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22년

봉숭아 꽃씨를 받으며.

수행화 2022. 10. 23. 17:09

어느새 깊은 가을이다. 두꺼운 그늘을 깔아주던 나뭇잎들이 갈잎 되어 함부로 떨어져 내린다. 습기 머금어 싱그러웠던 풀빛은 가뭇 없이 사라지고, 곱게 물이 든 것도 잠시, 바람결 타고 비처럼 쏟아지다가 발치를 고이 덮기도 한다. 비우며 또 다른 생을 꿈꾸는 나무를 바라보며 순응을 생각한다. 

나의 옥상 꽃밭에도 가을이 내려 풀잎에서 가벼운 가랑잎 소리가 난다. 폭염과 폭우에 위태로웠던 시간을 간신히 추스리고 꽃까지 피우느라 힘이 들었나, 벌써 수척해 가는 모습이 애처롭다.
시든 꽃들을 잘라 주면서 내년에는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리라 꽃에게 약속해 본다. 작년 이맘때 미국 다녀오느라 집을 비우는 바람에 우리 소박한 꽃밭과 가을을 보내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늦둥이 백일홍이 그런대로 화려했고, 가을 장미가 따문띠문 했으며, 봉숭아가 장미 얼굴을 하고 피고 또 피던 터라 발걸음이 조금 무거웠으나 나는 무심을 가장하고 떠났었다. 주말에 와서 잘 돌보겠다는 아들 내외를 믿으니 미련을 버리고 떠날 수 있었지 싶다. 매 주말마다 아이들이 와서 물도 주고, 추위 타는 꽃들은 집으로 들이기도 하면서 돌봐주어 가을 겨울을 잘 났었지.

손바닥만 한 옥상 공간에 꽃을 들인 것은 작년 봄부터의 일이다. 큰 사각 화분에 화분 흙을 사서 채웠고, 수선화와 백합 구근을 사다 심었으며, 친구에게 꽃모종을 얻어 심고, 씨앗도 뿌려가며 나름 공력을 들였다고 해야겠다. 남이 들으면 참 시답잖은 소리이겠으나, 농사는 물론 화초 가꾸기까지 흙에 연관된 어떤 일이고 구경도 못해보며 자란 데다, 아파트에 살면서 꽃 가꾸기에 도전해 보았지만 늘 부족한 실력만 확인하던 나로서는 이 일이 여간 실험적인 도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왕초보로 면무식은 해야겠기에 인터넷을 뒤적이며 꽃 공부도 하고, 멋진 정원을 가진 분들의 동영상 구경도 하다 보니 거기에 또 하나의 재미있는 세상이 열려 있는 걸 보았다. 세상에는 예쁜 꽃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실로 놀라웠다. 


이런 어쭙잖은 주인의 손이지만 정성이 갸륵했던지 작년 봄 수선화를 시작으로, 달맞이꽃, 백합, 장미, 그리고 백일홍이랑 봉숭아까지, 줄지어 피어나니 감격시대를 살았지 싶다. 나는 얼굴이 깜둥이가 되도록 옥상지기가 되어갔고, 만나는 많은 이들의 걱정을 사고 말았다. 꽃을 보려면 응분의 노동이 따르는 법인데 어쩌겠는가! 꽃밭 바라보며 커피 마시기, 햇살이 비켜 간 자리에서 책이나 스마트폰 들여다 보기가 습관 되려 했으니 깜둥이 얼굴은 돌이켜지지 않았고, 급기야 미국에서 만난 딸이 놀라기도 했었다. 모자 덮어쓸 여유도 없이 급하게 나가는 버릇은 고쳐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지난겨울 시간에 내가 한 일은 손에 잡히게 떠오르는 것이 없고 오로지 봄을 기다리는 데 다 소모해 버렸지 싶다. 겨울 파종을 하면 좋다는 가드닝 고수님들의 말에 욱하여 인터넷에서 꽃씨를 구입해서 파종했던 일은 각별했다. 씨앗이 생명체가 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만 또 한 번 초보자의 낭패감을 맛보아야 했다. 사진으로 선을 보면서 이름도 예쁜 델피니움, 겹 접시꽃, 금어초, 한련화, 히말라야 양귀비를 선택해서 파종했었다. 암발아와 저온 발아의 조건을 맞추자고 난방 안한 방에다 두며 공을 들였건만 금어초와 히말라야 양귀비는 결국 싹도 구경 못했고, 델피니움 네 잎, 겹 접시꽃 다섯 잎, 한련화 다섯 잎은 성공했었다. 상식적으로 이쯤에서 광합성이 필요할 것같아 이제 겨우 눈을 뜬 애기싹에게 햇빛을 보여 줬더니 델피니움은 바로 시들어 버려 한 달 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한련화와 한 해를 넘긴 겹접시꽃 몇 줄기는 내년에 꽃을 보여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한 알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일은 오랜 기다림을 동반한 정신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수고를 싹 잊게하는 기쁨이 따르니 분명 중독성이 있을 것같다.

델피니움 파종 실패에 상심한 내가 보기에 딱했던지 딸이 미국에서 델피니움 씨앗 100 립을 사다 주어 지금 재도전 중이다. 이제 2주째에 접어들었는데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어둡고 서늘한 계단참에 자리 잡아 주고 단독으로 온도계 경비까지 붙여 주었는데도 말이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듯해지기를 기다리라고 읊은 시인의 충고를 새겨야 할 때가 지금이다.

