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교토 3

교토 여행 3.

수행화 2016. 6. 20. 02:09

교토의 세 번째 날 

어제 귀에 담은 댓숲의 바람 소리, 눈에 담고 또 담은 아름다운 정원, 발에 남은 긴 툇마루의 감각....   오래 기억하려는 노력은 카메라에 의존한다지만 그래도 공부하듯이 열심히 보면서 걸었다. 먹지 않아도 배 부를 것 같은데 맛있게 먹고 다니니, 피로가 멋쩍어 달아나는 지경이다. 발바닥 아픈 것도 남의 발 바라 보듯 발 파스 한 장 붙이고 또 나선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명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 엄격한 자기 관리, 저변에 흐르는 문화적 우월감, 그런 공기를 살짝 느껴 본다. 아름다움 하나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그래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벌이 꽃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나, 인간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 발품을 아끼지 않는 것이나 추구하는 기본은 같을 것이다.

단출한 식구가 렌터카로 움직이니 뭐 일사불란하다고나 해야겠다. 차 렌트해 오랴, 운전 하랴, 입장권 사랴, 식사 주문 하랴혼자 바쁘다. 빈틈이 없다는 칭찬을 아들 듣게 좀 해주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꼭 아들 뒷통수에다 대고 치사를 한다.
오늘 일정은
긴카쿠지 (은각사) - 후시미이나리 신사 - 도호쿠지 (동복사).

 

< 은각사 / 긴카쿠지 >

철학자의 길 
은각사 가는 좁다란 길은 생각하기 좋은 길인가 보다. 이름이 '철학자의 길' 이라고 붙인 걸 보면. 봄이면 벚꽃이 터널을 만들어 아주 사랑 받는 길이라고 한다. 우리는 각자 자기 철학을 신봉하는 철학자이다. 그래서 이 길을 걸을 자격은 된다. 철학자의 길 입구에서 부자(父子)를 나란히 세우고 사진 한장을 찍고, 이 순간에 감사하며 걸으니 빤하게 난 길은 행복에 관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나에게

지쇼지는 일본 교토부 교토시 사코 구에 위치한 절이다. 1482년에 세워진 절로서, '아시카가 요시마', 8대 무라마치 쇼군이 그의 할아버지가 건축한 금각사를 모방하여 절의 외관을 은으로 덮으려 했던 계획에서 은각사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에도 시대부터 은각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고 한다.긴카쿠지는 비공식적인 명칭이며 정식 명칭은 히가시야마 지쇼지 라고 하고, 오늘날은 임제종 분파인 쇼코쿠지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모래로 성을 만들어 놓다니! 모래로 그림 그리는 것도 모자라 입체로 조형물을 세우다니! 독특한 정원 문화, 모래 정원의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멋지다고 표현하고 나니 참 밋밋하다. 본당은 뒷전이고 '은모래 정원'에 온통 마음이 간다.

입구에는 키 큰 상록수가 키를 가지런히 하고 길을 안내 한다.

'사적급 명승'이라는 안내 표지도 간결하다.은각사도 입장권으로 부적을 준다. 행운을 불러 올지도 모른다 싶어지는, 기분 좋은 아이디어 같다.

 

은각사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산에 이르는 모양을 형상화 하지 않았나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애초에 만든 사람의 생각은 알 수가 없지만.그런데 '향월대', 달을 바라 보는 곳이라 칭한다고 한다. 산에 올라 달을 바라 본다는 의미인지, 푸른 달밤에 유난히 아름답다는 것인지.......의미는 아무래도 좋다.

모래성을 쌓는다는 건 참 허망한 일, 되지 않는 일을 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모래라는 것이 잘 어우러지지 않는 깔깔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그 생각도 고정관념인 것이, 모래알 같은 많은 사람 중에 모래알처럼 제각각인 사람끼리 우리는 가족이 되고 벗이 되면서 어마어마한 응집력으로 끈끈하게 살아 오지 않았던가!

모래가 만든 것도 예술이요, 우리가 살아 온 세월도 예술이요 기적이다. 저만치 가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돌아 와 한번 더 바라 보고 나간다. 그들의 예술적 감각이 참으로 부럽다. 

원래 이곳은 '아시카가  요시마사' 쇼군의 휴양지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훗날 그는 선종의 승려가 되었고 1490년 사망한 후에 저택과 정원은 불교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요시마사의 불명인 지쇼지로 개칭된 역사를 지녔다고 한다.

