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윤 5월이 들어 유난히 여름이 무덥고 길었나 했더니 의외로 가을이 곱고 더 길지 않나 싶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입니다.'
(Autumn is a second spring when every leaf is a flower - Albert Camus.)
지난 주 들렀던 병원 통로에 크게 나붙은 글을 보고, 마음에 들어 새겨둔 말이다. 잎이 꽃으로 번져 가는 이 가을에게 섭섭치 않게 어제 화담숲을 한나절 쉬엄쉬엄 걸었더니, 미처 나가지 않은 코감기가 자기 존재도 잊지 말라 경고라도 날리듯 종일 후두두둑 콧물을 내 놓고 있다.
마음은 가을 콩밭에 내 보내고 신문만 건성 건성 넘기고 있는데, 멋진 소식들이 연신 스마트폰에 날아든다. 하얀 지붕이 바다와 더부러 그대로 엽서가 된 산토리니, 지중해를 물들이며 붉게 저물어 가는 일몰의 광경을 전해 받아, 나도 뭐라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에 어제 걸었던 화담숲의 아담한 풍경을 띄워 보내고 돌아 서니, 이번에는 웬!
또 다른 친구가 곱게 물든 단풍 나무를 배경으로 멋진 포즈를 취한 사진이 째깍 도착하며 속초와 월정사에서 제대로 가을 맞이를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지금은 충청도 산막이 길을 가는 중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뒤따라 온다. 이런! 핑퐁 게임이 따로 없다. 그들은 지금 인생의 가을을, 두번째 봄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이 화려한 가을 나절을 열정적으로 만끽하는 사람과 그저 따스하게 바라 보는 나와의 사이에 평화로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 창을 통해 비 오는 풍경을 바라 보는 일이나, 어두워지는 바깥을 바라 볼 때 느껴지는, 적절한 거리가 주는 편안함이 있는 기분 좋은 오후이다. 빈둥거리며 감기 단속을 좀 하려니 좀이 쑤셔 책상 정리를 해 보다가 혜민 스님의 산문집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을 다시 잡고 앉아 있다.
완벽한 행복, 완벽한 하루, 완벽한 관계......완벽이란 그때 그때 마음 가는대로 매겨질 고무줄 기준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모두들 자기만의 잣대로 완벽한 상태를 좋아한다. 나의 완벽하지 않은 부분에 불편해하고 슬퍼하며 부족의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한다. 그런 배경이 '혜민 스님'께서 sns에 연민심을 담은 글들을 띄우게 했을 것같고, 그게 쌓여 책이 된 듯하다. 굳이 목차대로 읽을 필요 없이 아무 페이지나 아무 시간에 그저 읽으면 되는 글이라 부담이 없다. 짧고 순한 언어는 강렬하지가 않아 나는 무심히 책장만 넘겼던지 다시 보니 새삼스럽기만 하다.
"오늘 사랑하는 나하고만 시간을 보내세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공 들이듯 나에게도 공들여 보세요."
"살면서 가끔은 나를 위한 소박한 사치를 허락하세요. 식탁에 올려 놓을 아름다운 꽃 몇 송이를 사온다든가 커피와 함께 먹을 맛있는 치즈케잌을 한 조각 산다거나........ ( P.42 )
"한정판으로 나온 최고급 명품도 똑같은 것이 수십개씩 만들어져 나옵니다. 그러나 나라고 하는 명품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어요. 하나뿐인 개성 있는 나라는 명품을 아껴 주세요." ( P. 43 )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과도하게 의지하고 챙겨 주고, 또 그래서 상처를 받습니다. 너무 많은 요구를 하고 너무 많은 요구를 받아 결국에는 서로가 감당이 안 되는 채무관계처럼 돼 버립니다. 그래서 관계는 난로 다루듯 해야 합니다. 너무 뜨겁게 다가오면 한 걸음만 뒷걸음질 하세요 " ( p.65 )
자신을 위해 지갑을 열고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늘 후순위의 일이 되고, 남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운 일보다 내가 한 발 물러서며 상대에 맞추는 낮은 자세를 마다 않으며 우리는 살아 왔다. 세상에 여자가 없다면, 주부가 없다면 전쟁만 무성해 모두들 멸망할 것이라는 말로 한번 웃어 넘기고 위로 삼았던 시절이 남의 일이었던 양, 멀기만 하다. 스님은 지나치게 주변을 챙기는 일방적 관계의 피로감을 털어내고 사소하나마 현실적인 자기 사랑을 권하시고 있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진실로 사치롭다. 꽃이나 케잌이 없어도 내 즐거움에 열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고맙고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혼밥, 혼술이라는 말에 쓸쓸함이 묻어 있지만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할 수 있어 잘만 쓴다면 호사스럽기도 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누군가와 부대끼며 말하고, 비교하고 계산하고 저울질 하느라 분주하던 시간의 끝에는 늘 공허가 있다. 홀로 침묵하며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도 크나 큰 위로가 된다.
상처 받고 치유하려 골몰하는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보내는 글도 같이 메모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