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6년

간절함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수행화 2016. 1. 19. 23:28

 

 

 

 

할머니~!! Happy new year^^”

우리 세영이에게서 2016년 첫 문자 인사를 받은 것이 벌써 스무날이 지났다.

초저녁 잠이 많은 아이가 제야를 지켰다고?

그 큰 눈에 잠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을텐데.  

엄마, 아빠, 언니한테 단체 문자를 보내고 할머니에게 두번 째 보낸 문자라고 한다.

손녀로부터 높은 순위를 받은 것이 무슨 상 받은 것처럼 우쭐해지면서 마음이 아주 따뜻해졌다.

그렇게 새해가 시작되었다.

   

여러 국제 정세로 예년보다 열기가 덜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세계인의 환호와 축복으로 2016년 새해가 열렸으며,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그 순간을 지켰을 것이다.  

하루 하루는 값싸게 헛되이 스쳐 가더니 한 해가 과거 속으로 째각 째각 사라지는 순간을 지켜 보노라니 일순 시간이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일년을 빠르게 반추해 보는 일이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시간은 마법사이다.

시간이란 빛이 바래지도, 늙지도 않으며 무념무상일 것이로되, 그 시간을 사는 우리만 콩 튀듯 팥 튀듯 분주함을 탓하다가 또 무료함을 못 견뎌 해가면서 지치고 늙어가지 않았나 하며 생각이 많아진다. 

 

나에게도 새해를 맞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

내 작은 기원을 가다듬어 보고, 나를 추스르기 위한 일상의 지침 같은 것을 간략하게 또박또박 적어 보는 일이다.

똑 같은 것으로 두 장을 만들어 하나는 내가 보관하고 하나는 절에다 부처님 전에 내다 건다

소망하고 기원하는 것에 정성을 실어 보고 내 녹슬지 않을 일상을 위한 지침같은 것을 간략하게 써 보면서 다짐하고 지키겠다고 하는, 나와의 서약서인 셈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예의라 여기며 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의 것을 펼쳐 보며 적이 놀라고 말았다.

나의 소망, 나의 목표라는 것은 영원한 소망이며 목표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목표란 맺으며 끊으며 가시적으로 성취되어 가야 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나를 비켜 가는 행운에 실망감이 회오리처럼 스쳤고,

나를 채근하겠다고 하던 기약은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으니....잠시 풀이 죽는다

  

종이쪽을 오래 바라 보다가 다시 접어 넣었다. 그렇다.

 '닫힌 문을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등 뒤의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는 말을 위안 삼아야지. 내일이 또 있잖은가, 하며 나를 추스린다.

내일 또 내일, 내일이란 얼마나 희망적이며 위안을 안겨 주는 오늘의 쉼터인가 하면서 말이다.

"감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

하고 내 소망에게 다시 당부를 하면서 접은 종이를 봉투에 넣어 밀봉을 한다.

 

실로 내 삶의 자취라는 것은 저 눈 내린 들녘에 새겨진 작은 새 발자국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람 한 가닥, 햇살 한 주먹이면 사라져 버리고 마는 미약하디 미약한 존재 뿐일 터인데, 나는 지구라도 짊어질듯이 무거운 과제를 내게 안겨 준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야, 그래도 목표는 잡아둬야 돼. 일단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가 나를 이끌어 갈테지.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 해도, 그 미진한 마음의 잔재가 또 새 마음을 갖게 하는 동력이 되어 주지 않겠어?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이 없지...."

실망하는 마음에게 타이르는 마음이 나서서 달래고 있다.  

시간은 영원하나 우리에게 주어진 생이 유한한 탓에 이런 저런 일들에 마음을 써 보는 것이려니 한다.

 

며칠 전 읽은 누군가의 글이 생각난다.

자기는 새해부터 한 시간 일찍 일어날 것이며, 더 일찍 도서관에 가서 좋은 좌석을 잡아 공부를 하겠다고, 그래서 새해 벽두부터 한시간 빨리 하루를 시작하였고, 도서관엘 갔더니 아뿔사! 도서관은 이미 꽉 차 있었고 자기는 또 대기번호를 받았더라는 말을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는 심기일전, 신들매를 고쳐 매며 바삐 걸을 준비를 하였더라는 말을 전하는 거였다.

