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다낭. 호이안. 후에

'다낭 여행 짧게 보기'

수행화 2018. 4. 7. 00:22

『 베트남 · 다낭, 호이안, 후에 』

다낭은 베트남 중부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호치민, 하노이, 하이퐁에 이어 네번째 정도 큰 도시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다낭이 인기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같아 유행에 발이라도 맞추듯 다낭 여행을 다녀 왔다.
 다낭 기준, 남동쪽 30Km 정도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의 호이안, 북쪽 100Km 정도애 있는 베트남의 고도(古都) 후에가 우리 다낭 관광의 범위이다.
2월이 지나 건기에 접어 들었고, 더위도 덜하고 기후가 온화하다는 3월 초에 우리는 비행기를 탔다. 인천 공항 저녁 9시 55분 비행기를 타고 5시간 비행 끝에 다낭 공항에서 도착하니 현지 시간 새벽 1시이다.
 

<인천 제 2공항>
제 1공항에서 크게 반원을 그리며 외딴길(?)을 달리니 제2 공항이 나타난다. 신공항이라 그런지 한산하고 대리석 뽀얀 빛이 깔끔해 갤러리에 들어 선 기분이 든다. 미술품이 요소 요소 있다고 했는데 건성 지나쳐 사진을 남기지 못해 유감이다. 다음을 기약해야지....  

 
1. 호이안 
호이안'은 소박한 마을로 보이는데, 16~17세기 초까지는 국제 무역항으로 번영했던 도시라고 한다. 중국인, 일본인, 네덜란드인 등 서구의 상인까지 왕래가 빈번했고, 정착해서 마을을 형성해 살기도 했다 한다.
당시의 서구적 분위기까지 가미된, 옛스런 정취를 간직하고 있어 관심 도시로 떠오른 모양이다.

그리고, 1999년 11월 29일부터 12월 4일까지 모로코의 마라케쉬에서 개최된 제23차 유네스코 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관광 도시로 거듭날 조건을 더해 주었을 것이다.

 

 공항에서 밤길 50분 가량을 달려 우리가 당도한 숙소는 '코이 리조트0Koi Resort) 앤 스파' 

< 리조트가 즐비한 강변 모습>

숙소에서 다리를 건너며 보니 맞은편에도 리조트들이 즐비한 것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여행지의 아침이라는 걸 실감하며 일정을 시작한다.

< 대나무 광주리 배타기 >
 대나무 바구니는 익히 알지만 대나무로 배를 엮어 교통 수단으로 쓴다는 건 처음 보는 일이다. 대나무 바구니 배에 관광객을 태우고 맹글로브 숲을 빠져 나가 투본강 언저리를 내다 보고 돌아 오는 코스가 우리 여행의 옵션이고 그들은 생업인 것같다.

 쭐렁거려 멀미날까 무섭고, 어설퍼 위험해 보이기도 했으나 다 함께 휩쓸려 배에 올랐다. 사공들은 우리를 태우고 부리나케 출발하더니 잠시 후 한국 유행가를 귀 아프게 틀어댄다. 한국인에 대한 애정인 것같은데 어이 없어 웃음만 나왔다

 

< 호이안 옛 거리>

무역 도시로 번성했던 호이안은 19세기 이후 쇠퇴해졌고, 발전적 계기가 없어 옛모습이 보존되었고, 오늘 날의 관광자원이 된 것이다. 우리는 그 옛 것들을 찾아 다닌다.'내원교'라는 다리, 턴키의 집, 오래된 주택, 풍흥의 집,  중국 교포들의 제단으로 이용된다는 '광조 회관'등에 눈도장을 찍는다.

 배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며 마을을 바라보기도 하고, 씨클로를 타고 거리를 한바퀴 돌기도 하는 관광객들 사이에 과일 행상도 한 풍경이 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 쪽은 구시가지라 한다. 도자기 마을이며 기타 안내 받은 곳들이 볼거리로는 조금 빈약하니 기대감은 금물인 것같다. 

