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20년

「페스트」- 알베르 카뮈

수행화 2020. 4. 29. 23:06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 1947년, 그의 나이 34세에 세상에 내놓았고, 그해 6월 10일 출간 후 한 달 만에 초판 2만 부가 매진될 정도로 화제작이었다고 한다. 이듬해에 터진 제2차 세계 대전이 페스트 소설의 착상에 기폭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한가하고 습관에 젖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질병이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것과, 잔쟁 초기의 양상은 부조리하고 어처구니없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194 × 년, 알제리 해변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 오랑에서 발생한 전염병 사건의 기록을 소설로 쓴 일종의 연대기로서 역사성을 가진 형식이라는 설명이 있는 소설이다. 
"솔직히 말해서 도시 자체는 못 생겼다. 일견 한가로워 보이는 이 도시는 전 세계 각지에 있는 수많은 상업 도시들과 어딘가 다른가를 알아차리자면 시간이 걸린다. 가령 '비둘기도 없고 나무도 없고 공원도 없어서 새들이 날개 치는 소리도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도 들을 수 없는 도시', 요컨대 중성적인 장소일 뿐인 이 도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계절의 변화도 하늘을 보고 읽을 수 있을 뿐이다. 봄이 온다는 것도 바람결이나 장사꾼들이 변두리 지역에서 가지고 오는 꽃 광주리를 보고야 알 수  있다.   < P.11 >

이 메마른 도시에 어느 날부터 쥐가 죽어 나간다. 비틀거리며 죽어가는 쥐 몇마리가 보이더니 곧 떼 지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죽어간다. 하루에 수천여 마리를 수거해 소각해 나가던 중, 사람들 사이에 발열 현상에다 종기가 돋는 유행병이 돌게 된다. 페스트가 도시를 점령해 오는 것이었다.

소설의 중심 인물은 '의사, 르나르 리유'이고, 아랍인의 생활 조건을 취재하기 위해 이 도시를 방문한 파리의 신문 기자, 레몽 랑베르, 페스트 발생 몇 주 전부터 오랑에 머물던 장 타루, 신부 파늘루와 오통 판사 등의 사람들이 이 비극적 상황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줄거리가 엮어진다


오랑의 페스트 대응은 의사 리유의 지휘 아래 진행된다. 페스트 진단이 의사로부터 내려지면 가족들은 의무적으로 당국에 신고해야 하고, 병원은 환자를 일단 격리 수용한다. 그런데 페스트의 기세등등하게 갑자기 세를 과시하며 엄습해 온지라 불과 사흘 만에 병동 두 개가 환자로 채워져 실내 체육관을 임시 병동으로 사용할 지경이 됐다. 변두리 호텔을 개조해서 보조 병원으로 운영할 계획까지 세우며 대응하지만 사망자 수가 급증하여 정부는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 오랑의 폐쇄를 명령한다. 이 도시로 들어가는 문들이 폐쇄되자 시민들은 졸지에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어 버린다.

도시의 출입문마다 보초병이 서고, 선박들은 뱃머리를 돌려 돌아가고, 차량 운행과 식량 보급에 관한 조치가 취해지고, 휘발유는 배급제로 바뀌는 등 비상 상황에 돌입하게 된다. 사무실 휴무로 사람들이 카페에 몰려 웅성이고, 사재기하려는 시민들은 가게 앞에 긴 줄을 이어서 서고, 알코올이 세균을 죽인다는 광고문이 나돌면서 포도주와 알코올 음료 매매가 치솟는 등 혼란이 가속화된다. 갑작스러운 고립으로 뜻 아닌 이별 상황도 속출한다. 시민들은 발이 묶였을 뿐더러 타 지역과의 서신 왕래까지 금지되어 고립의 고통을 더해준다. 마음속 감정을 전하던 긴 편지들은 의미가 없어지고 짧은 전보에 의지해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다. 열 마디 정도가 고작인 전보문이 유일하게 허용되는 통신수단이기 때문이다.


"노란 광선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푸른 하늘, 이제 막 시작되는 더위 속에서 붕붕 대며 날아가는 비행기들, 계절의 온갖 모습이 한결같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흘 동안에 열병은 네 단계에 걸친 비약을 보였다. 사망자가 열여섯 명에서 스물넷, 스물여덟, 서른둘로 불어 났다. 그때까지 농담 속에 자신들의 불안감을 숨겨 왔던 시민들은 거리에서 한층 더 낙담한 표정이 되었고 한층 더 말이 없어져 버렸다."     < P. 87 >

