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6년

인생의 한 페이지를 지금 막 넘기는 규영!

수행화 2016. 12. 29. 15:35

 

 

내 마음의 규영 <2008년 1월 23일>

 

 

희망을 계획하고 꿈을 꿀 수는 있어도 이루어내는 것은 행동이요 실천이다.

우리 맏손녀 규영이는 실천을 망설이지 않는 아이다.

 

할머니들 노는 일에 손주 자랑은 약방의 감초인지라 빠질 수 없는 일이나, 나는 얄밉지 않을 정도의 겸양으로 넌지시 자랑 운을 떼어 보이며, 되도록 나대는 인상을 안 주려 애쓰는 편이다. 물론 내 감각으로.그런데 이번에 아이가 자력으로 특목고인 외고에 턱하니 붙었다 하니 사실 그 기쁜 마음 숨기기는 주머니에 송곳 숨기기보다 더 어려웠다. 열중하는 모습이 어여뻐 하염 없이 바라 보고, 또 훔쳐 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면접 시험 예상 문제 1000개를 뽑아 친구들을 모아 함께 모의 면접을 해 보기도 하고, 자기소개서를 혼자 힘으로 써서 제출하면서 입시에 대비했다는 말을 듣고, 그 면밀하고 진취적인 자세가 너무 기특해 물색 없이 자랑을 하고 싶어졌다. 그것도 친구들과 더부러 서로 협력하고 격려하며 맹훈련을 했다고 하니 더욱 가상하다.

 

규영이는 아주 일찍, 두 돐 이전에 이미 어른들과 아무런 불편 없이 대화를 할 정도여서, 장차 그 아이 언어세계는 찬란하리라 예감은 있었다. 그 작은 입에서 기막힌 언어들이 팝콘처럼 톡톡거리며 튀어 나올 때 우리가 뿌린 환성이 얼마였던지 모르겠다. 나는 그 아이의 말들이 너무 신통하여 메모지며, 신문 모퉁이며 마구 받아 적었더랬으나 다들 어디론가 꽁지를 감춰 버려 찾을 수가 없고, 초등학교 1학년 어떤 날의 글을 컴퓨터에서 찾았다.

 

'그게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모둠에서 나가면 좋겠다는 친구를 집어 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게 친구를 버리는 것이라 생각되어서 친구를 집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모듬을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씀 하셨다. 난 친구가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친구는 내가 아프거나, 힘들 때 가방도 들어 주고 잘 위로해 주고 나에게 소중한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난 친구들이 괴롭히고 놀리고 피해를 줘도 다른 친구를 절대로 괴롭히거나 피해를 주고 놀리지 않겠다. 왜냐하면 친구를 사랑해야 착한 어린이가 되기 때문이다. 피해를 주고 괴롭히고 놀리면 그 소중한 친구도 없을 테니깐 말이다. 친구가 아프면 친구가 없더라도 또는 안 보여도 친구를 위로해 주고 마음의 편지를 보내야 친구가 좋아하고 건강해질 거라고 믿는다. 만약 앞이 안 보이고 귀가 들리지 않거나 말할 수 없는 친구가 있다면 더욱 잘 도와주고 친절하게 대하며 아주 모범적 어린이가 되어서 어른이 되어도 힘든 일 없게 꼼꼼히 도와주겠다. 친구가 많을수록 더 착한 어린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친구를 괴롭히는 친구나 어른이 있으면 당장 그 괴롭힘을 받는 친구를 꼭 도와야겠다. 이렇게 일기를 썼으니 꼭 지켜야겠다.'

 

"친구를 위한 마음의 공간을 미리 준비하는 규영이는 진실로 아름다운 아이다. 지구의 자성은 마음의 거울 따라 인간을 인도한다고 한다. 우리 규영이를 따스함과 순수의 세계로 이끌 자성을 믿으며, 언제까지나 남에게 사랑 받아 존재감을 드러낼 아이로 자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아이는 또 어른의 스승이 되어 버린다." 고 당시의 내 소감이 덧붙여 쓰여 있는 걸 보며 몹시 감명 받았던 내 마음의 기억도 새롭다. 