 이런 분위기의 찻집도.......
뿌리인지 줄기인지 모를 식물이 주렴처럼 드리워 이국적인 분위기를 도우는 커피숍도 있고, 꽃이나 붉은 등을 내다 건 가게들도 많아, 오밀조밀하게 옛거리를 채운다.

좁은 거리에 관광객이 의외로 많다. 문이 뻥 뚫리고 간이의자를 갖춘 커피숍이 우리에게 낯설어도 이 거리에는 어울린다. 

 고만고만한 기념품점들도 많고, 싼 물건들도 많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것같아 보인다.

<턴키의 집>
200년 전 호이안의 재벌이었던 중국인의 집을 개방해 보여 주고 있다. 건축양식이나 생활 용품들을 보며 당시 그들의 일상을 짐작해 보는 것이다.

벽에 척도같은 표지가 있는 것은 과거 호이안의 강 범람시 강물이 차올랐던 흔적을 표시해 둔 것이라고 한다. 작은 기록도 훗날은 역사가 된다

전시된 가구나 컬렉션들이 손색 없이 화려한 것이 과연 중국 거부장자의 고급한 문화를 보여준다.

노점에 기념품들이 많아 잠시 눈길이 바쁘다. 하지만 품질이 조악하여 더 나은 물건을 찾아 보려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 오고 말아 아쉽다. 

 더 이상 근사한 숍을 만나지 못해 '꿩 대신 닭이라도" 하는 생각을 지금 하고 있다. 친구들은 싼 스카프도 사고 가방도 사면서 다들 즐거워했던 가게들이다. 

광조 회관'베트남 속의 작은 중국'이라 설명해 둔 것을 본다.
주변의 소박한 건물에 비해 유독 번쩍이며 광을 내니 중국풍의 건물임을 바로 알아 본다.1800년대 말 중국 광저우에서 온 상인들이 지은 회관으로, 과거 중국 무역상이나 항해사들의 휴식 공간이 되기도 했다 한다. 

베트남에는 관광지에 외국인 가이드가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여 현지인 가이드가 우리를 인솔한다. 아주 왜소한 여자 가이드는 밀려드는 관광객에 파묻혀 모습이 안보이기 일쑤였는데, 어인 일로 내 카메라에 들어와 있다. 

 꽃으로 과일로 향으로..... 몹시 화려하게 장엄한 사당은 '관우 사당'이라고 한다.중정에는 식물보다  용틀임 형상의 조형물이 더 눈길을 끈다. 화려하고도  괴기스럽게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 냈다 

 크게 눈여겨 볼 게 없다 싶어 일별하고 나오는데, 어떤 외국인 부부는 오래 바라 보고 앉아 있어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 나왔다. 같은 공간에 느낌은 따로 따로~~~

 

 건물 밖에 중국풍의 긴 벽화가 눈길을 끌어 파노라마로 찍어 보겠다고 기회를 보았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다. 인파가 끊임 없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고, 골목을 헤집으며 걷고........
동네 면적의 반은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았나 싶게, 인구가 밀도 높게 쏠려 다니는 중이었다.

 

< 풍흥의 집>

 19세기 중기에 풍흥이라는 이름의 무역상이 상점으로 이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서 호이안 구시가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검은 건물은 실내도 무척 어둡다. 어둠에 적응 잘 안되는 시력으로 찬찬히 바라보는 건 포기한다. 

옆집 지붕을 환히 비추는 창에 시야가 환해져 반가웠다. 

 관광객은 빼곡한데 기념품 코너는 한산하다. 나는 어서 이 깜감한 실내를 벗어 나고픈 마음 뿐으로 또 들여다 보지 않았다.

 


<내원교>

1953년에 일본인들이 세운 다리로 16세기 말 호이안에 일본인 무역상들의 왕래가 빈번했음을 상징하는 의미있는 다리라고 한다. 낮은 아치형의 다리가 지붕을 이고 있어 작고 아담해 보기 좋은데 조명이 들어 오는 밤이 좀 더 아름답다고 한다.