이곳에서 법당이나 관계 건물들은 모두 개방을 안 하는 모양이라 건너다 보기만 한다. 금각사보다 규모는 작다지만 연못에 산책로에 돌다리에 있을 건 다 있다.열에 뜬 인파가 없으니 온전한 아침을 만끽하여 더 좋다.

시인 백석의 여인이 사후에 요정 건물 대원각을 보시하여 오늘 날 '길상사'가 된 것과 비숫한 내력을 가진 절인가 보다.

이끼가 동산을 덮고 있어 아주 습한 지질인가 했다. 그런데 이것도 은근히 의도된 정원 가꾸기라고 한다. 조경 예술가의 남다른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가 보다. 산책로를 걷는 내내 이끼 동산이 이어져 푸르고 보기가 좋다.

비탈에 선 나무들, 애기 단풍들 모두 이끼로 발을 덮고 있다.

숲 사이의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시야가 툭 터진 곳을 만나다. 멀리 보이는 것이 교토 시내인가 한다. 시내 전체는 아니겠지만 먼 마을이 보이니 제법 높은 지대인가 싶다. 눈이 시원하다.

관음전이라고 하는, 은각사의 모습이 아담하고 검박해 보인다.

우리가 경탄해마지 않던 모래 정원은 이들 아저씨의 부단한 손길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너무 고마워 합장하고 인사를 할 뻔했다.

은근한 경사가 있는 길을 돌로 덮었다. 오를 때 무심코 올랐는데 내려다 보니 걸어 온 길이 길었구나 싶다.

아이스크림 집 앞에서 대나무 수도 꼭지가 찬물 봉사를 하고 있다. 대나무 수도 꼭지에다 물받침 돌확이 귀여워 바라 보다가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게 되었다. "아이스크림 드시고 가세요" 따위 호객 행위도 없었는데. 수도 꼭지에 손 씻고 하다가 핑게 김에 군것질도 하고 다리도 쉬고 하며 내려 왔다.

은각사 아랫 동네 길은 어여쁜 음식점이나 기념품 점들이 많다. 이 거리에서 산 손수건이 예뻤고 주인 아주머니도 아주 친절했었다. 여행지에서 자잘한 물건도 사고, 현지인들과 의사소통하는 게 은근 재미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잠시 들어가 보는 일, 그것도 여행의 한 즐거움이다.

 
< 후시미이나리 신사>


이 곳은 이나리 신을 모시는 이나리 신사의 총본산이라고 한다. 신사는 신을 모시는 곳이고, 이나리 신사는 쌀, 농업, 성공을 기원하는 신이라고 한다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나오니 바로 인파가 여름날 구름같다.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일본 내 명소로 1위를 차지했으며, 그것도 2년 연속 선정되었다는 자랑이 입구에서 부터 펄럭인다. 일본을 동양의 다른 나라와 단숨에 차별화 하는데 일단 성공했다고 해야겠다. 신사는 조용한 자기 성찰의 장소가 아니라 기원과 소망의 이기심이 붉게 타오르는 곳이라는 점은 가려져 있지 않나 싶어진다.

사람들이 아주 붐비는데 그룹 여행자들로 보이는 서양인들도 굉장히 많다.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등장하면서 일약 유명해진 신사라고 하는데 사진 찍기에 너무 몰입하는 아주머니가 웃기기는 하다.

신사와 술통의 관계를 잘 모르겠지만 여기도 조금 있다. 늘 생각이지만 일본인들은 자기네 글자체를 멋지게 개발해서 쓰고 있는 것같다.

일본인들의 샤머니즘은 종교를 무색하게 한다. 신사는 일본인들에게 소원 성취라는 세속적인 욕망을 숨김 없이 토해낼 수 있는, 정신적 해방구라도 되는 것 아닌가? 순수해 보이기도 하다. 어린 학생들도 줄을 당겨 보고 합장을 하고 하는 것이 제대로 하는 의식인가보다.

신사 안의 신사. 봉납문 안의 봉납문. 기원과 소망이 온 산에 퍼져 있으니 말 그대로 욕망이 불타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 설법 중에 세상이 온통 불타고 있다는 삼계화택(三界火宅) 의 설법이 머릿 속을 스친다. 세상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활활 불타고 있는데, 불이 났다는 걸 알지 못하고, 빠져 나올 생각도 없이 멋 모르고 살고 있다는 비유의 설법이다.

