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2023년

'배움의 기쁨'을 읽고. - '토마스 채터턴 윌리엄스' 에세이-

수행화 2023. 8. 29. 15:53

 '토마스 채터턴 윌리엄스'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는 '배움의 기쁨'이라는 책으로 자신이 속했던 미국 흑인 사회에 어떤 멧시지를 던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지성적인 외모와 배움이라는 말이 신뢰감을 주었고 '배움의 기쁨'은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작가는 1981년 뉴저지에서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흑인 노예의 손자로 태어났지만 오리건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지식인이다. 이후 뉴저지에 정착하여 자신의 이력과 지식을 바탕으로 집에서 대학입시 준비를 도우는 사설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시인이나 철학자가 되기를 염원하여 18세기 영국 시인 '토머스 채터턴'의 이름 자를 따서 아들 이름에 붙일 정도로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막상 소년 채터턴은 또래 흑인 아이들 사회에 깊이 동화하려 애를 썼다. 비속어를 쓰고, 펑퍼짐한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걸음걸이도 춤 추듯 건들거리는 등, 힙합 문화에 깊이 빠져 들었고,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혼혈이면서 순 흑인으로 살고 싶어하는 이 아들을 설득하고 회유하면서 학문의 길로 이끌었다.
"너는 대학에 가야 한다" "네가 좋은 말을 공들여서 길렀다고 해 보자. 그런데 그 말이 진흙탕에서 당나귀나 노새들과 뒹굴고 있으면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니? 어디 그뿐이냐. 정말 위험한 일은 그 말이 자기가 당나귀나 노새라고 믿어버리는 거야. 얼마나 큰 비극이냐?"
아버지는 아이들에게는 공부가 일이라는 사상을 주입하려 했고, 채터턴이 일곱살이 되자 여름 방학 계획표를 짜서 보여 주었고, 암기 연습, 단어 공부, 유의어와 반의어 쓰기 훈련을 시켰다. 메리엄 웹스터 대학생 사전을 사용하게 했고, 학교 수업은 물론 방과 후 저녁 시간도, 기나 긴 방학도 모두 아버지와 일대일 학습에 바쳤다. 
만일 파피가 독재자였다고 한다면 악역을 맡고 싶지 않아 내적 갈등을 겪는 온화한 독재자에 가까웠다. 파피는 독재자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될 날을 간절히 기다렸다.   <P. 32 >

채터턴은 농구부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아 명문고 진학 자격을 얻었고, 카돌릭계의 사립학교에 입학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어서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채터턴의 대학 생활은 문화적 충격에 직면하면서 시작된다. 세상에는 월등한 수재들이 많고, 상상 이상의 부를 지닌 상류사회 친구들이 있다는 걸 보게 된다. 자신의 좁은 시야를 깨달아 갔고, 자신도 저런 친구들처럼 똑똑한 중산층이 되어 부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게 된 것이다. 흑인 남자로 쿨하게 세상을 살아가려던 한 때의 지향점이 완전히 무색해졌고, 더 나은 것을 알아가고 경험해 보기를 열망하게 됐다. 호기심이 끓어 올랐고, 자존심을 낮춰 가며  노력했다. 유럽 여행을 통해 시야를 더욱 넓혔고, 크게 자기 혁신의 동력을 얻었다.  세상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능력과 자격을 갖춘다면 어디를 가든 주변 환경을 이렇게 누리며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날 밤 과거에 유니언 카돌릭이 남겨 준 세상과 앞으로 죠지타운이 보여줄 세상, 그렇게 나를 둘러싼 두 세상이 사각형 나사와 삼각형 구멍처럼 서로 부합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P. 168 >

대학 시절 여름방학에는 독서에 빠져 들었고, 자신을 개조하기 위한 방법을 구체화해 나갔다. 일단 학교 수업에 절대 빠지지 않고 집중할 것이며, 언제나 복장을 말끔하게 갖추기로 한 것이다. 이전의 헐렁한 힙합 패션을 벗어 던진 것은 정제되고 품위 있는 신사로 거듭 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아들아, 한 사람에 대해 세상에 제일 먼저, 가장 즉시 말해 주는 것이 옷차림이란다."   < P. 205 >

