다.  

 

 

 

 

 

 

 

아드리아 해의 도시는 붉은 지붕을 하고 그림처럼 앉아 있다. 엇비슷한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산허리를 감돌다 내리막 길을 만나기도 하면서.

 

 

 

 

 

 

 


 

 

 

 

 

 

모스타르 ( Mostar ) in 보스니아(1)

 

  

 

국경을 넘어 보스니아 땅으로 넘어 왔다.

이 곳에서 우리는 두 도시에 잠시 발도장을 찍었고,

   

모스타르 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도시이며, 헤르체코비나 너레트바주의 주도라고 한다.

네레트바 강을 낀 도시로서 보스니아 도시 가운데 다섯번째의 크기라고 한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 바로 위 다리를 지켰던 '다리 파수꾼'을 뜻하는 mostari 에서 이름이 유래햇다고 한다. 지금은 모스타르이 상징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높이 25m의 아치형 석조 다리, 모스타르 다리.

 

400년의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 모스타르 다리는 보스니아 내전 때인 1993년 11월 9일.

크로아티아 계가 모스타르 내 이슬람 계인 보스니아에게 공격을 퍼붓는 과정에서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하고,

내전 중 파괴된 다리는 1993년 복구한 것을 우리는 지금 보는 것이다.

 

이 다리는 내전을 겪은 두 민족의 평화의 상징이 되었으며,

모스타르 다리와 구시가지는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

 

 

 

 

 

맑은 개울이 흐르는 조그만 다리를 거너면 갑자기 현란한 골목이 나온다.

그리고 이슬람 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관광지 분위기는 좁은 길 양쪽을 빼곡이 메운 기념품 가게에서 먼저 온다.

이 지점에서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스마트폰을 잃어 버렸다.

노상 소매치기를 주의하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고가 생긴 것이다. 

긴장으로 머리 끝이 주빗해졌고, 사진 찍기가 싫어져 버렸다.

 

그래도 로밍 고객 센터를 통해 신속히 분실 도난 신고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편리한 세상과 험한 세상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다리 아래 강변에는 카돌릭을 믿는 크로아티아 민족인지 이슬람을 신봉하는 사람들인지 구분 없이 다들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다..

 

 

강심이 깊지도 않고, 물살도 느려 보이니 그저 평화롭게만 느껴지는데 무리하게 다이빙을 하다 사고가 나기도 한단다.

 

히잡을 쓴 사람이 더러 보이는 것이 이슬람을 믿는 주민들이 제법 많은 모양이다

 

 

본래 유고 연방으로 통합되어 있던 이 곳은 세르비아 공화국의 지도자 밀로셰비치가 공산주의가 붕괴하는 시기에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선동을 하면서 연방은 분열의 길을 갔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계가 독립을 선언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민족 역시 1992년 분연히 일어 났으니, 내전이 발발된 것이고 미국의 중재로 95년 12월 끝이 났다고 한다.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참혹한 전쟁이 남긴 건 상처뿐 뭐를 얻는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리 주변은 우리네 유원지 주변처럼 먹거리 동네이다.

우리네와 다른 점은 그다지 시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네킹도 전통 복장을 입고 메뉴판을 들고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강변을 따라 먹자 거리인 모양이다.

우리도 오른편 강변에서 뜨거운 햇빛을 잠시 피하면서 커피 한잔을 마셨다.

커피 맛은 늘 생각보다 좋은 것이 분위기탓만은 아닐 것이다.

 

 

 

 

 

좁은 골목을 채우는 사람들을 비켜 다니느라 몰려 온 피로를 다리 한 가운데에서 비로소 버려 본다. 

이 곳에서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앞 뒤 정경을 일별하며 내려 온다.

 

 

이슬람 풍의 옛 거리는 상점이 다 메꾼 것같다. 이국적인 재미가 있을 법한 가게들을 그냥 지나친 것이 조금 아쉽다. 

 

 

 

 

아직 파괴된채 복구가 되지 않은 곳들. 총구멍의 흔적이 여실한 곳들이 아주 많이 보인다.

집도 사람도 상처의 복구는 그렇게 쉬이 되지를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본다.

 

 

 

 

다 허물어진 건물에 무슨~ 냉장고 혹은 가전제품 가게인가 싶은 점포가 빠끔히 열려 있다.

다리 앞의 현란한 가게 앞과 극명한 대조가 있구나 생각하고, 버스는 또 알 수 없는 마을을 지난다.

 

 

 

 


 

 

 

 

 

메주고리예  . 보스니아 (2)

 

 

 

메주고리에는 슬라브어로 '산과 산 사이의 지역'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실제로 척박하고 쓸쓸한 산악 지대를 계속 달렸다.

성모 발현지라고 하여 카돌릭 신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국경에 맞물린 지역이 많은지 검문소가 많고 우리도 자주 여권을 제출해야만 했다.  

 

 

 

 

메주고리에

1981년 6월 6명의 아이들이 마을 외곽의 크르니카하는 언덕 위에서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고 주장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후 카돌릭 신도들의 순례지이자 관광지로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포르투갈의 파티마 성당도 이와 비숫하게 아이들이 성모 발현을 보았다고 했던 것같다.

 

 

 

 

높이 솟은 교회 건물이 신식 건물같다.

신을 믿고 만드는 일은 다 마음에서 오는 것,

마음이 이끌리고, 마음에 평화가 온다면 성모 발현지를 기도처 삼아도 되지 싶다.

 

 

 

 

치유의 청동 예수상

그리스도 고행상 주변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예수상의 무릎 부분에서 물이 아주 조금씩 흐르는데,

이 물을 닦아 아픈 곳에 갖다 대면 치유가 된다고 하여 다들 무릎을 닦고 있는 것이다.

 

 

 

 

손이며 손수건으로 물을 닦는 것은 바로 간절함으로 마음을 모으는 일일 것이다.

나도 물을 닦은 손수건을 그대로 집까지 가져 왔다.

오래 무릎을 굻고 있는 사람, 꽃을 바치는 사람, 누구나 순수해지는 그 순간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함께 예배를 보는 시기가 있나보다.

넓은 광장에 굉장히 많은 의자가 나란한 것을 보니 나름 집회가 크게 열리는 모양이다.

 

 

 

 

초를 공양하고 따로 기도를 하는 공간이 교회 옆에 자리하고 있다.

교회 건물과 이 공간을 포함한 부속 건물 등 시설은 단조롭다.

몇 백년 세월의 건축물을 보던 눈이 새로운 것에 잠시 적응이 안되고 감응이 잘 안 오는 그런 느낌이다.

 

 

 

 

메주고리예는 산과 산 사이의 마을이라는 말이 어쩌면 이렇게 맞을까 싶다.

중산간 도로에 선을 그은듯 빤한 길을 오래 오래 달렸다.

 

 

 

 

 

<2016년 4월 16일의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