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다카마츠, 쇼도시마, 나오시마

다카마쓰. 쇼도시마. 나오시마

수행화 2023. 5. 24. 10:19

일본의 국토는 4개의 본섬(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시코쿠가 가장 면적이 좁다고 한다.
시코쿠는 가가와, 도쿠시마, 에히메, 고치라는 4개의 현으로 다시 나뉘고,
다카마쓰(Takamatsu)는 4개의 현 중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이다.

시코쿠는 태평양과 본 섬 사이의 고요한 내해를 안고 있어 바다, 산, 강들이 수려하고, 음식이 맛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오사카, 교토 등의 대도시와 가까운 데다 최근, 혼슈와 시코쿠 사이에 3개의 대교가 개통되어 세토내해를 육로처럼 달릴 수 있어 교통이 편리해졌다고 한다. 

다카마쓰는 일본의 전통 정원으로 '리쓰린 공원'이 명승지이고, 사누끼 우동의 본산지라 우동의 고장이라고도 한다.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나오시마', 쿠사마 야요이, 안도 타다오, 모네, 이 우환의 자취가 있는 그 섬에 가고 싶었다.

<사누끼 우동집>
시코쿠에 가면 우동을 꼭 먹어줘야 한다고 들었다. 예스런 지붕을 이고 있는 우동집은 원조라는 말이 아주 어울릴 외양이다. 하지만 이곳 가가와현은 우동집이 또 그렇게 많다고 했다. 소금 간장이 좋은 지방이라 음식 맛이 좋은가 했다.

아무런 고명이 없다. 면발이 보통 우동보다 조금 통통하고 우아하게 하얗다. 면발은 아주 탱탱 쫄깃해서 툭 부러지지 않는다. 제공되는 맑은 간장 소스에 적셔서 먹으라고 한다. 담백해 보이는 국물을 살짝 맛보니 엷은 소금맛이 난다. 맛 낼 재료가 안 보여도 매력적인 맛을 낸다. 가쓰오부시 국물까지 후루룩 거리며 먹는 우동과는 거리가 한참이다. 자연히 가닥가닥 얌전하게 음미하며 먹게 된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하루키의 여행법' '우동 맛 여행' 편이 있었다. 다시 펼쳐 보니 바로 '2박 3일의 가가와현 우동 여행'의 에피소드였다. "옳커니! 일본인들도 시간 내 찾아가서 먹고 싶은 우동이 바로 가가와 현의 사누끼 우동이구나" 했다. 우리도 산 넘고 물 건너  '사누끼 우동' 여행을 했구나 하니 사치한 느낌이 든다.

<야시마지 템플 >

절로 들어가는 길에 순례자들을 보았다. 이곳은 일본 불교 주요 종파 중 하나인 진언종(眞言宗)의 절이라고 한다.
진언종의 종조, 홍법대사의 인연과 수행의 족적을 따라 순례하며 불심을 충전하는 불자들의 순례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팡이 짚고 모자 쓴 순례객을 더러 보았고, 호텔에도 스님분들이 상당수 투숙해 계셨다.

사찰 입구의 안내판은 어디서나 눈에 익다. 덴표쇼호 6년(754년)에 창건됐다고 한다. 당나라 승려인 '간진 와조'가 야시마 섬의 '기타미네'에 보현당을 세우고, 보현보살상과 경전을 바치며 창건했다고 한다. 

야시마지(屋島寺)는 88 순례지 중, 84번째의 사찰이라고 크게 새겨져 있다.

절은 규모가 크고 경내는 부속 건물도 많다.관리가 잘 되어서인지 나이 든 절로 보이지는 않는다.

본당과 6관음좌상이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네 대웅전처럼 뚜렷한 존재감이 없어서 두리번거리다가 못 알아보고 나왔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았다고 말해야 한다.

세련된 건물이 나타나는데 휴게 공간이라고 한다. 예산을 많이 들여 건축했다는데 무슨 일인지 문이 꽁꽁 잠겨 있어 내부를 보지 못했다.

<야시마 전망대>
이 곳은 '세토내해 국립공원'에 속해 있고, 잔잔한 내해 풍광을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해발 200m 남짓의 낮은 산이다. 

