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09년

'규영'이의 친구관

수행화 2012. 12. 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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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모둠에서 나가면 좋겠다는 친구를 집어 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게 친구를 버리는 것이라 생각되어서 친구를 집지 않았다.............
난 친구가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친구는 내가 아프거나, 힘들 때 가방도 들어 주고 잘 위로해 주고 나에게 소중한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난 친구들이 괴롭히고 놀리고 피해를 줘도 다른 친구를 절대로 괴롭히거나 피해를 주고 놀리지 않겠다.
왜냐하면 친구를 사랑해야 착한 어린이가 되기 때문이다.
피해를 주고 괴롭히고 놀리면 그 소중한 친구도 없을 테니깐 말이다.
친구가 아프면 친구가 없더라도 또는 안 보여도 친구를 위로해 주고 마음의 편지를 보내야 친구가 좋아하고 건강해질 거라고 믿는다.
만약 앞이 안 보이고 귀가 들리지 않거나 말할 수 없는 친구가 있다면 더욱 잘 도와주고 친절하게 대하며 아주 모범적 어린이가 되어서 어른이 되어도 힘든 일 없게 꼼꼼히 도와주겠다.
친구가 많을수록 더 착한 어린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친구를 괴롭히는 친구나 어른이 있으면 당장 그 괴롭힘을 받는 친구를 꼭 도와야겠다. 이렇게 일기를 썼으니 꼭 지켜야겠다."


학교 문집에 실려 있는 규영이의 일기 한 페이지를 옮겨 보았다.
혼자 가끔 읽어 보려고 따로 옮겨 적었는데 다시 보니 여간 귀여운 모습이 아니다.
키 자라는 것만 보았지 이렇게 마음이 훌쩍 커 있는 걸 미쳐 못 보았기에 바로 감격했다.
순수한 영혼, 착한 심성, 그리고 정돈된 주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 규영인들 뭐 맘에 들지 않는 친구가 왜 없으랴만 차마 공개적으로 지적하지 않는,
의젓하고 결 고운 마음이 너무 예쁘지 않은가 말이다.
나아가 그런 친구까지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다니 실로 숨이 턱 막히게 대견한 마음이다.
보이지 않는 아이도 잊지 않고 새겨 마음의 편지를 보내려는 따스한 마음.
그리고 일기를 쓰면서 자기에게 더욱 다짐해 보이는 귀여움까지.

친구를 위한 마음의 공간을 미리 준비하는 규영이는 진실로 아름다운 아이다.
인생을 풍요롭고 인간적으로 살아감에 친구의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미리 알아 차린듯 하기도 하다.
지구의 자성은 마음의 거울을 따라 인간을 인도한다고 한다.
그자성은 우리 규영이를  따스함과 순수의 자성 세계로 이끌 것이며
그 기운은 언제까지나 남에게 사랑 받는 아이로 있게 할 것이다.

나도 보이지 않는 친구에게 마음의 편지를 보내 보며, 내 맘의 순수성을 리트머스 시험지에 적셔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래서 또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 되어 버린다.

< 2009. 5.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