'투본강 투어'는 낚싯배 수준의 작은 배를 타고 무심히 떠 보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조금 큰 배를 탄 우리는 모터 소음이 너무 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렇다. 또 뱃전이 유독 높고 좌석은 낮은 이상한 배 형태 때문에 좌석에 앉은 우리는 전면의 높은 뱃전만 바라 보며 달리는 형국이라 더 무료했는지 모른다. 내 짧은 안목인지 모르나 볼품 없는 볼거리들을 과감하게 빼고 조금 한가하게 배도 타고, 노천 분위기 나는 가게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행인도 구경하는 게 더 관광이 아닐까 했다.
 

어둠이 깔리니 강변은 화려하게 딴 인물로 변한다. 우리가 차 한잔을 마시던 카페앞이다. 불 밝힌 거리를 사람들은 파도타듯 넘실대며 밀려든다. 불빛 찾아 나방처럼 모여 든 사람들로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풀문 레스토랑>
보름달 없어도 정성들여 불을 밝힌 이 식당에서 호아안 전통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메뉴 생각은 나지 않고, 불빛만 마음에 남아 있다. 손님을 불 밝혀 맞이하는 것 같아 내심 좋아했다.

식당 옆 강변에 앙징스런 종이 유등을 띄워 보내며 번다한 하루 일과에 의미를 두어 봤다.

 

2. 다낭 

< 손짜 사원 >

손짜 반도에 위치한 절이라 하여 손짜(SON TRA) 사원이라 이르기도 하고, 링엄(LINH UNG)사라 하기도 한단다.
아름다운 해변을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고, 65m 높이의 베트남 최대 불상이 있어 관광명소의 조건을 갖춘 것 같다.

도량에는 나무를 땅에 심지 않고 분재를 줄 지워 세워 둔 것이 독특하다.
해변을 바라 보고 서 있는 해수관음상이 우리 낙산사 보살상과 모습이 비슷해 친근하다.

해수 관음상 옆에 익살스런 포대화상이 자리잡은 배치가 퍽 특이하다. 알고 보니 베트남 사람들은 포대 화상이 부를 가져다 주는 상이라 하여 무척 선호한다고 한다

차창 밖으로 스쳐 보이는 해변길이 아름답다. 
요트가 아니고, 고기잡이 배라고 해도 해변 풍경을 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간다.

드라이브하기에 딱 맞춤한 길. 베트남이 남북으로 길게 휘었으니 이런 해변길은 숱할 것이다.

꽃단장한 로터리에 2018 을 심어 둔 귀여운 화단을 보고 여기가 도심인가보다 하며 지나간다. 
꽃이 아주 흔한 도시, 여유가 보여 좋다.


< 다낭 대 성당 >

핑크빛이 화사한 이 카돌릭 성당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923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리모델링을 했는지 핑크빛이 퍽 선명하다. 담장에 성서 얘기들을 그려둔 벽화가 상당히 빛이 바래인 것을 보면서 해 본 생각이다. 불교 국가로만 알고 있던 베트남에 70m높이의 이런 성당이 있다는 것은 의외이다.

 

< 바나산 >

바나산 국립공원은 다낭이라는 도시에 호사스런 컬러를 입혀 주고 관광객 유치에 큰 몫을 하고 있는 것같다 해발 1500m 높이의 산에 그림같은 마을이 조성된 것은 150년 전,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했을 당시로, 프랑스인들의 휴양지 목적으로 만든 마을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조금 쓰라린 역사적 배경이 있지만, 현재 베트남 상류층의 피서지로, 또 다낭의 즐길거리로 잘 활용하니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아픈 과거사도 승화하기 나름,    

기온이 연중 15~25ºC를 유지하는 하늘 아래 동네에 홀연히 솟아 있는 신천지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애초에 조성되었던 유럽풍의 마을에 베트남 전통 건축물을 나란이 덧붙여 두었다.

Sun World 라는 건, 이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회사인가 싶다. 케이블 카 정류장 건물은 잘 정돈된 현대식 건물이다. 

케이블 카를 타기 위해 들어 선 건물이 아주 말끔한데다 근사한 노란 케이블 카를 바라 보니 일말의 불안감이 사라진다. 이 케이블 카의 건설과 운영은 모두 독일이나 스위스 기술이라고 한다. 

