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8년

'Hillbilly Elegy', - 힐빌리의 노래를 읽고.....

수행화 2018. 5. 7. 00:50

누군가에게서 책을 추천 받거나, 책을 나눠 보는 일이 나는 굉장히 즐겁다. 지인이 'Hillbilly Elergy' 라는 제목도 생소한 책을 건네 주어 고맙게 받아 들었는데, 읽으면서 상상 이상의 울림이 있어 나도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어졌다.


'힐빌리'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지칭하고, 대체로 교육 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의 미국의 시골 백인으로 통한다고 한다. 

저자 'J.D. 밴스'는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주의 미들타운에서 태어나 켄터키주 남동부의 탄광촌인 잭슨을 오가며 자란 힐빌리의 자손이다. 가난과 폭력, 약물 중독 등 우울한 환경으로부터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최고의 지식인 사회, 상류 사회에 진입하기까지 저자의 자전적인 얘기이다. 이 스토리 전반에 깔려 있는 미국 사회의 명(明)과 암(暗)을 바라보면 자연히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것같다. 


저자의 할아버지는 1960년도에 일자리를 찾고, 자녀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컨터키를 벗어나 공업지대로 이주하였고, 안정된 직장 생활로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역의 산업기반이 차츰 침체해 가면서 공업도시, 미들타운의 화려했던 영광은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져 갔고 할아버지가 다니던 '암코카와사키'라는 큰 회사도 문을 닫았다. 집값이 떨어졌으며, 상점과 주택은 버려져 마약 중독자와 밀매상의 접선 장소로 악용될 정도로 쇠락해져 1980년대의 역동적이던 도시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어 마치 가난의 섬처럼 고립된 것이다.


이 도시의 어두운 현실을 온 몸으로 받아 들이듯 저자의 엄마는 무책임했으며, 일관되게 방탕한 생활을 한다.  저자가 기억해 낸 유년시절은 어린 아이로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로 얼룩진 혼란의 시기였다. 희망이라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을 견디고 미래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할머니 할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할머니의 집은 위험하면 언제나 뛰어 갈 수 있는 피난처였고, 할머니라는 커다란 울타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난한 사람의 인생에는 무슨 일이 일어 나는지, 물질적, 정신적 빈곤이 자녀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고 말한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저자가 읊었던 말이 모든 상황을 함축하는 것으로 독자의 페부에 와 닿는다.

제게는 아빠가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엔 언제나 할보(할아버지의 애칭)가 있었고 할보는 제게 남자가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줬어요.” “할보는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최고의 아빠였습니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좋게 말해서 복잡한데, 엄마는 거의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껏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를 키워 준 외조부모님은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친척들까지 포함해도 우리 집안에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거의 없다  < p. 22 >

 

남편감을 끝없이 갈아치우고 약물에 의존하던 엄마가 아동학대 혐의까지 받게되어 끝내는 아들인 저자에 대한 양육권이 박탈될 위기에 처하게 되어, 어쩌면 위탁가정의 손에 맡겨져 집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때 할머니는 손자의 양육을 자청한다.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할머니이고, 이곳은 너의 집이니 돌아 올 마음의 준비만 되면 언제라도 이곳으로 돌아 오라!". 할머니가 내민 구원의 손길을 잡으면서 손자의 방황은 끝이 난 것이다. 엄마를 피해 수시로 들락거리던 할머니의 집이 안식처가 되면서 일상에 평화를 얻게 된다.

자동차며 뭐며 수리를 잘 하는 할아버지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수학을 배워 공부를 알아갔고, 사격을 배운 덕에 훗날 해병대에서 출중한 사격수가 되기도 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아갔고, 12학년이 끝나갈 무렵 할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되면서 완전히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 아주 사납고 과격하며 의리를 중시하는 힐빌리인 할머니는 손자에게 더 없이 강력한 보호막이었고, 배움은 없어도 피부에 와 닿는 이치로 손자를 깨우치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가족들이랑 주말을 보내게 해주는 직장에 취직하려면 대학에 가서 출세해야 한다” < p. 249 > 

할머니의 지지를 받으며 공부에 전념하여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합격하였으나 입학을 미루고 매력을 느끼던 해병대에 지원하게 된다. 이라크 전쟁 중인 시기라 이라크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이 모든 힘든 과정을 아주 모범적으로 해낸다. 전역 후에는 다시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입학하여, 공부와 시간제 알바이트를 병행해 가며 초인적인 노력으로 오하이오 주립대를 111개월만에 최우등으로 졸업하는 성과를 이루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유례 없는 것으로 인간승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고 가난한 자는 꿈도 꿀 수 없는 최고의 명문 예일대학교 로스쿨의 문을 두드려 마침내 입학 허가를 얻게 된다.

