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7년

"오베라는 남자"

수행화 2017. 12. 12. 15:00

스웨덴 작가 '프레데릭 배크만'이 쓴 장편 소설, '오베라는 남자 (A man called Ove)' 는 여러 지면을 통하여 소개되는 바람에 내 독서 리스트에 올려 두었을 뿐으로, 아무런 기본 정보 없이 읽은 책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기대 이상의 재미와 흔하지 않은 캐릭터, 오베라는 남자가 주는 멧시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59세의 오베는 까칠하고 타협을 모르는 고집스런 남자이다. 병가라고는 한 번도 낸 적 없이 일만 하는  의무와 책임감의 화신같은 사람이다. 모기지도 다 갚았으며 자기 몫의 짐은 확실하게 지는 사람이다.  동네와 집과 자동차를 좋아하고, 세상 그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던 남자이다. 그런 그는 아내를 잃어 살아가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하여 자살을 시도한다. 오늘 실패하면 내일 또 죽음을 준비한다. 물론 자신의 성격처럼 깔끔하고 아귀가 꼭 맞게 철저히 시도한다.


그러나 자살 시도를 알리 없는 이웃은 그에게 편히 죽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가 참견하고 도와야 할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 오베는 그들을 도우느라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그래서 오늘은 실패해도 내일도 죽기에는 괜찮은 날이라 위로하며 다시 동네 시찰을 나선다.  불법주차 단속도 하고, 밤 사이 도둑 맞거나 불량배들이 기물을 파손하거나 방화는 하지 않았는지......그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하루도 시찰을 거르는 일은 없다. 불법을 봐 넘기지 않는 오베를 이웃은 꺼려한다.  


18살 때 오베는 아버지로부터 사브사에서 최초로 제조된 차, 사브 93의 보닛을 열고 부품의 이름과 기능을 배운다. 이후 변함 없이 사브차를 소유하고 아끼는 것이 신앙같다. 타이어 교체 하나 할 줄도 모르면서 BMW 며 뭐며, 비싼 외제차 타는 사람을 경멸한다. 집을 지었고 집을 짓고 유지 보수하는 모든 것에 통달하게 되면서 자신이 주택을 퍽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아마도 그것들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서 그랬으리라주택은 계산할 수 있었고 종이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방수 처리를 해 놓으면 물이 새지 않았고, 튼튼하게 지어놓으면 무너지지 않았다. 주택은 개조했다. 공을 들인 만큼 값어치를 했다. 안타깝게도 사람보다 나았다.  ( p. 129 )


오늘 날 사람들은 새로 개조한 주택 앞에 서서 마치 그 집을 자기들 손으로 집접 지은 양 떠벌렸다. 드라이버 하나 집어 올리지 않았으면서, 그들은 심지어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허풍이나 떨었다! 자기가 직접 마룻바닥을 깔거나 습기 찬 방을 개조하거나 겨울용 타이어를 갈아 끼울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미덕도 아니었다. 나가서 다 돈으로 살 수 있는데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도대체 인간의 가치란 무엇인가?.......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고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 p. 57 ) 


"오베는 구제불능이 아니었. 자기 생각엔 그저 보다 큰 견지에서 모종의 질서가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감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모든 것이 교환 가능한 것인 양, 마치 헌신이 아무 가치가 없는 양 인생을 살아가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오늘 날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너무 자주 바꾸는 나머지 물건이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하는 전문 기술이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했다. 누구도 품질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이제는 모든 일이 전산화 되어야 했다. ….사람들은 1889년에 에펠탑을 세웠는데 이제는 휴대전화를 재충전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1층짜리 집의 빌어먹을 도면 하나 못 그려냈다."  ( p. 118 )


이 세상의 한 사람이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아무도 타이어를 갈아 끼우지 못했다. 전등 스위치 하나 설치 못했다. 바닥에 타일도 못 깔았다. 벽에 회반죽도 못 발랐다. 자기 세금 장부 하나 못 챙겼다.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성을 잃어버린 형탱이 지식들만 넘쳐났다.  ( p. 119 )


"그녀에게 그는 첫 저녁식사 테이블에 올라 있는 살짝 부스스한 분홍색 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입던 갈색 정장이 살짝 꽉끼는 널찍하고 슬픈 어깨였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과 노동과, 옳은 것과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아마 그는 그녀에게 시도 써주지 않를 테고 사랑의 세레나데도 부르지 않을 것이며, 비싼 선물을 들고 집에 찾아오지도 않을 테다."  ( p. 206 )


‘그들은 인생에서 단순한 것들을 바랄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머리 위 지붕, 조용한 동네, 똑바른 자동차, 헌신할 수 있는 여성, 제대로 된 할 일이 있는 직장, 정기적으로 뭔가 망가져서 언제나 고칠 수 잇는 집.

