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8년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수행화 2018. 9. 23. 00:56

나는 소박하게 여름나는 걸 좋아한다. 방바닥에 엎드려 쿳션이랑 방석이랑 책이랑 엎치락 뒤치락해가며 더위에 무심한 태도를 보이면 더위는 멋쩍어 슬쩍 한걸음을 물리고, 나는 그 틈을 즐기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신선놀음은 못되어도 이 소극적 피서법이 나에게 적절한 만족을 주어 내가 즐기는 여름나기 법이었다. 적어도 이번 여름의 기록적인 더위를 만나기 전까지는. 요모 조모 책들은 들춰 보긴 했지만 휘적이는 수준이고 그나마 더위 타령을 타고 다 흘러들 가버리고 말았다. 이제 가을 기별이 오고 조금씩 두꺼운 옷을 찾아 입으니 비로소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지나버린 시간을, 붙잡지 않아 나의 인생이 되지 못한 기회들을 생각하게 하는 조금은 쓸쓸한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읽었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1954~1983) 를 알기 이전에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 주연의 아주 아주 멋진 영화를 통하여 스토리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2017년에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관심을 가졌다고 해야겠다. 저자는 이름으로 봐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인데 6세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영국인으로서 살았던 것같다. 영국인보다 더 영국적인 소설을 써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이름을 알렸고, 영국에 영광을 돌려 작위까지 받았다고 하니 말이다.

 

스티븐슨은 달링턴 저택의 훌륭한 집사이다. 달링터 경은 이 가문이 200년 이상 소유해온 대저택을 미국인인 페러제이에게 양도한다. 새 주인은 이 저택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할 것같고, 따라서 저택의 운영방식에도 변화가 왔고, 고용인원도 대폭 줄이게 되어, 유능한 집사 스티븐슨에게 크고 작은 애로들이 생기게 된다. 이 즈음 예전에 함께 일했던 켄턴양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녀가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서 홀연히 저택을 떠난 이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나 여전히 이 집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현재 결혼 생활에 조금 문제가 있는듯 일상이 편치 않아 보이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것이다.

새 주인에 맞춰 단출한 팀을 꾸려야 하는 스티븐슨은 썩 일을 잘했고, 상냥하던 켄턴양의 안부가 궁금해졌고 마침 새주인은 멋진 차까지 빌려 주며 일주일의 휴가를 권하던 참이라 켄턴양을 만나기 위해 서부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게 하는 작용이 있다. 거리를 두고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의 윤곽이 드러나기도 한다. 스티븐슨도 여행 중에 자신의 지난 날을 회상해 보며 지금은 벤 부인으로 살아가는 켄턴양과의 관계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소설은 첫째 날은 솔즈베리, 둘째 날 오후는 도셋주 모티머 연못, 셋째 날 아침은  서밋주 톤넌, 셋째 날 저녁은 데번주 타비스톡 근처 모스콤, 넷째 날 오후 콘웰 주 리틀 컴프턴이라 메모를 하며 그 날의 단상을 여행일지처럼 써 나간다. 


익숙하던 행동 반경을 벗어나니 우선 자연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물결 치듯 결을 이루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초원이며, 점을 흩뿌린듯 까마득히 보이는 양들이며, 그림처럼 펼쳐진 대지의 풍경에 감동한다. 자연은 진정 위대하다, 위대하다는 형용사를 붙이기에 족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위대함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위대함이란 정확하게 무엇인가? 그것은 대체 어디에, 혹은 무엇에 존재하는가? 물론 이러한 질문에 답하자면 내 머리보다는 훨씬 더 지혜로운 머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위험을 무릅쓰고 추측해 보라고 한다면, 명백한 극적 효과나 '화려함의 결핍’, 바로 그 점이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차분한 아름다움, 절제의 미라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다. 마치 땅 자체가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대함을 자각하고 있어 굳이 소리 높여 외칠 필요가 없는 것같다.’  < P. 39 >

 

위대함과 품위에 대하여 화두를 붙잡은듯 생각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영국의 전원 풍경도 위대함이요, 사람들이 자기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도 위대함이라 생각해 본다. 직업인이라면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을 바치는 것은 물론이요, 아울러 품위도 갖추어야 최고의 수준, 위대한 경지에 이르렀다 할 것이라 정의를 내려 보기도 한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달링턴 경를 모셨던 자신의 인생 35년의 세월은 품위와 위대함에 헌신했던 시간들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었던 것같다..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

어느 누구나 인정하는 위대한 집사란. 그저 무작정 유능하기만 한 집사들과는 다르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 데 거기에 가장 근접하는 의미를 담아 내는 것이 바로 이 품위라는 단어이다. 품위를 갖추지 못했음이 자명한 사람이 그것을 갖춰 보려고 애 쓰는 것은 못 생긴 여자가 아름다워지려고 애쓴 것만큼이나 헛된 것일 수 있다.  < p. 45 >


스티븐슨의 아버지는 최고의 집사였다. 스티븐슨은 아버지를 능가하는 집사가 되겠다는 의지로 일관되게 살아왔고, 스스로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며 지난 날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달링턴 저택은 정기적으로 서른명 이상의 손님들이 식사를 하면서 비공식적인 국제회담을 갖기도 하던 역사적인 곳이었다.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며칠씩 미리 오는 손님들도 있고, 그런 손님을 모신 시종까지 챙겨야 하기 때문에 살림의 규모가 대단하고, 스티븐슨이 집사로서 봉사하고 기량을 맘껏 펼칠 충분한 장이었다.


