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7년

'어린 관찰자', 사랑스런 나의 손녀.

수행화 2017. 9. 9. 17:37

더위에 정신이 팔려 바싹 다가 오고 있던 가을을 알아채지 못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할머니 집에 온 우리 외손주들에게 무더위 구경만 시키려 들던 여름이 비 한번 뿌리더니 훗딱 사라져 버렸다. 8월 12일 아이들이 떠나니 거짓말처럼 더위가 풀이 꺾여 어떻게 조금 야속한 마음마저 들었지만 저만치 서늘하게 높아진 하늘이 아주 반갑다.

우리 모두 가을같은 인생, 가을같은 인격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이 참 아름답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누구에게나 늘 만나고 싶고 기다려지는, 또 멀어져 감을 아쉬워 하는 그런 존재일 수 있다면......

 

이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같이 고요가 내린 밤이 다시 내게 주어졌다. 나에게 지혜와 영감을 주지 않아도, 다만 그 고요와 마주하여 이러 저러하게 뒤척이는 이 시간이 나에게 주는 위안은 실로 크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이런!

그 익숙하고 아끼던 내 시간이 반가워 소중하게 받아 안아야 하건만 어찌하여 어깨에는 힘 빠지고 다리는 부리고 싶어지고, 누울 자리만 찾아 까부러지고, 이러다 눈이 작아지는 게 아닌가 싶게 눈까지 뜨기 싫어지는, 나에게 드물게 나타나는 무력증에 빠져 있다. 내 에너지 저장고가 바닥을 드러 낸 것인지, 에너지 충전 기능이 노후해진 탓인지, 바람 빠진 풍선마냥 긴장이 사라진 내 마음이 언제쯤이나 챙겨질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챙겨지기나 할 것인지.......

 

아이들이 동동거리며 일으키던 해맑은 바람에 내가 졌던 슬픈 모래 주머니는 쓸려 쓸려 휘뿜하게 시간 속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온전히 슬픔에 갇혀 찌질한 나날을 보내지 않게 아이들이 울력을 보태 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내가 외손자, 외손녀를 생각함은 늘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한다. 그 아이들에 대한 내 애잔한 마음의 뿌리는 멀고도 깊다. 눈 그친 겨울 하늘이 명경알보다 더 맑고 고운 겨울날에 아이들은 우리에게로 왔고, 나는 사막 한 가운데 대책 없이 서 있는 막막함으로 외롭고 불안하게 기다리던, 그 시간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갖은 예쁜 짓에다 착하게 자라 종달거리며 유치원도 다녔고 의젓하고 반듯한 학생이 되었으니 장하고 기특하기 이를 데 없다. 이제 우리말도 썩 잘 하고, 한글도 제법 익혔으며, 저의 엄마, 외삼촌 그리고 언니, 누나들이 자라던 과정을 재연하듯 빼 닮으며 자라고 있어 기적을 체험하는듯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유독 손 쓰는 일을 좋아하는 데, 위로 손녀 둘이 손끝이 야물어 놀랄 일이 많기도 하더니, 막내 외손녀, 영지까지 손 놀림이 범상치가 않아 심심할 줄을 모른다. 2년 전에 왔을 때는 유튜브를 보면서 익힌 고무줄 공작에 몰입하여 마침내 스스로 머릿 속에 그린 창작품을 손수 구현해 내어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이번에는 색종이 접기에 열중하며 이 여름을 보냈다.

혼자 책을 펼쳐 놓고 독학으로 온갖 기기묘묘한 완성품을 만들어 가며 일취월장 실력을 키우더니, 드디어 자기의 매스터피스라며 멋진 시계와 반지 셋트를 만들어 나에게도, 저의 엄마에게도 선물을 해 줬다. 칭찬이 정말 아깝지 않게 신통하게도 참하게 접어 냈다. 하지만 쉴새 없이 만들어 작품이 금방 지북히 쌓이니 사이 사이 저 모르게 슬쩍 슬쩍 버려야만 했었다. 그런데 뜨게질까지 도전하겠다고 의욕을 불 태워 아직은 손이 작다는 핑게로 내가 가르쳐 주지를 않았으니 저에게는 마음의 숙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쬐그맣고 말간 얼굴에 꼭 다문 입술이 이지적인 우리 영지는 사고가 유연하고 섬세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이 잦다. 사소한 일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빠릿빠릿하게 굴어  '작은 관찰자' '상황 분석가' '총명한 요정'이라는 튀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은 아이이다. 귀여운 매무새에 자기 생각을 정확하고 당당하게 나타 내고 특별히 사랑이 담긴 표현을 잘하여 우리를 놀라게 해 준다.

