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9년

양보심 정립의 시기

수행화 2012. 12. 3. 22:03

 

집 뒤에 비탈져 둘러 선 한 폭의 겨울 숲,  
거기 나뭇가지 사이를 노을은 붉은 배경이 되어주며 하루가 저물어 감을 알린다.
세월의 가고 옴이 나와 무관한 일이기라도 하듯.
아이들 바라 보는 일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본다.

나날이 자라고 예뻐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안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아기 얼굴, 점점 개구쟁이 얼굴이 더해지는 영훈이 얼굴에서.

딸 아이의 첫째 영훈이는 동생을 보면서 자기 세계에 많은 변화가 생겼고 이런 저런 마음 쓸 일이 많아졌다.
일사불란하게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 가던 세상이 홀연히 나타난 경쟁자,
동생으로 하여 조금다르게 돌아가니까 말이다.
자기로서는 엄청난 충격일테고 또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귀엽게도 둥근 얼굴이 굳어지는 일이 부쩍 잦아진 것이다.

엄마나 할머니가 아기를 안아줄까봐 미리 견제하기,
엄마가 수유하는 것에 맘 상하기.
아빠는 아예 아기에게 접근 못하게 하기...
놀다가도 엄마의 동태 살피기.

그러나 그에게 아기의 존재는 어여쁘기 그지 없다.
얼굴을 처음으로 빤히 보던 날은 혼자 아기에게 '도리도리'를 해 주더니
이내 '이조'라 부르며 즐거워 한다.

'이조'는 '엘모'의 영훈이식 발음이다.

영훈이는 '엘모'를 엄청 사랑한다,
또 예쁘고 귀여운 것은 모조리 '엘모', 그러니까 '이조'다.
자기 눈에는 아기가 빨간 '엘모'로 비쳤던 것이다.
사랑스런 표정을 지으며 바라 보는 얼굴이 너무 사랑스럽다.
그표정에 우리 모두는 당장 전염이 되어 모두 그윽한 얼굴들이 되어 버린다.

아기에게 뽀뽀를 퍼붓기도 하고,
아기가 울면 잽싸게 뛰어가 뭔가 역할을 하려고 하기도 하고,
들여다 보다가는 숨이 가빠지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가르친 것도, 또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닌,진정 사랑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장면들이다.
그래서 나는 영훈이가 동생을 가진 것이 그렇게 기쁘다.

양보와 베품의 기본을 알아 가는 것이 앞으로의 삶을 얼마나 여유롭게 해 줄 것이며 스스로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
사랑을 나누며 더부러 살아야 하는 세상을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이라 더 없이 기특하다.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서 남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도 하지만
받기만 하는 사랑은 이기심을 한 없이 기르기만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사물을 깊은 연민심으로 바라 볼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
그런 훤훤장부로 자랄 것이라 나는 믿고 바라 본다.

그런 기초 공부를 하느라 눈만 뜨면 끝없이 참견하고 한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아이를 지켜 보며,
봄비가 내려 눈을 녹이고 겨울의 꼬리를 잘라도 개념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2009. 2.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