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7년

'영혼의 미술관' - 알랭 드 보통...

수행화 2017. 9. 19. 00:40

 

 

 

내가 힘든 여름을 나고 있을 때, 동생이라도 삼고 싶게 다정한 젊은 친구가 내게 책 한 권을 내민다. "책 읽고 힐링하시고 힘 내시라" 며 '알랭 드 보통'이 존 암스트롱과 공저로 쓴 하드 카버의 멋진 책, '영혼의 미술관'을 권해 주었다. 책에 담긴 고매한 사상을 캐 내기 전에 그녀의 마음은 예술처럼 높은 의미로 나에게로 왔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일의 기쁨과 슬픔" 등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감각적인 문장들에 상당히 매료되어 꼼짝 없이 앉은 자세로 내리읽었던 기억이 있다. 예사롭지 않은 통찰력을 지닌, 이 시대 거의 최고의 지성이지 않나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런 그가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로 이런 책을 펴 냈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터였다.  

책 '영혼의 미술관'은 전 시대에 걸친 빼어난 미술 작품, 건축, 디자인 등을 아우르는 140여점의 작품을 싣고 있어 앉아서 미술관 관람하기 맞춤해 보인다. 하지만 사각사각 책장을 넘겨 가며 미술관 거닐듯 우아하게 감상하리라는 마음은 곧 접어야만 했다. 예술 작품 감상이라며 눈으로 대충 일별하고 넘길 일이 아닌 것으로, 삶과 인생에 대한 깊은 사색이 배경이 되어줘야할 듯하여 마치 작은 과제를 받은 것만 같았다.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예술이 예술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영혼을 흔들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예술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는가 등 등의 광범위한 주제가 담겨 있어 생각 주머니를 키워가며 읽어야만 했다는 말이다. 미술관 옆 강의실에서 사유 깊은 작가의 산문집을 펼쳐 보는 것과도 같은.......'인생을 성찰하는 미술관'이라고 해도 될듯 싶었다.

"예술은 우리의 심리적 약점을 보완해 주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예술의 역할을 제안한다. 우리의 신체 구조상의 약점을 도구가 도와주듯이 예술은 우리의 심리적 취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에 공감을 보낸다. 그리고 예술 작품이 감동으로 와 닿지 않아 난감하고 은근히 자신의 소양 부족을 탓하게 되는 씁쓸한 경험을 작가와 공유하기도 하니 친근한 부분도 보게된다.
"예술은 우리의 타고난 약점들, 이 경우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심리적 결함이라 칭할 수 있는 약점들을 보완해 준다."
"예술이 관람자를 인도하고, 독려하고, 위로하여 보다 나은 존재 형태가 되도록 이끌 수 있는 치유 매개라 제안한다."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엔 안개가 없었다." 화가가 풍부한 재능을 통해 안개의 지위를 끌어올리기 전까지 사람들은 안개를 봐도 짜릿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말이다.'


# 예술의 기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예술의 기능을 7가지 (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감상)로 분류해 설명한다.
1, 기억,
구름을 올려다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동한다. 그리고 잊는다. 시간이 지나면 타지마할을 잊고, 시골길의 정취를 잃게 된다. 미술은 경험을 보존하는 방식이며 화가들은 무엇을 기념하고, 무엇을 선택하고 생략 할지 아는 사람들인가 한다.
2, 희망
우리의 운명은 재능의 부족이 아니라 희망의 부재에서 결정된다. 지속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미술의 범주는 쾌활하고 즐겁고 예쁜 것이다. 우리는 늘 과도한 우울로 고생한다. 삶이 고단할수록 우아한 꽃그림은 우리를 더 깊이 감동시킨다.
3 슬픔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외로 중요한 기능들 중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데 있다. 슬픔에 깊이 침잠하라고 권유하는 그림이 있고, 예술가의 승화된 슬픔이 예술적인 성취를 이루고,  관객들은 작품을 접하며 슬픔을 승화시킨다.
4. 균형
어떤 작품이 우리의 잃어버린 가치를 채워줄 때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하고, 우리를 위협하거나 압도해 버리는 느낌의 작품은 추하다고 일축해 버린다. 예술은 인성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우리를 보다 도덕적으로 만들어준다. 5. 자기 이해
나 자신의 생각, 나 자신의 경험이지만 쉽게 사라져 버려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예술이 일깨워 줄 때 우리 스스로를 잘 알 수 있고, 타인에게 자신을 잘 알리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6. 성장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우리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일깨우지 않으며, 예술계가 자극하고 좋은 의미로 도발할 때까지 겨울잠 자듯 깨어나질 못한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우리의 필요가 이질적인 것과의 연결점을 만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7, 감상
"예술은 습관을 반대하고 우리가 경탄하거나 사랑하는 것에 갖다 대는 눈금을 재조정하도록 유도해 그 소중한 것을 더 정확히 평가할 수 있게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예술은 우리가 놓치기 쉬운 모든 것을 두드러지게 하여 그 선입견을 버리게 한다..


#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우리는 심리적 안정을 꾀할 수가 있고, 그렇게 예술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우리 나름의 덕목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예술은 예술가의 정신적 여유와 집중이 긴 시간 땀의 숙성을 거쳐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거늘, 예술품 감상하고,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닌 것으로 우리가 아이스크림이나 라면 먹어 치우듯 바삐 임하는 자세는 염치를 모르는 일이라는 반성에 들어간다. 

