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詩) 모음

사람의 가을

수행화 2008. 8. 25. 16:09

   

 

                         사람의 가을

 

 

                                                                문정희



나의 신은 나입니다. 이 가을날

내가 가진 모든 언어로

내가 나의 신입니다

별과 별 사이

나와 너 사이 가을이 왔습니다

맨 처음 신이 가지고 온 검으로

자르고 잘라서

모든 것은 홀로 빛납니다

저 낱낱이 하나인 잎들

저 자유로이 홀로인 새들

저 잎과 저 새를

언어로 옮기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 이 가을

산을 옮기는 일만큼 힘이 듭니다

저 하나로 완성입니다

새, 별, 꽃, 잎, 산, 옷, 밥, 집, 땅, 피, 몸, 물, 불, 꿈, 섬

그리고 너, 나

이미 한편의 시입니다

비로소 내가 나의 신입니다. 이 가을날


                                  <전문. ‘시안’ 2003 겨울호 발표>

모든 존재는 소외된 개별자가 아니라 충만한 단독자로 빛난다는 것
가을은 인간 존재가 충만한 단독자임을 일깨우는 계절이라는 시인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