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詩) 모음

문병 가서

수행화 2008. 8. 25. 16:31


 

 

문병 가서

                                                                          유안진
밤비에 씻긴 눈에
새벽별로 뜨지 말고
천둥 번개 울고 간 기슭에
산나리 꽃대궁으로 피지도 말고

꽃도 별도 아닌 이대로가 좋아요.

이 모양 초라한 대로 우리
이 세상에서 자주 만나요
앓는 것도 자랑거리 삼아
나이만큼씩 늙어가자요

시 한편은 이처럼 우리의 피곤한 발을 씻겨 준다.살면서 지금 이대로의 형편에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우리는 꽃이, 별이 되고  싶어 한다.그러나 엄연히 낙화의 시절이 있고, 별똥별이 지는 곳도 있다.눈가에 늘어 나는 주름과, 긴 끈같은 당신의 수다와. 수척한 얼굴도 나는 좋다.거울을 마주하듯 마음의 병실마저도 나에게 보여 다오. 밤은 언덕같은 것.언덕을 넘어 이 새 아침에 우리 다시 만나자.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