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9년

그리울 때면 언제나~~

수행화 2019. 9. 8. 01:01

'링링'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태풍이 지금 서해를 지나는 중이라고 한다. "쏴아아 쏴아아" 소나기 퍼붓는 소리가 요란해서 내다 보니 거센 바람이 나무를 공격하며 머리채를 사정 없이 쥐흔드는 소리다. 무성한 잎새들로 뜨거운 여름을 자랑스레 버티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무력하게 부대끼는 모양이 아주 안쓰럽다. 가지를 꼭 보듬고 유연하고 지혜롭게 견뎌서 부디 꺾이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라 보았다. 풍속이 하도 빠르니 비구름 모을 말미도 없는 모양인데 마른 바람만으로도 위세가 이렇게 등등하다. 붉어진 가을 대추 한 알에 태풍 몇개가 담겨 있다고 하는 시인의 성찰처럼 그저 이 거센 바람이 가을의 전령이리라 여겨 보기로 한다. 

 

딸이 두 아이를 데리고 여름 방학 두 달을 나고 떠난 우리 집도 한바탕 태풍 쓸고 간 자리나 진배 없었지 싶다. 태풍 뒷설거지 하듯 아이들이 여기저기 흘리고 간 물건들 주워 담고, 부분적으로 옮겼던 가구들 제자리 보내고, 산처럼 쌓인 빨래들도 해내고,....아이들 올 때까지 침묵에 빠질 피아노 코드까지 뽑으니 이전 형태가 웬만하게 보였다. 할머니 집에는 태풍을 일으켰어도 저희들은 순풍을 안고 자기 집으로 떠났다. 짐 속에 웃음까지 뭉뚱그려 싸서 갔는지 우리가 파안대소하던 날들이 까마득한 옛 이야기같다. 갑자기 진공 속에 빠져 든 느낌이 조금 오래 간다.

 

나뭇잎에 살짝 가을물이 든 것도, 배롱나무에 진홍색 레이스 꽃이 오밀조밀 드리운 것도 이제 눈에 들어 왔다. 나무가 잎새에 가을물 들이려 마련을 하던 시간들, 배롱나무가 분홍 물을 올리며 화려한 여름을 구가했을 시간들이 무심결에 흘러가 버렸다. 나날이 동선을 달리해가며 도시를 탐험하듯 움직이는 아이들 시계에 완벽하게 맞춰주고, 색다른 감흥이나 무용담에 추임새들을 섞어가며 공감해 주는 사이 지나간 시간들이다.  

공부라면 둘째 가기 서러운 도시, 서울에서 공부 좀 하고 가면 좋았으련만 딸은 아이들과 합심하여 노는 일에 열을 올리다 갔다. '야구 렛슨''수영 렛슨''가상 체험 놀이''러닝맨 놀이'.....

 

아이들에게 서울 살이의 재미는 언제까지 현재진행형일지 모르겠다. 격년으로 오는 여행에 이제 중학교엘 들어가고 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즈음이면 재미라는 것도 한계 효용의 법칙에 들어 조금 시들해질 것같긴한데.....잘 모르겠다. 우리들 눈에는 그저 대중 교통 타고, 볼거리, 먹을거리 넘치는 도시를 누비는 것으로 보여 뭐 열광할 일도 없을 것같은데 나날을 그렇게 즐거워하며 보내니 온 집에 가벼운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런 사이 조금씩 키도 자라고, 새롭게 쌓여가는 경험에 마음 자라는 것도 보여 장하고 대견하게 여겨졌다. 올해의 특별한 경험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대중 교통을 이용해 집에 돌아온 날을 쳐야겠다.

 

미국은 어른의 보호 없이 아이들끼리 외출은 절대 안되는 일이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한국에서 도전해 본 것이다. 평소 대중 교통을 탈 기회가 전혀 없는 아이들이 이 복잡한 도시, 서울 도심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은 정말 아찔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엄마랑 외숙모와 함께 외출하더니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헤어졌고, 강남역까지 지하철 타고, 광역버스로 환승하여 용인시까지 오는 복잡한 코스를 실수 없이 해 낸 것이다. 
고속터미널이, 또 강남역이 어떤 동네인가! 지하도에는 파도타듯 쉬임 없이 인파가 넘실대고, 교통은 사통팔달인지라 복잡하고 산란하기 그지 없는, 말 그대로 핫한 동네가 아닌가! 우리말 조금 쓴다고, 한글 겨우 읽는다고, 핸드폰 하나 쥐어줬다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아이들과 빠이빠이 했다니.....도전을 감행해 보이는 것도 좋지만 위험천만한 일이라 뒤늦게 어른을 아니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 짬 내어 지인들과 커피숍에서 여유 조금 부리고 있던 나에게 "할머니, 그런데 오빠양(랑) 우리끼리 먼저 집에 왔어."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의 손녀 전화에, 이게 웬 말인가! 등줄기에 물벼락 만난듯 숨이 턱 막혀 기어들어가는 모기소리로 "뭐? 어떻게? 그래서 지금 어디야?", "할머니 놀래 줄려고 전화도 안 하고 집에 오는데, 아파트 앞에서 할아버지를 딱 그렇게 만났어. 그래서 뒤에 살금살금 따라 가서 '할아버지'하고 불렀지! 그래서 지금 같이 집에 들어 왔어" 

