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2년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사진이 주는 감동

수행화 2012. 2. 3. 00:11

 

제주에 가서 김영갑 갤러리 방문을 놓쳐버린 것이 못내 아쉬워 김영갑 포토 에세이 비슷한 책을 집어 보게 되었다.
그 섬에 그가 있었네

그가 생을 마감하기 한해 전, 2004년에 출간한 책이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극단적인 가난에 자신을 몰아 넣어가며 고집스럽게 애착하던 제주의 풍광을 두고,
 48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예술인.

.

책에 실린 사진을 바라보는 나를 포함하여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제주의 아름다운 사계,
아니 지상의 신비를 보게 될 것이다.


외로움과 평화의 이야기

자신의 사진에 붙이고 싶은 주제라고 생각된다.

나의 짧은 안목으로 보아도 그의 사진은 한 없이 부드럽고 평화로우며 풀 잎 하나, 바람 한 점, 물결 한 자락에도 숨결이 담겨 있음을 보게 된다 . 생명에 대한 어떤 경외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는 아름다운 세상을 여한 없이 보았고, 찍었고, 아름다움이 영혼을 평화롭게 해 주리라 믿으며 나날을 덤으로 살아 간다고 고백했다.

 

끼니 걱정, 필름 값 걱정을 안 해도 되는 형편에 이르자 다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병마가 찾아 들었으니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다.
루게릭 병이라는 근육 위축증이 삶을 좀 먹어 가고 있었다. 

파랑새를 품에 안고 파랑새를 찾아 다녔다는 애절한 말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오름을 오르고 바람을 안고 산간을 헤매며 사진을 찍었던 시절, 

자연의 변화는 그에게 무한한 희열이었고, 그 희열의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무거운 키메리를 지고,
오름을 오르고, 바람을 헤집으며 제주의 자연을 담았기에 우리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된다.

 

간절한 사진을 위해 그는 자연과 의식을 같이 했으며, 오름과 초원을 떠돌았으며, 바다와 파도를 지켰던 것이다.

그의 의식은 온통 초원과 오름에 머무는 빛, 구름, 바람, 안개,

같은 프레임으로 계속 찍어 오직 단순한 자연만 남게 하는 방법.

똑 같은 사물이 빛의 변화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아름다움을 보면서 또한 긴 기다림의 고통도 보게 된다.

 

생명이 자기로부터 빠져 나가는 고통 속에서 생명보다 아꼈던 사진이 자신의 사후에 함부로 뒹구는 것이 괴로워
 ‘2002 두모악 깁영갑 갤러리를 오픈 하여 자기 작품을 전시하였다고 한다.

두모악이란 예쁜 말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자연 속에서 영감을 찾는다는 것, 그 일에 희열을 느끼며 온 몸을 던져 몰입할 수 있다는 것.

필부의 삶으로는 좀처럼 실행이 어려운 일일 것이니.
고독과 가난 속에서도 그는 영혼이 추구하려던 무한한 자유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병마와 고통과 죽음 앞에서까지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오직 자기만의 프레임 속에서만 살다간 그의 외로운 선택에 아쉬움만 남는다.

통증을 이겨 가며 힘들게 일군 갤러리를 꼭 한번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