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6년

'마침내 내 생애를 빛내 주는 아이들'

수행화 2016. 2. 13. 11:08

 

'입춘 추위는 꾸어서라도 하는 법'이라는 말이 꼭 맞게, 그렇게 매워진 날씨에 우리 세영이가 졸업식을 했다.

갑작스런 일이 있어 참석 못한 아쉬움이 컸었는데, 제 얼굴보다 큰 꽃다발을 안고 방긋 웃는 사진이 카톡으로 배달이 와서 쓰린 속을 달래 주었다.

 

저희 아빠, 저희 고모의 졸업, 입학의 기억이 어제 일 같은데,  그 아이의 아이들이 속속 초등학교를 마쳤다는 게 대견하고 어여쁘기도 한데, 그보다 더한 것은 내 서글픈 마음이다. 

튀어 나온 이마와 긴 속 눈썹에 비를 피하게 생겼다고 웃어 주곤 하던 아기 얼굴, 오리를 '올리'로 밖에 말하지 못하던 혀 짧은 말들...이제 할머니, 나보다 키가 더 커졌으니 만나면 키 재 보는 재미도.....
다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와 공감할 공간이 한 없이 비좁아 질 일만 남았지 않나 하는 것이 애달프다는 말이다.

 

 엄마를 도와 케잌도 굽고, 머플러도 떠서 두르고 다니고, 고무줄 뜨기를 해서 내게 별별 걸 다 만들어다 주고,  뒹굴 뒹굴 노는가 싶은데 쓰윽 숙제도 해 치우고, 손톱보다 작아 보이는 어지러운 천 피스 짜리 퍼즐도 슬슬 맞춰 내고.

졸업식 날, 식전 행사 후 잠깐의 휴식 시간에 아이를 찾아 보니 모두들 자리를 비우고 웅성거리는 와중에 혼자 책을 보고 있더라는 말을 저희 엄마에게서 들었다. 할아버지께서 제비같은 우리 아이들이라는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곡식의 제비" 같은 아이가 될 조짐이 이런 게 아닌가 싶은, 고슴도치 사랑이 또 나온다.

 

설 연휴에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서 아기 시절의 자기네 사진들을 찾아보며 귀엽다고 야단들이다.
오죽하면 내가 그저 빨리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 가며  바라 보았을까?
그 귀엽던 얼굴에다 중학생 교복을 입히는 것 같아 아주 멋쩍고 상상이 안 되는 일이기는 한데,

어쨌거나 시간은 이 모든 것들을 과거의 일에다 얹어 버리려 한다.

 

요즈음 뉴스는 시시각각 어지러운 세상 이야기로 멀미가 나게 하니 조용하게 머리를 조금 쉬게 해볼까 해서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를 봤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생각하며 그저 잔잔한 노년의 이야기일테니 차분하게 그들의 일상이나 구경해 봐야겠다

했건만, 그 곳에서도 역시 노 부부를 편안하고 오붓하게 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욕에 테러 사태가 발생하니, 실시간으로 현장을 중계하는 리포터의 목소리가 소란스럽고, 이사를 해 보려니 오픈 하우스를 둘러 싼 많은 사람들의 방문 행렬과 말, 말들이 어지럽고, 중개사들의 치열한 매매 전략이 무섭게만 느껴지고....

산란한 뉴스를 피해 보려던 나는 그 곳에서 또 치열하고 긴장된 현실을 보게 되었다. 씁씁했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애교스럽기만 하다.

 매일 커피 두잔을 사서 집으로 들어 가는 행복한 할아버지와 지극히 남편을 배려하는 아내를 보는 것으로 잠시 따뜻했으면 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의 오늘이나 지구 반바퀴 밖의 세상이나 모두들 분주하고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걸 견딜 정도의 내성이 우리에게는 있다. 다만 피하고 싶다는 것이지.

 

그런데 이제 막 자기 인생의 나침반 하나씩을 안고 길을 나설 우리 아이들 걱정이 가슴에 돌 얹은 것 같다.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이 그들을 기다릴까?

불편 지수는 제로에 가깝게 해 주려는 부모가 있고, 고생에 대한 어떤 백신도 접종을 받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맞이할 세상 걱정을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향후 몇년 사이에 없어질 직업, 부상할 수 있는 직업, 로버트가 대신할 수 있는 분야 등, 미래를 예측하는 연구들도 예사롭지 않아 마음에 담게 되니 나도 단단히 노파심에 절었나 보다.

