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파 할머니 나와 행동파 손녀, 규영의 조합! 언뜻 언밸런스하게 들릴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의기투합하면 에너지가 제법 충실하다. 손녀의 스케줄 관리에 뜻밖에도 할머니와의 미술전 관람이 하루 끼워져 있다하여 즐거울 하루 이벤트를 기대하며 부품하게 며칠을 보냈었다.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은 '인사 센트럴 뮤지엄'에서 열리는지라 오랜만에 인사동 공기도 마시고 아이와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는 가 없는 행복을 누렸다. 르네 프랑수아 길랭 마그리트(1898년 11월 21일~1967년 8월 15일) 는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라는 단순한 정보만 갖고 나섰다. 초현실주의 작품은 선입견 없이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생각해서인지 머리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도통 없긴 했다. 안녕 인사동이 복합 분화 공간이라고 하는데 처음 가봤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란 역시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니 중절모를 쓴 신사 얼굴에 사과가 그려진 커다란 배경 그림 앞에 또 중절모 형태로 개성만점인 동그란 벤치가 마그리트 작가의 상징같고 멋있어서 우리는 일단 기념 사진 한장을 찍고 관람을 시작했다.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와 사진 전시 이외에도, 아내와 함께 한 사진이나 다른 예술가들과의 사진 등이 기록처럼 전시되어 다큐 한편을 아울러 보는 느낌을 받았고, 작가의 생애와 화풍의 이해를 도우는 친절한 전시라 여겨졌다. 총 160여 점이 전시되었다고 하니 작가의 작품을 거의 망라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작가는 담배파이프, 돌, 중절모, 새, 등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들을 그리기 좋아한 것 같은데,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고, 새도 새 자체로 보이기를 원하지 않는다니 '생각하는 화가'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화가'라고 해야할 것 같다. 대표작은 '빛의 제국', '연인', '이미지의 배반' 등등이라고 하는데 발상이 독특한 작품들을 접하니 나에게는 하나같이 대표작처럼 보였다. 무심히 보아 넘기는 사물들이 예술가에게는 영감을 일으키고, 우리는 그 예술품을 통해서 사물의 존재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사과, 구름, 나무, 새..... 화가는 사물을 재해석하여 보여주고 우리는 생각에 잠긴다. 화가가 안개를 그리지 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으며, 화가가 안개를 그림으로써 안개의 지위가 높아졌다는 말의 진의를 알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의 글에서 읽었지 싶다.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이미지일 뿐 아무도 이것으로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뜻으로, 이미지는 현실이 아닌 환상일 뿐이라 설명한다. 이것은 다만 종이이지 파이프가 아닌데, 우리는 실체(종이)에 관심이 없는 이미지의 사회(파이프)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나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것보다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My work is not a question of painting, but of thinking"
-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1898~1967)
마그리트의 다양한 상상의 원천을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된다. 강에 빠져 자살한 어머니의 사고와 연관되어 해석이 되곤 하고, 가장 가까운 연인에게조차 자신의 모든 걸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있다고 한다.
중절모를 쓰고 같은 스타일을 하고 있는 신사 여러명이 하늘 위에 복사, 붙여 넣기를 한 것처럼 복제되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든 신사는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빗방울처럼 떨어지고 있는 건지, 풍선처럼 위로 솟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투시
화가의 자화상과도 같다. 알을 보면서 새를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비약을 표현하고 싶은 예술가의 도전 정신인가 싶다. 새롭고 낯설게 관찰하는 화가의 시선을 봤다.
"나에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라고 말한 것처럼 새로움을 추구하고,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 정신이 초현실주의의 토대인가?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달을 보는 것이라고....."내 작품이 전하려는 것은 한 편의 시" 라고 하는 작가의 서정성이 느껴지는 그림 앞에서는 조금 경건해진다. 나무에게도 나무만의 달, 돌에게도 돌만의 달, 사람에게도 각자만의 달......
남자의 얼굴을 풋사과로 가린, '사람의 아들', '중산모를 쓴 남자.' 컵을 이고 있는 우산을 그린 '일', 맑은 하늘의 낮과 창에 등불이 아련한 집의 밤을 한 화면에 담으며 낮과 밤의 대비를 그린 '빛의 제국' 등등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것들이 가득한데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작가가 전하려는 한 편의 시에 관람객들이 어느덧 동화되어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마법에 걸린 왕국'은 동화책 페이지 펼쳐 보는 느낌으로 6점의 그림이 연작이어서 파노라마로 찍었는데 퍽 흔들린 탓에 보기 어려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센스쟁이 손녀는 작품에서 땅과 하늘의 구분선이 일정한 것에서 연작임을 금방 알아채고 무심히 보고 서 있는 할머니에게 힌트를 제공했더랬다. 멋모르고 집중하는 웃기는 할머니 관람자, 나는 뿌듯해서 내심 미소 지었다.
