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4년

가나 쵸콜렛에의 추억

수행화 2008. 8. 24. 17:58
세영이는 생김새나 모습에서 사랑이 뚝뚝 묻어 있는 아이다.
얼굴 가득 사랑을 머금고 있다가는 미소와 함께 사방에 뿌리는 것같은 아이다.

지난 일요일.
아빠는 예식장 가고, 엄마는 언니랑 연극 구경 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세 식구만 집에 남게 되었다.
불과 3시간 남짓이지만 우리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우리는 세영이의 환심(?)을 사려고 빵집에 가서 가장 맛있게 생긴 빵 3종을 샀다.
가장 맛있다는 것의 개념은 치즈나 햄 마요네즈 등
평소 언니때문에 잘 못 먹는 재료가 든 것들을 말한다.

'빠리바게뜨' 노천 의자에 달랑 앉아 빵을 먹으니며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은 다음,
건물 밖으로 새어 나온 음악에 고개까지 좌,우로 까딱이고 있으니
지나 가는 사람들이 모두들"너무 귀엽다" 며 탄성을 지르고 간다.

그런데 그렇게 맛있는 빵 한 조각을 들어 할머니 입에다 밀어 넣어 준다.
아깝지도 않은지...나의 감격은 일러 무삼한 일이다 .
엄마 없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교대로 바라보며
특유의 "으흥"을 외치며 노는 것 자체가 감격인데 말이다.

입이 텁텁할 것같아 집에 들어와 밀감을 내어 놓았다.
야무진 고사리 손으로 껍질을 꼼꼼히 까서 조그만 입에 쏙 집어 넣더니
이번에는 밀감 하나를 들어 할머니에게, 또 하나는 할아버지에게 내미는 게 아닌가 ?
얼마나 다정하고 고운 마음인가?

순간 가나 쵸콜렛의 기억이...
세영 아빠가 어릴쩍, 가나 쵸콜렛을 먹으면
아무리 맛있어도 한조각을 짤라 엄마한테 내밀었던 것이다
얼마나 맛 있고 더 먹거 싶을텐데도 꼭 한조각은 엄마한테로.
그래서 나는 가나쵸골렛을 보면 늘 조그만 감동이 있다.
지금은 물론 아이 아빠가 되어 언제나 점잖은편 말이 없지만...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닮는 건 왜일까?
사소한 생활 습관까지도 닮을진대 하물며 외모야...

플라타나스가 가로(街路)에 함부로 딩굴며
또 한 해가 떠나감을 알리지만 뭐 그렇게 슬픈 일도 아닌 것이다.
우리가 인생의 가을에 서 있다면 또 다른 생명은 이제 막 봄을 구가(謳歌) 하고 있으테고  

아이가 자라는 그 예쁜 속도에 비해  
우리는 더디 늙는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기에...

2004-11-02

정권희
제가 잘 모르는 기억이네요.
애들 덕에 잊혀진 옛 이야기들을 많이 다시 듣고 알게 됩니다.
 2004/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