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7년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 익살에서 비극으로.

수행화 2017. 3. 30. 01:26

지난 달에 읽은 파블로 네루다' 의「질문의 책을 읽은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채로워 마법에 걸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라는 작가가 쓴 소설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를 읽었다.
작가가 한 때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이슬라 네그라에 정착한 네루다 시인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파블로를 만나게 되어 글을 썼으며 1985년에 출간한 것이라 소개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는  '일 포스티노' 이탈리아 영화로 소개 되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파블로 (1904~1973) 는 197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시인으로서 사회주의 정치가였으며,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는 칠레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다 1973년 쿠테타가 일어나면서 독일로 망명하여 1989년까지 베를린에 머물렀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 이슬라 네그라는  산티아고에서 120Km 떨어진 곳으로서 '검은 섬이'라는 지명이 말하듯 그곳 바다의 섬들이 검은 바위들로 덮였다고 한다. 1943년부터 파블로 네루다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명소가 되었으며, 현재는 네루다의 박물관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마리오는 어부의 아들이지만 고기잡이에 정을 못 붙이다가 우체부가 된다. 직장은 마리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적극적이고 근면하게 변신 시킨다. 우편물이 많은 파블로의 집에 배달하는 일이 잦고 파블로를 만나면서 마리오 인생은 반전을 거듭하는 극적인 인생을 살게된다.

마리오는 첫 월급으로 아버지에게 드릴 포도주와 극장표, 독일제 무쇠빗, 그리고 이웃에 사는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일상송가」를 산다. 시인의 사인을 받기 위하여 시집을 바지에 넣고 다녔으나 시인 만나기가 어려웠다. 시인은 언제나 자기 세계에 깊이 빠져 있는 것같아 방해될까봐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는 사이 아뿔사!" 그만 시집을 몽땅 읽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몹시 풀이 죽어 있는 마리오에게 시인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인생의 진로가 바뀌는 순간을 맞은 것이다.

 

"무슨 일 있나?"
"네?"
"전봇대처럼 서 있잖아"
"창처럼 꽂혀 있다고요?"
"아니 체스의 탑처럼 고요해"
"도자기 고양이보다 더 고요해요?".........
"마리오. 내게는 「일상송가」보다 훨씬 더 괜찮은 책들이 있네. 그리고 온갖 메타포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건 부당한 일이야"
"뭐라고요?
"메타포라고!"
"그게 뭐죠?"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예를 하나만 들어 주세요."
"좋아, 하늘이 울고 있다고 말하면 무슨 뜻일까?"
"참 쉽군요, 비가 온다는 거잖아요"
:옳거니, 그게 메타포야."
"그렇게 쉬운 건데 왜 그렇게 복잡하게 불러요?"

마리오는 시인의 말에 집중하게 되고, 말이란 길고 짧음에 상관 없이 저마다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터득하게 된다. 시인이 낭송하는 시를 들으면 단어들이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걸 느꼈고, 단어들이 너무 움직여 멀미가 난다고 했다. 시인은 그게 운율이라고 했고, '선생님의 시어는 말들 사이로 넘실대는 배'같다고 느낌을 말하니 시인이  "네가 만든 것이 바로, "메타포" 라고 응답해 준다.. 
그렇게 선생님과 대화하고 우편배달을 하면서 우편 배달부는 마침내 네루다의 시를 꽤 외웠고 시인이 되어갔다. 감미롭게 함축된 싯귀를 완벽하게 소화한 마리오는 복화술사라도 된듯이 네루다의 시를 자기 언어처럼 일상으로 쓰게 되었고, 마을의 어여쁜 아가씨, 베아트리스에게 아름다운 언어를 쏟아내면서 열렬히 구애한다. 

"웃음이 한 떨기 장미고 영글어 터진 창이고 부서지는 물, 돌연 일어나는 은빛 파도........"

네루다의 싯귀를 읊어대는 마리오에게 현혹된 딸을 일깨우기 위해 칠레에서 가장 두려운 기관(?)인 딸 가진 엄마의 만만찮은 반격도 재치가 넘친다. '말이란 뒤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아 다만 허공으로 사라지는 불꽃놀이일 뿐'이라며 딸을 격하게 나무라지만 시로 무장한 청년에게 넋을 내준 딸을 말리는데 실패하고 마침내 둘은 결혼에 골인한다. 주고 받는 일상 언어가 현란하며 유머러스하여, 바로 영화 장면 같아 웃게된다. 
네루다는 곧 파리 대사로 지명되어 마을을 떠났고, 이후 칠레는 격동기를 맞게된다. 낙천적이던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가난하고 글자 하나 몰라도 나날이 평온하던 시절은 가고 마을은 어두워져 갔다. 물자 품귀현상에다 정치적으로 살벌한 세월이 도래했고 사라진 미소들는 다시 돌아 오지 않았다.