숲을 융단처럼 발 아래 펼쳐 두고 유유히 날아 오른다. 케이블 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산들이 멀어져 가는 것을 아찔하게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폭포 줄기도 지나치고, 저 아래 실낱처럼 그어진 한 줄기 길이 높이를 가늠하게 한다.

그 때 그 시절 이렇게 어여쁜 마을을 조성한 옛 프랑스인들의 안목이 놀랍기도 하다. 이제 그 흔적은 유산으로 남아 우리들 발길까지 불러 들였다. 식민 지배의 어두운 역사는 먼 뒤안길이다.

메인 광장같은 곳에 제법 규모가 큰 성당도 있다.

석조건물이 중후하고 멋진 골목을 걸으면서 마음에 안정감이 오는 걸 느꼈다. 그 그늘의 시원함은 우리 감동도 서늘하게 해준다.

건물 외양은 충분히 예술적이고 위트가 넘친다. 
이 호텔에 묵으며 거리를 어슬렁거려 본다면 얼마나 멋질까 싶다.

멋장이 건물들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눈길을 붙잡는다. 멋내기 경연장 같다.
유럽의 어느 골목을 누비노라는 착각이라도 하고 싶은데 나는 앞 뒤 재며, 시간 재며 걷기 바쁜 한 패키지 여행자일뿐이다..

   

눈을 돌리면 모든 공간이 고전 영화 셋트장같아 이 곳이 다낭이고, 산 윗동네라는 걸 잊고 걷는다.  

문을 밀고 들어가 실내가 주는 여유를 만끽하고 커피라도 한 잔 주문하고 싶은 건물들이 아주 많다. 그림의 떡처럼 보고만 다녔다.

여행이 주는 보너스는 많다. 물리적 공간 이동이 시간 이동 효과를 보너스로 준다. 저 먼 과거 속, 타인의 삶에 잠시 나를 두어 보는 것도 재미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할 수 있는 사치가 크다.

광장이란 열린 공간이다.흩어지고 기다리고 만나고....
누구를 오래 기다린다고 해도 지루하지 않게 공간이 다채롭다.

만남의 광장처럼 인파가 넘실대니 이벤트도 늘 마련돼 있나 보다. 흰 피부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볼꺼리, 즐길꺼리가 가득한 파크이다. 

튤립 정원과 풍차 마을이라! 네델란드풍으로 컨셉을 잡은 건가? 

여기저기 클래식 카들을 세워 뒀다. 단순히 곷 장식을 위한 소품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설명문을 못 읽어봤다.

바나산 옵션은 60$로 바싼 편이다. 그러나 지하에 조성된 놀이 시설 이용료가 포함되었다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놀이며 뭐며 어딜 가든 젊은 사람 즐길거리만 가득하다. 할머니들은 회전 목마가 무리 없지 싶어 줄 서서 기다렸더니 어른들은 탈 수가 없다나....박장대소!!!  목마 타고 싱겁게 한 바퀴 돈 것보다 더 많이, 더 재밌게 웃었다.

 

놀이 기구의 확장판은 야외에 있다. 구불거리는 심한 레일은 바라만 보아도 어지러운데, 이용객의 대기줄은 길기만 하다.

프랑스 거리를 걷고 걷다 보면 갑자기 베트남 풍의 건축물들이 나타나는 것이 퍽 조화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베트남 전통  문화를 대비시켜 보여 주려는 의도로 이해했다. 

언덕 최정상에 오르니 닷집 형태의 작은 건물에 또 포대화상을 모셔뒀다. 석등에 에워 싸인 불상은 대만족의 여유를 보인다.

최정상의 이곳. 난간에서 바라 보는 아랫동네는 동화 책 속이거나 디즈니 영화 속이거나, 그림같다.

화려하고 재미가 넘치는 광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온전한 형태의 절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인적이 뜸하고 적막해지려 한다. 정성껏 다듬어 놓은 반듯한 절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영봉선사'라는 현판 글씨가 우리가 흔히 보는 한자체라 반갑다. 바나힐 자체가 영험한 봉우리라 말하고 싶은 것같다. 화분으로 정원 꾸민 것을 이곳에서 또 본다. 지열이 더워 찜질할 것같은데 ...잘 모르겠다.

