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6년

끈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수행화 2016. 7. 28. 16:00

 

내려올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멋진 제목을 단 이 윤기 씨의 산문집이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어 무심히 뽑아 읽다가 느낌이 유쾌해서 바로 대출해서 읽었다. 

제목은 고은 시인의 시 '그 꽃'에서 가져 온 것이라고 한다.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석 줄, 열다섯 글자가 터질 듯이 많은 말을 머금고 있다.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자 일찌기 학교를 떠났으며, 읽고 쓰는 삶에 몰입하였고, 부단히 정진한 결과 마침내 번역 1세대로서 대가 반열에 오르게 된 작가의 내력이 비범하고, 예사롭지 않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자연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잘 하며 어떤 인생을 살아야겠다'며 구체적인 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길을 따라 살다 간 한 사람의 성공 사례를 보는 것만 같아서이다.

  

작가는 소싯적에 형님이 공부하는 명심보감의 글을 귀동냥해 들으며 세상은 어처구니 없이 넓고 아뜩한 것으로 느꼈으며 자신은 봄 뜰의 풀처럼 살겠노라 마음을 가졌다니!

10대에 이미 이렇게 학문적 성취를 꿈 꾸었으니 홀로 선생이 될 자격은 미리 마련이 되었던 것같다.

 

"하루 공부 한다고 해서 현명함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는 멀어진다. 하루 나태하게 군다고 해서 무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명함에서 멀어진다. 공부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나날이 닳고 있는 것이다."

 

'공부하는 놈과 저금 하는 놈은 아무도 못 당한다.'

고 들어 온 말들을 금과옥조로 삼아 철석같이 믿으며 노력했고, 

실꾸리를 꼭 붙잡고 마침내 미궁을 빠져 나오는 신화 속 공주, 아리아드네처럼 작가도 고전이라는 실꾸리를 꼭 붙잡았으니, 길을 잃지 않았으며, 미궁같은 세월을 빠져 나왔지 싶다고 하는 말이 우선 마음에 남는다.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끈을 놓치지 않고 일로매진한다면, 지성이면 감천은 정해진 이치로서,

궁극에 어떻게든 댓가가 따라 올 것이다. 아무리 그 세월이 미궁과 같다 할지라도,   

하지만 우리처럼 머리로만 튕겨서 알고 이해하는 것은 전혀 무용한 것으로서,

인생을 계획적으로 꼼꼼히 살아내질 못했다는 자괴감이 유난히 많은 나에게 씁쓸한 뒷맛을 안겨 준다.

      

그는 어깨에 힘을 빼듯 글에 힘 빼는 재주가 있으며, 넥타이를 풀고 격의 없이 대화하듯 독자와 마주하는, 

그런 소탈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우스개처럼 스치는 글 안에 웃지 못할 분명한 멧세지가 있었으니,

공부하는 삶의 가치, 공부가 이룬 성취의 무게라 해야겠다.

 

자신의 인생을 글살이, 책살이로  정했으며, 타고 난 어학적 소질에다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번역가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위치에 올랐다는 게 우선이고,  그 성공에 멈추지 않고 제 2의 꿈을 향해 도전을 감행했다는 것이 두번째 놀라움이다.

 

이 시대는 직업이 다양해지기도 하고, 부침(浮浸)도 심한데다, 수명이 연장된 여러 물리적인 이유로, 각자 나름으로 자기의 제 2 인생에 대한 궁리와 채비가 절실해지고 있다. 

이런 필수불가결한 명제를 안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작가는 감히 지적질하듯 충언을 아끼지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젊은 독자에게 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두려워하고 '낯선 곳에서의 아침' 맞기를 두려워 하는 분들에게 쓴다.......

1992년 , 내 나이 마흔 다섯 살 되던 해였다. 번역가로서의 삶, 그간 펴 낸 책이 백 권이 훨씬 넘던 시절, 원하기만 하면 번역가로서의 삶을 번듯하게 꾸려갈 수 있었다. 억대 연봉도 간단하게 타 넘었을 시절.

자신들과 아이들의 미래를 디자인하려 미국행,

아픔을 경험하지 않고는 성숙해질 수가 없다. 외국을 향해 3, 40대의 등 떠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물은 고이면 썩는다. 흐르려면 바닥을 기어야 한다. 

 

현실적 성공이란 도약하기 위한 발판일 뿐인가!

아이들 진로를 찾아 보려는 것과 더부러 미국 생활을 반환점으로 이전에는 번역이 주업이었다면 이후에는 소설가로 거듭 나 보겠다는 또 다른 도전을 염두에 뒀다니 말이다. 

물론 소설을 썼고, 문학상을 받아 생계에 보탬도 되었다고 하니 남이 이루지 못할 일, 몇을 자기는 미국 생활 전후로 나눠 가며 다 해냈다는 걸 봐도 집념하고 추진하는 남다른 능력을 가진 자임에 틀림이 없다. 

 

내일 그 이후의 인생에 늘 꿈과 부담을 함께 얹었고, 몸으로 밀며 성취하고야 마는 작가에게 평생 학습이니, 여가 선용이니 하는 말들은 공허하고 오히려 구차하게 들리고 있다.  

