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9년

나의 빈 손

수행화 2012. 12. 3. 22:09


친구가 시집(詩集)을 냈다.
시작(時作)을 하고 몇 년 전 등단(登壇)을 했으며,
또 여전히 공부하러 다니는 그녀의 열의를 내심 부러워했었다.
시를 쓴다는 단순한 사실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성큼 첫 발을 내딛은 용기와 자기에의 긍정이 부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에게 있어 시란, 몹시 흠모하나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경외감의 대상이어서,
다만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  
그런데 그녀는 시의 바다를 향해 닻을 올리나 싶더니,
어느 듯 수준급 항해사가 되어 이렇듯 잔잔하게 항해를 하고 있었나보다.

자디잔 일상도 촘촘히 걸러 내어 순도 높은 언어로 정성껏 다듬고,
또한 고뇌의 순간들도 정녕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음을 본다.
삶의 내공이 축적 되어 시가 된 것이라는 해설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자아를 배 불렸으니 포만감이 그득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나는 문득 지금은 뭐든 완성하고 수확해야 할 세월에 당도했음을 느끼고
절망처럼 아뜩한 감상에 빠진다.
봄에 뿌린 씨앗이 없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 힘들여 가꾼 게 없는 나는 지금 설핏 저무는 가을 들녘에 서서 거둘 것도 담을 것도 없는 빈 주먹, 빈 수레에 절망하는,
차마 서글픈 심정이다.
내게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또 세월은 나의 편이 아니라는 걸 몰랐더란 말인가?
의기소침(意氣銷沈)은 이럴 때 쓰이는 말이다.
이제나 저제나 기회만 벼르는 자신과 타협하고 시간 속에 숨어 지낸 비겁한 나를 본다는 건 씁쓸한 일이다.

밖을 나가 보니 목련이 우아하다.
친구에게 독후감을 띄운다.
시인으로 거듭난 그녀의 장한 인생을 찬미하면서.

< 2009. 4. 10 >



규영아빠 ::: 엄마는 홈페이지 글을 모아서 수필집을 하나 내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