소망을 적어 매단 판들이 갖은 모양으로 멋을 내고 있다.

사람들이 술렁이며 빨려 들어 가는 문이 있다. 봉납(奉納) 글자가 선명한 문이다. 

신사 입구에 있는 문을 '도리이'라고 한다. 세속과 신성한 곳을 구분하는 경계를 뜻한다고 하는 이 문이 터널을 이루는 상상 밖의 광경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감사의 의미로 도리이를 기부하곤 한다는데 이 곳에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봉납한 도리이가 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천개의 기원과 천개의 감사~~~

강렬한 붉은 기둥이 일단 시선이 끌리고, 열 지어 터널을 이루었으니 장관은 장관이다. 붉은 기둥이 이끄는 대로 곧게 가다가 휘어져 가다가 하면서 온 산을 휘돌아 나가게 되어 있다. 세상에 없는 풍경이 아닐까, 그래서 명소가 되었나 보다.

걷다가 뒤돌아 보면 오른편 기둥에는 도리이를 세운 길일이 새겨져 있고,

왼쪽 기둥에는 기부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성공의 상징이 붉게 새겨져 있다. 산을 돌아 가며 계속 세우고 있으니 마침내 온 산을 태울듯이 붉게 물들 날이 올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내가 마음에 새기는 말씀. '무주상 보시'를 생각한다. 베품에 조건이 있어서 안 되고, 베품에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쉬운 말이나 실천하는 삶은 참 어렵다.그 가르침에 크게 반박이라도 하듯이 붉은 색은 햇살을 받아 더욱 더 강렬해진다.

붉은 터널 사이 잠깐 산책로가 보여 아래로 내려 온다. 적당한 거리에서 내려 온 것이 참 잘한 일이다. 이 푸른 그늘을 두고 인파에 휩쓸려 주황색 멀미를 일으킬 뻔했다. 

 도리이가 시작되는 곳에는 반드시 '도하대신'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쌀을 주관하는 신을 모셨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개의 형상 같기도 한 동물상이 여러 군데 보이는데 개가 아니고 여우라고 한다. 여우를 숭배하는 사상이라니, 일본의 토속 신앙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붉은 색을 입은 다리는 녹음 속에서 단연 존재감이드러 난다. 산을 캔버스 삼은 거대한 설치 미술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맞을 것같다. 구경 한번 잘 하고 산을 내려 간다.

이 곳에는 절에도 신사에도 늘 식수대가 있다. 깔끔하게 관리 되어 있어 보기가 좋다. 나무 국자는 언제 봐도 세련되고 예쁘다.


< 동복사 >

동복사 들어 가는 길.
세월이 느껴지는 다리가 꾸밈 없는 얼굴을 하고 있어 기분이 환해진다. 잠시 머무르게 하는 목재 다리이다. 저 아래로 흐르는 개울도 보고 수풀 너머로 절집의 일부가 정취 있게 보이기 때문이다.

동복사의 아름다움이 그림으로는 어떻게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색채가 너무 강한 탓인 것같은데 들어 가보면 상상이 절로 된다.

동복사는 교토 5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유명한 선종 사찰이며, 가마구라 시대에 창건 이래 750년이 된, 임제종의 대본산이라는 안내가 있다.
불교는 참선 수행 중심 도량이냐, 경전이나 교리 중심의 도량이냐에 따라 선종과 교종으로 분류된다.
일본 불교는 대부분 선(禪) 불교에 속하는 임제종, 즉 뿌리가 선종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동복사는 후시미이나리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 들어가 보기로 한 것뿐, 예비 지식은 없었다.

경내가 굉장히 깨끗하고 이만 저만 조용한 게 아니다. 인파는 모두 다 후시미이나리에 쏠려 들어 갔지 않나 싶다.

삼문(三門)
삼 해탈문에서 따온 삼문은 국보라 명시가 되어 있다.소소한 입구를 지나면서 별 기대를 품지 않고 들어 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위엄 있는 삼문과 본당 건물을 보면서 선입견을 버려야 했다..

본당.
높낮이로 어느 정도 가람의 구조를 짐작하는 우리로서는 미처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바로 코 앞 평지에 거대한 법당이 닥아 와 압도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품위 있고 지적이라고 하고 싶은, 그런 멋을 지녀 예사로운 절이 아님을 바로 알게 된다.

