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9년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책 속의 책

수행화 2019. 1. 18. 14:02

"제가 읽고, 잊어버리고, 다시 기억한 책들에 대한 호기심, 여러분을 그 책들로 유혹하기 위해 이 글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지면을 통하여 익히 아는 뇌 과학자 김 대식 교수님이 저자라 관심도 관심이었는데, 우선 표지 디자인이 산뜻하고 모던한데다 세련된 편집에 멋이 담뿍한 페이지 구경이 의외로 좋았다. 책 앞 뒤에 저자 프로필이 없어 내가 찾은 책이 맞나 잠시 갸우뚱해지며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떨궈야했다. 

1부 삶의 가치를 고민하라. 2부 더 깊은 근원으로 돌아가라. 3부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라. 4부 과거에서 미래를 구하라. 5부 답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라. 6부 더 큰 질문을 던져라. 는 주제로 깔끔하게 6부로 분류돼 있고, 지면의 여백도 여유로워 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은 했다. 그런데 1부를 미처 다 읽어 나가기도 전에 이미 '책 읽기의 혁명'이라는 부제를 이해하게 되고 또 범상치 않은 저자의 글 매무새에 놀라게 된다. 

오딧세우스, 아르튀르, 제임스 딘이 언급되면서 예사롭지 않게 시작한 책으로의 안내는 마지막으로 역사, 천문학, 물리학, 뇌과학, 정치학, 사회학, 철학 등등 이 모든 문제를 다루며, 400년 후의 미래를 걱정하는 중국의 '류츠신'의 책 소개로 끝을 맺는다. 책장만 열심히 넘겨도 엄청날 것같은 책들을 모두 머리와 가슴에 담았으며 사색을 통하여, 자신의 성찰을 통하여 글로 재생된 문장 같아서 마치 수준 높은 산문집 하나 읽는 감동 이상이라 하고싶다.                                                                                                                                       

저자가 깊이 아끼고 마음에 새긴 책들을 소개하는 글이라 여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단순히 맹렬한 독서가라는 범위에 저자를 구겨 넣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나는 가졌다. 책이 가진 에너지가 있다면 그걸 효율적으로 완전연소 시키는 빼어난 능력을 지니신데다, 요즘 자주 들리는 인문학적 소양을 출중히 갖추신 분이라는 걸 높이 사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이란 것이 이렇게 인생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구나 하는 감상이 저절로 들고, 추천 도서를 다 챙겨 읽지 못해도 저자의 깊은 정신세계를 한번 넘겨다 보는 것으로도 사치스럽다 여기며 족한 마음이 들었으니.


몇 년 전 읽은 최 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 도 이 책과 패턴이 흡사했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신 저자의 박식함과 부지런하심에 존경심이 우러났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우리가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건 그래서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해에 읽은 베스트셀러, '책은 도끼다' 도 비슷한 형식으로 좀 더 발랄하고 손쉽게 읽힐 수 있어 전혀 부담이 없었고, 내가 이미 읽은 책도 많이 언급되어 재밌고 가벼이 읽을 수 있었지 싶다.


질문은 참 어려운 주제라 생각한다. 남의 생각이나 사상을 받아 들이고 이해하는 건 하지만, 질문을 던지기는 어렵지 않은가? 관심 있어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주제 파악을 잘 해야 질문이 있는 것이라 질문이란 이해력의 높은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불교 법문에 '이뭣꼬'가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말로서, 의문을 가지고 관찰하라는 수행방법이다. 물론 의문을 가지라는 건 불교의 기본교리이다. 태어나면서 가지고 온 고통의 근원을 캐어 나가는 것도, 인연법을 이해하고 인과를 아는 것도, 이 모든 나의 것에 의문을 가지면서 출발하는 것이라 맹목적 추종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라 배웠다. 내 표현이 부족하고 단순하나 엄청난 깨우침이 있는 가르침이다. 


