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20년

'내 생에 마지막일 것들'

수행화 2020. 12. 22. 13:18

갑갑하네 울적하네 투정하는 사이에도 세월은 흘러 한 해를 넘기려 한다. 대책 없는 불만은 역시 소모적이었다 싶다. 강물이 굳이 세차게 달리지 않아도 언젠가 바다에 당도하듯이, 이 불만의 시간들도 흐르고 흘러 끝내 망각의 바다에 가 닿을 것이다. 지난달에 십여 년 만에 이사를 했다. 힘이 들고 번거로웠으나 거대한 정리작업을 한바탕 한 것 같아 가벼운 마음도 든다. 그러면서 또 '내 생에 마지막일 것들'이라는 표현을 쓰게 됐다. 나는 가끔 가는 해외여행에서 어느 낯선 도시에게나 아름다운 풍광에게 잘 지내라며 마음의 인사를 보내고 떠나오곤 했었다. 이 만남이 '내 생에 마지막'일 것이리니 부디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하고 잘 지내라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3년 전에 간장을 담으면서도 이번이 내 생에 마지막 간장 담기 일 것이라는 생각을 또 했었다. 나의 선택과 의지에 달린 일이라 언제라도 번복할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해 보면서 나의 현위치를 다시 새겨보고 한 가지씩 정리하고 놓아가며 단조롭게 살아야 하리라는 다짐을 굳혀보는 것이다. 

사람도 물건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는 것. 이사를 계기로 던지다시피 하며 많은 물건들을 내보냈다. 나는 사실 메모지 한쪽도 의미 없이 버리는 일을 송구하게 여긴다. 그것들이 세상에 올 때는 제마다의 쓰임새를 가지고 왔을 텐데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고 바로 버린다는 건 메모지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 같은 것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입지 않은 옷들은 임자를 찾아 주던지 리폼을 하겠다는 요량으로 보관하였고, 크고 작은 쇼핑백들은 워낙 깨끗하니 재사용하겠다고 쟁여 두는 등등의 습관들이 아주 체화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을 조금 바꿨다. 내가 무기한으로 보관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알아서 잘 활용하면 좋을테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버리지 않으면 다음에 누구를 힘들게 할까 하는 마음이 드니 한결 처분이 편안해졌다.

쓸 만큼 썼던 물건을 버리면서 아까워하고 마음이 복딱였다면 다들 웃을 일인데 나는 그랬었다. 거의 반생을 함께 했던 내 원목 장롱이 폐기물 수거장에서 햇빛을 받고 있으니 마치 나의 내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 같아 아주 민망했다. 늙고 구닥다리가 되면 이렇게 매몰차게 버려지고 함부로 대접받는 것이 세상인심인 것에 잠시 씁쓸한 마음도 일었다. 붙박이장은 공간 낭비가 없이 영리하고 민첩하긴한데 헤깝하게 열리는 폼이 가볍고 퍽 체신이 없다. 문을 여닫을 때의 도톰하고 살가운 맛은 언감생심 기대할 것도 없는 일. 그저 시절 따라 요령껏 살아야 하니 여기 또 마음을 붙여보긴 해야겠다. 오동나무 뽀얀 속살이 퍽 귀티가 나던 장롱을 버리고 합판 눌러 붕어빵 찍듯 찍어 낸 장농을 신식이리고 들이다니! 어쨌거나 요즘은 붕어빵 굽는 세상이다.

인터넷으로 인테리어 잘했다는 집 구경을 제법 했다. 그런데 눈여겨 볼만한 것이 금방 소진돼 버렸다. 요즘 핫한 트렌드에 충실하다 보니 천편일률적인 것이 역시 붕어빵 공장 같고, 몰개성 하기 그지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마침 그때 내 맘에 쏙 드는 솔깃한 기사를 읽었다.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그래니시크 조용히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래니시크란 granny+chic의 합성어로 '할머니 느낌 나는 인테리어풍'을 이른다고 한다. 촌스럽다고 밀려나던 갈색 장식장이나 빈티지 느낌의 테이블들을 재조명하고, 꽃무늬 소파나 커튼, 프릴이나 레이스 달린 침구나 자수 등을 활용해서 할머니집 분위기를 내 본다는 것이다.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시장에 쏟아져 나온 모던하고 실용적인 가구들은 충분히 식상할만하다 싶어, 그래니시크 유행이 십분 이해가 됐다. new retro, 복고풍이 새 바람이 된다니 이 또한 순환의 원리 인가 한다.


"옳거니!" 물건을 오래 쓰는 나에게 반짝 위로를 주는 말이었고, 내가 돌연 그래니시크의 선봉에 나선 것처럼 흐뭇해졌다. 20년이 넘은 꽃무늬 커튼과 침대 이불을 씌워 놓고 손녀 입에서 예쁘다는 말 나오기를 내심 기대하며 나는 혼자 웃었다. 꽃과 레이스와 자수란 손이 많이 가지만 영원히 사랑스러운 아이템이라는 건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이 참에 베개커버에 간단한 이니셜이나 수놓으면서 그래니시크 바람을 타보면 어떨까 싶다. 힌트가 곳곳에 있다.

