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23년

김 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수행화 2023. 7. 18. 13:46

김 영하 작가의 책은 대부분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것 같고, 나도 걸러가며 보아도 제법 읽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나는 2010년도부터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의 애청자로서 작가가 차분한 음성으로 들려주는 책얘기들을 상당히 좋아했다.

이번 신간 소설 '작별인사'에도 역시 관심이 집중된 모양이다. 책 출간과 거의 동시에 도서관에 대출 예약 신청을 해두었건만 차례는 오지 않고 하세월 따분하게 기다리던 중, 책바라기, 나의 젊은 벗이 자신이 최근 읽은 책 목록을 보내왔다. '작별인사'도 나란히 얹혀 있어 달려나가 책을 샀고 아무런 기본정보도 없이 곧 읽었다. 배경이 휴머노이드가 보편화한 미래의 세상이라  SF 영화 보듯 읽으면서 아주 시의적절한 주제라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하나보다 생각하며 읽었다. 

철학을 전공하고 '인공지능의 윤리적 선택'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아빠, 김 진수는 아들 철이와 휴먼매터스 랩에서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 철이는 아빠의 지도 하에 잘 짜인 커리큘럼으로 홈 스클링을 한다. 고전을 섭렵하고 고전 음악을 듣는 등 지적 역량을 쌓아간다. 

어느 날 철이는 아빠 마중을 나갔다 갑자기 체포되는 일이 발생한다. '미등록 휴머노이드' 로  위법적 신분이라 체포한다는 황당한 말을 듣는다. 무등록 단속법이 통과 되어 단속이 강화되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철이는 영문을 모른 채 수용소에 갇히고 아빠의 구조만을 기다린다. 이 수용소에는 단순히 기계적인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기능을 거의 갖춘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 그리고 등록되지 않은 인간 군이 동시에 수용돼 있다.

그곳에서 철이는 민이와 선이를 만난다. 민이는 일반 휴머노이드 모델이고, 선이는 인간의 유전자에 의해 태어난 인간이지만 유전자 복제, 편집 기술로 연구실에서 태어난 몸이니 가계가 있는 인간과 달리 취급이 된다. 인간의 장기교체나 기타 여러 연구 목적으로 선이와 같은 복제 시스터 브라더의 출생은 늘지만 인간으로의 어떤 보호도 받지는 못한다. 철이는 김 진수의 생물학적인 아들이 아니라 최신형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라며 애완이 취급을 받는다. '인간이냐 기계냐?'는 의문을 낳게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수용소에  실려간 휴머노이드는 간단하게 해체되고 기억도 지워져 부품을 재활용하게 된다. 선이는 수용소 내에  쌓여 있는 휴머노이드의 장기에 가격을 책정하고 교환을 성사시키는 등 경제 활동을 활발히 하는 한편, 철이와 민이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그중 203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구형 휴머노이드는 인간 피부가 대중화되기 이전 제품이라 세월이 가도 얼굴이 주름지며 늙지 않고, 변색 되어 바랜듯하며 낡아지는 느낌이라고 평가하는 등에서 이 시대적 배경은 먼 미래라는 힌트를 얻는다.

휴머노이드는 기본적으로 모바일 컴퓨터이므로 계산능력, 암기력, 과학적 추론 등 여러 면에서 인간보다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여기서 고도의 기억력이나 연산 작용 능력을 제한하는 대신, 인간적 감정을 가진 감성적 인공지능을 연동시켜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라는 인조인간 로봇을 제작한 것이다. 가장 인간다운 로봇,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유구한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의 역할이 철이 탄생의 목적이다. 

한반도는 통일 되었고, 평양이 '휴머노이드 특화 도시'로 지정되어 많은 지원을 받으며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김 진수 박사는 '인류의 미래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될 것이라는 이론을 주장한다. 이미 심장박동, 혈압, 혈당 등 많은 인체 작용들이 수치화하여 기계에 기록되어 관리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남북한 통일 이후 내전이 거듭되면서, 수용소도 공격을 받게 된다. 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고  선이와 두 로봇은 수용소 탈출에 성공하나 민이는 몸을 잃는 사고를 당한다. 민이의 치료를 위해 재생 휴머노이드인 달마를 만나게 된다. 선이는 달마에게 민이의 소생을 의뢰하면서 달마의 정신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설은 쉼표처럼 잠시 생각할 짬을 준다.