<곤파라 본궁 올라 가는 길> 
바다의 수호신으로서 액을 막아 준다는 곤파라 본궁까지는 이 좁은 길, 785 계단을 올라야 한다. 지팡이 짚고 오르는 순례지들을 보면서 오른다. 양쪽은 기념품 가게가 즐비했는데 순면 거즈 제품이 많이 보인다. 하루키의 여행에서 작가는 이 유명한 계단을 뛰어오르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썼었다.

785계단을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오니 상점들이 나란했고, 좌석이 편해 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반짝 눈에 들어 와 가서 앉았다. 그들이 추천하던 아이스크림 이름을 기억하려 했는데 잊어버렸다. '버블...?'

1789년 창업한 양조장 건물이 이 거리의 역사를 말해 주었다. 실내에 대형의 정종병이 전시돼 있고 박물관 같기도 해서 내려오며 다시 보려 했는데 금세 문이 닫혔다. 주변에 온천 족욕장도 있어 피로를 풀라고 한다. 놀며 쉬며 하기 좋은 곳인 것 같다. 순례자를 위한 배려겠지만.

< 리츠린 공원 >

<리츠린 공원>

리츠린 공원은 에도 시대에 조성된 공원으로, 일본 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공원이라고 한다. 율림공원이라고 팸플릿에 적혀 있으나 밤과는 관계가 없는 전형적인 소나무 정원으로 보인다.약 370년 전에 사누키 지방의 영주 '이코마 다카도시'에 의해 조성되어 세기를 넘어 유지된 공원이라 설명한다.  6개의 인공 연못과 13개의 구릉을 갖추었다고 한다.

일본 특별 명승지로 지정된 공원

경내에는 1000 여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고 한다. 300년 간 장인의 손길에 보살핌을 받은 나무들은 분재를 확대한 형태와 닮아 키는 낮고 곡선이 독특했다.  소중한 자연유산일 것이다.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소나무가 수령을 말해준다. 

산책로 따라 걷다가 나직한 언덕에 오르니 예쁜 다리 하나가 그림같다. 리쓰린 공원의 랜드마크쯤 되는 다리인지 지면에 더러 소개되었었다. 봄 날 긴 하루 해가 산마루에 붉게 걸려 있는 걸 보면서 우리가 시간 가는 것도 잊은 채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쇼도시마>

아침 일찍 다까마쓰 항으로 이동하여 쇼도시마행 페리를 탄다. 1시간 가량 소요된다고 했는데 금방이다. 하루 여정을 바다를 바라보며 시작하는 것은 아주 상쾌한 일이다. 바다를 가르며 미동도 없이 움직이는 배 위에서 전망을 바라보노라니 마음의 힐링은 덤인듯하다.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날려 버리고 싶어지게 한다. 나직하게 누워 있는 작은 섬들도 소박한 등대도 마음의 정화를 가져다 주느니, 우리는 지금 일상 저 바깥에 와 있다는 게 실감된다. 여행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에인절로드' (Angel road) 들어가는 길.
배에서 내려 바로 앞 길로 접어들어간다. 연인의 만남을 도왔다는 전설(?)이 있는 길이다. 하루에 두 번 길이 열린다고 하고, 그래서 인연의 섬, 연인들의 성지라고 한단다.

약속의 언덕 전망대 오르는 계단. 

 위엄을 부리는 바다가 아니다. 그저 오솔길 걷듯이 편히 걸으라며 길을 내 주는, 인심 좋은 바다이다. 

걷다가 뒤돌아 보니 섬들이 마을 뒷동산처럼 순둥한 모습으로 떠 있다. 알록달록 지붕도 없고, 음식점 간판도 안 보인다. 우리네 섬들도 이렇게 점잖았으면 하고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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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맹세, 사랑의 완성을 염원하는 많은 소원패찰들. 

정상에 오르니 '연인의 성지'를 알리며 상징처럼 종이 설치돼 있다. 연인들의 이벤트용인지, 더 다른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지 못했다.  

안내  지도에 한글이 있다. 우리보다 먼저 다녀 간 이들의 공헌인가 싶다.

 

< 간키케이 계곡 >

일본의 3대 계곡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풍우에 깎이고 조각된 조형적인 돌무지가 계곡을 이루었다. 배경이 바다여서 어진 풍경을 선사하는 것이다.