"인간이란 삶의 바닷가에서 갖가지 색깔의 조약돌들을 모아 놓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부처님 말씀이 떠올랐다. 조약돌들을 보석인양 애착하면서 진정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뜻일 것이다. 이삿짐 더미에서 튀어나온 올망졸망한 것들에서 자잘한 것에 마음을 낭비하고 어줍잖은 일에 골몰하며 산 나의 내력을 보았다. 조약돌 모으는 아이의 치기가 면면히 보였다. 그런데 모르긴 하지만 다시금 그 시절을 살아낸다 해도 나는 나의 분수 안에서 꼬물거리며 그렇게 살 것 같다. 작은 것에 감동하고, 매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던 시절이라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밤을 도와 짐더미 정리를 해 나가다 보니 생각은 시공을 멋대로 넘나들었고 연중행사로 집단장을 하시던 어머니 생각을 오래 하게 됐다. 해마다 컬러가 바뀌던 사방연속무늬의 도배지가 기억에 새롭고, 새로 깐 장판에 콩땜을 입힌다고 방에 못 들어갔던 날들도 생각났다. 8월 문은 바르지 않는 법이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어느 날 방문들을 떼내어 씻어 말려서 창호지를 바르시니 때는 물론 음력으로 7월 말이지 싶다. 풀 먹은 창호문을 햇볕에 말린 다음 물분무를 하여 다시 말리는 순서를 거쳤다. 어머니 입에 머금은 것은 물이었으나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안개요 수증기였으니 신묘한 기술이었고 여간한 분무기는 댈 것도 아니었다. 나도 따라서 물을 머금고 뿜어 보았지만 여지없이 물방울 뱉어내는 놀이였고 그러면서 웃곤 했었다. 그렇게 분무 세례를 받은 창호문은 햇볕 아래 팡팡해져서 튕겨보면 통통 부드러운 타악기 소리가 났었다. 문고리 부분에는 국화잎을 끼워 넣어 겹으로 바르니 모양도 예쁘고 손 가는 부분이 도톰해져 질기기도 했었다. 60여 년 전의 어떤 풍경 하나만 반추해봐도 우리는 천지개벽의 시대를 관통해 살아왔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군불평들은 줄여야 한다. 

정리의 기본은 버리는 것이라는 말은 정석이 되었다. 일본인 '곤도 마리에'가 쓴 '정리의 기적'이란 책도 읽었으나 내게 크게 어필하지 않았으니, 버리면서 하는 정리를 누가 못하랴 하는 생각에서였다. 오히려 버리는 용기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이 마음에 와닿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버리면 정리가 수월하다. 옛 성현의 말씀에 '비우고 비워야 쓰임이 있다'고 했다. 넘치게 담기면 더 담을 수가 없는 것은 정한 이치이니, 마음도 비워 빈 공간을 마련해야 비로소 곁도 살피고 다른 것들을 품을 여유를 갖는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니 그 빈 공간에 쓰임이 있고, 문과 창을 뚫으니 그 빈 공간이 쓰임이 있다고 하는 비움의 성찰에 깊이 공감했었는데 하물며 세간살이 비움이야 일러 무엇하겠는가?

나도 정리를 한다면 좀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던 터였는데 나의 정리벽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참신하지 않음이었다. 버리며 하는 정리가 아니라 안 보이게 하는 정리를 하여 외관상으로 퍽 정돈돼 보이게 하는 방식이었다. 박스 안의 또 다른 박스, 그 안에 보관품들. 까고 또 까면 기억 저 너머의 물건들이 까꿍하고 나타나니 재밌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원 없이 버렸다. 내용물도 버리고 박스도 버리고. 이제 종이박스와 친하지 않기로 지향점을 잡아 정리를 하려 한다. 

마지막일 것들이 있는가 하면 또 새롭게 일어나는 일들도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기는 하다. 인터넷 장터를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었고 옷걸이며 전자레인지며를 사 들이기도 했으니 새로운 장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터넷 장터에서 저렴한 물건 사재기를 선호하지 않는데 인터넷에서만 구매할 수 있어 어쩔 수 없는 입문이었다. 품질이 의심스러우니 리스크를 줄여보겠다고 상품 설명을 읽고, 구매후기를 참고하다가, 줄자로 크기를 가늠해 가면서 구입하니 웬만했다. 우선 가격이 합리적이었고 발품을 아껴 퍽 편리하다는 걸 경험했다. 자주 이용할 것 같은 예감이 있다.

나이가 들면 새로이 사람 사귀는 일도 퍽 어려운데 새 집에 적응하는 일이 어찌 쉬우랴 생각은 했지만 예사롭지 않은 걸 바로 실감한다. 물건 찾는데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며, 버린 물건 찾으며 낭비한 시간이 또 얼마인지 모른다. 무엇이든 제자리에 있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닥친 불편이 난감하지만 너그러이 견디기로 한다. 사람도 물건도 모두 제 자리에서 은근한 소임을 다하는, 무심한 일상이 자리 잡는 날도 머잖을 것이다. 그리고 동짓달 긴 긴 밤을 길다 않고 마주 하던 내 책상에 짬짬이 마음풀 붙이는 일도 챙겨봐야겠다. 

이제 집을 등짐 삼아 지고 사는 달팽이처럼 집에 엎드려 코로나 언택트 시절을 살아내야겠다. 내 생에 마지막일 것들을 꼽아 보면서 김장을 마쳤고 동지팥죽도 끓여 먹었다. 그런데 아들이 김치를 좋아하니 김장은 마지막이 안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