아침에 집을 나가서 저녁에 만나게 되는 날이면 그 조그만 입에서 예쁜 말이 준비되어 톡톡 튄다.

"우리 오래 못 봤잖아. 아침부터." 라거나, 나름의 판단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되면 또 "우리 그 때 참 좋았지!" 하며 감정을 담뿍 담은 말을 던진다.

 

두리번거리다 갑자기 조용히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아 뭔가 열중하다가는 그림 하나를 그려 흔들고 나오면서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나 이거 할머니 줄려고 그린 거야, 고양이가 이렇게 말하고 있어"

예쁜 눈을 가진 고양이에 수염까지 쭈빗쭈빗 오려 붙이고, 고양이 언어까지 만들어 써 넣은 다음, 이건 고양이 말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라나.........

 

어쨌거나 무심히 오가면서도 어른들 대화를 다 듣고 홀로 판단하고 상황을 분석한 다음 자기 마음가는 조치를 한다. 가기 전 어느 날 애들은 엄마랑 다 함께 치과 진료를 갔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치아가 건강하고 충치가 없다고 하여 마음을 놓았는데, 저의 엄마 치아 중에 예전에 금으로 씌웠던 부분이 조금 떨어져 나간지라, 의사 말씀이 아무래도 다시 씌워야 하겠다고 하여 치료에 들어 가게 되었다. 돌아와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 지출이 있게 됐다며 무심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물론 딸과 둘이서 나눈 대화이다.

그런데 방에서 뭔가 그려가며 놀고 있는 줄 알았던 영지가 지폐를 나풀 나풀 흔들며 나온다.

"이거 엄마 치과에 갈 때 써"

만원권 지폐 다섯장을 흔들며 이것 가지고 엄마 치과 치료에 쓰라는 것이다.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은 지경이 된, 웃지 못할 장면이었다. 

돈을 잘 써 보지도 않았고, 물론 한국 지폐의 가치도 잘 모르지만, 그저 엄마에게 뭔가 도음을 주고 싶어, 가끔 어른들 만나면서 받은 용돈을 선뜻 들고 나온 것이다.

 

"돈 아깝게" 라는 말을 워낙 진지하게 자주 써서 우리를 웃게하고, 심심찮게 즐거운 대화 제목을 제공하는 영지의 '현금 사랑'을 익히 아는 우리가 아연실색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정황을 알든 모르든 "돈 아깝게" 라는 말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친구 엄마가 고맙다는 뜻으로 예쁜 과일 바구니를 보내도 "돈 아깝게",

엄마가 학교 도네이션에 돈을 생각보다 더 내 놓아도 "돈 아깝게".........

 

그런 영지가 "돈 아깝게'라는 말이 무색하게 망설임 없이 지폐를 흔들며 내밀었으니 그게 여덟살 아이 판단이라니......그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며칠 후 또 책상에 앉아 그리고 만들고 붙이고 하면서 한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더니, 쪼르르 달려 와 나더러 "할머니 방문 앞에 뭐 붙였어. 할머니가 와서 봐"

하여 가 보았더니 무슨 공들인 편지같은 것이 방문에 붙어 있어 떼어 읽어 보려 펼치니, 아니 이게 웬..........

종이로 접어 만든 봉투에 만원권 네 장, 4만원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는 나에게 

"할머니가 우리한테 맛있는 것도 많이 해 주고 해서 이렇게 주고 싶었어"

금세 눈물 쏟지 않은 게 이상할 노릇으로 숨이 턱하니 막히는 감격에 휩싸였었다. 이 작은 머릿 속에서 어른보다 더 가상한 생각이 나오다니, 

"그런데 할어버지한테도 자는데 옆이 이렇게 갖다 두면 좋을 것같은데.....이제 돈이 없어"

나는 이거 나눠서 할아버지께 드리자고 했더니 아니 된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이거 할아버지랑 나눠 쓰겠으니 마음 쓰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면서 꼭 안아 주었다.

어른이라는 우린들 가진 것 다 내어 놓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토대가 되어 있나 곰곰히 생각해 보게 하여,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던 특별한 날도 있었다.

 

어쨌거나 매일은 기대와 흥분으로 넘쳐 났고, 어른들은 어른들 나름으로 아이들 즐거움을 좀 더 얹어 주려 노력하던 나날이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엄마랑 나갔다가 무슨 캐릭터 상품이니 문구니 자잘부레한 것들을 사 오는 날이면 나는 뭐 쓸 데 없는 것들을 사다 들이냐고 하곤 했더니, 어느 날 내 말을 반사하듯,

"할머니 우리 이제 차 탔어, 그런데 쓸 데 없는 것 많이 샀어" 또박또박 이르며 즐거워 한다.

