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18년

영화 '패터슨' - 잔잔한 일상의 아름다움.

수행화 2018. 1. 9. 11:16

영화 패터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소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하는 영화, 우리가 살아 내는 삶의 현주소를 한번 쯤 성찰해 보게 하는 영화, 잔잔한 것이 진실로 위대해 보이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지난 주말 손녀, 규영이가 할머니랑 '패터슨'이라는 영화를 함께 보고 싶은데 할머니 시간이 어떠냐고 물어왔고, 나는 이유 불문, 시간 불문, 영화 내용 불문하고 바로 오케이 싸인을 보냈고 우리는 밤 9시 50분의 심야영화를 함께 보았다. 사랑하는 손녀가 내 슴슴한 일상에 양념을  뿌려주려는 이벤트를 어찌 반기지 않으리!   


미국 뉴저지 주의 '패터슨'이라는 작은 도시에  '패터슨'이라는 버스 운전사의 일상을 그린 영화이다. 정해진 코스를 운행하는 버스처럼 패터슨 일상의 동선도 참으로 일정하다. 아침 6시가 지나 일어나면 시리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하여 버스 운전을 한다. 익숙한 길을 걸어 퇴근하여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하고, 개를 산책 시키고, 돌아 오는 길에 마을의 펍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에 돌아 와 잠을 잔다. 그렇게 월요일이 가고, 화요일이 가고, 수요일을 맞는다.


시리얼 먹고 출근하여 일과를 시작하고 펍에 들러 맥주 한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감하는 패터슨에게 일상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그가 시를 쓰기 때문이다. 매일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만나는 동료나 버스 승객들의 대화 내용이고, 사랑스런 아내의 살짝 즉흥적인 행동이며 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면면이다. 이렇게 기계적이고 단조로운 하루 속에도 패터슨의 영감은 움직이고 내면의 언어를 캐 내면서 시가 된다. 

성냥갑을 보고 시를 생각하고, 학교에서 배운 입체 도형의 기억이 와서 시어가 되기도 한다. 패터슨의 시에 살이 붙고 혼이 들어가는 것을 우리도 함께 바라본다.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라 끊임없이 지지하는 아내를 사랑하고,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이란 시인의 시를 퍽 좋아하면서, 매일 조금씩 저축하듯 채워지는 습작 노트의 시를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 간다.   

 

영화에 절망적 순간이 찾아왔다. 아내와 외식을 하고 돌아 오니 애견, 마빈이 습작노트를 다 찢고 뜯어 형체를 알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패터슨의 엄청난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마빈을 꾸짖을 기력조차 잃어 버린다. 아끼고 가꾸던 꽃밭이 짓이겨진 것보다 더한 고통을 보았다. 허탈해진 패터슨은 가끔 산책 나가던 공원에 나갔다가 우연히 일본인 여행자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 노트 한 권을 선물 받는다. 마음을 추스려 텅 빈 노트에 새로운 시를 쓰리라는 기대감이 조금 위로가 된다. 


시를 생각하는 잔잔함에 빠져 있는 동안 엔딩장면이 올라 왔고, 나는 안도와 함께 순간 미완의 극을 본 것같은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자극적인 장면이나 기상천외한 반전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내 상상력의 편협함에 깜짝 놀란 것이다. 실은 패터슨의 소소한 나날에 눈은 조용히 따라 가면서도 일말의 불안과 긴장은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뒤 늦게 알았다. 

버스 운행 중 별난 승객을 만난다거나, 회사에 혹시라도 파업이 일어나거나, 해고 되는 건 아닌가, 주인과 산책 나갔다 펍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저 멋진 애견, 블도그가 납치 당하지 않나, 아내가 쿠키를 구워 팔겠다는 데 별 탈은 없을 것인가?.........일관된 주제 이외의 것으로, 잔재미나 반전을 위한 어떤 시도도 없는 담백 그 자체르 보여 주는 영화이다.

평범한 언어가 마법에 걸리듯 시로 거듭 태어나는 아름다운 일들에 내 생각이 곁가지를 쳤다니 .........

 

나는 피를 흘리고 비명을 지르며 폭력이 화면 가득한 작금의 영화에 혼비백산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작품성을 이해하는 안목이 떨어진다 나무랄지 몰라도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를 찬양할 수가 없다. 극단으로 치닫고, 극 중에 반전으로 긴장감을 높이는 영화의 폭력성에 이미 잘 길 들여진 나를 바라 보며 조금 슬퍼졌다. 우리는 감정 몰입을 강요 받는 직설적이고 천박한 영화를 흔히 보아 왔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맞춤한 영화를 우리 규영이가 선택해 준 것에 말 할 수 없는 연대감을 느꼈고, 아이에게 더 많은 신뢰감을 보내며 극장을 나왔다.

 

겨울밤이 깊어진 시간, 돌아 오는 차 안에서 규영이와 나는 행복에 대한 짧은 견해들을 주고 받았다. 나는 패터슨이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조금 더 큰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시각에서 어쩐지 주인공이 조금 짠하더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우리 규영이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말한다.

"자기에게 일정한 일이 있고 취미를 살릴 시간이 있으면 행복한 것 아닌가?"

"그래 그것도 맞아. 얼마 전 할머니가 읽은 책에서 그와 비숫한 내용이 있었어. 높은 가치의 행복을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였다고 하여 그 행복감이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다. 어떤 벅찬 행복도 일정 시간 후는 행복감이 엷어진다는 것, 그래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작은 행복을 자주 자주 만들면 행복감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라고......거꾸로 말하면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작은 것을 행복으로 만드는 기술을 가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가 싶어. 오늘 밤처럼 우리 규영이가 할머니를 영화에 초대하고 좋은 영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이런 행복같은 것 말이야."


아이를 집 앞에 내려 주고 가로등이 겨울밤을 지키는 길을 달려 집으로 오면서 행복에 대해 대화를 나누리만치 지혜롭게 성큼 자란 아이를 생각하니 감동이 명치 끝으로 차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