계곡 정상은 특산품점도 있고, 식당이나 휴게 공간도 갖추고 있다. 예상보다 상춘객이 적어 우리는 여유 부리며 다녔다.

많은 예산을 들인 첨단의 화장실로 명성이 자자했다는 화장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공감이 잘 안되고 옛 추억의 스토리로 들린다. 아마도 그간 우리네 화장실 환경이 빛의 속도로 멋지게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 아래 펼쳐진 계곡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실 여유 정도는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1층에서 특산품 사들고 건물 위층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떡 벌어지게 차린 한 상은 아니지만 점심을 또 맛있게 먹었다. 

용암석 사이의 계곡은 급경사로 짧게 케이블 카를 타고 내려온다. 

 

< '24개의 눈동자'촬영장 >.

영화 '24개의 눈동자'작가 쓰보이 사카에((1899-1907) 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쇼도시마의 동쪽 끝, 세도 내해를 바라보고 있는 작은 마을에 조성된  오픈 세트장이다. 10,000㎡ 대지라고 하니 제대로 된 촬영장이다.

빛바랜 목조 건물은 허름해 보이나 정감을 불러온다.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의 촬영지로 잘 쓰인단다. 

미니어처 같은 개울에 맞춤한 다리도 아기자기하다.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 마을을 둘러 보는 기분이 된다. 

개울도 흐르고  광장 비슷한 공터도 있다. 지금은 마냥 고요하고 박제된 분위기에 깃발 홀로 나부낀다. 

인적이 드물어 셋트장인지 현재 식당으로 이용되는 곳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집들도 있다.

영화는 세토내해의 어느 분교에 부임한 여 선생님과 학생 12명과 20여년에 걸친 인연 이야기라고 한다. 1928년에서 40년 간의 이야기라고 하니 역사적으로 전쟁이 있었고, 패전의 고통이 있었겠고, 애환의 줄거리를 짐작하게 한다.

이 작품이 영화화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쇼와 31년(1956년) 11월 1일 개관된 촬영장이라고 한다.

 한 때는 열정적으로 일했을 탈곡기까지 정물이 되어 건물 입구를 꾸미고 있다. 세월의 두께를 생각함은 늘 그리움이 따라 와 콧등을 시큰하게 자극한다. 감상이 헤프게 밀려와 먼 바다를 한번 바라보고 건물에 들어선다.  바다는 그 자체의 서정성으로 이 장소의 아름다움을 책임지고 있다.

오래된 이 가옥들에는 사카에 문학관도 있고, 영화 갤러리도 있다고 하는데 뭣도 모르고 혼자 더듬거리다 나왔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꼼꼼히 챙겨 보면 좋을 것 같다.

교실 모습은 진정 감동이다. 유년기의 기억이 필름 돌린 듯 쏟아진다. 왜 어린 시절의 우리 교실과 판박이인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런 교실에서 공부하고 청소하며 국민학교를 다녔으니 우리들 추억의 공간같다. 

이런 풍경의 학교는 흔하지 않을 것이나 없지도 않을 것이다. 참 다녀보고 싶은 학교 풍경이다. 

우동집 메뉴판을 바라보니 먹지 않아도 주문해 보고 싶어졌다. 단체 여행에서 가망 없는 일인 것을. 

있을 것 다 있는 마을, 

오래된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거기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체통도 있고, 가게도 보이니 명색이 다운타운인가?

 


< 올리브 공원 >

온화한 기후로 일본 내 올리브 재배가 가능한 곳으로  그리스 분위기를 낸 것같았다. 여러 이벤트도 있고, 올리브 특산품도 판매한다

시원한 아이스크림, 올리브 커피 사 마시는 것이 쇼핑보다 즐겁다. 올리브 핸드크림이 추천상품이라고 했는데 이제 우리는 핸드크림이 아쉽지 않은 시대를 산다..

올리브 나무를 키우고, 라벤더를 가꾸고, 풍차를 만들어 포토죤으로 삼고, 마녀와 빗자루 장면을 연출하여 자신만의 사진을 갖게 하고..... 등등으로 지중해 풍경을 즐기라고 한다. 빗자루 들고 풍차 쪽으로 향하는 방문객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올리브 마을을 마음에만 담아 왔다. 

