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4년

손녀 생각

수행화 2008. 8. 24. 17:53
지난 15일은 기억하고 싶은 날이다.
손녀가 다 자란듯, 엄마 떨어져 처음 우리집에서 잔 날이기 때문이다.

병원 놀이를 좋아하는 손녀를 위해
할아버지께서 진짜 주사기를 사다 주신게 계기이다.
주사 바늘로 푹신한 봉재인형의 엉덩이를 찌르고,
반창고를 바르고, 작은 책을 뒤적이며 처방전을 쓰고...
정말 끈질기게 반복하며 종일을 노는 것이다.

너무 열중하더니 급기야 자고 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
치료 받느라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은 인형이랑
반창고, 가위, 붕대, 핀셋, 처방전 용지까지 든 왕진 가방을
머리 위에 늘어 놓고 잠이 든 것이다.

"이 약을 한동안 먹이세요. 열이 떨어질꺼예요.
오늘은 핑크색 약만 드리겠어요.
그리고 토토로 들어 오세요. 이것 저것 말해 줄게 있어요....."
꿈 속에서도 소꼽 놀이를 하지 않았을까 ?

잠 든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 아이는 어디에서 우리에게로 와 여기 곤히 잠 든 것일까 ?
인간의 출생은 실로 소중하고 경이로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저버리지 않고
인생을 아끼고, 자신을 사랑해야할 것이다.

저 조그만 머리에 무엇을 담았기에
통통 튀는 기발한 언어들을 마구 풀어 놓는가 ?
이 작은 손은 또한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꾸려 만들고 있는가 ?

삶에 열중하는 아이,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
남도 아끼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
그래서 훈훈한 향기의 아이로 자라 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저에게 각가지의 향기를 선사함으로 더욱...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 우리의 따사로운 관계에 대해...
가을은 존재와 소멸을 생각케 하는 계절이다.

아이가 살아 가는 세상에 우리는 무엇이 되어 도와야 하나 ?
남아 있는 날들에...

정권희
규영이를 볼 때마다 정말로 잘 키워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도 그러셨겠지만 말에요... ^^
 200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