 법당 안은 밝고 굉장히 화려하게 장엄해 뒀다.  우리네 사찰 내부가 검소하고 단아하다면 이곳은 화려함이 현란할 정도라 분위기가 다르다. 그래도 삼배하고 보시함에 보시금도 넣고 나오니 마음도 한결 가뿐해지고 좋았다.     

 

400

산 모롱이를 한 바퀴 둘러 보고 내려 오니 붕어 싸만코가 반갑게 맞아 준다. 여기서 만나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3. 후에

'후에'의 '티엔무 사원'은 베트남의 유서 깊은 사원이라고 한다. 베트남 전쟁 중에 정부에 저항하던 불교도들의 항거 중심지역이었으며 사이공에서 희생되었던 반체제 수도승 쿠앙 둑(Quang Duc)으 본거지였다고 한다. 

티에무 파고다는 높이 21m의 팔각형으로 베트남인들에게 무게있는 문화재인듯하다. 1844년인 19세기에 들어서 티에우 트리 (Thieu Tri) 왕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강변에 자리 잡은 사원의 높은 습도때문인지 유서 깊은 세월의 그을음인지 탑도 건물도 회색물을 퍽 머금고 있다.

티에무 파고다는 높이 21m의 팔각형으로 베트남의 비중있는 문화재인듯하다. 1844년인 19세기에 들어서 티에우 트리 (Thieu Tri) 왕에 의해 조성됐다고 설명한다. 강변에 자리 잡은 사원이라 높은 습도 영향을 받은 것같은데 탑도 건물도 이끼같은 회색물을 잔뜩 머금고 있다.

잔디밭이 있어 넓지 않은 법당 건물들이 조금 더 아담해 보인다.지금도 스님들이 거거하고 수행하는 곳인듯 하다.

이 사원은 베트남에서 존경 받는 '틱 광둑 스님의 활동 중심지였다는 안내가 있다. 스님의 승용차가 나란히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차를 타고 교차로에서 내려 가부좌를 틀고 앉으시자마자 불을 당기셨다는 내용이다. 

틱 광둑 스님은 1962년 6월 11일 사이공에서 반정부 시위 도중  분신자살하신 스님이다.  사거리에 스님은 결가부좌하고 앉았고, 제자가 스님 주변에 휘발유를 뿌렸으며,누군가가 던져 준 성냥을 그어 스님이 화염에 까맣게 휩싸이는 과정을 흐린 영상으로 보았다. 이 극적인 장면을 포착해 세계에 알린 종군기자, '말콤 브라운'은 이후 '퓨리처 상'을 받았다고 한다.

고딘디엠 정권의 불교 탄압 정책에 저항한 거룩한 죽음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내 상식선에 혼란이 왔다. 스승이 화염에 휩싸이게 도운 제자에 대해 용서할 마음이 전혀 나지 않는다. 고귀한 의미를 갖다 대며 훌륭하다고 추앙하고 미화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자살을 방조하는 인간 내면의 잔혹한 면을 보는 것같아 심란하기만 하다.

생명체의 존엄성에 높은 가치를 두는 불교도의 입장에서, 정치적 이유로 스님들이 스승의 죽음을 도운 사건을 나는 내내 이해 못할 것이다. 그리고 불 끌 생각은 않고 끔찍한 장면을 사진만 찍어댄 그 기자도 비인간적이기는 마찬가지!!!


유명 사원이라서인지 길 건너 가게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산화를 쟁취한 베트남은 지금 자본주에 적응하고 공부하느라 바빠 보인다. 사원 정문 앞에서 관광객에 물건 파는 아주머니들에게서도 공산주의의 아이러니를 보는 것같다. 

 

< 후에 왕궁 >

후에는 고도(古都)로서 우리의 경주와 비슷하다 해야겠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엔 왕조의 궁궐로서 1802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143년 간 투아티엔후에(Thua Thien Hue) 성의 성도였다고 한다. 많은 역사적 기념물과 건축물들을 보유하고 있어  1993년 베트남 최초로 도시의 유적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응모문, 태화전,자금성, 여러 사당, 문묘 등이 건립되었으나 베트남 전쟁으로 대부분 손실을 입었고, 일부만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후에 성의 남문. 외관은 해자와 돌로 쌓은 성벽이 오사까 성을 조금 닮아 보인다. 습한 기후에 보존에 어려움이 많을 것같다는 생각을 하며 걸어 들어 간다.