태양의 선물

올리브 마을을 상징하는  확실한 조형물이 있다. 한국 작가, 최정화(61) 의 작품이라고 한다.아주 반가웠다. 작가는 이미 해외에서는 명성이 높고, '2022 FIFA 카타르월드컵'의 기념 조형물을 제작하기도 했다는데 우리는 왜 미리 몰랐을까? 문화적 소양이 미천함을 절실히 느낀다.

가까이에서 보니 올리브 잎이 강인한 생명력을 뿜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잎새의 표정도 변하는 것이, 그냥 멋지다..  

 식사가 부실하리라는 사전 정보가 무색하게 맛있게 밥을 먹는다. 가이세키 정식은 다른 도시에서도 더러 먹었는데 이곳이 조금 더 정성스러워 보이고 맛있었다는 생각이다. 미각도 얼굴 생김새처럼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 일행 모두의 의견이라 틀리지 않을 것이다.

소박한 산이 호텔방 눈높이에서 보인다. 이곳은 테이블마운틴처럼 정상이 편편한 산이 많은지 더러 지나쳤다. 핸드폰과 더불어 기운 100% 충전하고 길을 나선다

 

< 나오시마 : 직도 (直島).> 

나오시마는 시코쿠와 혼슈 사이에 있는 작은 섬으로 행정구획 상으로는 가가와 현에 속한다. 1990년대까지 구리 제련소가 있던 섬으로 산업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섬을 떠났고, 쓰레기가 넘쳐나는 버려진 땅으로 남게 됐다고 한다. 이때 혜안을 가진 한 기업인은 이 섬의 재생을 구상하면서 버려진 땅들을 사들였다고 한다. 선대부터 교육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베네세 그룹(Benesse Corporatio) 의 '후쿠다 소이치로' 회장이 장본인이다. 그는 이 사업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 맡겼고, 오늘의 나오시마가 예술인의 성지로 부활한 배경이다..

다시 다까마쓰 항으로 나가 나오시마 행 페리를 타고 50분 이동한다. 이 섬에 대한 정보는 제법 알고 있었으나 백문은 불여일견인 것이다. 기대감을 부풀리며 배를 탄다.

1997년부터 시작된 베네세 그룹의 아트 프로젝트는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시작으로, 2004년 지중미술관, 2010년 이우환 미술관을 순차적으로 개관했다. 지금은  세계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자연을 배경으로 전시되어 있어 섬 전체가 미술관이 된 것이다. 나의 관심사는 역시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작품이었다. 

< 창 밖으로 노란 호박이> 
섬 전체가 미술관이란 말이 실감되는 순간은 의외로 빨리 왔다. 바다를 끼고 가는 버스  길은 아늑한 바다가 파노라마 전경을 펼치고 있어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그 무심한 시선에 노란 점 하나가 불현듯 들어와 설마 했더니 역시나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작품이다. 얼마 전 태풍이 덮쳐 화를 입었다는 뉴스를 접했던 터라 몹시 반가웠다. 예술품을 이렇게 비바람에 함부로 노출시켜도 되나 하는 걱정 먼저 하고 급하게 사진 한 장 찍으며 지나쳤다.

바다 풍경으로 장면이 다시 바뀌니 조급하고 흥분되던 마음도 곧 평정심 모드가 된다. 

정원을 사랑하고, 정원사인 모네. 모네의 그림처럼 꽃이 있는 연못을 재현해 뒀다. 친절한 미리 보기이다. 꽃창포, 패랭이 꽃이 피어 있는 오솔길을 걸어 미술관으로 간다.

< 지중 미술관 입장권>
건물의 대부분을 지중에 건설했다하여 지중 미술관이라고 한다. 클로드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영구 전시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한다. '안도 타다오'는 건축가 이전에 철학자요, 기하학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원주의  '뮤지엄 산'도 산을 품은 뮤지엄으로 방문객에게 적잖은 감동을 주고 있는데.....천재의 영감은 이 곳에다 기상천외한 세상을 펼쳐 놓았다고 그림이 알려준다.

<지중 미술관 입구> 
소설에서 흔히 묘사되는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소박하나 멋스럽다.

