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7년

「책의 자서전 」 ― 어느 베스트셀러의 기이한 운명.

수행화 2017. 2. 10. 11:59

 

 

 

 

도서관이란 분류와 정리가 생명인지라 일단 단조롭다. 그러나 그 정형화된 서가는 저만의 개성을 뽐내는 책표지들로 의외로 대채롭고도 현란하다. '책의 자서전'이라는 책에 내 시선이 머문 것은 순전히 작고 귀여운 겉모양에 재밌는 제목 때문이었다. 뽑아서 몇 페이지 넘기다 순식간에 그 매력에 빠져 나와 함께 집으로 와서 내 오후를 즐겁게 해 줬다.

책이 1인칭 화자로, 자신의 지난 생을 회고해 본다는 발상이 독특하고, 주인공 책은 감수성이 강하고 재치가 넘쳐 예리한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 보고, 몸소 겪은 시대의 흐름을 말하고 있어 아주 흥미롭다.

"45, 그 책은 일만번째로 내 장서에 들어오게 되었다.
막 서가에 꽂힌 그 때 간절한 눈빛으로 내게 부탁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머물던 서점을 떠올려보고 싶다고.
이 글은 그가 들려준 기이하고도 굴곡진 그 자신의 이야기이다."

 작가 안드레아 케르베이커는 1960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소설가로서, 굉장한 애서가이자 장서가라고 한다. 그는 고서점에서 1989년에 죽은 베니스의 저명한 정신분석 의사, '체자레 무자티'의 장서 2000권을 불과 100만 리라(한화 약 50만원) 라는 헐값에 구입하면서 자기에게 팔려 온 1만 번째의 책에서 영감을 얻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나는 초판의 책으로 불과 몇 달 동안 4쇄가 인쇄되었고, 10쇄 정도 중쇄를 거듭하여 자부심이 가득했었다."

고 자신의 프로필을 소개한다.

 

책의 첫번 째 주인은 젊은 세대로 책을 사자 마자 자기 이름, 사는 도시, 구입한 날짜까지 적고 사인까지 했으며, 일 주일도 되지 않아 책을 다 읽어주었다. 그것도 밑줄까지 그어 가며 읽어 책에게 우쭐한 기분을 선사했는데, 어느 날 군복을 입고 그리스로 떠나 버린다. 주인이 떠난 다음 거실에는 소란스러운 라디오가 들어 오고 책들은 상자에 차곡 차곡 쌓여져 복도 귀퉁이 짐꾸러미 사이에서  잊혀진 채 시간을 보낸다. 
 

전쟁에 끝나고 주인이 돌아 오자 책들은 다시 떼를 지어 그의 방으로 이사를 갔고, 10여년 만에 주인 아내의 눈에 띄어 책으로서는 여자의 손에 잡혀 보는 감동적인 순간을 맞았었다 말한다. 하지만 아내에게 큰 관심은 받지는 못했고, 갑자기 남편이 죽으면서 아내는 남편의 흔적인 책을 없애고 싶어했다.

아이들에게 물려 주려 하나 아이들의 반응은 "그 물건만은 제발!" 하며 진저리 쳤으니 책은 자존심을 무척 다쳤을 것이다. 결국 아이들의 물건들에 공간을 내주기 위해 주인집에서 추방되어 교외의 한 고물상으로 팔려 가게 된다. 먼지를 털고 낙서를 지우는 작업을 거친 다음, 중고 서점의 '최신 구입 도서' 에 다른 책들과 나란히 살았으며, 옆의 책이 팔려 나가는 모양을 지켜 보며 시간을 보내던 편치 않은 시절이었다.

 두번째 주인은 독신남이었고, 늘 질서가 없었으며, 책이 저희들끼리 서로를 깊이 알아 가거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겨를이 없으리만치 수시로 위치를 바꿔댔다. 간간이 사르트르의 작품 몇 편과 몇 마디를 나눠 봤고, 이데올로기의 악몽에 물이 덜 든 몇몇 역사가들과 스치기는 했었다. 거기서 버트런드 럿셀같은 분위기를 좋아하게도 되긴 했는데, 하지만 그들 책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였다고 회상한다.

 

두번째 주인을 만나 30년 동안 눈길 한번 받지 못했으며 1950년대 말에는 TV가 들어 오는 걸 지켜 보았고 책은 자신의 종말을 예감하게 된다. 마침내 주인은 서점에 얼마되지 않은 돈을 받고 책을 내다 판다. 서점에서는 두번 째 주인에게 지불한 돈보다 다섯 배나 높은 가격을 매겨 내 놓아 그 충분한 가격에 한껏 자존심이 살아나기도 했었다.

"나는 2년 전에 이 집에 팔려 왔었다. 출판된지 겨우 4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곧 세번째로 팔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기억들. 자본주의적 형벌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좌와 벌이라는 책이 나에게 그렇게 확인해 주었다." 

"스타인벡. 내가 네 다정한 친구가 되어줄께.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면 교훈적인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게 될거야. 그리고 비슷한 처지가 되겠지. 너도 결국 유행에 뒤진 책이 되는 거야. 나처럼은 아니겠지. 그것을 확인하면 어깨가 으쓱해질 거야" 

세 번째 주인은 시나리오 작가이며 그의 집에서 20년이 조금 못 되게 살았다. 비디오테잎 레코더, 콤팩트디스크, 휴대전화. 자동 응답기, 컴퓨너, 팩스기, 기계들이 들어 오고도 17년을 함께 살았다. 