꽃은 기다리라고 하고 생각하라고 한다. 조급한 마음은 인간 세계의 일일뿐, 꽃은 자기들만의 호흡으로 숨 쉬고, 자기들 고유의 시계를 바라보며 피었다 지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얼어붙은 화분 흙에 온기가 실리기를, 싹이 돋아 나기를, 탈 없이 자라 꽃을 보여 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모래 알갱이보다 작은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이 껍질을 벗고 분연히 밀고 나오는 일에 기다림으로 응원을 보내야 한다.

떡 잎을 보면 벌써 꽃을 분별할 수가 있었다. 연둣빛 여린 잎만 새싹이 아니라며 붉게 돋아나는 작약, 출생부터 강고한 귀족적 자태를 지닌 백합의 싹은 곧 알아본다. 그런데 콩나물 닮은 떡잎이 여기저기 질서 없이 돋아나 나를  잠시 시험에 들게 했었다. 처음에는. 백일홍이 자연 발아한 것으로 판단하여 자리를 잡아 정성스레 옮겨 주었는데, 나날이 끊임없이 솟아나와 콩나물 시루를 만들 참인 것 같아 황당했었다. 내가 씨를 부어 둔 것이 아니니 정체를 모를 일이라 잠자코 키워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잎이 넉 장이 되면서 잎사귀가 길죽해지고 가장자리에 미세한 톱니모양을 갖춘 것이 보여 봉숭아로 판명이 됐다. 이미 나온 것들에다 거듭 나오는 것들이 모이니 감당할 수가 없게 됐었다. 봉숭아 밭을 만들 공간은 안되고, 모조리 뽑아 버리자니 아깝고 불쌍하여 조금 실한 것들을 모아 뜰이 있는 친구네 두집에 입양을 보냈다. 그런데 입양된 아이들이 아주 귀염 받고 좋은 환경을 제공받으며 자라 여간 뿌듯한 것이 아니었다. 한 잎 한 잎 독채 화분을 마련해 주고 온갖 좋은 식단으로 키운 친구는 일찌감치 꽃을 보았다. 이 꽃 소식이 앞 뜰 노지에 심어 준 또 다른 친구와 나에게 조그만 근심(?)을 안기기도 했었다. 이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무렵, 마침내 이 친구네 뜰에도, 우리 집 꽃밭에도 꽃송이가 만발하여 미모를 자랑하는 날이 왔었다. 지루하고 고단한 코로나 시절 우리는 꽃 소식을 전하고, 사진을 돌려 보며 즐거운 에피소드 한 토막을 만들었다. 콩나물 사촌 같던 떡잎이 자라 크게 효도를 한 셈이다. 

아마도 작년 가을 봉숭아 씨앗들이 익어 저절로 터지면서 사방에 날아가 흙 속에서 겨울을 났던 것 같다. 이제 그 성정을 알아 올해 꽃씨는 받지 않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오통통하게 배를 부풀린 씨앗이 귀여워 살짝 만졌더니 웬, 바로 껍질을 또르르 말면서 내 손안에 씨앗을 떨구는 것이 아닌가! 마치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는 것에서 나는 바로 그들의 가을 언어를 알아채고 씨앗을 받기로 했다. 공간을 봐 가며 파종할 것이며 또 누군가의 집으로 입양도 보낼 것이다. 이 작은 씨앗이 꽃의 생애를 간직했으며, 긴 여정을 함축한 한 점이라며 바라보니 흔한 씨앗이 참 소중하게 보였다.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일은 자제하고 하던 일이나 잘할 것이며, 그것도 쉬엄쉬엄 해가며 점진적으로 줄이고 줄여 심플하게 살아 가리라' 나는 나에게 늘 다짐했었다. 그런데 지금 심플 라이프 열차를 거꾸로 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꽃이 내 관심 한자락을 물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꽃이 일로 보이거나, 꽃 바라기가 습관인듯 타성에 젖고 만족감이 떨어지거나, 아름다움에 둔감해지기까지는 거꾸로 열차에서 내리지 못할 것 같다. 화분을 햇빛 따라 이리저리 옮겨주고 - 사실은 무거워 끙끙대가며- 자잘한 풀도 뽑아주고, 흙을 채워 주는 등등 잔 일을 하다보면 문득 몹시 몰입하고 있는 나를 볼 때가 있다. 기도하고 앉아 있을 때와 다른 무심의 순간이 저절로 주어진 것이다. 소박한 꽃 몇 그루가 이런 뜻밖의 고요도 선사하니 당분간 진력나지 않을 듯싶다. 

 

봄은 더디 오고, 가을은 잰걸음으로 삽시간에 들이닥치는 것 같은 느낌이 왜일까 생각해 본다. 여름꽃이 져가는데도 준비 없이 어물쩡거리다 갑자기 고적해진 꽃밭을 보게 되어, 가을 발걸음이 유독 황급하게 느껴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급한 대로 단풍 빛깔 나는 남천 작은 한 그루를 사서 꽃밭 가운데 두어 붉은 점 하나를 더하니 가을을 안고 온 것 같아 참 행복하다. 

 

태화강변을 아름답게 가꾸어 낸 디자이너, '피트 아우 돌프'라는 분의 기사를 읽으니 불현듯 그 강변에 가보고 싶다. 첫눈에 보아 아름답지 않은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그분 말의 깊이를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