본당 층계 참을 오르니 깊은 그늘이 가슴을 한번 쓸어 준다. 청량한 바람이 이 그늘에 살면서 참배자에게 몸에서 마음에서 열기를 살짝 걷어내 보라 일러 주는 것 같다. 이쯤에서 벌써 동복사가 퍽 마음에 드는 절이 되면서 한결 겸허해진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 보이는 부속 건물들이 보기가 좋아 사진을 찍어 가며 법당 주변을 맴돈다.

위엄 가득한 건물이다. 외관이 장대하니 법당 내부가 궁금한 건 당연지사, 꼭 닫힌 법당 안을 들여다 보게 되니,

자그맣고 정갈하게 모셔진 불상이 보인다. 광배가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경건한 기도를 보내게 된다. "상(像)으로 나를 보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 부처는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네 마음에, 네 이웃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상을 보아 비로소 그 가르침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 중생심이다. "아! 나는 지금 부처 두 분을 모시고 여행길에 있는 거구나"  마음에 새긴다.

본당을 한 바퀴 돌아 오면 아주 날렵한 지붕을 인 멋진 통로가 보인다. 절제되어 꾸미지 않은듯 꾸민 멋, 이것이 진정 일본 건축물의 특징이라 하고 싶다. 건축에 대해 무얼 안다고.....

 이 정경이 좋아 미적 미적 걸음을 아끼며 걷는다. 이제 한 바퀴 휘 휘 돌아 나갈 일만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표소가 나타나니 무조건 들어 가 봐야한다. 동복사의 멋, 일본 건축믈의 멋과 특징은 이렇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것이 묘미인 것 같다.

티켓이 우리를 실망 시킨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 우리를 기다린 둣 사찰풍경이 깊어진다. 호젓함 속으로 들어 갔으며, 절에서 스님을 보게 된 것도 처음이었으니.....

팔상 정원 (핫소 정원) 
팔상 정원은 일본의 전통에 현대 예술의 추상적 구성을 도입한 근대 선종 정원의 백미설명한다. 세계 각국에 널리 소개 되어 있다고 하는 말이 결코 엄살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방장을 중심으로 서쪽 정원, 동쪽 정원, 남쪽 정원, 북쪽 정원이 각기 다른 의미와 멋을  준비하고 있는 걸 직접 보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남쪽 정원.
인간과 동물을 표현한 것인가? 그리고 둥글게 그려진 문양은 무슨 의미일까? 눈으로 보아 깜짝 놀라고, 마음에는 충격파가 전해진다.  "웬 일이니!" 바위는 섬이며 소용돌이 문양은 팔해 (八海)를 나타 낸 것이라고 한다. 심오한 뜻을 지닌 정원이다.꽃과 나비 없는 차원 높은 정원이라 정의하면 맞을긋하다. 무채색의 바위와 모래가 주는 경건함이 절의 분위기와 닮았다.

이 고요한 정원에 따문 따문 보이는 관람객, 조용한 한 무리의 학생들 그리고 우리 가족 뿐.정원이 주는 간결한 멧세지를 알아채기에 최상의 조건이다. 앉아서 정원을 감상하라며 계단 마루가 층을 내 주고 있다. 이래 저래 좋다,

고요한 정경.

동쪽 정원은 '북두의 정원'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다른 건물 공사 중 남는 기둥과 주춧돌을 이용하여 북두칠성을 구성한 것이다. 의미를 모르니 긴 화면에 칠성을 담을 궁리를 하지 않은 실수를 초래했다. 내 팜플렛의 사진을 보니 이해가 되어 이 사진을 싣고 만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진정 명언이다.

동그란 그림은 여기서는 별이 뿜어내는 밤하늘의 광채인가 보다. 모래 정원에 너무 몰입하는 나를 본다. 

서쪽 정원
다듬은 철쭉과 모래로 시송 모양을 크게 형상화 했다고 안내 한다. 정 (井) 자로 토지를 분할 했던 고대 중국의 정전(井田)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모판처럼 작은 밭이 정말 참하다....

철쭉 정원의 배경은 단연 계곡에 드리운 수풀, 가을 단풍이 절경이란다. 산세에 맞춰 조금씩 어깨를 낮춘 지붕들 또한 절대 미감을 갖춘 배경이다.