달링턴 경은 제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가해지는 지나치게 가혹한 입장을 완화시키고자 노력하던 온화한 성품의 신사이다. 1923년에는 달링턴 홀에서 국제 회담이 열리기 전의 준비 모임을 가지기도 했으며, 이런 일로 달링턴 경은 훗날 많은 고통을 받기도 한다. 

달링턴 경에게 생애를 바쳤고, 그 분을 모시면서 세상의 중심축에 다가갈 수 있었다는 자부심도 컸고,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만족감을 느끼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해 본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집사의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저명한 가문에 소속되었기에 가능했다는 부분도 인정한다. 



진정으로 저명한 가문과의 연계야말로 위대함의 필요 조건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명백해지는 것같다. 위대한 신사에게 내 재능을 바쳤노라고, 그래서 그 신사를 통해 인류에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   < P. 149 >”


스티븐슨이 자신의 전문성을 최고로 발휘하며 위대한 집사의 면목에 몰두하던 이 시절이, 실은 자기 인생에서 보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했던 순간이었음을 그 때는 몰랐었다. 아버지의 투병과 임종에 최선을 다 하지 못했고, 자신의 일에 최고의 협력자였고, 자기에게 연심을 품었던 켄턴양까지도 떠나버리게 했으니 말이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켄턴양이 관리하는 유능한 직원 둘을 내보냈으며, 집사로서 손님에게 충실하기 위해 켄턴양의 간곡한 당부에도 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일들, 켄턴양이 순수하게 나타내던 사랑의 감정을 전혀 읽으려 하지 않았다는 자책의 마음, 그 당시 좀 더 달리 행동했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그득히 쌓인다.


여행 나흘만에 아주 우아하게 늙어 있는 그녀와 상봉한다. 지난 날 생기 있고 발랄하던 모습은 다소 엷어진듯하고,어쩌면 조금 느려 보이는 듯한 태도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아본다. 켄턴양은 스티븐슨에게서 사랑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어 충동적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 저택을 떠났었고, 시간이 지나 자신이 저지른 일에 굉장히 놀랐으며, 당시의 경솔함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으로 오래 방황했노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지금은 편지를 쓸 당시의 심경과는 다르고, 이제 곧 손자를 볼 것이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근황을 말한다 .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 함께 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제가 아무 것도 아닌 일을 트집 잡아 화를 내며 집을 나와 버리는 것도 바로 그런 때인 것같습니다.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은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 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하는 거죠."


그녀가 마음의 평정을 찾아갔다는 말에 스티븐슨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고 만다. 일말의 기대감이 산산히 부서지며 가슴에 천둥소리를 낸다. 이제는 그만 뒤돌아 봐야 한다고, 하루 중 저녁이 가장 좋은 시간이니, 내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잘 활용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떠난다. 비 내리는 밤 한 없이 젖어드는 마음으로 그녀를 보낸다. 위대한 일과 품위를 추구했던 인생이 받는 대가는 크다.


켄턴양과 함께 먼 초원의 풍경과 잔디밭을 바라 보곤했던 순간들, 켄턴양이 집무실에 꽃병을 가지고 찾아오던 날들...........애써 무심을 가장하며 다가오는 사랑의 감정을 털어내려 했고, 지금은 그 때 내렸던 결정들이 자신을 몹시 외롭고 황량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누구나 무심코 흘려버린 소중한 것들이 있다. 함부로 던져 버렸던 기회가 아타까움이 되어 돌아오는 쓰라린 순간들도 있다. 사라져 버린 아쉬운 것들이 옷깃을 스미는 찬기운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지금이 그런 계절이다. 스티븐슨의 고독에 가르침이 있다. 마음의 창에 불을 밝히라고, 주위를 환하게 해주고, 스스로의 인생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빛을 선사하라고.....
 작은 얼굴을 디밀어 알아채지 못하는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해 보게 하는 잔잔한 감동의 소설이다. 


 스티븐슨은 쓸쓸한 회상의 순간에도 새 주인에 봉사할 채비에 게으르지는 않는다. 새 주인의 취향에 맞추려면 유머감각을 더 키워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 보곤한다. 위대한 성실성이라 해야겠다.

남아 있는 나날에, 일 다음에 일, 그리고 또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