사람들은 품위 있는 삶을 원해요. 품위란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무언가를 뜻하는 거고요”  ( p. 370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 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직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 까봐 두려워 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 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에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었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이예요.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 앞에 닥친 기간을 살아갈 뿐이다 .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 아마도 바라볼 시간보다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 올 것이다. 더 이상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건 추억일 것이다…… ( p. .457 )


까칠한 남자, 오베를 선택한 여자, 아내는 음악이나 책을 좋아하고 오베는 드라이브와 기름 여과기를 좋아했다. 오베 안에 있는 진정한 남자를 끌어내어 사랑해준 그녀는 아름다웠고 웃기를 좋아했다.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를 들으며 오베는 만약 샴페인 거품이 웃을 줄 안다면 저런 소리를 낼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의 웃음을 사랑한다. 


오베라는 남자는 의무 그 이상을 하면서도 불의에 절대로 타협하지 않아 고초를 겪게 된다. 자기 변호를 하지 않아 불이익을 당하고, 배신으로 절망의 끝에 서게 돼도 직선을 고집하니 조금 가엾고 많이 슬퍼지기도 한다. 나락에 떨어져도 천애의 고독 앞에서도 홀로 그날의 일을 하는 남자, 맥가이버가 울고 가게 손재주가 출중한 남자, 근검과 성실로 빚어진 남자.....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딱 정해 놓고 사는 남자이다 멋지다.


세상에 단 한 사람 그를 알아 주고 사랑해준 아내는 오베에게 빛이요 생명이었다. 그가 바라보고 헌신할 빛이었던 아내를 잃었고, 허영과 비리가 범람하고, 인간미 없고 이기적인 흰 와이셔츠 맨들이 관리하는 세상에 멀미를 내며 죽음을 택하려 한다. 

외제차가 득실거리고 신용카드 빚과 무슨 무슨 알 수 없는 통계와 많은 쓸모 없는 것들과 더부러 날이 새고 밤이 되는 세상, 헛 똑똑이들이 빈 껍데기 삶을 살며 으시대는 위선의 세상, 두 발을 땅에 꽝 딛고 사는 오베가 용납할 수 있는 세상 풍경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우리가 오베라는 남자에게 매료되는 것은, 삶의 근본에 충실하고, 자기 몫의 인생에 책임을 지고, 이웃을 돌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상인 것에 독특한 매력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모순이라 생각된다. 어느듯 악화는 양화를 구축해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불법이나 일탈에 무뎌진 우리의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며 그를 함부로 괴팍하고 까칠한 남자라 매겨버리는 걸 알게 된다. 


꼼꼼하게 준비한 자살은 공교롭게도 이웃에 이사 온 이민 가족, 만삭의 파르파를 도우려다 실패에 그쳤고, 매일 오베의 관심을 끌 정도로 충분히 화 날 수 있는 일에 붙잡히는 바람에 죽는 일이 하루 하루 지연되면서, 오베 안에 사는 정의감과 따뜻한 인간미가 이웃 사랑으로 발현되면서 마음이 가만 가만 열리며 밝아져 간다. 아이들의 보드라운 감성에 오베의 언 마음이 녹는 것이 감동이다. 


어른이 되어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남자, 스스로를 통제하는 남자, 인생을 선택할 줄 아는 남자, 나사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아는 남자, 동네를 파수꾼처럼 지키는 남자, 그런 자부심이 있어야 품위 있는 남자라 생각하는 남자.......

어쩐지 오베라는 남자는 세상의 실속 없는 남자들을 향해 까칠한 경멸을 보내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동네 시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오베는 바람에 두둥실 부풀어 멋이 잔뜩 든 남자란 도무지 품위 없는 남자라고 지적할 것같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가 그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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