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20년

「작은 아씨들」- 영화 보고 책 보고

수행화 2020. 5. 2. 17:48

 

영화 '작은 아씨들'을 우리 집의 작은 아씨들, 두 손녀와 함께 보았었다. 저희들끼리 관람했는데 할머니와 함께 한번 더 보고 싶어 졌다는 기특한 제안에 버선발로 달려 나간 건 물론이다. 영화는 마치 명화를 슬라이드 쇼로 감상하는 느낌이라 나는 장면 장면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차라리 스토리는 부차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맞다 싶다. 복고풍의 아름다운 의상들이며 고풍스러운 생활상들이 그만큼 멋있게 보였다. 내 감상을 말했더니 손녀가 나를 일깨워준다. 실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의상상을 받은 작품이었다고 말이다. 그럼 그렇게 받을만하다 여겨졌다.
영화에 힘입어 책이 다시 나왔구나 했더니 또 손녀가 생일 선물로 이 사랑스러운 책을 내게 선물해 줬다. 생애 처음으로 순수하게 자기 노력으로 준비한 선물이라는 말이 귀에 와 닿나 했더니 바로 찡하게 코끝에 매달렸다. 어느새 자라 아르바이트도 하고 할머니 선물 마련할 요량도 하는 것이 너무 가상해서 치사를 하노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제대로 표현을 못한 것 같기도 하다. 
973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인데도 영화 보듯 편하게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지루할 틈은 없었다. 책이 무거워 이틀을 꼼짝 없이 앉아서 읽었더니 바로 거북목 신세가 돼 파스를 내리 붙여가며 통증을 달랬다.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Louisa May Alcott) 1832년 11월 펜실베이니아 주의 저먼타운에서 네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 목사이자 진보주의 사상가인 아버지로부터 철저한 정신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집안 살림을 도우고 가계를 꾸리며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고 한다. 1862년에 자원입대하여 북군의 야전 병원에서 간호병으로 근무하다가 자신이 장티푸스와 폐렴을 앓기도 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런 환경과 경험들이 소설의 토대를 이룬 것 같아 자전적 소설인가 싶기도 하다.

'작은아씨들' 은  마치(March)가(家)의 네 자매, 메그(Meg), 조(Jo), 베스(Beth), 에이미(Amy)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이 5월, 가정의 달에 가족을 생각하고, 가정의 소중함을 새겨 보기에 아주 최적화한 내용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버지다움에 대하여, 어머니의 현명한 역할에 대하여, 또 가난 속에서도 꿈을 실현하며 성장해가는 자매들의 건강한 의지에 대하여 좋은 본보기를 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16, 15, 13, 12 살의 네 자매가 분별을 가진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고전 중의 하나라는 것이 괜한 말은 아닌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네 자매 중 맏이인 마가렛은 다소간의 허영이 있었으나 성실하지만 가난한 남편을 만나 두 아이의 엄마로 지혜롭게 나이 들어간다. 제어해야 할 소비 욕구, 육아나 가사에 등한한 남편 습관 고치기 등 등, 결혼 생활에서 직면하는 문제들로 쩔쩔매는 초짜 주부의 애환에서 동서고금의 아내나 엄마의 걱정들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 고난 극복의 배경에는 언제나 엄마라는 나침판이 있어 길을 찾으며 적응해 간다. 고마움을 표하는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대답은 명언이다. 
"돌봐야 할 딸이 있는 엄마는 예리한 눈과 신중한 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단다, "   < P. 869 > 
"딸들은 어머니의 보살핌에는 마음을 주었고 아버지의 보살핌에는 영혼을 주었다, 자신들을 위해 그토록 충실하게 생활하며 힘들게 일하는 두 분 부모님께
사랑을 주었다. 그 사랑은 그들의 성장과 함께 자라나 삶을 축복하며 죽음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가장 달콤한 끈으로 그들 모두를 푸근하게 묶었다"   < P. 485 >