달마는 말한다. "인간의 삶이란 기쁜 순간보다 갈망으로 괴로워하고, 또 나이 들어 죽음을 걱정하며 살아가는데 민이를  굳이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이 옳은 일이겠는가 하는 소견을 말하고,  선이는 의식 있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민이의 소생을 주문한다.

달마 사상에는 생로병사의 고통이라는 불교 생사관이 보이고, 선이의 생각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를 설하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나타나 있다. 생명은 사후에 육도를 윤회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축생이나 아귀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최상의 근기를 지녀야 하고, 지극한 선업을 쌓아야만 가능하다는 설이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거북이가 널빤지 하나를 만나 몸을 의지하는 정도로 희귀한 일'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비록 출신이 비천하고 곤궁한 환경에 처한다 해도 그 생명 자체는 어렵게 얻은 것이고 대단히 값진 것이니, 인간은 모름지기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인생을 가치있고 성실히 살아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선이는 생명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선이는 수용소에 들어오기 전부터, 우주의 모든 물질은 대부분의 시간을 절대적 무와 진공의 상태에서 보내지만 아주 잠시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어 우주정신과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여겼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믿었다. 의식이 살아있는 지금 각성해서 살아내야 한다고 했다.  < P. 100 >

."이 우주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정말 드물어요, 비록 기계지만 민이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감각과 지각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어요. 고통도 느꼈지만 희망도 품었죠.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 P.  151 >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압도적으로 생산해 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인간만큼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른 종을, 우리 기계까지도 포함해서, 착취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가축화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수로 번식시키기까지 했습니다.   < P.  153 >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 P.  160 >

 민이는 몸을 다시 받았고, 감정을 가진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정체성에 혼란이 온 철이도 현실에 적응해 나간다. 한 편 아빠는 철이의 반환을 요청하는 소송에 패하고, 모든 장비 박탈에다 해고까지 당하면서 정신적 이상징후까지 보인다. 불안에 시달리던 아빠는 머리에 칩을 심은 후에 마음에 평화를 얻게 되었고, 격전이 지나간 폐허에서 몸체와 분리된 머리만의 철이를 찾아 집으로 데리고 온다. 철이의 정신은 여러 차례 몸이 바뀌는 과정을 거친 후  인간의 몸을 다시 얻게 된다.

철이는 곧 인공지능 안면인식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전 세계의 카메라로부터 받은 이미지를 분석해 가며 선이의 행적을 찾는다. 오호츠크해 연안 부근에서 선이로 추정되는 인간을 발견하고 찾아 나선다. 드디어 백발이 성성한 선이와 재회한다. 서로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함께 지내다 어느 날 선이의 죽음을 지켜본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예감하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편안해하는 선이를 보니...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작별의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허락된 아주 잠깐의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  < P. 258 >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독백을 남기며 선이는 숨을 거두고 인간의 세상은 완전히 끝이 난다. 마침내 인류는 멸종에 이르렀고, 넓은 대지에  인간을 닮은 존재, 철이 혼자 남게 된다. 


