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7년

먼 그대 - 높이 걸어 둔 등불

수행화 2017. 3. 5. 00:31

 

 

서 영은 씨의 단편 소설 '먼 그대'를 들어 알던 시절이 참 아득하다. 1983년에 '한국 문학'지에 발표되었고, 그 해에 '이상 문학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니 내가 마흔 살이 채 되지 않던 먼 그때의 일이고, 당연히 나는 책 읽을 한 뼘의 여유도 없던 시절이었다. 

 

서 영은 씨는 미혼의 촉망 받는 작가이면서, 30년 나이 차의 김 동리 선생님과 결혼을 하여 화제를 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 동리 선생님이 투병 생활에 드셨을 때 병상을 지켰다는 소식, 그리고 선생님 사후에 선생님의 자녀들과 긴 송사에 휘말렸다는 소식들이 신문지상에 따문따문 실리곤 했었다.

 

작가는 글로서 말을 한다고 했던가?

엄혹한 현실을 막무가내로 인내하고, 아니 인내를 사랑의 에너지로 승화하고, 철저히 자신을 버림으로서 그대를 향한 사랑의 가치를 드높이고 싶어하는....주인공의 비현실적이고 비장한 사랑의 방식은 혹시 작가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담대함으로 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슬픔을 바라 본다.  

 

출판사에 다니는 노처녀 문자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유부남 한수를 사랑하면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 간다. 주변 사람들이 냉대하고 멸시해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남루한 현실을 묵묵히 인내한다. 그녀는 저 높은 곳에 걸어 둔 등불과도 같은 그대만 생각하면 마음이 환해지고 따뜻해지면서 절대 긍정의 에너지가 더해진다.

 

"빨 때마다 오그라들고 털이 뭉쳐 작아질대로 작아졌기 때문에 그녀는 장갑 낀 손가락 새새를 꼭꼭 눌러 주어야 했다.......장갑만 구식인 것이 아니었다. 소매 끝이 날깃날깃 닳아빠진 외투며, 여름도 겨울도 없이 신어 온 쫄쫄이식 단화, 통은 넓고 기장은 짦아 발목이 껑뚱해 보이는 쥐똥색 바지, 보푸라기가 한켜나 앉은 투박한 양말, 서랍에서 꺼내어 얼찐거릴 때마다 반내를 물씬 충기는 가방등, 몸에 걸치고 지닌 것마다 구멍만 뚫리지 않았다 뿐이었다"

 

바지통이 넓어지든 좁아지든, 치마 길이가 길어지든 짧아지든, 초라한 행색에 직장 동료들이 수근대며 측은한 시선을 보낸다 한들 아무래도 좋았다. 더 가혹한 짐이 주어져도 얼마든지 짊어질 수 있다는 턱 없는 용기로 가득한 것이 평온해 보이기까지 한다. 처절한 고독을 견디는 문자에게서 설핏 성자같은 모습도 본다.

 

한수가 국회의원 비서로 있을 때도, 그 국회의원이 장관이 되면서 덩달아 한 자리를 차지해 풍족한 생활을 누릴 때도 한수는 문자를 돌보지 않는다. 문자가 낳은 아들을 한수 처가 와서 빼앗아 가도 문자는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으며. 한수 곁을 떠나지도 않는다. 무엇이 문자로 하여금 인간적인 모멸감도 경제적인 궁핍도 견디게 하는지, 그 사랑의 지향점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정권이 바뀌어 한수는 실직하게 되었고 급기야 뻔뻔하게도 문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끝 모르게 추락한다. 

문자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한수의 보답은 사랑을 약점으로 이용하는 비겁이요 잔인함이다.

 

자기 사랑이 저항을 만나도 절망하거나 부서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굳건해져 보이는 것은 문자 마음 속에 낙타를 키우기 때문이다. 먹지 않고도 마시지 않고도 죽음같은 사막을 묵묵히 걸어 가는 낙타를 마음 속에 키우면서 정신의 승리를 꿈꾸기 때문이다.  

 

리비아를 여행하고 온 사람이 쓴 그 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리비아는 국민 소득이 일인당 만 달러였고, 인구는 삼백만밖에 되지 않았다. 그 나라 정부의 절대 과제 중 하나는 인구를 늘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다산을 권장하는 한편, 사막의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도시에 끌어내기 위해 돈다발로 유혹한다.  ....... 그러나 사막에서 살아 온 유목민의 상당수가 그 유혹을 뿌리치고 더 깊이 사막 속으로 들어간다. 대부분의 인간은 시달리는 것, 즉 갈증을 몹시 두려워 한다. 그런데 그들만은 갈증뿐인 사막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그들은 무엇 때문에 이 갈증의 길을 스스로 택해서 가는가.....