베트남 관광에는 한국인 현지 가이드, 베트남인 현지 가이드, 게다가 왕궁 내에는 왕궁 전속 가이드의 안내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어를 쓰는 왕궁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움직인다.심하게 목을 썼는지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는 여자 안내원을 따라 다녔다.

태화전에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면서 프래카드 지지대같은 두개의 문을 통과하게 된다. 왕궁과 바깥 세상의 경계 표시인가 싶다.
첫 번째 정직탕평(正直蕩平) 두번 째는 고명유구(高明悠久) 라는 글귀가 씌여 있다. '정직하고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게 할 것이며, 높은 식견은 영원하다' 정도의 뜻으로 이해해 본다. 

태화전

중국의 자금성에서 비롯된 태화전이 여기에도 있다.규모는 워낙 비교가 안되지만 궁 전체가 자금성을 본 뜬 것이라는 말이 맞는 것같다.

후에 왕궁의 규모는 크다. 왕궁 부속 건물도 많고 문도 여럿 보인다. 그 곳을 거의 한국인이 채우고 있어 씁쓸하기도 했다. 


 후에 왕궁은 고온다습한 기후 탓이겠지만 담장 표면이 뜯겨나간 곳도 있고, 곰팡이가 검게 덮은 건축믈도 보인다.
계속 보수 중이고 복원중인데 힘들어 보인다. 단청이 곱고, 정원이 정갈한 우리네 궁궐이 아름답다는 걸 누구도 부정해서는 안될 일이다.

주마간산도 모자라 깜깜이 왕궁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다시 전동차를 타고  퇴락해 보이는 또 다른 왕궁으로 간다.
화장실 다녀 오라는 말을 따르던 친구들은 그 곳 불결함에 아연실색들 하기도 하고, 사전 공지도 없던 왕궁 공연을 졸지에 볼 뻔하기도 했던 촌극도 있었다. 한국인 가이드, 현지 가이드, 왕궁 가이드....책임 전가하기 좋은 구조가 아닐까 싶다. 
넘쳐 나는 관광객들의 그야말로 니즈를 잘 해결 못한다. 안타깝지만 그들 사정이 아니겠는가!

 

<민망 왕릉>

 후에의 남쪽에 민망 황제뜨둑 황제카이딘 황제 등의 왕릉이 볼거리라고 한다.그 중 민망왕릉과 카이딘 왕궁을 둘러 보았다. 베트남 인들은 민망왕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후에 왕궁 가이드도 민왕왕의 업적을 언급하더니 왕릉 가운데 민망왕릉이 규모가 크고 잘 정돈되었다고 하니까 말이다. 왕 재임시에 설계되었고 왕의 사후인 1841년에 공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관광객들로 산만하던 왕궁을 벗어나 이곳에 오니 차분한 분위기가 대조된다. 넘치지도 소흘하지도 않게 아담한 이 능이 마음에 들었다.민망왕의 통치 시절이 응우엔 왕조의 전성기였음을 보는 것같은 격조를 보았다.

연못의 다리를 지나면 왕릉이 있다고 한다. 일본 신사에서 본 도리이의 분위기의 이 조형물이 여기에도 세워져 있다. 밋밋한 것보다 경계 표시같고 괜찮아 보인다. 정원을 내려다 보는 정자(?)도 예쁘디. 다리 위를 한가로이 걸어 보는 것도 좋다.

 

 

<카이딘 왕궁>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왕, 바오디아 황제가 아버지 카이딘을 위해 건축한 능이라고 한다. 민망왕릉과 차로 10분 움직인 것같은데, 능의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이 왕릉은 베트남과 유럽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라고 한다. 