자연광이 비치는 방향을 바라보고, 우리의 시력으로 알아서 가야 한다. 알록달록한 안내 표지 같은 거 아예 없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은 벽면이 구분하는 물리적인 공간 따로, 빛이 분할하는 가상의 공간이 또 따로 보인다.
눈여겨보면서 걷게 된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면 나타나는 밝은 공간에 초록빛이 반전이다. 색종이 오려 붙인 듯, 작고 앙증맞은 네모 정원이다.

벽에 바싹 붙은 계단을 오르니 내부를 짐작도 할 수 없다. 잘라 놓은 하늘만 잠시 바라 보고, 건물 살피기에 눈도 마음도 바빠진다. 

우리는 네모 난 하늘, 삼각형 작은 정원들을 지나간다. 인공조명을 보지 못했는데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의 풍경은 또 어떨까 궁금해진다.

어두운 실내를 조심히 걷다 보니 불현듯 소설 속의  '몬테크리스트 백작'의 시력이 부러워졌다. 어둠에 완벽히 적응된 그의 시력은 어둠이 어둠이 아니어서 대낮처럼 살아냈다지 않았던가!  어둠이 불편해서 잠시 망상을 피운다. 우리는 지나치게 밝은 환경에서 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사각 창의 의미도 모르면서, 설계의 비밀도 모르면서  네모 난 하늘만 바라보았다. 코끼리 다리 만져보고 요모조모  궁리하는 형국과 다르지 않다. 입장권 사진만 유심히 봐도 알 수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인데 말이다. 면과 면이 부여한 공간은 이 사각 하늘에서 자연광을 제공받는 것이 설계의 요점이다. 

멋진 공간에 돌벤치도 작품의 일부 같다. 전시실 앞은 늘 대기줄이 있어서 준비한 것일까? 의자 삼아 앉으니 매끈하고 차가운 감각이 좋아 만져도 보면서 잠시 기다린다. 이런 곳에서 기다림도 휴식이요, 즐거움이다. 여기서부터는 촬영도 금지, 대화도 금지. 안내원이 플래쉬 비춰가며 금지 사항 안내문을 보여준다.

삼각 김밥 같은 공간에 자갈, 사각 공간에 풀....공간을 삼각 사각으로 요리조리 오려서 다시 붙이기 한 작품 같다. 

모네는 빛을 그린 작가라는 걸 우리는 안다. 분,초가 모여져 시간이 되고 하루가 되듯이, 잘게 부서진 빛이 모여 색깔을 이루는 미묘한 변화를 관찰했을 모네와 빛의 작가라는  터렐의 작품은 빛을 구하는 공통분모가 있어 보인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 철학과도 의미심장한 공감대가 있을 것이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은 조각조각 보았다가 나중에 조합해서 전체를 이해해야만 할 것 같다. 생각하게 하는 집이다. 

모네 수련 5점을 관람했다. 모네가 석양 무렵이나 새벽 여명에 그린 그림일까? 자줏빛과 심해의 푸른빛이 깊이깊이 어우러진 수련 정원을 눈에 담고 나왔다. 모범적 관람인으로 사진 한 장 없이 기억에게 미루고 나온다.

이정표 따라 이우환 미술관으로 간다.

베네세 하우스 의 베네는 라틴어의 베네(bene/좋은)와 에세(esse/존재)가 조합된 말이라고 한다..

내리막 길도 한적한 소풍길 같다. 야외 전시장이 있다고 해서 들어가니 연못에 은빛 구슬이 그득히 떠 있다. '나르시스'라고 하는데 작품 설명을 못 들었다. 

호수에 떠 있는 은색 공이 다글다글 움직이며, 햇빛에 반사광을 뿌린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니 은빛 해바라기 꽃모양을 연출하기도 한다.내 모습 남이 보고, 남 모습 내가 보니, 우리 모두도 타인의 거울일 것이다.

푸른 하늘, 흰 구름을 오롯이 담고 있던 구슬은 내가 다가가니 내 모습을 비춰준다. 전혀 나르시시즘을 추구하지 않는 나는 잠시 나르시스가 되어 사진을 찍고 있다. 작가의 의도에 부응하는 의미도 되지 않았나 싶다. 

작은 불상들도 뜰에 나와 계신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앉아 계신다. 불상 보는 눈이 높은 우리에게는 그렇게 심오해 보이지 않으나 외국인들은 오래 바라 보고 사진들도 많이 찍고 있었다. 사실 이곳은 전문 예술인의 안내가 필요하고 아니면 해설을 들으면서 다녀야 좋을 것 같다.