 

조그만 얼굴에 아기 티가 아직도 조롱조롱 붙어 있던 시기에 남을 배려한다는 인간적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하도 대견하여 가끔 혼자 읽어 보겠다고 옮겨 써 놓은 것이다. 이기심이 가득해도 나무라지 않을 시기에 친구를 도우겠다고 다짐하는 각오에 얼마나 감동 했던가! 이 아이가 자라 정돈된 자기 주관을 가진 여학생으로 곧게 서 있는 게 뭐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지금 든다.

 

쌀 한톨을 영글어 내기까지 농부의 손길 88번이 들었다 해서 여덟 8자가 맛붙어 쌀(米)자 되었다고 하는데, 쌀 한톨이 88번의 농부 손길에 햇빛과 별빛, 천둥과 비바람, 찰랑이는 물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간들의 공력이 들어 있는데 하물며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자기 세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이 어찌 그저 이루어질 일인가!

 

새 교복을 맞춰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감회에 젖는 것이 할머니의 헐한 감상은 아니다.

주말에 할머니랑 TV 보며 뒹굴었고, 무거운 책가방 끌며 학원을 전전하지 않았다고 하여 땀과 수고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 비위를 맞춰주는 저의 엄마, 아이 공부 조금 봐 주고 주말 오후 잠시 눈을 붙이는 저의 아빠 얼굴에 앉은 피로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성실이 응답을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이가 커 가는 과정이 다들 그렇다고들 하지만 우리 규영이의 놀이 역사는 현란했다고 하고싶다 , 상황을 바꿔가며 숱하게 연출하던 소꼽 놀이, 퍼즐 맞추기, 할머니랑 자는 날 전등 끄고 누워 이어가던 엉성한 퀴즈 놀이, ......지적 호기심을 맘컷 충족시켜 주지 못햄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할머니에게는 럭셔리한 것이 어울리는데,... " 하며 큐브를 꽃씨처럼 촘촘히 박아 손수 만들어 선물해준 반지, 진주알을 끼운 브로치, 핸드폰 줄,........ 卍자가 찰랑거리는 줄은 지금까지 나의 필통 악세사리이다. 어쩌면 지치지도 않고 손을 놀리며 갖은 쟝르(?)를 누비며 다채롭게 놀았다고 해야겠다. 태권도 도장에는 멋지게 비상하는 규영이 사진이 학원 광고 사진으로 쓰이기까지.......

 

그리고 남 다른 눈썰미로 핫한 화제가 되던 즐거운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명예 청와대 기자 활동을 하던 때 '코이카 베트남의 날 행사' 취재 갔던 날, 그 빼곡한 내빈석 사이에서 아빠의 이모부를 알아 보고 인사를 꼬박 했다는 것이다. 아빠의 이모부를 만날 기회라야 겨우 두어번이었고, 더구나 그 기관에 근무했다는 것 이하 아무 기본 지식도 없는 가운데, 그 많은 군중 사이에서 어른을 찾아 알아본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 이모부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이 너무 많아 혼잡한데 예쁜 여학생 둘(동생 데리고)이 다가 오더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더라"고, 너무 예쁘고 기특한데 일행 함께 움직이느라 많은 대화 나누지 못해 크게 유감이란 말을 듣던 즐거운 기억도 있고, 그 비슷한 시기에 어떤 키즈카페, 몹시 붐비는 인파 속에서 또 저의 아빠 외숙모 가족들을 알아 봤던 적도 있었다. 그들과도 다만 예식장 등 많은 가족들 틈에 스치듯 만난 것 뿐이었건만 얼굴을 알아보며 자기가 규영이라고 소개까지 했다고 하니 놀랍고 반가워 친구들 쥬스까지 주문해 줬다나 하며, 아이 눈썰미가 기가 막힌다며 칭찬이 절로 나온다는 치사는 가족들 모이면 내내 듣는 일화가 되어 버렸다. 규영이는 그런 유년시절을 보낸 바지런하고 올곧은 아이이다.