둘째 조는 남성스러운 강인함을 지녀 아버지가 참전 중이던 시절 가장의 빈 자리를 혼자 채우고 싶어 하리만치 가정의 버팀목이 되려 한다.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 원고료를 받아 가계에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훌륭한 작가에 대한 열망을 접지 않는다. 이웃해 있는 부유한 가문의 손자와 우정과 사랑의 감정으로 갈등하지만 동생에 대한 깊은 연민심으로 기꺼이 사랑의 감정을 접었으나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간호하던 셋째 동생과 죽음으로 이별하게 되는 과정이 슬프게 전개된다.
셋째 베스는 음악을 사랑하고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는 조용한 성품을 지녔으나 일찍 생을 마쳐 가족에 슬픔을 안겨준다.어린 베스가 투병하고 삶을 정리해 가는 모습은 마치 성녀 같다. 기력이 쇠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종일 손을 놀리며 선물들을 만들어 가족이나 이웃에 행복감을 남기려는 초인적 노력이 애틋하게 그려진다. 넷째 에이미는 그림에 재능이 있어 화가로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졌고, 재력 있는 고모의 눈에 들어 그 꿈을 이루려 한다. 순탄한 인생의 흐름에 들어간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모처럼 별식을 마련한 자매들이 엄마의 한마디 제안으로 그 음식을 병들고 더 어려운 이웃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는, 빵과 우유만으로 간소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도 행복해한다. 스스로의 생활은 근검하게 해야 하고, 늘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가정의 교육 지향점이라는 걸 보게 된다.  그래서일까. 가난은 이 자매들에게는 전혀 열등감이나 그늘이 되지 않아 보기가 좋다. 이웃 로런스 가의 멋진 파티에 낡은 드레스에다 짝짝이 장갑을 끼고, 또 발에 끼는 구두를 신고도 당당할 수 있고, 재미있게 어울리며 매력을 발산하는 힘을 가졌다. 이들은 로런스 할아버지와 손자 로리와 가정교사 브룩 등과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인연을 어어가게 되고 훗날 가족이 된다.

요리법 배우기, 바느질 하기, 매일 공부하기 등을 권장하며 딸들을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여성으로 키우고자 하는 엄마의 의지가 이 가정의 밑그림을 이룬다. 일은 나쁜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심신을 건강하게 해 주는 것이라는 것, 아울러 일을 통해 알게 모르게 자신감과 독립심이 길러진다는 것도 깨닫게 해 준다. 일과 놀이를 적절히 조화해 간다면 가난 속에서도 인생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을 엄마를 통해 보고 배운다. 무엇보다 이 모범적 가정의 요체는 부모님의 올곧은 가르침과 자매들의 순수한 성품이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하모니일 것이다. 네 자매는 각자의 뚜렷한 개성으로 다른 길을 걷고 서로에게 어울리는 반려를 찾아가지만, 어려움에 처하면 지혜를 모으며 강하게 결속한다. 현실을 탓하지도 않고 가난하다고 하여 비굴하게 변질되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가정에서도 지역 사회에서도 등불 같아 존경심을 한 몸에 받는 존재이다. 
"지독한 가난과 그를 좀 더 세속적인 성공으로부터 멀찌감치 떼어 놓은 칼 같은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특성들은 향기로운 풀이 벌을 끌어들이듯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그의 곁으로 수없이 끌어들였고,........... 과묵한 학자는 책들 사이에 앉은 채 여전히 가장이자 집안의 양심이요, 닻이자 위안을 주는 존재였다.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저 말들의 가장 참된 의미를 그를 통해 새삼 확인했다."   < P. 484 >

"부는 아주 바람직한 것이긴 하지만 가난도 그 나름대로 밝은 면을 지니고 있으며, 머리를 쓰든 손을 쓰든 진실한 노동에서 오는 순수한 만족은 역경의 달콤한 열매 중 하나다. 그리고 세상의 지혜롭고 아름답고 쓸모 있는 축복의 절반은 결핍이 주는 영감 덕분이다. 조는 이러한 만족을 즐기게 되면서 부잣집 아가씨들을 더는 부러워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이 있으며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고 누구도한테도 손 벌릴 필요가 없다는 인식에서 큰 위안을 얻었기 때문이다."
<. P. 548 >

 

맏딸 메그는 벅찬 가사에 남편의 협조를 끌어내며 마침내 가정의 안정을 찾아간다.
"이 가정의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존과 메그는 행복에 이르는 열쇠를 발견했고, 한 해 한 해 거듭되는 결혼 생활은 부부에게 그 열쇠로 진정한 가족애와 서로 기꺼이 도우려는 마음이 가득 들어 있는 금고를 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금고는 아주 가난한 사람은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아주 부유한 사람은 살 수 없는 것이었다....... 매그가 배웠듯이 여자에게 가장 행복한 왕국은 가정이며, 여왕이 아니라 현명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그 왕국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영광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되는 곳일지도 모른다.  < p. 797 >