 

출발선에서의 마음은 다들 한 마음인 모양이다. 

나도 도서관에 갔다가 책 일곱 권을 빌렸다.

그리고 곧 읽을 예정인 책들을 쌓아 본다. 이미 다 읽은 듯 뿌듯해진다.

바깥 출입하는 날, 두통에 시달리는 날, 그 이외 내게 온전히 주어지는 날에 나는 홀로 분주해야 한다.

시간이란 여유 있을 때 비축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오늘에만 사용할 수 있는 한정품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눈이 뿌리더니 한파가 몰아 닥쳐 대한(大寒) 추위 이름값을 한다.

삭풍이 휘몰아친다는 말이 굉장히 오랜만에 입에 걸리는 날, 

며칠 전 무심히 지나가다 목련꽃 봉오리를 올려다 보았던 게 생각난다.

보송 보송한 솜털이 가볍게 눈(雪)을 이고 있었다.

아! 봄을 준비하고 있구나, 견고한 마음으로 꽃을 키우고 있네,  

단 며칠의 찬란한 성취를 위해 꽃씨를 보듬고 추위를 이기고 있다니.....

꽃을 내보내려는 그 마음이 대견했고, 아름다운 순환의 슬기를 보았다. 

참고 기다리는 걸 우리는 아직도 더 배워야 한다. 

 

기다림이란 더디 오는 것을 견디는 일이므로, 마음에 당긴 불이 잦아 들어야 하는 일이므로,

바쁘게 버려버린 아날로그적인 것들에 다시금 눈을 돌리는 것일테다.    

그래서 요즘 손글씨 쓰기랑, 색칠하기가 새록 새록 유행이라지 않는가.

작년에는 컬러링 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까지 했을 정도로 복고풍이 유행이었다.

나는 딸이 선물해 준 컬러링 북이랑 색연필을 묵히면서 해를 보냈다.

차분하게 그릴 여유가 없었다는 핑게 아닌 핑게. 

익숙한 것, 편안한 것이 온전히 세상을 먹어 버렸고 우리는 속도전에 내몰렸으며 그 속도를 조금 즐겼다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속도와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 젊은 시절, 세모에는 연하장 보내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송구영신 (送舊迎新)이며 근하신년(謹賀新年)이며 하는 글자를 썼거나 풍속화가 그려진 연하장을 사는 일, 그 사람에게 보내고 싶은 덕담을 몇자씩 써 담는 일,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따로 따로 붙여서 보내는 일,

번거로운줄 모르고 지인을 생각하며 시간을 썼으니 지금에 와서 도리켜 보니 보통 정성이 아니었구나 싶다.  

 

새해 아침을 맞은 것이 벌써 이십일이나 지나쳐 버렸다.

내 발목을 쉬이 붙잡는 것은 내 게으름의 잔재 뿐 아니라 두통도 한 몫이었다고 경고라도 하려는 뜻이었나,

연초부터 며칠 앓으며 기력을 소진했다.

내 마음의 갈증만 갈증으로 여기고 몸은 잘 돌보지 않는다는 충고로 받아 들여야 할 것같다.

시간 관리를 못하고 공연한 일에 헛심을 쓰면서 신선 놀음에 도끼 자루 썪는 줄 모르지는 않았는지,

몸이 나를 잘 따라와 주기를 간구하게 된다.

 

이제 시간의 관성에 이끌려 돌기만 하는, 일상의 타성을 조금 벗고 삶의 질을 따져 보자.

내가 완급을 조절해 가며 시간을 아껴 쓰겠다는 각오는 습관처럼 또 하게 된다.

정성을 다해 바라고 또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내 부족한 정성을 모아 보는 해가 되게 하고 싶다.  

 

칼바람이 창 틈으로 비파 소리를 내어도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고 높다.

행운이 나를 비켜 간다고 슬퍼할 일은 하지 말아야지. 

 

오늘은 행복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