리비아에는 조상 적부터 전해져 내려 오는 전설같은 지도가 있다. 그 지도에는 사막의 땅 속 깊은 곳으로 흐르는 푸른 물길이 그려져 있다. 그들은 이 길을 신(神)의 길이라고 부른다. 사막의 오지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만이 이 푸른 물길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한다."

 

푸른 물길을 찾기 위해 갈증의 사막길을 깊이 파고 들어 가는 유목민의 신성한 몸짓은 고통이 가해 오면 올수록 낙타의 절대 고독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으며 사랑의 끝을 찾으려는 문자의 삶과 닮았다. 

 

한수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두둑한 돈 봉투를 볼 때, 벗어 놓은 구두의 고급 상표를 볼 때 문자의 가슴에 해일이 일고 폭풍이 몰아치면서 붉게 물들였던 안면의 홍조를 사라지게 한다. 집 값이 올라 하루 종일 방을 구하러 다녀 아픈 것은 발이 아니고 비정한 한수에게서 상처 받은 가슴이다.

 

"고통이여 어서 나를 찔러라. 너의 무자비한 칼날이 나를 갈가리 찢어도 나는 산다. 다리로 살 수 없으면 몸통으로라도, 몸통이 없으면 모가지만으로라도, 지금보다 더한 고통 속에 나를 세워 놓더라도 나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거야, 그가 나에게 준 고통을 나는 철저히 그를 사랑함으로써 복수할 테다. 나는 어디도 가지 않고 이 한자리에서 주어진 그대로를 가지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테야. 그래, 그에게뿐만 아니라, 내게 이런 운명을 마련해 놓고 내가 못 견디어 신음하면 자비를 베풀려고 기다리고 있는 신(神)에게도 나는 멋지게 복수할거야!"

 

외줄기 사랑에 홀로 충실하면서 사랑은 불구의 몸이 되었고, 그 온전치 못한 사랑의 길을 비명을 삼키며 힘들여 걷는 여인이 참 애닯다. 불편부당한 대접에 반응하지 않는, 사랑에 병들어 자학하는 여인을 거꾸러뜨려 밟고 또 짓밟으며 사랑의 불구를 습관으로 정당화해 버린 먼 그대에 나는 분노한다.

 

실직하고 추악하게 무너진 한수는 문자가 이모에게서 빌려 온 돈을 잡아채듯이 받아 쥐고 뚜걱 뚜걱 골목길을 따라 사라지니, 그 잔인하고 파렴치한 모습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또한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숭고한 신념으로 나부끼던 사랑이 남루할대로 남루해져 널부러진 것을 수습하면서 마음 한켠에 새로이 먼 그대를 연민한다.

"그는 이미 한 남자라기보다, 그녀에게 더 한층 큰 시련을 주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멀어지는 신의 등불처럼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것에 도달하고픈 열열한 갈망으로 온몸이 또다시 갈기갈기 펄럭였다" 

 

현실에 시린 발을 하고 서서 멀어져 가는 그대를 바라 보며 사랑의 의지를 더욱 다진다는 일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언제나 등을 보이는 행운이 반짝 돌아 서 앞 모습을 보여 준다는 기약이 없다면 말이다. 우리 모두는 관세음 보살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련한 문자는 관세음처럼 사랑을 품으려 한다. 

작가가 그린 사랑의 방식이 그렇듯이 사랑은 이성의 지대가 아니라 절대 감성의 지대이다. 타인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상황을 바보처럼 견디는 두려움 없는 감정이다.

 

운명처럼 다가 온 사랑도 뿌리를 내려 생명을 얻으려면 가지를 치고 다듬고 북을 돋우고 물 주어 가며 부단히 돌보아야 한다. 저절로 만들어진 시원한 그늘은 없다. 물길을 더듬으며 깊이 깊이 낮은 곳을 향하는 뿌리의 숨은 공력 없이 나붓거리는 이파리는 없는 법이거늘,

홀로 뿌리이고 그늘이고 싶어하는 여인을 생각하니 가슴이 따끔거린다.

 

사실적이고 섬세한 표현들이 한 자락 영상을 펼쳐 본 것같다. 서 영은 작가는 그림 그리듯 꼼꼼하고 매우 아름답게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