내용 이전에 '어떤 질문에 먼저 답할 것인가?' '대답에 앞서 질문을 찾아라.'는 소제목이 울림으로 유별하게 받아 들여진 건 나만의 문제일 것이다.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이 저자의 마음이라 받아 들이며 읽는데, 저자에게 영감을 준 책이 고전은 물론, 인류의 역사, 문화와 종교, 과학, 미래,......광범위한 분야인 것은 물론, 문장이 촌철살인이라 추천도서 형식의 고전으로 삼아야겠다 싶다. 질문은 어려운 숙제가 된다.

러시아 제국, 로마 제국에 관련된 주제에 머물면 역사 지식이 아주 부족한 나를 보게 되고, 움베르트 에코, 가즈오 이시구로, 버트랜드 럿셀, 제임스 조이스를 보게 되면 다소 긴장은 풀리지만 역시 읽을거리는 태산이다 싶어지기도 한다.

하늘이 어두어지거나 천둥 번개가 치는 장마철 밤에는 '베어울프 일기'를 추천하고, 추운 겨울밤에 읽고 싶은 책으로는 '이탈로 칼비노'의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를 추천하는 식이다. 오랜만에 밤을 새워 읽었다는 책도 있고, 죽음을 생각하는 책 등 두루 두루 진열대에 놓아 두었으며, 그 가운데 참 읽기 어려운 책도 있다고 쓴 부분에서 조금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감명은 다시 첫장으로 돌아간다.
"떠나는 자에겐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떠나는 사람은 없다. 그게 바로 헤어짐이다. 예전에 자신의 세상과 이별한 자에겐 도전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바로 성숙이다, 그리고 떠남을 경험하고 성숙한 자는 다시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 온 자는 더 이상 예전의 떠난 자가 아니다. 그게 바로 귀향이다. 이렇게 모든 영웅들은 결국 헤어짐, 성숙, 그리고 귀환을 통해 드디어 진정한 영웅이 된다."   < P. 18 >


진정한 영웅이 가진 공통점이 있으니, 영웅은 도전과 시련을 향해 떠나고, 두려움과 긴 고통을 이기고 성숙한 모습으로 귀환하여 마침내 영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귀환은 떠남이 전제되고, 두려움과 아픔을 견뎌야 하는 시간을 거쳐야 하고.....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에게 성장의 거름은 도전이라는 걸 영웅 얘기에서 눈 밝혀 읽어 보았다.   


"2000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는 코덱스,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을 가진 우리는 왜 여전히 실로 묶은 책을 사용하고 있는 걸까?

우선 책은 배터리가 필요 없다. 언제나 '켜 있고' 인터넷도 필요 없다. 원하는 페이지로 바로 이동할 수 있고, 무게도 가볍다. 거기다 가격도 저렴하니 말 그대로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책은 또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 바로 인간의 뇌가 몰입하기에 가장 적절한 형태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펴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눈은 글을 읽지만, 뇌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 읽는 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책"   < P. 74 > 


요즘처럼 스마트폰에, 게임에, SNS에 시간이 쓸려 나가는 세상에 책 읽기에 온전히 몰입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또 책이 넘쳐 나면서 책멀미가 나고 옥석을 가리기도 피곤한 노릇이니 이 또한 여렵긴 마찬가지이다. 책을 사랑하고, 좋은 책을 함께 읽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이런 분이 우리의 스승이요, 선구자라 해야할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혼자 있는 시간을 써야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어려움 하나가 보태진다고 해야겠다. 시간을 잘 쓰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일인 것인데 우리는 더부러 사는 세상에 있음이라.....
생각의 재료로 삼으려고 본문 한 부분을 다시 읽어 본다.


"지옥은 다름 아닌 타인들이다. 독일의 아르투르 쇼펜하우어가 했을 만한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우리 인간의 본질적 문제는 타인과 외로움을 동시에 두려워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는 순간, 더 이상 자유로운 자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고 혼자가 되는 순간, 나의 자아는 외롭다. 함께는 괴롭지만 혼자는 외로운 게 인간의 조건이기에 쇼펜하우어는 '함께 혼자 살기' 를 추천하다. 외롭지 않을 정도로 함께 가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결국 나 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 P.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