왕릉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이 '카이딘 왕릉'이라고 한다.약간 경사진 터에 자리잡은 탓인지, 왕릉의 권위를 보이려는 것인지 급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왕릉은 11년에 걸쳐 건축되었다는데, 규모도 크고 장엄하게 꾸민 공력이 보인다.  

 석조 건물 외벽에 조각이 새겨진 모양을 보아 유럽 건축의 영향이라 하는 것같다.


외관보다 내부가 더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고, 옥좌에 앉은 황제의 등신상이 조명 아래 금빛으로 빛난다.
그 아래 황제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고 한다.
닷집처럼 고안된 천장이 멋지고, 색색의 도자기를 화려하게 붙여 만든 것이 특이해 보인다. 고온다습한 기후에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방법을 썼다고 하는데 베트남 왕궁의 예술성을 보다 높이 보게한다. 

 

 뜰에는 또 중국 왕릉에 있을법한 실물크기의 호신상이 열지어 서 있다. 말이며 코끼리며 여러 형상들이 어우러져 동양적 분위기를 총망라해 보여 주는 것같다.

 

< 시내에 들어 서니 >

시내에 들어서니 오토바이 행렬이 러시아워임을 알린다. 하노이나 사이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남녀노소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인다. 임산부도 타고 있고, 아기 매달고 달리는 불안스런 오토바이도 있다. 자동차가 뜸한 이유는 그렇게 비싼 탓이라고 한다. 소형차 한 대가 2천만원이 넘는 다고 하니.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인처럼~~~가이드가 베트남 모자, '농'을 선물해 줬다. 시원한데 조금 불편했다. 부피가 있어 창문에 붙여 보관하니 햇빛도 가리고 좋았고, 보면서 즐거워 했다. 신경 쓴 선물을 버스에 두고 오니 가이드는 서운한 얼굴이었다. 안 가져 오기 잘했지.....

시클로를 여기서 타 본다. 운전자 발길에 의지한 채 밤길을 줄지어 달린다. 매연에 마스크까지 하고 관광객 티를 한껏 풍기며, 그런데 뭘 보겠다고 한바퀴 돌았는지 잘 모르겠다. 

 

< 아름다운 비치>

비치에 나가 앉아 여유를 부려 보려던 기대를 크게 만족시키지 못하고 여행 일정이 끝나간다. 점심 먹은 리조트 식당 앞 비치가 아름다워 이 푸른 물빛에 잠시 눈을 씻어 본다. 하이반 고개 바로 아래인 것같다.

 <하이반 고갯길>

정상은 구름과 맞닿아 있고, 고갯길의 발치는 바다와 맞닿아 있는 이 길이 '하이반 고갯길'이다.그 풍경을 이름에 담아 "구름낀 대양의 고갯길"이라는 의미를 가진 '하이반 고갯길'이 되었다고 한다. 투아 티엔, 후에, 다낭의 경계에 있는 이 곳이 1번 고속도로라고 한다. 우리의 동해안, 한계령 고개를 연상하며 보니 무리가 없다.



<다낭 쇼>

 길을 묻는 관광객이 등장하고, 길을 안내하는 형식의 컨셉으로 유머러스하게 쇼는 시작된다. 다낭의 역사와 전통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 주는 매력적인 쇼라고 해야겠다. 압살라 춤, 아오자이 쇼, 농을 쓴 평범한 서민의 모습, 전통 결혼식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그들의 문화를 보아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호에'에서 본 '아오자이 쇼'처럼 가소로운 쇼가 또 있었을까 싶다. 알맹이 없고 앵벌이를 연상케하는 상업적인 쇼, 피로만 안겨주던 쇼와는 비교할 수 없이 깔끔하고 격조 있는 쇼이지 않았나 하는 것이 나의 감상평이다.

 

< 2018년. 3월 3일 출발 ~  3월 8일 도착 > 

4박 6일의 여정으로 짧기도 하고 이동 거리가 적으니 여유를 부려 보려니 했으나 옵션이 많이 걸려서인지 생각보다는 걸음이 바빴다. 카메라를 아예 꺼내지도 않고 스마트폰만 들고 다니며 성의 없이 찍은 사진이지만  정리를 해 둔다.
내 생애에 더 이상 방문하지 않을 여행지일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