잘 활용한 영상은 관람 효과를 한껏 끌어 올리기도 했다. '빛의 제국'에서는 그림 속의 나무가 흔들리기도 하고, 등불을 깜빡이게도 하여 작품에 몰입도룰 높혀주는 걸 느꼈다.
잘 전시된 작품을 둘러보고 나오니 작가의 사상과 화풍에 대해 어느 정도의 윤곽을 알겠다 싶었는데 손녀는 나풀거리며 할머니를 또 다른 방으로 안내한다. 다음 이동한 방을 들어서니 "와~" 탄성이 절로 새어 나온다. 방금 본 그림 160점에 음악이 입혀져 어둠이 가득한 넓은 방을 율동으로 채웠다. 물 흐르듯, 춤 추듯하다가 잠시 하늘로 치솟다가 곧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현란한 이 멀티미디어쇼는 장장 40분 간 이어지면서 전시회를 총정리해주는 것 같았고 환상이었다. 우리는 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물을 들이고, 아름다움이 온 몸에 습기되어 젖어들도록 꼬박 40분을 지켜보았다.
거울이 작품을 대칭으로 보여주어 신비감을 더하는 거울방, 색깔을 왜곡해 보여 주는 라이트룸의 체험도 신비했다.
사람 키 높이의 거대한 초록색 사과와 커다란 파이프 조형물의 포토존
작가가 즐겨 그린 초록색 사과와 파이프 조형물이 화면 밖으로 나와 입체감을 드러내며 재미를 더한다. 곳곳에 전시 하이라이트가 배치되어 작품의 요점정리처럼 기억을 정리해 준다. 사과나 파이프로 자기 사상을 표현하고, 관람자의 생각을 유연하게 이끌어가는 능력은 예술가들만의 천재성인 것 같다. 화가의 어록을 잘 정리해 둔 검은 벽채를 지나쳐 버린 것이 지금에야 생각이 난다. 카메라에 들어와 있는 한 줄의 글을 읽은 지금에야....
"우리는 마그리트의 작품 앞에 서 있는 동안에는 보고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하기 바란다. 또한 그 생각들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길 바란다" - 마그리트의 친구, 루이 스퀴트네르
전시장을 빠져나오니 눈부시게 밝은 휴게 공간이 기다린다. 방금 본 구름송이들이 두둥 두둥 떠 있는 공간이 또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구름이 빠끔 열린 문 틈으로 장난스레 살며시 들어오는 화사한 영상을 방금 바라보았는데 이 곳에 그 구름 공간을 꾸며 놓아 마지막까지 그림에 집중하게 해 주는 세심한 배려가 좋았다. 솜털 구름을 희망의 멧신저로 집까지 간직해 가라고 고이 건네주는 선물이라 여기며 마음에 감동으로 담았다. 나이 듦에 슬퍼지는 일은 기념할 일이 줄어듦인 것. 나는 오늘을 내내 기념하려고 소박하게 마그넷 하나 사고 아이들 노트 한 권씩 사면서 이 사랑스러운 공간을 떠났다.
구름을 들이마셔서인지 붕붕 떠있는 기분으로 걷고 걸었다. 손녀와 나란히 광역버스를 타고 달리니 어디 먼 여행길에라도 오른 듯 아련하니 좋았다. 안아주고 업어주며 보살피던 아이가 이제 할머니를 척척 안내하며 앞서서 챙긴다니........감격시대가 지금이다. 미술관은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그들이 사랑했던 것을 우리도 사랑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곳이라고 했다. 덧붙여 우리 안에 잠만 자는 감각을 일깨워 어떤 갈망을 품어보라는 권유의 곳도 될 것이라 나는 말하고 싶다. 세상에는 알 것도 볼 것도 정말 많다. 책 없는 세상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현실 속의 지혜는 책 속에 있지만는 않은 것이다. 언제나 피상적인 편인 나에게 무엇인가 실체적 만족감을 안겨준 하루를 보냈다. 손녀 덕에 나는 또 마음의 지평이 한뼘 더 넓어졌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