2010년에 개장한 이우환 미술관

점과 선의 화가는 둥근돌을 사랑한 것 같다. 장대같이 긴 직선 기둥은 선이고, 크고 작은 바윗돌은 커다란 점이라도 되는 걸까?  이곳에서는 걸음을 재촉할 일이 아니다. 어슬렁 거리며 사색해야 할 일이다. 고운 잔디가 선(禪)의 바탕을 깔아준다. 예술가, 이 우환의 미술관이 안도 타다오 건축물에 담긴다는 것은 영혼의 단짝 만난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아름다운 예술의 섬에 우리 작가의 미술관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뿌듯했다. 외국인들이 이 우환을 일본인으로 알기도 한단다. 위작 논란으로 매스컴에 회자한 것이 유감이나, 그것도 세계적 작가여서 발생한 일이다. 우리는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이곳에 자부심만 가지면 될 것 같다.

이 우환 작가의 전시 작품 역시 촬영할 수 없어 머릿속에 저장만 하노라 하고 나온다. 콘크리트 벽이 갑자기 예술품 같아 보여서 잠시 감동하고, 조신하게 걸어 나온다.

<베네세 하우스 입장권>

베네세 하우스에서 점심을 먹는다. 치킨과 스파게티 정도로 메뉴가 단순하다. 창 밖으로 야외 테이불도 있고 여유 부리기에 딱 좋은데 마음이 급하다. 매슈드 포테이토가 곁들임이라 치킨 세트를 주문했더니 매슈드포테이토 양이 딱 작은 상투과자 한알 정도였다. 그래도 맛나게 요기했으니 됐었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 구경

도시 재생의 상징 같은 작품인가 한다. 폐기물의 잔해, 목재가 작품이 된 것이다.

걸어오면서 만난 난파선이 작품으로 여기 잘 전시돼 있다. 중국의 설치 미술가, '카이 구어 치앙'(Cai Guo Qiang)의 작품, 'Melting bath'라고 한다.

Richard Long, 'Mud circle'
진흙이 원형을 이루었다고? 진흙에 종이를 이겨서 바른 것 같다. 한지 질감 같은 느낌이 있다. 바르고 그리고 공력이 보이는 대작인가 한다.

태극기 찾느라 이 작품을 조금 오래 바라보았다.

꽃인가 하며 다가가니 종이나 헝겊을 접은 작품이다. 산업 폐기물 더미에서 수거한 재료들도 예술가의 손길로 작품이 됐다. '야니스 쿠빌라스' 작품이라고 한다. 쓰레게통에서 태어난 장미다발. 그런 의미 같다.

Kan Yanud (야스다 칸 )의 Secret of the sky (하늘의 비밀).: 1996년.
포근한 솜 방석 같은 이 작품이 대리석 작품이다. 9m의 콘크리트 벽이 둘러친 손바닥만 한 여유 공간에 방석이니... 설치 미술은 그림의 떡이 아니다. 앉아 보고 만져 보고 쉬어가도 좋지 않느냐는 의미를 던지는 것 같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가 작품 하나 만나고, 또 눈길 돌리면서 작품 둘 보고.....나오시마는 그런 섬이다.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심히 스쳐 보내기 십상이라 살피며 걷게 된다는 말이다. 보물 찾기가 따로 없다.
'Three Squqre Vertical' by Digiral geoge rick

시선을 해변 쪽에 두고 걷다 잠깐 시선을 돌리니 베네세 하우스 뜰에 또 작품 같은 것들이 보인다. 원, 아이들 놀이기구로 여겨 지나칠 뻔, 갈 길은 멀고, 볼 것도 많아 눈 인사만 던지고 작별한다...

바다와 소나무의 조합은 늘 환상이다. 작품 찾기에 너무 몰입했었나! 걸으며 보게 되는 이 바다 풍경도 그림이다. 자연이 시간을 두고 설치한 예술품이다.

<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노란 호박 >
나오시마 섬에서 가장 어필하는 작품은 단연 호박이다.이 섬을 찾는 사람에게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프리 티켓이 주어진다. 도자기처럼 윤기 나는 소재는 강화플라스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제작이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슨 어쭙잖은 염려인가 싶지만 그녀는 올해로 94세인 노령의 여인이다.