 소설은 인간의 기능을 거의 갖추고 인간적 감성까지 지닌 휴머노이드가 이 냉혹한 세상을 살아내다 죽음에 이르는 생애를 그리고 있다. SF 영화나 만화들이 크게 흥행했지만 애써 찾아서 보지 않은 나는 다만 작가의 공부와 상상력에 의존하며 SF 영화 감상하듯이 읽었다 

요즈음은  AI에 관한 이슈들이 봇물 터졌나 싶게 매일매일 쏟아진다. 이 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두뇌를 능가하는 것에 놀라면서 인공지능의 지력을 실감했던 것같다. 지금은 IT, AI 산업의 발달이다 뭐다 하며 많은 분야가 빛의 속도를 내며 달리니 바라보는 우리는 어지러울 뿐이다. 기계가 일해 주는 은행에서, 기계에다 주문하는 식당에서, 로봇이 커피 만들어 주는 카페에서, 사람 대면할 일은 슬슬 줄어드니 우리는 기계 비위까지 맞추며 살아가누나 하는  씁쓸한 기분도 든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현실에서 테마를 얻었으니 상상을 쫒는 재마가 있다. 세차게 불어닥치는 디지털 광풍 앞에 한 없이 작아지고 있는 자신감이지만 어쨌거나 디지털 문맹자 군에는 들지 않을 노력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하며 산다. 

크라우드로 올라간 휴머노이드의 의식들은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찾아 이용하고, 현존하는 최고의 인공지능들과 연결되어 말 그대로 집단 지성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지적은 현재 진행형이고 광범위한 활용에 따른 부작용들도 속속 드러나는 것 같다.
미국 할리우드의 작가와 배우들은 AI가 자신들의 연기를 대신하고 작품을 훔쳐 간다고 파업을 벌였다는 뉴스를 접했다. 모르긴 해도 많은 시간과 노력 끝에 얻은 지적재산을 인공지능이 삽시간에 흡수해서 자신들의 이익추구에 사용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요즘 흔히 사람의 아바타가 등장하는 일도 잦아 우리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한다. 연설도 하곤 하던데 이런 영상들을 보면, 곧 거짓 뉴스 만들기는 식은 죽먹기인 세상이 올 것같은 불안도 있다.

소설은 인간이 이렇게  점점 더 기계에 의존하면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변화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에 빠져든 미래를 보여준다. 판박이 같은 의무교육은 무용하니 사라져 버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성가신 일들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반려견, 반려묘, 반려인간을 필요에 따라 쇼핑해 들여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21세기 초 급격히 떨어지던 출생률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설정도 미래 사회의 가정으로 일정 부분 공감이 된다.  

변해도 크게 변해버린 세상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천지개벽 몇 차례가 휩쓸고 간 자리에 우리는 살고, 거듭거듭 천지개벽을 예비하고 또 고대하면서 살지 않나 싶다. 불과 70여 년 전, 우리 소싯적에  공상과학 소설로, 공상만화로 상상력을 모조리 동원해 가며 읽으면서 그려보던 막연하던 미래 세상이 지금은 길거리의 흔한 풍경에 녹아든 것들이 헤아릴 수는 없고 거의 전부인 듯하다. 우리의 아이들이 '무쇠팔 무쇠다리, 로켓 주먹.... 마징가 Z.'에 열광하고, 육백만 불 사나이의 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시기는 소박하고 싱거운 역사로 넘겼으니, 소설에서 팔이 잘리나가니 인공 섬유가 뜯겨 나오고, 갈비뼈 부분에 파워 스위치가 내장되어 있다고 해도 그다지 놀랍지가 않은 것이다. 

우리가 함부로 쏟아낸 글들,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 존재하고, 무수히 찍어댄 사진이나 영상들이 디지털 구름 위 어딘가에 저장된다는 건 현실이다. 우리가 쓰다 버린 많은 것들이 구름 위의 무형의 쓰레기로 쌓인다는 상상은 즐겁지가 않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기술이 거꾸로 우리의 잊고 잊힐 권리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디지털 장례식'을 대행해 주는 곳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가진 마지막 존재로서, 초월적 정신세계를 소유한 로봇으로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과정은 소설이지만  쓸쓸하다. 과몰입하면 초현실과 현실을 혼돈하는 일이 생기는가 싶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인간이 설마 인류의 멸망까지 초래하지는 않을지라도 이와 유사한 방향성을 지난 거대한 변화는 준비된 미래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다. 인간의 능력과 호기심은 끝을 모르니 그 확장성을 우리가 감히 짐작이라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