리유는 의사로서 입원 환자는 물론 마을마다 왕진까지 다니며 예방과 치료에 전력을 다한다. 전염병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는 신념으로 하루하루를 전투하듯 보낸다. 반면에 파리의 신문기자, 랑베르는 이 도시를 빠져나갈 궁리에만 골몰한다. 취재 목적으로 이 도시를 방문했으므로 결코 여기에 발이 묶일 수는 없다는 주장에다 자기 행복을 가로막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오히려 의사를 향해 추상을 쫒는 몽상가라며 비난한다. 또 시민운동가로 시내의 한 호텔에 머물다 페스트 상황을 맞게 된 장 타루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보건대라는 민간 중심의  봉사대를 결성하여 방역 최전선에서 능동적으로 봉사한다. 인구밀집 지역에 들어가 예방 보조 작업을 하거나. 의사의 왕진을 도우며 운전을 하거나 하며 적극적으로 도운다. 의사 리유와 깊은 우정을 쌓았으며, 더불어 타루의 수기를 남긴다.    

이 엄중한 상황에 예수회 파늘루 신부의 열렬한 설교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신부의 명성이 높아진다. 전염병 창궐은 인간이 지은 죄악 때문에 신으로부터 가혹한 심판을 받는 것이므로, 지상의 어떤 힘도, 인간의 지식도 이 재앙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래서 금의 감금 상태를 선고받은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설교한 것이다. 마음 약한 시민들은 신앙심으로 페스트를 극복하겠다며 교회에 밀려 들었고 기도에 의존하게 되었다.

 
"여러분들은 불행을 겪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불행을 겪어 마땅합니다........ 이 재앙이 처음으로 역사상에 나타났을 때 , 그것은 신에게 대적한 자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였습니다...... 태초에 신의 재앙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아래 꿇어 앉혔습니다. 129   

"오늘 페스트가 여러분에게 관여하게 된 것은 반성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사람들은 조금도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사람들이 떠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거대한 곳간 속에서 가차 없는 재앙은 짚과 낱알을 가리기 위해 인류라는 밀을 타작할 것입니다. 낱알보다는 짚이 더 많을 것이며, 선민보다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위로 그 연민의 얼굴을 보여 주시던 신께서도, 기다림에 지치고 그 영원의 희망에서 실망 하사, 마침내 외면을 하신 것입니다. 신의 광명을 잃고 우리는 바야흐로 오랫동안 페스트의 암흑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 P. 130 >    

의사, 리우는 신부의 설교에 비판적이다. 전능한 신이 사람들의 병을 고친다면 의사는 치료하는 수고를 신에게 맡겨 버리겠지만 이 세상 누구도, 심지어 파늘루 신부까지도 자기 생명을 온전히 하느님에게만 의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계절이 봄에서 여름에 이르자 희생자는 급상승하여 시민들의 불안과 절망이 극으로 치닫는다. 인접한 바닷가는 접근이 금지되고, 호텔은 더 이상 여행자가 오지 않아 비어 가고, 외출을 금지한다는 포고문이 거리에 나붙는 등 페스트령이 시행되고, 페스트령이 법 적용면에서 계엄령과 동등하다고 하여 시민들은 위협을 느끼게 된다. 장례는 의식이 폐지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절차도 신속하게 행해졌다. 쥐벼룩을 전파할 위험성이 있는 개와 고양이를 사살하는 특수 임무를 띈 부대도 생겨났다. 이렇게 도시를 점령한 페스트는 9, 10월 두 달 동안은 거의 제자리걸음을이었고, 혈청 시험에 박차를 가한다지만 사람들은 기대도 갖지 않고 무관심에 빠져 더 이상 신문도 뉴스도 보고 듣지 않게 되어갔다, 

이즈음 판사 오통씨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에 감염되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이 애처로운 모습을 의사는 신부와 더불어 지켜보면서 분노한다.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이 어린애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절대로 거부하겠습니다."
"인간의 구원이란 나에게는 너무나 거창한 말입니다,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원대한 포부는 없습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인간의 건강입니다, 무엇보다도 건강이지요"

어린아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이후 파늘라 신부는 조용히 보건대에 지원하여 봉사에 임한다. 이전의 자기 설교가 얼마나 자비심이 없었는지, 죄 없는 어린아이에게 고통 이외에 무엇을 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사후 세상의 기쁨이 인간의 고통을 보상해 준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하는 회에 빠진다. 이후 봉사에만 전념하던 신부마저도 페스트와 유사한 증세로 죽고 만다. 그 사이 페스트는 도시의 관리자처럼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사망자를 내어가면서 소강상태를 유지하는 느긋함까지 보인다.