2학년 말에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철학에 깊이 몰입했고, 박학다식한 어른이 되겠다는 열의을 더욱 다졌다. 이 목적에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공부에 몰입했고, 책에서 공부의 맥락을 발견하는 기쁨을 알아갔다. 이렇게 선택하고 집중하면서 더 나은 인생을 꿈꾸는 배경에는 아버지가 있었고, 지성의 함양을 북돋우는 철학책이 있었다. 
파피는 인생이 은밀하게 한 수 힌 수를 두는 길고 긴 체스 경기라고 생각해서 반드시 전략과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여겼다.   < P. 68 >
파피는 특별한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자신과 같이 생긴 사람에게 무조건 광적인 혐오를 보이는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 P. 109 >
"가장 위대한 행위는 사유라고 믿었던 니체는 "세계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라고 했다. 흑인 세계는 30년이 넘도록 힙합의 가치를 창조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이것은 명백한 퇴보이다."   < P. 304 >

‘힙합시대 흑인 문화의 타락’이라는 칼럼을 썼고, 이것이 워싱턴포스트 지에 실리면서 열광적인 호응을 얻게 됐다. 그의 에세이들이  정리되어 나온 것이 이 책, 'Losing My Cool' 이다.
책의 원제 'Losing My Cool'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흑인 남성이 멋(cool)이라 여긴, 힙합에 경도된 문화를 탈피한다는 의미가 하나 있고, 또 'lose one's cool'에는 '화가 났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흑인들은 편협한 시선으로 스스로 장애물을 만들며 살아가는 현실에 화가 났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힙합문화에 젖어 흑인다워지겠다고 애쓰던 소년과 창 밖으로 포토맥 강이 흐르는 멋진 도서관에서 '하퍼스'와 '애틀랜틱' 잡지 과월호를 열독하는 대학생을 나란히 대비해 보는 것은 감동이다.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배움의 기쁨에 젖어 들고, 지성적인 성인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바라 보는 것에 배움이 가득하다.
채터턴이 집을 떠나서 낯선 세계에 발을 내디딘 것은 물리적인 공간 이동만이 아니었고, 자신의 정신세계가 항로를 크게 이동한 것이다. 자신이 동화되어 자라왔던 세계를 향해 비판적 견해를 피력하고, 흑인 문화는 도덕적으로 충분히 비난받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실로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픔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 자전적 에세이에서 치기어린 자기 고백도 서슴치 않은 것은 그들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진정성에서 비롯된 용기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자신의 과거와 이웃을 향한 일말의 애정이 깃들어 있기도 한 것이다. 부디 그의 이 감동 스토리가 널리 읽혀 어둠에 갇혀 사는 사회에 등불이 되고, 화석처럼 굳어져만 가는 이웃들의 닫힌 마음과 마음에  각성의 기운들이 분연히 솟아 나기를 바라고 싶다. 강 건너 불구경의 한가한 타령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에게도 큰 배움이 있다. 부모는 자식을 전 인간적인 면에서 성장을 돌봐야 한다는 걸 우리는 안다. 채터턴의 아버지는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모범적 삶을 살면서 아들이 명예로운 인생을 꿈꿀 수 있게 도운다. 자식의 성장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은 세상의 부모들이 갖출 덕목임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고전을 읽으면 책 속에서 천재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인생은 계획이 있어야 하고 성취를 위해 근기를 발휘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육성이 책갈피에 잔잔하게 배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하여 채터턴은 크고 작은 불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의 주류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방법으로 인생을 항해할 것 같다. '극기가 빠져나간 삶에는 발전이 없다'는 철학자의 말도 함께 보내 주며 생각거리를 안기는 좋은 책이라 하고 싶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고전을 펼쳐 보며 자란 작가는 행운을 누린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셜리 잭슨의 '제비 뽑기', 리처드 코널의 '가장 위험한 게임(the most dangerous game)', 오헨리의 '동방박사의 선물',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불굴( invictus)'...
나는 대책 없이 아버지가 애장한 책들을 메모하고 있었다. 딱히 뭣에 쓰겠다거나 읽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렇게 고전을 사랑하고 읽고, 자녀에게 읽히며 정신적 지평을 넓혀 간다는 점을 잊지 않고 싶기 때문이지 싶다. 
이전에 읽은 니체의 글을 다시 펼쳐 보니 작가를 감화시켰을 사상들이 오롯이 문장으로 담겨 있다. 
"잘못에는 책임을 지려고 하면서 어째서 꿈에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가? 지신의 꿈이지 않은가?"