화가나 예술가의 시대적 업적은 대단하다. 그들이 과거의 한 시대를 시각적으로 풍부하게 보여준 덕분에 우리가 당시의 시대상을 상상하고 이해하게 되는 놀라운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우리는 습관과 타성에 겹겹이 싸여 일상의 평범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늘 어딘가 먼 곳에 있을 것 같은 아름다움에 목말라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익숙한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아름다움으로 담아내 우리에게 전달하여 후세의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예술가들의 능력이고, 우리가 배워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그래서 우리는 명작이라고 하는 예술작품을 알아보고 특정한 예술가들을 중요하게 여겨야 교양인의 반열에 든다는 관념을 가지게 됐고, 그런 명작의 목록과 함께 그 예술가들을 숭배하게 하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 왔다. 그렇지만 가끔 작품의 명성과 내 영혼이 흔들릴 정도의 감명을 받는 것과의 사이에 얼마 간의 간극이 있다는 것을 경험할 때도 있긴 하다, 난해한 시가 어렵듯 난해한 그림도 감동이 쉽지 않을 때가 있는 이유이다. 

예술품의 이해를 도우는 독특한 해설법, 자연, 돈, 정치, 나아가 예술 작품의 전시에 이르기까지 볼거리 읽을거리, 생각거리가 잘 조합되어 써진 이 책으로 하여 머리가 일을 좀 하게 된다. 우리가 온전히 예술을 받아들여 우리의 정신적 위안을 받으려면 일단 가닥 모를 혼돈으로 헝클어진 우리 정서의 배경을 정비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첫째 우리는 중요한 무엇인가를 잊어버리고, 둘째 우리 삶의 나쁜 점에 과민하게 반응하여 희망을 쉽게 잃어버리고,
셋째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평범한 일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 없기 때문에 피해의식에 쉽사리 이끌려 외로워하고,넷째 균형감이 없어 자신의 가장 좋은 면을 보지 못하며, 다섯째 어렵게 깨닫고, 여섯째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줄 수 있는 많은 경험이나 사람을 거부하고, 일곱째 우리는 친숙함 때문에 둔감해져 화려함을 부각하는 상업 지배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으며, 다른 곳에 있는 고민이 우리를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우리의 심상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과민하게 작동하고 있나 조명해 보면서 자기 성찰의 계기를 주는 분석 아닌 분석 같은 지적이다. 그래서 예술을 통하여 나쁜 기억을 교정하고, 희망을 얻으며, 곤경에 처한 인생도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며, 감각을 깨워 균형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본다. 사랑, 슬픔, 돈, 정치 등 삶에 지친 우리에게 위로를 보내는 잠언 같은 언어들에 매료되어 느리고 느린 속도로 읽어 나갔다.

"별이나 태양, 영원의 존재 양상에 비해 인간의 불행이란 게 얼마나 사소한지 느끼면서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깨닫고 모든 삶에 스며들어 있는 이해할 수 없는 비극에 더욱 기꺼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일상의 초조와 근심은 무력화된다."

"미술관은 기본적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미술관은 예술가의 작품을 통하여 ;그들이 사랑했던 것을 우리도 사랑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곳이다." 작지만 중대한 창이다.

"가을의 나무는 반성의 자료다. 나무는 우리 자신이 자연계의 리듬에 구속되어 있음을 보라고 요구한다. 죽음은 특별한 참사가 아니며 나만의 저주나 형벌이 아니다. 시간의 바다가 우리를 집어삼킬 테고 마치 우리는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가 사라져도 세계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거대한 척도에서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미소하다."

  "별 하나가 대폭발의 마지막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운명적인 죽음에 더 주의를 기울이면 다가올 일에 마음이 보다 정밀하게 조율되고 우리는 가진 것에 감사하고 그 가치를 더 깊이 느끼게 된다."

 "행복은 당신이 아주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자주 자신이 특별히 불운한 사람이고 다른 모든 사람이 누리는 듯 보이는 행복에서 부당하게 밀려났다는 은밀한 믿음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로 인해 슬픔이 끔찍이 배가된다."

 

알랭 드 보통의 풍부한 예술적 소양은 은행가이면서 예술품을 수집하는 유복한 부모로부터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 진다. 현재 그는 2008년에 런던에 '인생 학교'라는 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니 진정 이 시대의 지성을 선도하는, 사색의 끝에 실천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영혼에 울림이 있는 언어들을 무심결에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소중하게 마음에 담아 본다. 책 보는 시간은 지혜로운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열로 가쁜 호흡을 고르는 일이다. 그래서 고맙다. 두툼하니 분량 많은 책이고, 예술 방면에 지식이 취약한 나에게 아주 맞춤한 주제인 것 같아 책상에 정좌하고 읽으니,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일상의 관심사에서 벗어난 주제에 생각이 머무는 시간이 주는 위로가 크다고 느꼈다.

영감이 지배하는 예술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려면 우선 졸음에 빠진 우리의 의식을 각성시킬 일이며, 인생을 좀 더 높은 눈으로 바라보는 품격 앗는 삶의 방식을 배워 나가야 할 것 같다.

원님 덕에 나는 기꺼이 나팔을 불었다. 잔서가 거슬리지 않는 날이 계속되는 기분 좋은 계절이다. 내 원님 격이 되어준 그녀의 아다운 마음을 오래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