이 시기 파리에서 지내는 네루다는 건강이 아주 나빠졌고 이슬라 네그라를 몹시 그리워 하며 우체부에게 편지를 쓴다. 녹음기를 동봉하면서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들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마리오는 선생님을 위해 소리 채집에 온 열의를 다한다. 이 장면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로 남는 부분이라 하겠다.

"바다가 아쉬워,  새들도 아쉽고. 우리집 소리를 실어 보내 주게. 정원에 들어가서 종을 울리게. 먼저 바람에 울리는 작은 종들의 가냘픈 소리를 녹음하게. 그리고 다음에는 종 줄을 대여섯 번 잡아 당기라고. 종. 나의 종! 바닷가 종루에 걸려 있는 종만큼 낭랑하게 들리는 말은 없지. 그 다음에는 바윗가로 가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담아줘. 갈매기 소리가 들리면 녹음해 주고. 밤하늘의 침묵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까지도. 파리는 아름답지. 하지만 내겐 너무 큰 옷이라네."


"게다가 여기는 겨울이라 밀가루를 흩날리는 풍차퍼럼 바람이 눈을 휘날리고 있어. 눈은 쌓이고 쌓여 내 몸을 기어 오르지. 나를 하얀 도포를 입은 서글픈 왕으로 만들어버려. 벌써 입까지 차올라 입술을 덮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마리오는 수집광처럼 바다의 움직임을 살피며 집요하게 소리를 채집한다. 밀물과 썰물을, 바람과 상큼하게 부서지는 파도를, 3 미터짜리 파도가 투우사의 단창퍼럼 해변에 내리 꽂히기 직전의 스테레오 음향을 잡는 등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불평이나 일삼는 무정부주의적인 펠리컨 몇 마리가 해변을 따라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소리도 녹음 할 수 있었다.......해변의 야생 들국화 꽃받침에 앉은 날렵한 벌떼 소리, 쏟아져 내리는 별똥별을 보고 하릴없이 짖어대는 개들의 소리, 바닷바람이 자아내는 변덕스러운 오케스트라 종소리도 녹음,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등대의 싸이렌의 신음 소리, 아내 베아트리스 배 속에서 나는 가녀린 심장 박동 소리, ......"

건강이 더 나빠진 네루다는 다시 이슬라 네그라에 돌아와 투병 생활을 했고, 칠레는 쿠데타가 일어 났다. 쿠데타가 일어 난 날 새벽 우체국으로 간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온 전보와 편지를 모두 챙겨 위험을 무릅쓰고 시인의 집으로 간다. 네루다의 집 근처는 바리케이트를 쳐 졌고 경비가 삼엄하여 우체부는 해변의 선착장을 통하여 네루다의 집에 당도한다. 물론 전보는 가져 갈 수 없어 모래 무지에 숨기고 내용을 모두 외워 시인에게 구두로 전한다.

"아옌데 대통령 죽음에 공분과 애도, 정부와 국민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 씨에게 망명지 제공, 스웨덴"
"멕시코 정부, 시인 네루다 씨와 가족에게 비행기 제공, 조속한 내왕 바람,"

말의 지배자였던 시인의 입술은 굳게 닫혔고 병원으로 옮겨진 시인은 숨을 거두었다. 많은 시민의 애도 속에 장례식이 엄수되었고 우체부 마리오는 연행된 후 실종된다.
미사여구의 현란한 말 잔치로 풍자가 넘치고 익살스럽던 초반의 분위기는 살벌한 현실 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면서 침울해져버린다. 소설은 우체부 마리오의 실종과 재판 등의 사건으로 무겁게 끝을 맺는다. 사실 네루다는 반 파시스트 운동, 공산당 입당 등 정치활동과 또 정치적 탄압으로 인한 망명 등으로 점철된 투사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소설은 우체부와 시를 얘기하고 우정을 나누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투사 파블로의 인간적인 뒷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하겠다. 시대적인 배경과 시인과 우체부의 비극은 잘 알 수 없으니 다만 그들이 공유했던 감성만 전해 받아야 할 것같다.  

자연과 인간 속에는 캐 내지 않은 얼마나 많은 시가 있으며, 한 편의 시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하는 소설이다. 작가가 위대한 시인에게 바치는 글에 그래서 십분 공감을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