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2년

헤르만 헤세의 인도 여행

수행화 2012. 2. 13. 15:40

 

헤세는 1911 9월 초 신비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안고 인도 여행에 나섰다.

유럽의 향락적 현실에의 도피를 위해, 전생의 고향에 대한 예감에 이끌려, 소박하고 순진무구한 인간을 만나기 위해 그리움을 안고 동방으로 떠난다고 외치면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선교 활동을 하시던 곳이며, 어머니가 자란 곳이어서 어느 정도 동양적 분위기에 젖어 살았기에 인도는 그에게 향수를 가지게 하기에 충분한 인연의 땅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실론과 니코바르 반도, 싱가포르와 팔렘방, 수마트라와 캔디, 콜롬보와 말레이 군도 등을 거쳐가는 것으로 여행을 끝마치게 된다.

인도는 다만 동양의 상징으로 붙여진 테마이다.

 

그러나 그가 동양에서 본 것은 낯선 움막집, 울창한 원시림, 강물과 동물의 울부짖음, 형형색색의 나비, 개미떼, 가시덤불, 늪지대, 넘쳐 나는 거지떼, 각종 원주민과 식민지 사람들

 

극심한 정신적 혼란은 건강에 이상을 가져 왔고 자신이 경멸해 마지 않았던 향락의 땅 서구 사회로 돌아 가게 된다.

 

그는 탄식한다.

모든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인도에 대한 실망에다 또 다른 실망을 느낄까 두렵다.

애타게 그리던 고요와 인도의 진정한 정신은 만나지 못하고 실망과 환멸만 가득할 뿐이다.

이미 낙원을 상실한지 오래다.

 

우리가 갖고 싶어하고 세우려는 낙원은 적도에서도 동방에서도 없으며 낙원은 우리 자신의 미래 속에 있다는 점을 깨우치며, 동양 세계는 신비로울 뿐 결코 호감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판단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혼적이고 경건한 것으로만 알았던 인도의 정신은

가장 영혼적인 것이 가장 감각적인 것과 함께,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거친 것과 함께

가장 자비로운 것이 가장 조야하고 잔인한 것과 함께 하는 힌두교의 유연성을 보면서 종교적인 신념에 있어서 천재적인 민족이라 생각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인간은 한층 진보되었으니 예수도 부처도 없이 살 수 있는 법을 배우자고 말하기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시각은 아름답고 남다르다.

밤이 무엇인지를 열대에서 비로소 알 수 있다. 밤은 아름다우면서 낯설고 적의를 품고 있다.

깊고 짙은 어두움, 육중한 검은색 커튼 같다.”

 

회색 빛 개미들이 그악스럽게 우글거리는 장면을 보면서,

이 개미의 먹이에 대한 탐욕은 그간 중국인의 잔인함, 일본인의 가증스러움, 말레이인의 도벽 그리고 크고 작은 동방의 해악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들이게 되었듯이 어깨 한번 으쓱하고 지나치라고 충고하는 느낌이다.” 거대한 개미떼의 원시적인 풍경이 그림처럼 떠오르게 한다.

 

말레이 군도에서 거닐던 가게의 풍경으로 보아 당시에도 국가 간의 무역이 성행했고 외국 문물의 내왕이 빈번했던 것 같다..

인도의 보석상, 중국인 청동 제품과 상아 조각제품, 용이나 공작을 새긴 도자기 접시,

일본인 가게의 현기증 나게 잔재미가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 익살스런 부채,

자바인 가게와 타밀인 가게에서 본 새와 잎사귀 무늬의 전통적인 바틱 샤롱,
인도산과 중국산의 비단으로 만든 스카프와 장식들, 수예품, 중국의 보석 장신구

 

실론의 나비편이 여간 실감 나는 것이 아니다.

캔디(실론섬 가운데 위치한, 인도 신할리 왕조의 유서깊은 고도)에서의 경험담은 인도 여행자의 기행문 어딘가에서 많이 들었을 법한 경험담이다.

유창한 영어에다 예의 바르고 세련된 모습으로 헤세에게 접근한 젊은이.

헤세 자신이 나비 채집에 관심을 보이자 나비 상인으로 돌변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숙소를 방문함은 물론, 그가 다니는 모든 길목에 어김 없이 나타나 나비를 보여주며 관심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강요한다는 것이다. 기상천외한 방법, 나아가 모든 비굴한 자세를 다 동원하며 목적을 이룰 때가지

헤세 자신은 그 청년을 떠나 실론을 생각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고도는 헷세에게 하찮은 시골 마을이 되고 말았다.  

 

그는 간단 명료하게 민족을 재단해 버린다.

첫째로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중국인이며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자기들만의 문화 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민족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어떤 부류의 사람을 어떻게 만났는지 알 수 없으나 기행문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며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인 것이라 이해 하고 싶다.
 

둘째 말레이인에 대한 평가이다. 비록 무역을 하고 이슬람을 신봉한다고 해도 그들은 철저히 원시적으로 살고 유럽인들은 그들 민족의 도둑이요 정복자요 약탈자라고 혹평한다.

영국인들은 부자인데다 타고난 식민지 지배자들이기 때문에, 자기네가 지배하는 종족의 몰락을 구경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지배자의 도덕적 해이를 통해 민족이 말살 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의 1910년을 떠 올리게 되어 무섬증이 나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셋째로 그는 원시림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거대하고 신비로운 밀림, 태고적부터 있었던 진흙, 이 모든 것의 강한 생산작용르 바라 보며 생명의 고향인 것을 느끼고 있다.

 

민족이라는 경계선을 넘어, 대륙이라는 국경선을 넘어서 인류가 존재한다는 이 작고 평범한 태고적 진리는 여행에서 얻은 궁극적이고도 위대한 체험이 된 것이다.

동행한 화가 한스쉬틀제네거의 그림이 보충 설명을 해 주고 있다.

 

헤세는 훗날 스위스의 한적한 시골에 은둔하며 인도의 불교 철학과 공자, 노자의 도덕경에 심취하면서 작품을 썼다고 알고 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동양적인 느낌의 그를 나는 좋아 한다.

 

 

< 어디에도 위로는 없다 >

 

어떤 길도 태고의 세계로 되돌아 가지는 못한다.

그대의 영혼에 위로와 행복을 주는

별들의 무리도

숲이나 강물, 바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것은

나무도 아니고 강물이나 동물도 아니다.

그대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은

오로지 그대와 같은 존재들 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