영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 지어가며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말에 깔려 있는 진정한 의미를 미리 알아채는 지력이 있어 내가 예리한 관찰자라 이르는 것이다.

 

아이들이 떠나기 사흘 전 제사가 있었고, 언니들과 함께 제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진지하고 정성이 가득한 표정으로 서서 차분히 순서를 지켜 보았고, 잔도 올리고 절도 하며 제사를 잘 마쳐 대견하다고 말해 주었는데, 그날 밤에 나와의 대화 중에,

"할아버지가 오늘은 노래 하면서 안 울었지! 지난 번 우리가 왔을 때 제사에는 할아버지가 울었는데...."

"그래도 할아버지는 오늘 마음으로 울었잖아"

 

제사 도중에 축문 읽는 것이 영지에게는 노래로 들린 거였고, 2년 전에 왔을 때 바로 이 제삿날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에 일단 놀랐고, 그 날 제사에 축문을 읽던 할아버지가 목이 메어 울먹이던 기억을 다 하고 있었고, 게다가 오늘은 할아버지가 마음으로 우는 것으로 보였다니......"

어른의 숨은 감정까지 읽어 내며 예쁘게 커 가는 이 아이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의 집도, 아빠도, 강아지도 그립고 보고 싶고, 이곳의 왕성한 즐거움도 놓기는 싫은, 작은 갈등을 느끼며 아이들은 떠났다. 74일 간 한국 체류는 당분간 깨지 못할 기록이 될지도 모른다. 무더위를 관통하며 지냈던 다채로운 날들의 기억이 아이들 인생에 행복한 추억으로 새겨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출국장 앞에서 시야에 사라지는 아이들을 바라 보았다. 그래야 긴 비행 시간을 감내하는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이 계속되어 하던 빨래도 멈추고, 습하다는 생각만 하던 중에 무심코 베란다를 바라 보니 장마에 가뭄 든다고, 화분에 물이 말라 나뭇잎들이 있는대로 축축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너무 놀라고 미안한 마음에 물을 주고 또 주고 하염없이 물을 주며 가만히 보니 끝부분의 엷은 이파리는 곧 생기를 되찾는데 튼실하고 굵은 줄기 쪽 억센 잎은 계속 정신을 못 차린다. 상식적으로 뿌리와 가까운 억센 줄기 쪽 잎이 흡습 능력이 나을 것 같은데 거꾸로 나간다.

 

따지고 보면 이런 작용이 인간에게도 적용이 되지 않을까 하며 생각이 비약하는 바람에 더 오래 바라 보았다. 어린 아이들은 뭐든 재빨리 받아 들여 제 것을 만들고, 나이가 들수록 둔감하고 미련해져 자기 처지를 모르고 동작이 굼뜰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쾌청한 날에 밀린 빨래를 거듭해도 금방 뽀송하게 말라 주어 재미 있던 시간도 지났고, 바람 끝에 찬 기운이 매달리며 가을은 한 뼘씩 깊어 가고 있고, 달이 희고도 휘영청 높은 얼굴로 밤을 평화롭게 감싸던 시간도 지고 있으니 제멋대로 봉두난발이 된 내 일상을 가다듬어 빗질 해 봐야 하리라는 한 가닥 각오는 있어야겠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에는 어떤 이론적 뒷받침이 있다고 읽은 적이 있다. 젊어서는 정해진 시간에 많은 일을 하면서 촘촘하게 시간을 쓰니. 그 시간의 경험이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하고, 나이가 들면 어제도 오늘도 그날이 그날이며 특이사항이 없고, 뭐 가공할 기억이 없어 밋밋한 시간을 살다 문득 바라 보면 하루가 일주일이 훅하고 지나갔으니 시간이 빨리 흘렀다고 느끼게 되는 거라니..... 

서글픈 상대성 이론이다. 

 

뭐 특별하게 매겨지는 기억도 없고, 뽀족하게 마련한 것도 없는 내 일상을 리셋해 본다고 한들 대수는 없다. 하지만 맥 놓고 있기는 이 가을에 미안할 일이라 도서관에서 책 여섯권을 대출 받아 들었는데 뭐 천근이나 되듯 마음도 어깨도 무거웠다. 머리에 들어 오지 않을 것같지만 나를 추스리자는 과제의 상징인 것으로서........

 

 

 

 

 

 

                   <2017년 7월 7일>                                        <2017년 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