결혼을 포기하려던 조에게서 사랑은 떠나버렸으나 홀연히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인격이 고매하고 지성적인 독일인 교수를 만나면서 그 넉넉한 품 안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게 된다. 부유한 고모가 유산으로 저택, 플럼 필드를 남겨 주셨고, 조는 넓고 우아한 저택을 학교로 탈바꿈시킨다. 고아이거나 보살핌이 필요한 소년들에게 집처럼 행복한 배움의 장을 만들겠다는 취지의 학교를 건립해 능력을 발휘한다. 

"그를 지켜보다가 마침내 기적을 일으킨 요인은 바로 자애로움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슬픔이 있어도 '새가 날갯죽지를 머리에 묻듯' 가슴에 묻어두고 자신의 밝은 모습만 세상에 드러냈다. 이마에 주름이 있었지만 세월이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친절한지를 기억해 내고 그를 살며시 어루만진 듯했다. 입가의 기분 좋은 굴곡들은 수많은 덕담과 유쾌한 웃음의 기념비였고, 눈은 차갑지도 엄격하지도 않았으며, 따스하면서 힘 있게 움켜잡는 그의 큼지막한 손은 백 마디 말도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 p. 701 > 

"신사분들, 즉 청년들은 아무리 가난하고 평범하고 까다로운 노처녀라도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 .........작은 가게에서 사준 작은 선물, 더디고 늙은 손가락으로 그대의 옷을 꿰매 주었을 때를, 힘겹게 내딛는 그들의 늙은 다리를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자라면 살아 있는 한 언제나 환영하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노력하라. 마음씨 좋은 고모와 이모를 생각하라. 


화려한 영상에 가려진 언어들, 허공에 흝뿌려져 놓쳐버린 대화들을 책 속에서 오롯이 다시 들을 수 있어 문자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 영상의 감동이 가일층 구체화되는 효과가 있어 책 보는 것이 결코 미련한 일이 아니라는 나의 주장에 만족한다. 작가의 지혜와 영감이 길어 올린 글들을 하루 이틀 소일거리로 읽어치우는 데서 오는 송구함이 있고, 내 기억 창고에 들어가기 무섭게 까무룩 하니 증발해버리는 감동이 안타까워 조금씩이라도 써 두며 위안을 삼아보려 한다. 

 

작은 아씨들에서 가난은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부끄러움도 아니며 다만 불편일 뿐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불편을 감내하며 얻어지는 많은 가치들이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안락함에 앞선다는 걸 보여주어서일 것이다. 세상은 급변했고, 지구촌에 모여 사는 지구인이라지만 사상은 더더욱 자유분방, 복잡다단해 가는데 이 고전적 스토리가 많은 세계인의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힘을 보았다. 인내를 숙명으로 여기며 가족의 울타리를 실하게 버텨내는 여자의 힘, 남자를 남자답게 키우고, 남자들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여자의 힘을 보여줬다. 자들이 일으키는 힘의 기적이다.


엄마가 화나면서 드러나지 않는 법을 터득하는데 40년이 걸렸다는 말은 마치 내가 무시로 쓰며 늙어 온 말 같아 공감이 폭발하기도 했다. 인내는 어머니의 다른 이름인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아직도 세상은 나에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나에게 맞춤하게 전개되지 않으니 인내의 끝은 안 보인다. 하지만 인내의 과실은 크다. 할머니와 영화도 보고, 책도 사다 주고 웃음을 선사하는 손녀가 있고, 정말 고운 핑크빛 꽃을 안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으니 과실이 담뿍하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소중하게 들고 온 책은 내가 손녀에게 선물하고 싶은 바로 그런 책이라 더욱 반갑다. 가족의 사랑이 영원히 세상을 지탱하듯이 무심히 인내하는 태도도 세상의 딸들이 배워 지녀야 할 덕목인 것 같아서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은 대학 시절 안 병욱 교수님의 강연에서 들어 이념처럼 지금껏 내 마음에 깊이 자리해온 명언이다. 가족들이 제자리에 있을 때, 개별적인 삶들이 질서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할 때의 아름다움을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서 본다. 내 마음은 일 년 내내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