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9년

바다의 기별

수행화 2019. 2. 1. 10:53


회색 겨울은 아무래도 정들지 않는다. 눈이 흣날리고 쌓이는 환상적인 풍경이 아니라면 차거운 겨울비라도 뿌려 선뜩한 겨울맛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조금 배부른 투정을 하고 싶다. 메마른 대지에 트릿한 대기를 숨 쉬는 지금은 속수무책으로 봄만을 기다리게 된다. 봄은 어디메 쯤에 기별을 보내고 있을까? 기별과 기다림을 내내 생각한 탓인지, 김 훈 에세이, "바다의 기별'이 눈에 확 들어 왔다. 몇권 읽지 않은 내 독서이력으로 김훈 작가의 명문장은 매료되기에 충분하여 나의 분류법으로 그분의 글은 믿고 보는 편에 들어있다. 


'바다의 기별' 첫 페이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 p.13 >

기어이 사랑이라 부르는.....내 휘뿌연 기억 창고에서 소금기 머금은 희미한 바람처럼, 바다의 기별처럼 퍼져 나오는 이 친밀함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아......아주 오래 전에 한번 읽은 책이었다는 기억의 기별이었네!


"바다는 멀어서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바다의 기별이 그 물가에 와 닿는다. 김포반도와 강화도 너머의 밀물과 썰물이 이 내륙 하천을 깊이 품어서 숭어떼들이 수면 위로 치솟고 호기심 많은 바다의 새들이 거기까지 물을 따라 날아와 갯벌을 쑤신다. 그 작은 물줄기는 바다의 추억에 젖어서 겨우 기시기신 흐른다." < P.14 >

시인의 가을은 칼로 치듯이 온다고 했다. 그 가을 저녁 빈곤한 썰물을 바라보며, 사랑의 영세함을 호소하는 작가를 생각하며, 글의 아픔을 생각하며 또 잊혀진다고 할지라도 정독을 한다. 


작가가 현장 기자 시절이던 1975년 2월 15일 저녁의 일화에 이르러 기억이 선명해진다. 날이 저물어 기온이 영하 12도 아래로 떨어지는 서울 구치소 앞에서 돐 전의 아기를 포대기로 감싸 업고 칼바람을 맞으며 출소자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박경리 작가가 손주를 업고 사위, 김 지하 시인의 출소를 기다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사위는 지지자들에 에워싸여 곧 어디론가 떠났고, 아기 업은 장모는 먼발치에서 윤곽만 바라만 보다가 돌아가더라는 가슴 아픈 장면은 다시 읽어도 또 슬퍼진다.


"도심을 뒤흔드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는 다급하고 간절하다.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낀다."  < p.73 >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면서, 명령에 따라 재난의 한 복판을 뜷고 들어가는 젊은이를 보면서, 구조 기능이 정확하고 아름답게 작동하는 것에 신뢰감을 느낀다고 쓰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구하는 일, 불구덩이를 헤치고 사람을 구조해 내오는 장면은 지옥 속에서 펼쳐지는 찬란한 아름다움이라고도 했다. 전율이 오는 말이다. 

 어느 가정의 사랑하는 아들, 남편, 아빠인 그 젊은이들과 우리는 왜 무관한듯 살고 있을까? 소방차나 구조대가  출동하여 멋지게 구조하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내는 일이 아주 많다. 반대로 질서와 규범을 지키지 않고 사고를 유발하는 사람들을 나는 퍽 성토한다. 예를 들자면 폭우 예보가 빗발치는데도 개울가에 텐트를 쳐서 불어나는 물에 고립되는 사람들, 폭설로 등반이 어려운 산에 한사코 올라 사고를 내고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 구급차에 실려 구급요원을 폭행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우리의 미더운 조력자요, 각 가정의 소중한 일원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 않을까? 자기로하여 남을 위험에 빠뜨리다니........싫어하는 사람이 그래서 불어난다.

 

유년기에 맞은 한국 전쟁의 기억, 아버지와 장모님의 죽음으로 본 죽음의 개별성,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작가의 시선에서 사라져 가는 낙원의 풍경......무너지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공감을 보내는 섬세한 작가의 연필 끝을 경이롭게 바라본 시간이다. 시간의 새로움에 대한 성찰이 참신하게 들린다. 시간이란 매순간 새롭게 일어나 필름처럼 우리의 생명 속으로 흘러 들고, 우리를 스쳐 과거로 빠져드는 쉬임 없는 흐름인지라 내 앞의 시간은 언제나 새시간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지나버린 시간 위에서는 음악을 연주할 수 없어요. 우리가 음악을 연주한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반드시 다가오는 미래의 시간위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새롭다는 것에 대한 아주 분명한 증거입니다.   < p.159. >


작가의 힘 있고 서정적인 에세이를 읽다보니 하루 나절이 저문다. 작가가 피를 모아 머리로 썼을 것같은 글을 하나절 소일거리로 읽으니 송구함이 더해진다. 아까운 문장들 사이로 시선이 방황하다 어느듯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것만 같다. 대학에 시간학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 정도로 작가는 시간에 대해 생각을 많이한다고 한다. 매순간 공급받는 시간의 새로움을 새겨 들으니 책임감같은 게 느껴지는 것같다.
싫은 시간이 견디기 어려울 때 가끔 해보는 내 망상이 있다. 잠간 눈 붙이고 일어나면 힘든 시간이 폭포수를 만나 큰 낙차로 떨어져 나가버리고, 씻은듯 말끔한 새 시간이 유유히 와 주었으면 하는 되잖은 마법을 주문해 보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의 시간은 소망과 반대로 흐른다지 않은가! 시간 개념의 과학이 그렇게 말해줬다. 즐거운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원리가 시간의 상대성 이론이라고. 지금은 지루한 시간을 더디 가게 하는 궤에 걸린듯. 하여 마법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나는 이 건조한 풍경을 책이라도 읽으며 변화를 기다려야겠다.  


책 말미에 작가가 쓴 책들의 서문들과 수상한 책들의 수상 소감들이 실려 있어 글을 쓴 배경과 작가의 숨은 일화를 듣게 되어 재미 있고, 이해 되는 부분들이 있어 좋다. 또 평소에 우리말을 바르게 잘 써야 외국어를 잘 할 수 있다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글이 마음에 들었고, 독자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같아 공감을 보낸다. 지침이 곧 숙제가 되는 느낌이다.

 

"한국말로 글을 잘 쓰려면 영어를 잘 해야 되고 독어를 잘 해야 되고, 한문을 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이야기 합니다. 왜냐하면 한문이 가지고 있는 포함성, 개념을 규정하는 힘은 놀라운 것입니다......독일이나 서양말이나 한문이 갖고 있는 그런 명석성을 지향하면서 글을 써야 합니다."  < p.152 >


"봄을 빨리 맞으라고 2월은 숫자 몇 개를 슬쩍 뺐다. 봄 꽃이 더 많이 피라고 3월은 숫자를 꽉채웠다" 고 노래한 시인의 긍정하는 예쁜 마음을 닮아보자. 봄은 멀지 않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