 

2002년 70 센티짜리 대나무 화분을 7천원에 사서 마당에 심었더니,

다음해 대나무 주변에 죽순이 솟아 올라, 네개 중 세개가 살아  남았고, 다음해에는 여덟개의 죽순이 올라와 6개가 자라니 금세 대숲의 주인이 되었다는 여담 중에서도,

젊은 시절에 대나무를 심어 35년이 지났다면 마당 한켠의 대숲은 과연 어떤 대숲이 되어 있을까?

아마 황홀한 제 2의 인생이 기다렸을 것이라며 농담 삼아 하는 말에도 내일, 내일이 있다.

 

대나무 화분 하나가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을, 뜰에도 우리 내면에도 대나무 한 그루 심을 여유도 안목도 없이 물 쓰듯 세월을 써버렸다는 것이 어찌 애통하지 않으리오!   

젊은 시절에는 늘 배움에 목이 말라 없는 시간을 쪼개 가며 이런 것, 저런 것들을 배우고 만들며 작은 성취감에 젖어 보았고, 그 때 그 행복감도 참 소중했었으나, 도리켜 보니 오래 남아 나를 위로해 주는 아무 것도 없는지라 아쉽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해서인지 나는 이 대목에 매듭이 맺히며 잠시 걸린다..

 

언제나 초조하고 고단했으므로 사고는 옹색했고, 한 우물을 파네, 큰 그림을 그리네 하며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는 일들은 언감생심, 이기심이요 사치로 여겨야 했던 젊은 날 나의 초상이 자꾸 대비가 된다. 

뭐, 우물쭈물 하다가 무덤에 가 있다는 말은 시인의 겸양이며, 우리같은 촌부야 말로 나와 남이 더부러 쳐 둔 울타리 안에서 우물 쭈물 어영부영 살아 지금에 이르렀으니 자연히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는지라 이 시대의 대가의 삶을 생각하면서 뚱단지같은 생각들이 불쑥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 내가 자기비하의 감정에 빠져 드는 근원은 따로 있는 것같다.

일단 작가가 나와 동년배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우리네는 상상조차 어려운 자기 인생의 포부를 갖고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이를테면 꿈을 실현하기에는 열악하다고 판단한 현실의 벽을 정면으로 뚫고 날아 버릴 수 있었던 용기와 자기 확신이 그것이며,

자기를 키워 주지 않는 현실을 탓하고 절망하지 않고, 인생을 자기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던 진취적이고 근면했을 삶에 존경을 보내며 시절 탓만 하던 나는 주눅이 들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 가며 잘 읽었고, 

'말이여, 넥타이를 풀어라' 는 페이지에서의 느낌이 각별하고, 유머러스한 글 중의 하나이다.

"시하니껴?

조부모나 부모를 모시고 사느냐의 경북 지방 언어.

층층시하, 아버지만 생존해 있을 경우, 엄시하, 어머니만 생존해 있을 경우에는, 자시하입니다.라고 대답해야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는다

'안항이 몇인고?"역시 외국어 같다. 안행(雁行), 이렇게 한자를 병기해도 외국어같기는 마찬가지다. 기러기가 간다. 형제 자매가 몇이냐는 뜻이다.

 

"글 부리고 말 부릴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묻는다.

소통을 원하는가, 과시를 원하는가?" 

배타적이며 자만심으로 우물 안 개구리의 삶에 긍지를 가지며 살아 가는 그 지역의 특성을 좀 아는 내게 어필하는 대목이라 웃음 지었고, 단숨에 책 한권을 다 읽어 버렸으니 과시보다 소통을 원하는 작가의 의도는 딱 맞아 떨어진 것같다.

 

세 사람이 길을 걷다 보면 그 중 한 명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타인의 목소리에도, 흘려 듣는 수다에도 귀를 열어 두다 보면 귓등으로도 늘 배움은 온다. 

뚝딱 읽어 치운 산문집에서 내가 구한 배움은 공부, 시작이 공부 그리고 우직하게 공부, 그래서 스스로 자기 인생의 길잡이라 여길 때까지 지독하게 공부하는 것이다.

 

습기를 머금었던 대기가 맑은 바람에 자리를 조금씩 내 주는 기분 좋은 오후에 나는 내가 어느 순간 놓쳐 버린 내 인생의 또 다른 실꾸리에 잠시 연연해 본다. 지적 허영의 실꾸리인지도 모를........ 나쁘지 않다.

 

부처님 말씀에 자기 자신을 등불 삼아, 불법(佛法)을 등불 삼아 인생을 밝혀야 한다는 가르침을 거듭 마음에 새겨 본다. 내 인생의 등불은 나만 밝힐 수 있다는 것이 진리인 것을 이제야 안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그대가 붙잡고 따라가는 한가닥 실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이걸 잡고 있는 한, 길 잃을 염려는 없지.

슬픈 일들은 일어나게 마련이어

사람들은 다치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한다.

그대 역시 고통 속에서 나이를 먹어 가겠지.

세월이 펼치는 것은 그대도 막을 수 없으니

오로지 실만은 꼭 붙잡되,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