한편 외부인 봉사자 타루가 인도주의 사상을 가지게 된 배경에 또 주목하게 된다. 타루의 아버지는 부장판사로 일하셨고, 유년 시절을 평탄하고 행복하게 보냈으나, 열일곱 살에 아버지의 재판 장면을 방청하면서 인생에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타루는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아버지가 누군가의 목숨을 뺏을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았고, 어떤 이유에서든 누구에게 죽음을 명령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집을 떠나 독립을 선언한다. 이후 정치 활동과 시민운동을 하던 중에 이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고, 미친 듯이 사람을 죽이고 있는 페스트와 맞서서 인간을 보호하겠다는 열정으로 봉사대를 결성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라고 하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타인을 해치고 죽일 듯이 위협하려 드는 사람은 인간을 향해 병독을 뿌리는 페스트균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고통에 빠뜨려 죽인다는 점에서. 그래서 우리 모두는 페스트를 옮기지 않으려는 의지와 더부러 남에게 고통 주는 존재가 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옯겨주고 맙니다.  < P. 329 >

12월, 추위가 오면 페스트가 진정되라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기세는 꺾이지 않고, 산발적으로 발작하듯 이어져 수용소를 채우고 화장장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건강한 일상에 대한 기대에 지쳐 아예 기다리는 일조차 잊어버린 듯이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자가 격리되었던 오통 판사는 격리가 풀린 후 다시 수용소의 자원 봉사자로 나섰고, 갖은 노력에도 탈출의 희망이 요원하다고 판단한 기자 랑베르도 결국 보건대에 자원하여 봉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중심인물, 타루가 페스트에 감염된다.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던 건장한 청년은 리유의 극진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비장하게 숨을 거둔다.

그 사이 의사의 혈청 치료는 조금씩 효력을 보이고 시작했고, 페스트는 도시의 지배를 끝 내려는 조짐을 은밀히 보여준다. 을에 쥐들이 다시 바스락거리며 나타난 것이다. 
맹추위가 닥치면서 페스트는 힘이 빠졌고, 도시는 서서히 본 모습을 되찾아 갔다. 물가가 현저하게 떨어졌고, 수도원도 군대도 제 모습으로 돌아가고, 등화관제도 해제되었으며, 건강하던 시절처럼 영화관에도 새 필름이 들어와 상영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마음 깊이 간직했던 희망들을 조심스레 꺼내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영혼의 불빛을 낮게 줄여 놓고 살아온 지난 몇 달 동안에 비축되었던 생명감을, 마치 그날이 자기들의 생환기념일 인양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이튿날이 되면 다시금 본래의 생활이 그 자체의 조심성과 더불어 시작될 것이었다."      < P. 385  >

"페스트 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또다시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 401 >

                                                     


                                                                                           

# 길지 않은 소설 페스트는 생각의 재료로 넘친다. 페스트 균은 죽지 않고 숨어 있다가 인간에게 교훈을 주고 싶을 때 언제라도 다시 습격을 감행할 것이라 지적한 부분에서 빛나는 통찰력을 보게된다. 지금의 이 팬데믹 상황을 점 치듯 짚어 보여주여 예언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이다. 게다가 매일 받아 보는 신문기사와 내가 읽어가는 소설 속의 페스트 진행 상황이 많은 부분에서 같거나 닮아 가는 걸 보면서 소설 속의 활자가 세월을 건너 뛰어 다시 살아나와 신문 지상에서 춤을 추는 느낌까지 받았다.

남에게 경계심을 주지 않고, 나 자신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겠다고 마스크를 끼고 나설 때면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페스트 환자일 수 있다는 소설 속의 말을 새기게도 되었다.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뿌려 페스트를 옮기는 것과 타인에게 죽을듯한 고통을 퍼부어 영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병독을 퍼붓는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라는 말에 몹시 집중하게 된다. 병독인 줄 모르고 마음껏 퍼뜨리던 우리의 무용한 말, 말들, 거두어 들일 수 없는 말, 말들,,...........코로나 시대에 반성의 재료가 의외로 70여 년 전의 소설에서 비롯된 것 같다,
 
목적 없는 산책을 하면서 딱히 우울하지도 않은데 왠지 슬퍼져 발길을 서점으로 돌린 날, 소설, '페스트' 한 권을 사서 들고 나왔다. 내가 사랑하는 서점이 텅 비어버린 것이 또 다른 슬픔을 안겨 주어 한 바퀴 휘이이 애잔한 눈빛을 보내다가 책 한 권 안고 돌아올 때는 이 책이 주는 무게를 차마 몰랐었다. 고립 속에서 계절이 바뀌고, 도시도 사람도 얼굴이 바뀌어가고, 마음의 정경들도 서서히 변질되어 가는 것을 작가가 이렇게 깊은 울림을 던지며 그려 나갈 줄 몰랐다는 말이다.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찬찬히 짚어가는 글들이건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깊은 사유의 제목을 던지고 있어서 나는 펼쳐 보고 또 보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다. 수십년 전에 즉물적인 우리에게 보내 둔 멧시지를 지금에야 펼쳐 본 기분이다.
소설 페스트는 꺼지지 않는 등불로, 불멸의 기록으로 세세생생 도도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