 

아이들 한국말에는 아직 애기티가 있다. 그 귀여운 목소리로 장면을 또박또박 설명하니 너무 사랑스러워 긴장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정류장 놓치지 않으려고 안내 방송에 온 신경을 집중했을테고, 낯 익은 풍경 찾으려고 창밖에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 마음 졸였을 생각에 콧등이 시큰했다. 온 지혜를 모아 길을 찾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일은 예사롭지 않아 아이들에게는 물론 내 헐한 기억으로도 잊지 못할 일이 될 것이다. 그날의 성취감과 만족으로 모험과 도전에 담대하게 임하는 아이들로 자랐으면 하는 바램을 보태본다. 감동은 늘 사소한 것에 있고, 거대한 성취만이 경이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봤다.

 

아이들 취향에 맞춘 영화 몇 편을 본 일도 기억할 일이다. 영화, 알라딘 의 감상은 독특했다. '아바타'나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입체적 영상은 크게 감동하며 봤었는데 4D 스크린 영화는 나에게 힘 들었다. 스크린에서 배가 움직이니, 우리도 함께 출렁여 멀미대장 나는 바로 멀미를 일으킬 지경이라 눈 감고 머리 붙잡고 신음 소리를 죽여야 했고, 귓전에 바람이 쉿하고 지나가서 놀라고, 등을 꾹꾹 찌르는 바람에 움찔해 가면서 영화를 본 것이다. 기습적인 장면 때문에 경계심을 내려 놓을 겨를도 없이 시종 이리저리 시달리는 사이 배려심이 남다른 손자는 내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스크린 보랴 할머니 반응 살피랴 영화 한번 번거롭게 본 것이다. 할머니 얘기로 웃음 꽃이 만발했더랬다. 

 

미국 작가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에는 어린 시절 가족 여행의 추억에 대해 많이 쓰고 있었다. 여름 휴가나 추수감사절에 할머니 집으로 가곤 하던 추억을, 엄마 아빠, 남매들과 자동차 안에 구겨져 몇 시간을 답답하게 가던 기억을, 짠돌이 아빠가 간식을 넉넉하게 사주지 않았다는 등 웃기는 일화들, 할머니 집 앞 뒤뜰을 누비며 장난질하던 즐거운 날들을 유머러스하게 그려가며 멋진 여행기를 펴 냈던 것이다.  읽기 좋아하는 손주들에게 이 책을 주문해 줘야겠다

 

TV 켜면 손흥민에 열광하고, 프로 야구에 몰입하던 외손자 생각이 두둥 떠오르고, 식탁에 반찬 늘어 놓다보면 "할머니 푸드가 너무 맛있어서 라면을 깜빡 잊어 버렸네.” 라는 손녀 말이 귓전에 와 맴돈다. 라면도 팽이버섯도 누들이라며 맛있게 먹는 귀여운 모습이 자라면서 변할 것이라 생각하니 미리 아쉬워진다. 입맛대로 먹으라고 사둔 온갖 라면들도 못 다 먹었고, 김치 한번 더 담아서 맛있게 먹이려던 일도 하지 못한 채 아이들은 떠났다. 매일 분주했던 것만 같은데 못다 해 준 일이 더 많고 미처 싸주지 못한 것도 왜 이렇게 많은지....

 

아이들이 떠나고 기분도 전환할 겸 그간 빠졌던 모임에 나갔더니, 모두들 "이 여름에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위로말이 쏟아진다. 체중이 조금 줄었지만 뭐 그렇게 힘들기까지? 내 마음의 배경은 그러했지만 "예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라고 대답하면서 그들의 걱정도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해 본다.

할머니 푸드가 소울푸드가 되고, 언니 누나들과 지낸 시간들이 살며 생각하며 마음의 지평을 넓혀준다면, 즐거운 기억들은 시간과 더부러 숙성하여 유년의 행복한 추억으로 영혼을 풍요롭게 해 준다면.....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을만큼의 보람을 기대하면서 한가닥 피로마저 떨구어 간다.

그리울 때면 언제나 "엄마" "할머니" 부르며 현관문을 들어서면 나는 좀 더 건강하게 반겨주는 엄마요 할머니로 여기 남아 있기를 소박하게 소망해 본다. 의무이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유럽 지역은 찜통 여름을 보냈다기에 우리도 늦더위가 미적거리며 진땀을 좀 빼게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빗나갈 것같다. 벌써 겹문을 닫고 도톰한 이불을 목에까지 끌어 덮고 자야 하니 8월이 채 거둬 들이지 못한 늦더위를 태풍이 실어갈 것만 같다.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는 열기는 가을을 사랑한 시인들을 생각하며 식혀 보기로 하자.

 

"주먹코인 저야 베옷 입어 마땅하나
눈썹 짙은 주인님은 글을 지으셔요
주인님이 시를 노래하지 않으시면
만추의 가슴앓이 누가 알겠나이까"


이전에 읽어 고전적이라 여겼던 싯귀가 미열에 적절한 해열제가 될 것같다. 더 낮은 자세로 가을을 섭섭지 않게 맞고 싶다. 마음을 낮추면 하늘은 더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