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4년

건너 뛸 수 없는 크리스마스

수행화 2014. 1. 13. 00:46

크리스마스 건너 뛰기

 

크리스마스에서 비롯된 많은 소설, 영화, 크고 작은 에피소드

이제는 집에서 세계의 크리스마스 풍속을 구경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에 '죤 그리샴'의 소설 크리스마스 건너 뛰기를 읽었다.

의뢰인’,  ‘펠리칸 브리프’,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등등

내가 읽은 존 그리샴(Jhon Grisham)의 소설은 범죄에 얽힌 복잡한 사건들을 다루는 법정 스릴러가 주류였었는데 이것은 소소한 일상의 사건이 소재인지라 편한 마음으로 보게 되어 좋은 점도 있었다.

 

세무사인 루터 크랭크는 아내가 지난 해 크리스마스를 위해 지출한 돈이 무려 6100달러인 것을 확인하고 예수의 탄생에 왜 모두들 과다한 지출을 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아내의 크리스마스 휴가는 10월 말에 이미 시작되어서 서서이 팽창해 가다가 마침내 대 폭발하는 시점에 이른다는 것을트리 장식품, 전구, , 새 프로스, 캐나다산 전나무 트리 같은 것에다가, 아무도 먹지 않는 햄과 칠면조와 피칸 파이와 치즈볼과 과자에다가….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온 집안에 손님을 가득 채워서 열 시간을 내리 파티를 하고 식사를 네 번이나 내 놓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며 더욱 더 크리스마스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카드 없이도, 파티와 만찬 없이도, 쓸 데 없는 선물을 주고 받지 않고도, 예수의 생일이라는 이유로 치러지는 그 모든 잡다한 일 없이도, 얼마든지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이르자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건너 뛰기를 제안한다.

 

보람 있게 쓴 돈은 거의 없이 대부분 하수구로 들어 갔어. 허비했단 말이지. 물론 여기에 내 시간, 당신 시간, 교통체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짜증, 입씨름, 앙심, 부족한 잠 같은 건 포함되지 않았어. 크리스마스 휴가 때문에 놓친게 너무 많다는 말이야”.

 

마침 딸이 평화봉사단으로 페루로 떠났기 때문에 이 기회에 크리스마스를 위해 어떤 준비도 행사도 하지 않고 아내와 단 둘이 카리브 해로 크루즈 여행을 가기로 작정한다크리스마스를 건너 뛰기 작전이 시작된다.

 

크리스마스를 건너 뛰겠다고 이웃에 알리니 일단 자기 마을, 햄록 스트리트의 온 동네 분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지역 신문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을 멋지게 한 스트리트를 선정해서 '최고의 스트리트 상'을 주는 데 이 집의 비협조로 올해는 수상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며 이웃의 불만과 항의가 만만치 않았으며, 새로운 카드 구입하라는 친절한 문방구 아저씨의 주문 안내를 거절하는 것에서부터, 보이스카웃 소년들이 가져와 파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입하지 않아야 했으며소방관과 긴급 구조대가 방문 판매하는 생크림케이크와 경찰 조합 사람들이 가지고 온 달력 구입까지 사절해야 했다. 크리스마스의 통과의례같은 어렵고도 복잡한 과정을 겪어 가며 출발일을 기다린다.

  

그렇게 매년 해 오던 일을 접어 가며, 크루즈 여행을 위해 준비를 해 가던 중, 딸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화로 상황이 완전히 뒤집히는 소동이 벌어진다딸이 페루에서 사귄 약혼자에게 미국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보여 주기 위해 집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식을 접하니 갑자기 몇 시간 내에 크리스마스를 위한 모든 걸 해결 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으니,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트리와 프로스티와 쵸콜렛과 칠면조와 파티에 초대할 사람에 이르기 까지.

 

결국 크리스마스 건너 뛰기에 강력하게 항의 하던 이웃이 발 벗고 나서서 준비는 몇 시간 내에 일사천리로 완벽하게 완료되면서 크리스마스 건너 뛰기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크랭크의 딸은 동네의 큰 언니이고 큰 누나였고, 이웃의 모든 어린애들을 가족처럼 잘 돌 봐 주어 어릴 때부터 친숙한 사이여서  온 이웃이 한 마음으로 환영에 나선 결과인 것이다.

 

크랭크 부부는 이웃이 보여 준 협동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한편 크리스마스를 피해 떠나려고 비싼게 구입한 카리브 행 여행 티켓은 항암 치료를 하며 투병 중인 다른 이웃에게 기꺼이 선물 한다. 이웃에게서 받은 응원을 또 다른 이웃에 베푸는 온정 어린 이야기로 결말이 난다.

 

실제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영화를 보듯 미국인의 생활상을 보여 주고 있어 작가는 진정 감칠맛을 낼 줄 아는 작가임을 알게 한다그냥 베스트셀러 보증 수표의 작가라는 명성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선물 준비, 트리 장식, 파티 준비, 게다가 집 뜰은 꼬마 전구 장식은 기본이며 온갖 기발한 종류의 라이트 장식을 경쟁하듯이 화려하게 해야 하니, 아빠들이 얼마나 번거롭고 힘이 들 터인지 상상이 충분히 된다.

 

그러나 그렇게 기발하고 깜찍한 장식을 이방인으로서 구경만 하고 다니개 되면 눈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크리스마스를 미국에서 보내던 해에 나는 밤이면 집집마다 아기자기하게 밝힌 장식 라이트를 쇼 구경하듯 보고 다니며 좋아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다른 삶의 방식이 여유로워 보였고, 즐기는 문화를 만끽하는 그들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었다. 부지런히 조명 장식을 하고 밤이면 자랑스레 불을 밝히던 동네의 아저씨들은 분명 가족에게 헌신하는 성실한 사람으로 여겼고, 불을  환히 밝혀 집 안 풍경을 보여주는 집들도 보기 좋았다, 파티 손님들이 타고 온 긴 차량들의 행렬도 정다워 보여 좋았었는데....소설 속 풍경과 맞아 떨어져 더 재미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 나는 차분하다 못해 냉냉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크리스마스를 건너 뛰어 보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기발한 파티를 하는 웃기는 소설이나 보면서 말이다마치 이웃집 사건을 구경하는 기분이 들어 혼자 실실거리며 책장을 넘겼는데 머릿 속이 크리스마스에 집중되면서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파티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게 바쁠 미국의 딸 아이 생각을 했다미국 생활이 몇 년이 된지라 알고 지내는 친구 두 가족들이 딸네 집에 모여 함께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곤 하기 때문이다각자 몇 시간씩 차를 달려 딸네 집을 방문하는, 가족 대이동이 있으며, 며칠씩 크고 작은 소동으로 북적이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딸 아이가 얼마나 힘들려나 내심 염려는 되지만 미국에 크리스마스란 건너 뛸 수가 없는, 가족이나 지인과는 꼭 만나서 함께 보내야 하는, 조용히 보내서는 안 되는, 법보다 더 법다운 일인 모양이라는 생각을 한번 더 해 보고 있다. 로마에 가서 로마법을 따르는 시늉이라도 해야 외롭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영화 보듯 소설을 실감 있게 보면서 이번 크리스마스를 심심찮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