  

모든 것에 불만이 가득하던 자신을 바꾼 건 이라크 파병 시절 이후였다고 한다. 수돗물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해맑게 웃고 즐거워 하는 전쟁터의 아이들을 바라 보며 자신은 지구 최강국에서 태어나 문명의 이기를 누렸고, 다정한 두 노인의 지지를 받으며 자랐다는 것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할머니와 자기는 두개의 신을 모시고 사는데 그 하나는 그리스도요 또 하나는 미합중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조국의 존재에 감사하기도 한다.

나는 최악의 순간에 느낄 수 있는 두려움과 최고의 순간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 사이를 오가며 평생을 보냈다. < p. 277 >

내가 누리는 인생이 실로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돌이켜보면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 p. 312 > 

가난이 일상이고 대물림되는 힐빌리 사회로부터 부와 풍요의 대명사인 미국의 상류 사회로 진입한 사람은 말하자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이주한 문화적 이주자이다. 저자는 그래서 이 두 부류 인간군의 차이점을 뼈져리게 느꼈다고 했다. 부자들은 노동계층의 사람들과 분명 다른 그들만의 규범과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말이다. 

운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이 고향 마을의 비참한 현실이고, 그 코 밑에서 탈출한 자로서 두 사회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짚어 보여 주는 것이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저자가 성장하던 시기의 미들타운은 비이성적 사회였다고 비판한다. 가난한 살림에 거대한 텔레비전을 사고 아이패드를 사는 등 지출을 늘리고, 이자가 높은 신용카드나 고리대금을 얻어 자식들에게 비싼 옷을 사 입히고, 집을 사서 재융자를 받고 또 받다가는 마침내 파산신고에 이르기도 하는 기타 생활 습관에 이르기까지...


요리를 해먹는 편이 심신의 건강에 좋을뿐더러 가격도 더 저렴한데도 우리는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다.< p. 247 > 

슬프고 가난한 마을에 가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기초 생활을 유지할 정도의 복지에 의존하여 게으르게 살며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 모든 불편은 사회나 제도 탓으로 돌리면서 일자리를 찾아 나서지 않는 사람들, 일자리를 구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 당하거나 그만 두면서 부당한 대우때문에 못해먹겠다고 해대는 사람들, 자기의 태만함을 합리화하면서, 실업수당이나 복지에 의존하려 드는사람들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집어 말해 준다. 그래서 복지 헤택으로 무난히 살아가는 복지여왕이 속출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보낼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하는 세상에서 자랐다. 그리고 지금은 부자와 특권층이 지역사회의 빈곤층에 아낌없이 베풀 기회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형편과 무관하게 분수에 넘치는 쇼핑을 하며 통장을 다 털어 쓰고 환급 받을 세금까지 따져가며 미리 써서라도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는 가난한 사람들과, 책을 선물 받거나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부자들의 크리스마스를 대비해 보면서 문화적 차이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저자의 관점에서 미들타운에 필요한 것은 주변에 귀감이 될만한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 귀에 담겼다. 공간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의 인생에 꼭 필요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맞기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인맥을 사회적 자본으로 매긴다고 한다. 인맥은 실질적으로 가치를 가지고 있어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설에 살짝 거부감이 왔으나 바로 인정하게 된다. 인맥이 있어야 적절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중요한 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 주변을 소흘히 한다는 것은 자본을 잠식하는 결과라고 내 나름으로 광범위하게 해석해 본다. 


사회보장 제도가 양산하는 게으른 사람들, 의존적인 사람들의 현실을 보면서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다. 20세기 초 경제 선진국이었다는 아르헨티나, 요즘 신문 지상을 우울하게 장식하는 베네수엘라 등 지나친 복지로 열등국가로 전락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증명해 준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바마 대통령이 읽어 전미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점이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한다.

복지의 의존하여 가난하게 사는 사람에게 기초적인 삶은 보장해 주는 나라,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나라,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시스템이 굴러가는 나라라는 점이 여실히 부각되고, 무엇보다 노력하는 가난한 수재에게 전액 장학금을 수여하며 육중한 예일대학교의 문을 열어 주었다는 점이 반전이며, 미국을 강력하게 받치고 있는 힘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저자가 경제력이 생기면서 할머니에게 매월 300불을 지원하고, 할머니와 누나의 가족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면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산 밥을 먹고 함께 웃고 떠드는 장면에서 말할 수 없이 감동이 벅차 올랐다는 말이 진솔하게 들리고 공감하게 한다. 보살핌을 받다가 누군가를 보살피게 될 때의 보람된 감정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된다는 당연한 말이 퍽 교훈적으로 들린다. 노력하는 자에게 신분 상승의 수직 사다리는 준비 돼 있더라는 예를 본 감동으로 책을 덮었다. 아울러 가난의 복판을 가르고 힐빌리의 삶을 단호하게 거부한 의지의 한 소년이었던 분에게 존경심을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