 

흐르는 물은 자신의 힘으로 길을 만들고, 한번 만들어진 물길은 점점 깊고 넓어지며 골을 이루며 흐르고, 흐름이 멈췄다 다시 흐를 때에는 과거 자신이 만들어 둔 그 길의 기억을 따라 흘러가게 되어 있다. 동쪽으로 뻗은 가지를 쳐 내어도 또 다시 동쪽으로 새 가지를 뻗게 되는 나무의 습성도 마찬가지로, 습관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삶과 닮았다. 인간의 유년 시절은 물길과 같아 좋은 습관을 기르고, 마음을 정화해야 하는 소중하고도 소중한 시기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니 적이 숙연한 마음이 든다. 

 

이제 인생의 한 단락, 한 페이지를 막 넘기는 규영이는 인생의 일출을 보려고 일찍 잠 깰 준비에 든 시간이다. 아침의 계획이 아이 머릿 속에 분명 있다고 본다. 나, 할머니의 시선으로는.

'꽃 봉오리는 찬란한 개화를 위해 향기를 안으로 안으로 모으고 있다'는 말을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다.

 

앞으로 매주마다 아이 얼굴 보기는 어려울 터, 향기가 깊어질 때까지 봉오리를 꼭 닫고 있는 꽃잎의 의지를 존중하며 무료함을 이겨야 한다. 개화의 날을 기다려야 한다. 규영이가 차려 둔 안방 병원의 단골 고객이던 시절이랑 즐거웠던 날들을 때때로 불러다 즐기는 일이 좋을 것같다. 

"할머니 들어 오세요.""정권희 박선희는 다녀 갔어요""당근 쥬스 드셔 보세요, 달콤해요" '베이비들은 이런 걸 해요. 턱받이같은 것" 하며 목에 머플러를 척 둘러 주던 기억들을 내 어깨는 간직하고 있으니,  

 

기억이 은하수처럼 무수한 별로 총총하질 못하고, 다만 하나의 에피소드들로 모자이크 되어 따문따문 재생되니 조금 서글퍼지긴 하다. 그것도 잊지 않으려 컴퓨터에 기록해 둔 것에서 말이다. 시간이라는 건 되돌려 흐를 수 없는 강물과도 같지만 우리 기억은 거꾸로 돌려 비춰 볼 수 있어 고맙다. 이제 자기 세계를 구축해 가는 아이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데 내 기억 속의 긍정 에너지를 보탤 것이다.

 

지금 아들네 가족은 외갓집 가족들과 필리핀 여행 중이다. 잘 도착했고, 엄마, 아빠의 45주년 결혼기념일을 축하 한다는 아들의 문자를 받기도 했다. 아이들 돌보느라 애쓴 아들, 며느리에게 내가 상이라도 준 것처럼 마음 뿌듯하다. 물놀이도 할 것이며, 규영이 좋아하는 영어도 써 보겠구나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까마득히 먼 곳이 아니라지만 아득해진 느낌이라, 저희들이 행복해 하던 미국 여행과 일본 여행 사진들을 들춰 보았다. 어린이 티가 살짝 가신 것이, 퍽 자란 걸 보게 된다.

 

키도 발도 이미 나보다 크고, 마음 씀씀이도 쑥쑥 자라는 걸  바라 보며, 언제나 타인의 마음에 맑고 진실로 아름답게 투사될 규영이의 모습을 그려 보는 일은 어렵지가 않다.  

 

우리는 각기 다른 소설 하나를 간직한 인생을 살며, 오늘도 긴 인생의 사사시 한 줄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