 

세월이 지나 네번 째 주인을 기다린다. 

하드커버의 멋진 책들, 눈에 띄게 큰 판형의 책, 카버가 화려한 책들이 입구쪽에 진열되고 구석으로 밀린 책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괴로워 한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나날을 보내는 것은 나이가 든 책들에게 습관이 되어 버렸지만 치열한 경쟁을 치르며 선택되기를 바라며 실망도 체념도 하지 않고 굳게 기다린다. 

"솔직히 말하면 한 권의 책에서 노년이란 과장된 것에 불과하다. 우리 중에눈 수세기를 넘긴 책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달해야 할 목표점, 싸우면서, 힘겹게"

여기 이것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팔아버리거나 폐지로 보내 버리자." 서점 여주인은 분명히 말했고,

 

"일요일이나 월요일 오전은 20일, 정확히 22일이다. 그 후면 나는 폐지가 된다, 미래에는 어쩌면 포장지가 될지도, 혹은 아스피린 상자나 치약 상자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더 끔찍한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실수로라도 읽지 않는 의료 지침들이 가득 적힌, 슈퍼마켓에서 사서, 치즈와 샐러드가 담긴 카트 속에 집어던져 졌다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더러워진 손수건들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종이,..........
재가 되거나 쓰레기가 되어. 종점."

 

일을 하지 않고 지내는 책의 종말을 보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인데, 솔직히 60년 동안 네 명의 독자를 가진 주인공 책, 자기는 아주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잘 있게, 헤밍웨이, 종종 자네 시를 생각하게 될 거야. 그리고 모두들 잘 있어. 상자 속에서 보낸 시간들도 모두 안녕."

"이 네번재 주인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일단 위기를 모면했다는 사실을 즐기도록 하자. 만에 하나 재활용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옳지 않아. 난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었다. 마침내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난 아직도 줄 수 있는 게 많아. 모뎀, 골뱅이(@)와 SMS의 시대라고 뭐가 다르겠어.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난 거야."

 

종말을 두려워 했던 책이 구사일생으로 네번 째 주인을 만나게 되어 안도하게 되고, 기대치를 낮추고 기다리면서 이야기는 그친다. 자기가 바라 보는 가운데 세상은 빠르게 변화했고, 책의 시선으로 인간은 책에서 점점 멀여져 가더라는 안타까움을 깜직하고 예리하게 말해 준다.

 

인류에게 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더란 말인가! 허공으로 흝어져 사라져 버릴 말들, 우리에게까지 와 닿지 않았을 말들이 문자로, 책의 형태로 남아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말을 해 준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권의 책을 소장하고도, 자기에게 팔려 온 책을 애잔하게 바라 보는 작가에게 존경을 보내다 보니, 일년이고 십년이고 주인의 무관심으로 깊은 잠에 들어 있는 우리 집 책장 속 내 책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훗날 나이가 들어 시간이 많아지면 그 때 찬찬히 보리라던 야심찬 계획을 잊고 저버린지 오래여서, 유행만 쫒아 밖으로만 나돈다고 책들이 나를 타박할 것만 같다.

 

더구나 가뜩이나 눈도 좋지 않은데, 눈만 뜨면 좋은 글, 좋은 말, 갖은 속보나 광고 메일까지 나를 불러 세우는 스마트폰이 내 시선을 독점하려드니 폰을 아주 들고 살아야할 지경이 된다. 차분히 책 읽을 시간 내는 것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침묵의 얼굴로 펼치기만 하면 가진 걸 아낌 없이 쏟아 내 주겠다는 책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일이 아닌가! 나를 거쳐 간 책들, 불쏘시개로 생을 마감했을지, 군고구마 봉지로 다음 생을 살았을지, 아직도 누군가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을지......아쉬움으로 보낸 그때 그 마음이, 철 지난 그리움으로 되살아 난다.

 

한 때 어느 정치인이 작가가 친필 싸인까지 해서 보내준 책을 고물로 버려 아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작가에 대한 예의는 분명 아닌 것이나, 이사가 잦은 우리에게 처분 대상 1호는 무게 나가는 책이니 어쩔 수 없어 이해가 가긴 했었다.

'정리 컨설턴트'라는 것이 좀 낯설기는 하지만 엄연한 직업으로 정립이 되고, 버리는 것이 정리의 출발이라 힘 주어 말하고, 있다. 정리의 달인들이 맹렬히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 심플 라이프의 실현도 역시 버려야 하는 것이니 책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 들고 있다.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집계로 보아 독서 풍향에 어떤 변화가 오고 있다고 한다. 세상을 쥐고 흔들던 자기 계발서는 지고, 역사 서적이나 시집 등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거나 아픈 마음에 위로를 주는 책들이 뜬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부분 노력하는 사람에게 노력을 더욱 강조하는 자기 계발서는 알맹이가 없고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느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오늘의 베스트 셀러가 내일 또 쓸쓸히 퇴장하는 '책의 자서전'은 면면이 이어지는 그들의 운명인가 한다.

멀어져 가나, 아주 멀리 보내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 힘들여 태어난 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이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