 

반짝이는 머리와 성실함으로 배움의 우주에 유유히 항해 중인 우리 세영이, 할머니 보기에는 비상할 일만 남은 것 같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가까운 미래에는 먼 미래에는 어떤 멋진 모습일까 혼자 생각해 보며 즐거워 하는 것으로 족할 뿐이다.

 

다만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기를 늘 소망한다.

물론 자만심이나 이기심 같은 저급한 생각과 섞지 않을 분별력은 있으니 일러 두는 말이다.  

긴 인생은 자신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조금 더 위기에 강하고 여유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저버리지 않으며 남과의 약속은 물론 자기와의 작은 약속도 실천하는 자세가 얼마나 높은 지혜인지!  

"Tiny makes big." 사소한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남의 마음에 따뜻하고 멋진 사람으로 남도록,

남과 더부러 좋은 관계를 만들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살아 가면서 옛날 어머니 말씀에 무릎을 치고 싶도록 공감하는 말들이 수두룩 하다는 건,

정말 "옛말 그런 것이 없다"는 옛말이 나오게 된 배경일 것이다.

'저 우물 물 언제 다시 먹으랴1"하며 우믈에 침을 뱉아도, 어떤 경우에 먹을 수 밖에 없는 날이 온다는 말을 자주 들어 왔던 터, 남에게 막말을 하거나 무시하다가 난감한 경우에 처할 때를 경계하라는 말을 그렇게 재미 있게, 기억에 남게 해 주셨으니, 이따금 생각이 나고 있다.

인간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 결국은 자기 재산이 돼 돌아 온다는 것은 준엄한 진리일 것이다.

  

나는 또 아이들에게 늘 가르쳤다.

'학교에 가서나 누구에게나 맞지 말라.'

그것은 일단 맞을 짓을 만들지 말라는 뜻이고 반드시 덧붙여 말한다.

"나도 안 때리는데 남에게 맞는 것 못 참는다"

그리고 다치지 말라, 몸에 상처 내지 말라고 당부도 하곤 했다. 나는 아이들 모기 물리는 것에도 싫은 얼굴을 했으니 조금 고단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상처 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일일이 꼬집어 대기 뭣하여 나는 일상 중에, 혹은 기도 중에 아이들에게 내 마음의 파장을 보낸다.

어떤 속도로 어떻게 굴절하여 내 마음이 가 닿을지는 알 수 없으나 그저 할머니 마음을 담아 띄울 뿐이다.

용모도 그만하면 멋지고, 재주는 그만하면 출중하니 다만 좋은 벗을 사귀고, 쉬임 없이 일정한 보폭으로 걷는다면 반드시 멋진 미래가 기다릴 것을 의심치 않는다는 것을,

 

 "누구네 집 딸인지 몰라도 참하고  예의 바른 아이로구나,"

 

지금까지 들어 왔을 이 무난한 평을 언제까지나 들으며 살아 가리라는 걸 또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은 머리가 커져서 묻기 민망한 말, 그러나 내 마음에 언제나 있는 즐거운 질문과 답.

"세영이 누구 딸?"

"엄마, 아빠 딸"

나는 그렇게 아들과 며느리를 믿으며, 아이들이 저의 부모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보기가 좋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옷을 다 벗어 동면에 든 것같은 나무들도 이 겨울을 마냥 쉬고 있지만 않을 것이다.

뿌리에 힘을 집중하며, 껴 안아 돌보고, 더 굳건히 버틸 힘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지에 온기가 돌면 나무는 실눈을 튀우면서 장엄한 생명력을 뿜어 낼 것이다.

 

아이들은 지금 겨울 나무처럼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이달 말께는 저희 가족끼리 도꾜로 여행을 다녀 온다고 하여 내가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가 못다 한 일들을 차근 차근 경험해 나가는 모양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다.  

 

나의 아들, 딸, 손주들 모두 나무의 마음을 닮아 안으로 안으로 깊어 가며 나이가 들어 가리라 믿는다.

그리고 나는 우리에게로 와서, 경이롭고 행복한 날을 안겨 주는,

내 생애를 마침내 빛내 주는 우리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