산을 품은 모습이 여실히 드러 난다. 필요에 의한 공간이 아니고 멋으로 설치한 에술품같다.

북쪽 정원
원래 앞문에 사용 되었던 포석과 이끼로 시송(市松) 모양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있다. 나는 사실 이 정원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해야겠다. 일단 바둑판 구성에 놀라고, 단순한 바둑판 모양이 아닌 것에 놀란다. 모래와 이끼를 조합하여 벨벳 정원을 꾸몄다는 사실에 탄복한다. 신비하기 그지 없다. 
모래판을 일정한듯 일정하지 않게 떼었다 붙였다 카펫 짜듯이 정원을 꾸미며 빼어난 감각을 자랑한다. 나는 그 자랑을 깊이 받아 들이며, 마음에다 고운 엽서 한 장으로 간직하려 한다. 명암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빛나는 유월 오후의 정원을.

한때 '젠 스타일'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심플 라이프를 추구하고, 무채색을 즐기고, 모든 것에 장식을 줄여 간결함을 강조하는 등등. 진정 젠 스타일의 정원이 이런 것일테다. 교과서 삼아도 될 둣싶다.

격조 있는 절, 참배에 불편이 없는 절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눈비를 피해 이동하니 좋고 아름다우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숲에서 뿜어 나오는 푸른 기운을 받으며 생각 하나 붙들고 걷는다면 스님 화두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통천교'.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길이다. 숲으로 난 길이며 정원의 배경이며 아름다움 그 자체인 이 회랑.걷지 않고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싸아~해지던 이 길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이 숲이 단풍으로 붉게 물드는 날은 현기증 나게 아름다울 것이라 얼마든지 상상이 된다.

잠시 쉬면서 산을 조망해 보라는 배려의 공간이 마련돼 있다. 단풍잎 붉은 입장권 사진이 이 공간이다.

회랑은 그 자체가 질서이다. 그리고 우리를 질서로 안내한다.  시선을 숲에다 두고 걸음을 아끼며 무심하게 걸어도 우리를 편하게 안내한다. 이 길을 이용하면 자연을 훼손하네 취사를 하네 하는 무질서가 없을 것 같다는 실리적인 생각도 해본다.

회랑을 따라, 이 경관에 취해 걷다 보니 끝이 보인다. 소실점을 만들며 함께 서 있던 것으로 착시 현상을 일으키던 양쪽 기둥이 엄연히 제자리에 서 있다.

회랑이 가리키는 길에 이제 호기심 먼저 앞선다. 환상을 기대해도 좋다는 믿음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팔상 정원의 끝은 또 연못과 다리와 꽃과 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정원이다. 개산당(상락암)이라고 한다. 역시 정원의 아름다움으로 익히 꼽히는 곳으로 1280년에 건축된 건물이라고 한다.

발이 닿는 곳에는 세심한 손길이 느껴진다. 연잎 가득한 연못, 돌다리, 꽃동산.....어느 하나 소흘함이 안 보인다.

콩크리트를 쏟아 부으며 옛 정취를 걷어내 버리는 우리 절집의 현실이 아타깝고 부끄럽기만 하다. 고졸한 채로, 묵은 향기가 묻어 나오는 그런 절 보기가 쉽지가 않으니 말이다. 건물이 정원의 한 부분쯤으로 느껴지는 이런 정경이 부럽기만하다.

아까부터 붙박이처럼 앉아 있는 사람을 본다.
깊은 그늘에 그림처럼 말 없이 앉아만 있는 것이 보기가 좋다.나의 여유가 남에게 여유를 전해지고 있으니, 그는 지금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그런 여유는 부족하지 싶다.
절로 시작해서 정원 감상으로 마감을 하는 패턴에 예외는 없었다. 교토에서 들렀던 뜨르르 이름을 날리는 여러 절들보다 나는 동복사가 마음에 든다. 경내에 사람이 적은 이유도 있겠으나 나는 옛 멋이 현재적으로 해석되어 나란히 아름다운 이 절이 좋아졌다. 내 생애에 다시 오리라는 기약이 없어 나는 사진 한 장을 아끼고 정리에 더 마음을 쓰는지도 모른다.

하루를 또 빛나게 보내고 저녁도 먹고 콧바람도 쐬러 밖으로 나오니 교토의 노을이 와코르 건물에 화려하게 담겨 있다.

 

< 2016 6월 3일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