지금 전 세계는 이 조그만 일본 작가의 작품으로 열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루이뷔통과 콜라보한 제품이 그야말로 돌풍을 몰고 와 작품마다 각양각색의 물방울이 튀고 있다. 본사 매장 인테리어도 물방울을 내다 걸었고, 심지어 빨간 머리 작가의 모습까지 건물에 매단 사진을 보았으니 이만저만한 바람이 아닌 것이다. 

강박증을 몹시 앓았다는 작가는 외로움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담대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호박의 자태가 그렇게 보인다. 의지와 집념으로 점철된 한 여인의 인간승리를 읽은 감동이 이 곳에 있다.
쿠사마의 ‘페인티드 도트(painted dot)’ 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아주 광범위하게 디자인에 적용되어 있었다. 물방울 모티브를 변화무쌍하게 재해석하여 의류, 가방, 신발 등에 신선함을 더하고 있었다. 

나오시마 695,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미술관 이전에 마을 개량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 후 20년의 마을 모습이다. 

골목 풍경. 빛바랜 목조 주택의 벽면이 메뉴판이 되고, 광고판이 된 멋진 집을 더러 본다. 마을 재생의 쉽지 않은 일을 구상하고 만들어 낸 기업인의 예지력과 추진력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한 때 쓰레기가 넘쳐나던 섬이었으나 지금은 인구가 속속 유입된다고 하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해야겠다. 

지금도 나오시마 재생 사업은 진행 중이다. 폐자재를 모아 집이 되고 예술품이 된단다. 너무 지친 나머지 예정했던 재생 예술품 전시실 관람을 포기하고 만다.

폐품 수집도 어렵지만 응용 예술이 얼마나 어려우랴

예술 마을에 멋진 호박 버스가 운행된다. 타 보질 못한 것도  아쉬움이다.  

나오시마 프로젝트에 깔끔한 동네 골목도 사업인가 싶다. 슬쩍 보아도 단정한 주택들이 아주 눈에 들어온다. 안쪽에 안온한 정원이 있어 보이는 어떤 집 모습. 실례인데 조심스레 사진 한 장을 찍어본다.

넓어 보이지 않은 집인데 꽃을 이렇게 어여쁘게 가꾸었다. 행인들에 즐거움을 안기는 이런 것이 재생 사업일 것이다.

부둣가 열린 공간에 빨간 호박이 그 모습도 당당하게 앉아 있다. 누구의 발길도 막지 않으니 예술품이라 주눅들 일도 없다. 쿠사마 야요이 작품을 함부로 내다 놓았다며 염려하던 내 생각이 비좁다는 걸 지금 느꼈다. 이 섬을 찾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또 그들 모두에게 추억의 일부가 되어주는 크나 큰 일을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참  큰 그릇이다.  

몇 개의 검정 점박이는 동그란 구멍이어서 신선하고 재밌다. 장엄하면서 사랑스럽다. 둥근 호박 방에서 동그란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마음은 동심이 된다.

빨간 호박이 점점 멀어져 아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뱃전을 지키고 바라보았다. 
나는 언제나 아름다운 여행지를 떠날 때면 혼자 던져보는 작별의 인사가 있다. "아름다움이여! 잘 지내라"
노스탈자의 손수건처럼 작별의 손수건을 마음으로 흔들어 준다.
안녕! 나오시마!

저녁상을 받으니 긴장이 풀린다. 같은 집 다른 밥상이라 성의 있어 보였다. 잘 먹었어요!
여행은 걷기가 기본이다. 내 폰의 만보계는 오늘 또 기록을 갈아 치웠다. 아니 받던 폭죽 축하를 받아 즐거웠다.

5월 10일 새벽에 출발하여 그 나름으로 바쁜  3박 4일 일정이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해도 되려나? 소비해 버린 세월이 아쉬워 잠시 슬퍼진다. 그래도 참 감사한 일이 더 많아 행복하다. 함께 여행한 우리 도반들에 감사하고 사진 찍는 데 도와준 날씨에도 감사한다. 내 나쁜 시력으로도 그런대로 사진을 잘 담아 준 내 폰에게도 감사한다. 수월할 일을 어렵게 만들며 불편을 한껏 안겨 준 내 눈에게도 그래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